'프로그램/다슬기'에 해당되는 글 3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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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오프 모임 2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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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다슬기 3: '빨갱이'의 탄생에서 '종북좌파'까지 4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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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다슬기 1: 정약용의 뜻과 좌절 5
201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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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쉽니다. 17
2012/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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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11월 26일 오후 7시 24
201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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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고르기아스 읽기: 8월은 쉼. 32
201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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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5월 7일 보충자료 <국가> 508e-511e 수학과 선
2011/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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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읽기보충자료 <생명이란 무엇인가?>
201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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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2011 겨울 12
2011/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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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다슬기 종강 모임 10
201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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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9월 16일
201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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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도 다슬기 37
2010/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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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여름모임 34
201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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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과학철학회 참가 후기를 쓰도록 해 봅시다. 14
201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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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여름 프로젝트 8
201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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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 통섭의 경계 2
201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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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함(吶喊) - 추모를 대신해 8
201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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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2010년 봄학기 모임 안내 23
201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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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친구들에게 드리는 편지 6
201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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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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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나 읽어 보렴: 김상봉 선생의 글
201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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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201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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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3일 모임 안내 3
2009/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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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도 2학기 다슬기 모임 뒷풀이 7
200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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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가을 종강 모임 [0911126] 12
200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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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물학 심포지움이 있어 올립니다. 1
2009/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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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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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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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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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모임 보충 8
2009/10/11
크리스마스 오프 모임
2012/12/24 18:33그리고 왠지 이런 시국에 그냥 놀기에는 국민으로서 일말의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어, 그런 순전히 이기적인 목적으로 "원격다슬기 3"을 올립니다. 읽어보시길.
모임 시간은 내일 오후 이후가 되겠습니다. 저녁은 같이 해먹습니다.
저희 집으로 오시는 길은 신림역 또는 서울대입구 3번 출구로 나와 버스를 타면 됩니다.
문앞에서의 검문검색을 통해 선물이 발각되면 돌려 보내겠습니다. 다만 같이 해먹을 식재료는 허용합니다. 티비 없고 인터넷 안됩니다. 와이파이는 제 침실에서만 좀 터집니다. 그 사이 프로젝터가 생겼습니다. 원하시는 영화나 음악을 오전까지 댓글로 신청하시거나 담아 오시면 됩니다.
원격다슬기 3: '빨갱이'의 탄생에서 '종북좌파'까지
2012/12/24 15:121949년 2월초, 삭풍이 휘감는 도심의 한 건물. 3층의 사무실로 작업복 차림의 초췌한 젊은이가 끌려들어간다. 사무실 맞은편에 앉은 국장의 눈에는 죄수의 표정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해질 무렵이었던 것이다. 순간 '목숨을 구걸하러 왔구나'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면담은 시작되었고 고문에 지친 처연한 목소리 한편으로 생사를 초월한 의연함이 묻어났다.
"나를 한번 도와주실 수 없겠습니까."
짧은 대화 끝에 나온 이 한마디가 국장을 움직였다. 무심코 "도와주겠다"라는 답이 흘러나왔다. (백선엽은 이 말이 '무심코' 나왔다고 뚜렷이 기억한다). 가느다란 운명의 끈이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며칠 뒤 이번에는 충무로 근처의 임시법정에서 열린 군사재판. 정복차림에 이발까지한 단정한 모습의 죄수. 유난히 많이 바른 머리기름이 번득인다. 무언가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한 모습이다. 재판관이 신문을 시작하자 체념한듯 순순히 죄를 자백하고 시인한다. 곧이어 사형이 구형되자 며칠 전 면담이 떠올라 이를 깨물었다. '소용없는 짓이었군.' 같은 날 사형을 언도받은 대부분의 장교들은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나는 박정희를 생각할 때마다 이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만일"을 공상하게 된다. 만일 그때 방안이 좀더 밝아 죄수의 모습이 구걸로 비춰졌더라면. 만일 그때 방안을 채운 공기와 먼지 입자의 미세한 떨림이 목소리의 의연함보다 처연함을 더 부각시켰더라면. 만일 그때 국장의 신경세포 시냅스의 전류 흐름이 그의 마음을 좀더 무디게 했더라면. 만일 그것이 무심코 한 말이었다면, 대신 똑같이 무심하게 '그럴 수 없다'고 내뱉었더라면.
물론 그랬더라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박정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그날의 장교들과 운명을 같이 했을 것이며 그들처럼 그 이름은 이제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박정희 개인만이 아니라 우리 현대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5.16 쿠데타도, 베트남 파병도, 한일협정도, 유신헌법도, 긴급조치도, 10.26도, 12.12도, 5.18도 없었을 것이며, 가깝게는 현 당선자도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 모나드와 이 우주의 다른 모든 모나드가 다르게 연결돼야 했을 것이며, 그러면 우리는 그렇게 새로 짜인 세상이 더 좋았으리라 말하고 싶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모나드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내 모교는 박정희가 파병의 대가로 미국에서 받은 천만 달러의 원조로 처음 설립된 기관이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대학에 갔을까? 아니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베트남전이라면 아버지가 참전한 전쟁이고 어머니를 처음 만난 것이 보훈병원이라고 했으니 그렇다면 ... . 음. 이 가정은 왠지 안 될 것 같다. 박정희가 사라진 가정의 역사에서는 결정적으로 이렇게 수많은 '만일'을 공상하는 나란 모나드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 없는 세상이 더 좋았을 수도 있긴 하다.
박정희가 좌익으로 몰려 사형선고까지 받은 역사적 배경에는 해방 이후 혼란스런 정국에서의 좌.우 대립이 자리하고 있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은 남한만의 단정이 수립되기 이전의 좌익은 오늘날의 '빨갱이'가 아닌 다른 정체를 지향하는 정파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3.1운동의 기획자 여운형은 대전 중 일본의 패망을 확신하고 치밀하게 해방 이후의 정국에 대비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구보다 여운형을 높이 평가한다.) 충칭의 임시정부는 일본의 패전과 같은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국내 상황 대처하기에는 너무도 멀리 있었고 임정만이 유일한 법통이라는 김구의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운형은 일관되게 좌우합작의 입장을 견지했으며 미국의 지지를 받은 이승만이나 임정 정통을 고집한 김구와는 다른 통합 노선을 추구했다.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통일국가의 건설은 좌우합작으로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여운형의 통찰이었다. 반면 미군정은 공산당과 단절하도록 여운형을 압박했고 이승만은 '남한만의 단독정부'(46.6 정읍 발언) 운운하며 본색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결국 여운형의 암살(47.7) 이후 좌우합작은 구심점을 잃고 미소공동위원회는 결렬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 두 사건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최초로 '빨갱이'를 우리 국민의 의식 속에 죄악으로 각인시킨 사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빨갱이'가 제주와 여순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제주와 여순이 오늘날의 '빨갱이' 개념을 탄생시킨 것이다. 물론 사건의 발단은 우익계 인사와 경찰을 습격한 좌익 세력과 군인들이다. 하지만 이것은 반공을 국시로 하는 정체가 성립하기 이전의 일이다. 그리고 살상의 규모로만 말하자면 해방공간에서는 좌익보다 우익이 더 조직적이고 대규모적인 살상을 감행했다. (여운형 암살도 우익 테러) 다시 말해 이들 사건은 친일 경찰과 결탁한 정권의 정통성이 48년 당시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정권의 정통성은 반대 세력을 빨갱이로 내몰면서 반사적으로 확립되어 나간 것이다. 빨갱이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이 정권의 정통성을 부여해 준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현대사를 이해하는 마스터키이다.
이런 적은 거의 없고 거의 언제나 실상은
빨갱이 = 마르크스.레닌 사상의 추종자 빨갱이 = 반정부 (반친일, 반미, 정부정책비판) 세력
그리고 이러한 야비한 술책을 우리 정치사에 도입해 정착시킨 인물은 굳이 지목하지 않아도 명명백백한 것이다. 그것은 범죄심리학의 용어로 '누가 이익을 보는가?'(cui bono)의 문제이다. 누가 이 구도를 만들어 가장 큰 이익을 보았는가? 누가 이 구도를 최초로 국민들에게 내면화시켰는가? 그래서 누가 '국민의 이름으로' 권력의 정통성 시비를 일소하고 영화와 권세를 유지했는가? 그것은 처음, 바로 오늘날 일부에서 기념관을 짓고 역사를 날조해 국부로 추앙하는, 언급조차 부끄러운 인간의 가증스런 소행이었던 것이다.

이승만은 이목을 끄는 연기와 기회주의적 술수에 능했으며 분란의 대가였다. 독립 단체는 그가 참여할 때마다 족족 내분을 겪고 와해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고 돌아섰다. 그가 같은 방식으로 가장 거대하게 해먹은 단체가 바로 이 조선반도이며 대한민국 제1공화국이다. 따라서 그의 유명한 표어는 다음처럼 읽혀야 한다. '[자기로] 뭉치면 살고 [자기에서] 흩어지면 죽는다.' (실제로 라디오 방송에 '나를 따르시오.'라는 말이 바로 앞에 있다.) 그의 정치적 술책은 거의 천재적일만큼 교묘하고 기상천외했다. 가장 완벽하게 자신의 사익만을 추구했으며 가장 완벽하게 사상적 일관성을 결여했다. 그의 정치적 행적 전반에 걸친 거의 유일한 일관성은 반민족.반민주였다. 그의 가장 '위대한' 술책이 바로 '빨갱이'의 발명이었고 박정희는 이를 충실히 계승했다. (솔직히 비열한 죄질로만 따지면 박정희는 명함도 못내민다.) 이들이 드리운 역사의 암운이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현대사를 지배하고 있다.
기억하자. 한국의 현대사에서 부정한 정권의 정통성은 반대 세력을 좌익으로 내몰면서 반사적으로 획득된다. 이것은 참으로 간편하면서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깨지기 힘든 공식이다. 수십 년간의 폭압과 교육과 세뇌와 회유를 통해 국민들의 의식에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것이 '부정하다'고 말하기도 힘들어졌다. 국민들의 표심이, 민주의 이름으로 그 공식과 그 위에서 성립한 정권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빨갱이, 용공, 종북좌파, ... = 반 _____ (제1공화국)
= 반 _____ (제3.4공화국)
= 반 _____ (제5공화국)
= 반 _____ (현 정부)
= 반 _____ (이번 선거와 차기 정부)
실제로 이승만은 45년 10월 귀국 직후 공산주의에 우호적인 발언을 한다. “나는 공산당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의 주의에 대하여도 찬성하므로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세울 때 공산주의를 채용할 점이 많이 있습니다.”(45.10.26 매일신문) 그러다 미군정이 공산당을 불법화하자 사익을 좇아 극렬 반공주의자로 돌아섰다.
여순 사건 이후 숙군 과정에서 걸려든 박정희도 남로당 가입 혐의로 체포되지만 미군정하에서 남로당은 불법단체가 아닌 합법단체였다. 오늘날의 '빨갱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여순 사건을 계기로 남로당과 반 이승만 세력이 일망타진되면서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힌 것이다. 실제로 여순 사건이 남로당의 조직적인 개입에 의해 일어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동족을 죽일 수 없다는 군인들의 우발적인 항명이 사태의 본질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남로당과 관계한 것도 우연의 일치일 뿐 그 사상에 기반해 일으킨 반역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박정희의 행적을 둘러보아도 그가 이론으로 무장한 골수 빨갱이라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주변상황에 영향 받아 남로당에 가입한 '감상적 공산주의자' 정도가 아니었을까 한다. 박정희가 존경한 손위 형인 박상희의 절친으로 그가 숙부로까지 모신 이재복이 남로당의 군 총책이었던 것이다. 이재복이 자꾸 청해 '향우회'에 참석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빨갱이였다는 것이다. (70.7월 회상) 박정희의 의식 속에 남로당은 향우회 수준의 모임이었을지 모른다. 물론 이재복의 의도는 달랐겠지만.
불의를 저지르기보다 불의를 당하는 것이, 비록 죽음을 당한다 해도 덜 나쁜 것입니다.
다슬기 친구들은 내가 어떤 맥락에서 이 글 처음에 그린 사건을 언급했는지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바로 [고르기아스]에서 소크라테스의 말을 설명하며 예로 든 것이다. 여순 사건에 가담한 군인들을 빨갱이로 몰아 죽여야겠는데 물증이 없었다. 유일한 증거는 군인들의 자백이었고 따라서 이를 받아내기 위한 고문 => 자백 => 무고의 사이클이 이어졌다. '빨갱이' 검거에 혈안이 된 군경의 숙군수사에 유능한 군인들이 굴비 엮듯 엮어져 나왔다. 박정희도 '향우회' 명단을 제출하고 수사에 적극 협력했다. 이를 구실로 백선엽에게 선처를 호소한 것이다. 당시 숙군과 관련해 전권을 쥔 백선엽은 자신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다. 어차피 죽을 것, 아까운 인재나 하나 살리자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여기에 박정희의 만군 인맥과 육사 인맥이 큰 힘이 됐다. 백선엽은 실제로 독립군 공격에도 참여한 간도특설대 출신이다. 박정희가 체념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백선엽은 만군 인맥을 동원해 미 고문단에 양해를 구하고 육본에 재심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박정희가 풀려난 뒤로도 백선엽은 그가 현역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뒤를 계속 봐주었고, 이 '은혜'를 박정희는 집권 기간 내내 그를 위한 '자리'로 보답한다.
이렇게 박정희 개인의 부끄러운 과거로 묻힐 수도 있었던 사건은 63년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국민들의 의식 속에 들어온다. 투표일 이틀 전 (63.10.13) 전국에는 동아일보의 호외가 뿌려졌는데 거기에 박힌 제호가 다음과 같았다.

여순사건 자료를 공개, 박정희씨에 무기언도
실제로 유세 기간 내내 당시 민정당의 윤보선은 박정희의 ‘남로당 경력’을 문제 삼으며 해명을 요구했다. 재미있는 것인 박정희가 이를 매카시즘적 (빨갱이 사냥) 수법이라고 되받아쳤다는 것이다. 곧 이 시점까지도 박정희는 색깔론의 가해자 아닌 피해자였으며 거기에 대해 부정적인 가치평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호외를 접한 국민들도 녹록치 않았다. 놀랍게도 민정당이 제기한 색깔론이 남부 지방(전남, 경남북, 제주)에서 박정희 몰표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것이다. 당시에는 아직 투표의 지역 구도가 없었다. 그렇다면 제주와 여순의 잔상이 남아 있던 지역민들이 내심 박정희의 과거에 공감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아무튼 색깔론을 비켜간, 아니 어쩌면 그 색깔론 때문에 집권한 박정희는 이제 그 자신이 빨갱이 사냥의 신봉자가 된다. 이승만이 조봉암을 죽인 것이나 박정희가 김대중을 죽이려 했던 것 모두 그 공식의 충실한 이행이었던 것이다.
박정희는 김대중에게 빨갱이 혐의뿐만 아니라 지역색의 멍에를 씌웠다. 망국적인 지역감정, 특히 영호남 갈등이 탄생한 것이 70년대이고 그 주동이 박정희의 대구사범 스승이자 국회의장을 역임한 이효상이라는 주구(走狗)이다. 이효상은 이미 63년 선거에서 박정희의 "신라 대통령론"을 들고 나와 재미를 보았다. 그랬던 그가 1971년에는 "전라도에 정권을 넘겨서 되겠는가"라며 김대중을 "전라도 대통령"에 불과하다고 공격한다.
김대중 = 전라도 대통령
박정희 = 신라 대통령 (= 대한민국 대통령)
다시 이것은 '누가 이익을 보는가?'의 문제이다. 이 구도가 정착되면 누가 이익을 보겠는가? 당연히 인구가 배 가까이 많은 쪽일 것이다. 그러면 아무리 다른 지역에서 선전해도 이 둘의 표차를 메꾸기 힘들다. 곧 이 지역의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다. 71년 선거와 다음 직선인 87년 선거의 결과를 비교해 보면 (위키피디아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다) 그 사이에 지역구도가 얼마나 극단적으로 공고화되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의 선거에서는 지역이 깡패다! 여당은 아무리 위기가 닥쳐도 지역이 '믿을 구석'인 것이다. 여기에 밥숟갈 얹고 박정희 향수를 자극하면 '선거의 여왕'이 된다. 박정희는 이것이 딸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이 될 줄 꿈에라도 짐작할 수 있었을까?
불행히도 21세기도 십 수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러한 과거로부터 일보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를 둘러싼 이념과 지역 갈등에 세대 간 갈등마저 더해질 조짐이다. 모든 갈등에는 역사적 뿌리가 있고 해결책은 바로 올바른 역사 인식이다. 많은 이들이 과거는 과거에 묻자고 한다. 왜 과거를 들춰서 분란을 일으키냐고, 그래서 미래로 나아가는데 발목 잡냐고 반문한다. 물론 조상들의 치부를 감추고 대대손손 영화와 권세를 누리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쉽게 처리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과거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바로 우리 현재의 모습과 미래의 제약 조건을 이룬다. 놀라운 것은 현 당선자의 표어가 과거의 그것을 놀랄 만큼 닮아있다는 점이다.
국민대통합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잘살아보세 = 경제만 살리면
국민행복 = 그깟 행복 개나 줘버려
(마지막 등식은 다슬기에서 추모한 복슬이를 기억해야 이해할 수 있음. 보충 설명 밑에)
조선왕조의 역사를 살펴볼 때마다 나는 수양대군 세조의 찬탈을 가슴아파하지 않을 수 없다. 한줌의 치적을 평가해 주기에는 그의 죄업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세조의 집권으로 유교 국가 조선은 하루아침에 가장 반인륜적인 패역 국가로 전락했다. ‘왕권 강화’라는 명분도 실제로는 자기에 붙는 공신 집단만을 키움으로써 장기적으로 조선을 소수의 특권층이 지배하는 사회로 만들었다. 세조의 찬탈 때문에 훈구파가 득세했고, 이들과 사림의 대립은 피비린내 나는 사화로 이어졌고, 대립적 정쟁 속에 조선은 문약에 빠졌고, 양란으로 진즉 망했어야 할 국가는 노론과 세도정치로 수백 년을 더 이어갔고, 결국 강도 일본에게 나라를 강탈당했다. 죄업의 역사적 하중이 그토록 무겁고 오래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세조의 찬탈은 ‘정의의 패배’를 조선 백성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리고 그 정의가 패배하는 일은 대한민국의 현대사로 이어졌다. 이승만의 권력장악은 박정희의 쿠데타를 낳았고, 쿠데타는 유신을 낳았고, 유신은 전두환의 12.12를 낳았다. 세종과 문종의 유교이념은 수양의 찬탈로 배반되었고, 4.19의 민주이념은 박정희의 쿠데타로 배반되었다. 그리고 그 권력찬탈의 명분이란 것은 언제나 ‘정치적 혼란과 위기 상황’이었으며 일단 집권하면 ‘치세’와 '경제발전'이 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모든 의문을 잠재우게 되는 것이다. 과연 ‘잘살아보세’나 ‘국민행복’의 수사로 역사에 대한 반성을 회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가?
불행히도 현 당선자는 역사에 대한 인식도, 아니 그 인식의 필요성에 대한 자각도, 역사의 하중을 감당할 능력이나 청산할 의지도 모두 결여하고 있는 듯하다. 태생적 한계가 너무도 명백한 것이다. 독재자의 딸이라는 사실이 오늘날의 그녀를 있게 한, 그녀를 규정하는 전부인 것이다. 그녀가 과연 정치인으로 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한번이라도 권력에 맞서 진실을 말한 적이 있는가? 한번이라도 국민적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소신 있는 발언을 했는가? 한번이라도 악법 개정이나 민생 현안 해결에 실질적인 공헌을 했는가? 의정활동과 관련된 그녀의 유일한 업적이란 것이 장외투쟁 끝에 개혁 사학법(그녀의 돈줄과 관계)을 도루묵으로 만든 것이다. 그녀의 유일한 정치적 공헌이란 것이 선거 때마다 얼굴마담처럼 표를 몰아주고 난파하는 당을 살려준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민생’ 구호는 진정성을 결여한 공허한 울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그녀가 하루아침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권좌에 오르게 되었는가? 답은 이미 말하지 않았는가? 그녀에게서 아버지를 빼면 듣보잡 국회의원의 지위만이 남을 것이다. (물론 국회의원이 될 수도 없었겠지만) 그녀는 역사를 직시할 용기가 없다. 아버지를 객관화해서 볼 안목이 없다. 그렇게 되는 순간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게 되고 그러면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세습은 일어나고 있다. 만일 우리가 한 개인의 모든 능력이나 배경, 이력 등을 고려할 때 그 자신의 능력보다 그의 아버지가 누구라는 사실에 의해 지도자가 결정된다면 나는 그것을 ‘세습’ 이외의 다른 말로 기술할 수 없다. 그것이 헌법에 명시된 북한 같은 국가는 예외라고 쳐도 민주주의가 발달했다고 하는 미국(부시 부자)이나 한국에서 세습이, 그것도 국민의 자발적 동의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믿기 힘들다. 그것은 과거가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로 되돌아온다는 역사관에 비춰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사태인 것이다. 왕정은 언제라도 부활할 수 있고 민주주의는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잠재적 의식에 중층적으로 겹쳐 있는 과거의 모든 역사에 대한 기억 가운데 하나가 표면으로 떠올라 의식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현 정권 전의 '잃어버린 십년'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두려운 것은 그것이 ‘아름답지만 짧았던’ 십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세조의 찬탈이 왕조에 수백 년간 드리운 암운, 어쩌면 우리는 대한민국의 독재자들이 드리운 그 암운의 터널 초입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정의가 사라진 역사의 기나긴 터널이 수십 년, 수백 년 지속되는 것은 아닐까?
노나라의 대신인 계강자가 정치를 물었다. 공자는 답한다. 정치는 올바름이다. 그대가 올바를진대 누가 감히 올바르지 않겠는가? (政者, 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 계강자가 이번에는 도둑을 걱정한다. 그러자 공자는 그대가 욕심이 없다면 상을 주어도 도둑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다. (苟子之不欲, 雖賞之不竊.) 정치는 정의이며 공동선의 지향이다. 위정자가 바르지 않고서 국민이 바른 경우는 없다. 그리고 정의가 바로서지 않고서는 경제와 민생이 나아질 수 없는 것이다. 어찌 ‘잘살아보는’ 일이 등 따습고 배부른 일에서 끝나겠는가? 어찌 인간의 행복이 복슬이의 행복이겠는가? 그것은 도덕이 구현되며 정의가 바로서고 인정(仁政)이 실천되는 사회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경제를 걱정하는가? 지난 몇 년 간 나라 안 가장 큰 도둑이 누구였는가? 그대들이 해쳐먹지 않는다면 경제는 나쁘게 하려 해도 나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우려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정치와 경제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을 보게 될지 모른다. 극우파이자 최근 자민당의 집권으로 총리가 된 아베 신조. 그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으로 괴뢰정부인 만주국의 산업개발 5개년 계획(어디서 많이 듣지 않았는가?)을 추진했으며 전후 총리까지 지낸 인물이다. 메이지 유신의 정신으로 쿠데타와 유신을 일으킨 박정희와 그의 뒤를 봐준 백선엽의 ‘만주인맥’으로 같이 묶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이 한일 양국에서 최고 권력의 지위에 올랐다. 일본 매체는 벌써부터 우리 당선자가 한일 국교정상화를 단행한 박정희의 딸로 독도나 신사 참배 문제 등으로 더 이상 자신들과 대립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것이 정녕 우리의 미래인가? '글로벌 리더십', '세계적 여성지도자'의 현혹스런 수사가 가린 진실은 무엇일까?
강대국의 보수는 자국의 이익을 대변한다. 일본의 극우가 그러하고 미국의 매파가 그러하다. 하지만 우리의 보수는 자국의 이익보다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강대국의 이익을 대변한다. 현 대통령이 뼛속까지 친일.친미라는 사실은 또한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마도 대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미래 한반도의 구도는 이럴 것이다.
중국 - 통일한국 (동북아 균형유지. 조정자) - 일본, 미국
그런데 뉴라이트의 역사 조작이나 중국의 동북공정이 소기하는 구도는 어떠한가?
북한의 중국화 vs. 남한의 친일, 친미 강화
과연 친일.친미의 강화가 앞으로 우리의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중국이건 일본이건 미국이건 모든 강대국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할 뿐이다. 우리의 이익은 우리가 챙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대국에 기생해 분단 구조를 유지하며 사익을 챙기는 국내 세력이 있다 해도 그 사익의 한계란 명백한 것이다. 스스로 통일한국으로 서지 않으면 언젠가는 모두 공멸하고 마는 것이다. 지속된 분단과 공멸이냐? 자주통일과 번영이냐? 여기에는 어떠한 이념논쟁도 무의미하다. 이미 세계는 하나의 시장이 되었고 중국이야말로 세계자본주의의 첨병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어찌 북한만이 고립을 추구할 수 있으며, 어찌 국익을 위한 건전한 정치적 비판을 죄다 종북좌파로 매도할 수 있단 말인가.
이 글을 쓰는 데는 많은 인터넷 자료의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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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2012/12/27 22:40선생님의 정성어린 글 잘 읽었습니다. 옳음과 바름의 관점에서 역사를 관통하시는 선생님의 시각에 거의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저는 우리가 저들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무능하다는 시각에 반대합니다. "무능"이라는 말은 단순히 "약자임"을 뜻하지 않고 모종의 도덕적 함의가 들어 있습니다. 원래 "현자"가 "유능한 자"를 뜻하듯이, "유능"과 "무능"은 단순히 강자와 약자의 대비가 아닙니다. 우리의 무능에 대해 반성하라는 비판에 대해 저는 거의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어제 논쟁에서 저를 화나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친일반민족부패세력이 유능했고 우리는 무능했다는 지적은 정말이지 옳음과 바름의 관점에서 현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힘의 관점에서 현상을 보는 것입니다. 저들은 대한민국의 대부분 부동산 자산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대부분 여론 시장과 금융과 기업들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대한민국 대부분 공권력과 교육 체제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막강합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힘이 몹시도 작습니다.
혼합주의자 또는 실용주의자들은 제가 이 엄연한 현실을 모른다고 비판하면서, 동시에 모순되게도, 이 현실에 저항하려는 저의 시도를 또한 비판합니다. 하지만 민족민주세력에게 이런 방식으로 비판하다가 갑자기 반민족반민주부패세력의 대변자가 되어, 그들 의견과 입장에 인식적,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고성국 같은 이가 그런 지식인들 중에 하나이죠.
그들의 막강함이 그들 주장의 설득력을 높여주지 않습니다. 우중들은 그들의 막강함에 위축되어 그들 주장에 압도당하고 있을 뿐입니다. 일베나 뉴데일리나 조중동에 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글을 쓰는 누구에게도 저는 머리카락 하나의 정당성도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모종의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문약 지식인들에게 저는 무척 분노하고 있습니다.
저는 노무현과 문재인에게 던져지는 "무능"이라는 비난은 매우 악랄하고 사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범주의 비판을 반성없이 해대는 사람들을 올바른 지식인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저의 현재 심정입니다. 제 심정을 아신다면 저를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는 저들에 비해 몹시도 몹시도 힘이 없습니다. 저도 힘을 키우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직 진실과 선함과 아름다움만이 나의 힘에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들을 잘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보다 그들에게 그 어떠한 도덕적 정당성도 부여하지 않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들이 해 놓은 그 어떤 것도 업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들에게 돌려진 잘못된 찬사를 완전히 몰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승만과 박정희에게 약간이라도 더 공적을 돌리려고 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에 왜 제가 귀를 기울여야 합니까? 진실과 논리로 말하지 않고, 조야한 레토릭과 힐난과 협박으로 소리 지르는 저들의 소음에 왜 제가 힘을 빼야 합니까? 그 소리에 계속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신다면, 그것은 선생님의 몫으로 돌리겠습니다.-
이민정
2012/12/29 02:00엊그제 이런 논쟁을 했던가요?
몇 가지 오해가 있어서 덧붙입니다.
저는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무능하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이 논의를 주로 한 것은 12월 8일 선거 전입니다.
친일반민족부패세력이 "유능했다"고 표현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보수가 "교묘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교묘해질 필요가 있다고 한 것입니다. (엊그제)
저는 노무현과 문재인을 무능하다고 비난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무능하다는 표현을 쓴 것은 선거 전의 민주당입니다.
지난 총선을 겪고도 단일화만 되면 이길 것처럼 안일하게 생각한 민주당을 염두에 둔 표현이었습니다. (12월 8일 논의에서)
그리고 이번 선거 이후에 친노와 비노의 "책임" 공방을 벌이는 것은 (언론조작 때문에 그렇게 비칠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무능의 한 예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자살 노동자를 찾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 올바른 대응이라고 봅니다.
제가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해 알지 못했다면 이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을 모르고 그들에게 돌려진 찬사가 왜 잘못된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아는 것이 왜 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지요? 저는 왜 "우중"들이 "잘못된" 이유에서 여당에 투표를 하는지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일베나 조중동에 글을 쓰는 사람을 알지도 못하며 읽을 가치를 느끼지도 않습니다. 다만 개인적 이유로 뉴데일리의 박성현을 언급했고 조국 선생도 읽을 만한 글이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쓰레기도 많지만 보수 이데올로기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권해 드린 것입니다. 사태를 파악한다고 거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읽은 고성국의 유일한 기사는 몇 년 전 그가 프레시안에 쓴 글입니다. 민주당이 박근혜를 너무 무시한다는. 물론 그는 이후 빠돌이로 전락하지만 되돌아보면 그때부터 체계적인 박근혜 견제전략을 짤 필요가 있었습니다.
오해가 풀리셨기를 빕니다.
아 그리고 페이스북에는 선생님 댓글만 올라가 있는데 제 원글을 링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클라라
2012/12/31 03:13저의 대부분 진술은 제 생각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쓴 글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진술을 했다는 것은 아니고요. 다만 제가 선생님의 논지를 잘못 파악했는지 모르겠으나 선생님이 결국 하고자 한 말씀은 우리 진영이 현명하지 못했고 나도 사태를 잘못 보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요? 트위터 타임라인을 보고 있는 나를 보고 "세뇌"라는 표현을 사용했죠. 제가 사태를 오판하고 있다고 여러 번 지적했고요. "우리는 더 교묘해질 필요가 있다"에서 "교묘"가 권모술수가 아니라면 "현명"을 뜻하는 것이겠지요. 선생님 말씀은 안철수가 단일 후보가 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말씀인지요? 저는 문재인이 그리고 우리 진영이 거의 더할 나위 없이 최선을 다했고 우리 한계 내에서 최대한 현명하게 처신했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저와 선생이 사태를 보는 차이이겠지요?
저쪽은 우리보다 더 현명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요? 권모술수에 능하고 원래 힘이 막강하다는 말씀이었다면 우리 의견 차이는 정확히 어디에서 발생한 것일까요? 민주당 의원 중에서 안일하게 생각하거나 오히려 문재인이 낙마하거나 낙선하는 것을 바라는 사람이 분명 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일명 비노 또은 반노로 분류되는 사람들이겠지요. 그러면 선생님의 화살은 그들을 향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박정희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함께 자리를 했던 이 선생님이 언급한 현대사학회 내 인사들은 박정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실 텐가요? 그래야 하겠지요. 제가 화가 난 것은 박정희의 공과에 대해 한국 현대사학자의 압도적 다수가 박정희 예찬론라는 주장입니다. (현대사학회 내 한국 근현대사 전공자는 고작 4명뿐이라 하더군요. 양심도 지성도 없는 학자라고 전 생각해요.) 그 주장이 참이라면 한심한 사태라서 화가 나고, 그것이 거짓이라면, 박정희론을 학자 간 논란의 여지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이해하는 마인트세트에 대해 불쾌해서 화가 난 것입니다. 박정희를 안다면 이제는 그 어떤 공적과 찬사도 몰수해야 한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박정희에 대해 알면서도 그를 옹호하는 학자를 사이비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거나 나쁜 사람입니다. 이것이 제 주장이고 선생님이 여기에 반대했다고 저는 기억합니다. 물론 제가 틀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리석지 않으면서 착한 박근혜 지지자를 선생님이 쉽게 찾아내신다면 제 주장을 간단히 반박할 수 있을 겁니다.
칸트가 아무리 위대한 학자라 하더라도 나치 기관지에 나치를 대변하는 정견을 연재 기고하는 순간 그의 정견은 읽을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순수이성비판은 읽어볼 여지가 있겠지만 말입니다. 선생님이 박성현의 글을 읽을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순간 그 글에 최소한 모종의 인식적 설득력 내지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박성현도 표현의 자유가 있고 일베충들에게도 글 읽을 자유가 있을 테니 그의 글은 일베충이나 21세기 서북청년단에게나 적합할 뿐입니다. 박성현이 뉴데일리라는 매체 자체의 성격을 모르고 기고할 리가 없고 주요 독자가 누구인지 모를 리가 없고 자신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지 모를 리 없습니다. 윤창중보다 더 나은 게 그의 논리와 식견인가요? 대한민국 최악질의 반민족반민주부패세력을 옹호하는 논리와 식견에 대해 저는 일고의 가치도 느끼지 못합니다. 제가 만일 박성현과 논쟁한다면 필패한다고요? 만일 정말로 "논쟁"해서 진다면 그것은 그의 논거와 식견 때문이 아니라, 제가 논리도 식견도 부족하거나, 합리성 자체가 무기력하거나, 반민족반민주부패 자체가 정당하기 때문이겠지요. 이 세 가지 중에 아마 첫째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겠군요.
고성국이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박근혜라는 인물에 정치적 및 도덕적 정당성을 과대해서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민주당도 박근혜 일파가 막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대통령이 될 털끝만큼의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내가 아는 한 고성국은 박근혜의 퇴장을 위해 글을 쓰거나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지나치게 차갑게 대해서 미안해요. 저는 저 자신을 지키고 싶습니다. 선생님을 공격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닙니다. -
이민정
2012/12/31 23:53저는 괜찮습니다. 아무튼 오해가 풀려서 다행입니다. 2012년도 몇분 안 남았군요. 오프라인 이야기는 조만간 또 이어갈 기회가 있겠지요. 괴테의 말대로 새해에는 우리 모두에게 더 많은 빛을(mehr li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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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다슬기 1: 정약용의 뜻과 좌절
2012/07/25 23:39현실적인 어려움으로 다슬기 "오프" 모임은 쉬겠습니다. 대신 가끔씩 친구들이 원하는 내용으로 "온라인" 콘텐츠를 제공하려 합니다. 첫 꼭지는 정약용에 관한 것입니다.
화이트헤드는 라이프니츠를 가리켜 "2000년의 역사를 지닌 서양 사상을 계승했다"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같은 권리로 우리 역사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2000년의 유학 사상을 계승한" 다산 정약용 선생입니다.
부왕이 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고 당파싸움에 선비들을 도륙하던 야만의 시대,
주자와 다른 생각은 이단이고 서학은 빨갱이 사상으로 몰리던 닫힌 시대,
누구보다 그런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했던" 유학자였지요.
하지만 스승이자 서로 가장 친애하던 정조의 때이른 죽음으로
가족은 풍비박산, 본인도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한 채
살아 돌아올 기약 없는 유배를 떠납니다.
"천 사람을 죽이고도 정약용을 죽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반대파의 무서운 저주와 박해를 뒤로 하고 "이제야 겨를을 얻었다"고
흔연히 기뻐하며 오직 고경 속의 학문을 삶의 유일한 끈으로 삼아 견딘 세월 18년.
"곤궁한 뒤에야 비로소 책을 지을 수 있다"는 일념으로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호한한 저작을 남겨
다시 돌아보는 200년 후학을 부끄럽고 눈물짓게 합니다.
도대체가 나는 유배지의 정약용만큼 곤궁한 적이 있었던가.
도대체가 우리 민주사회는 적어도 죽이지는 않지 않는가.
도대체가 스스로를 유배시켜서라도 공부하는 선비는 못 되는가라고.
19세기의 첫 해 정조의 죽음은 분명 우리 역사의 비극이었습니다.
이로써 왕조는 돌이킬 수 없는 내리막길로 급전직하하며
우리는 역사를 자생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구심점을 잃어 버렸지요.
이후 우리 역사는 제국주의라는 속박의 굴레에서 허우적대다
이제야 제국들 간의 견제와 균형에서 잠시 마련된 태풍의 눈 같은 상태에서
(그나마 반쪽짜리) 멍한 상태로 다시 한번 정파 싸움과 이념 싸움에 여념이 없지요.
정조와 정약용의 원대한 비전은 바로 조선을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분명 개혁하지 않으면 망국에 이른다는 절박한 위기의식과 함께
그러한 이상을 차근차근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실천력을 겸비하고 있었습니다.
정조의 국정개혁 청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 [경장대고](1778)는 당시의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함께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명연설로 여전히 배울 점이 많습니다.
그런데 20여년 개혁의 공든 탑이 정조 사후 정순왕후의 주도 아래 일이년 사이에 모두 무화됩니다.
이건 어떤 느낌이냐 하면 현 정부에서 잃어버린 몇 년(실제로는 그들이 못해먹은 몇 년)
운운한 지난 정권보다 몇 배는 더한 치세가 몇 배의 기간 동안 이루어졌는데
MB나 그네 같은 똘i가 나와 일이년 사이에 모두 말아먹는 지경을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아무튼 우리 역사를 검토할 때마다 통감하게 되는 것은
거의 민족의 DNA에 각인된 보수성, 우리 힘으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는 비애,
우리 글과 사상으로 역사를 선도해 나간 적이 없다는 문화의 외래성입니다.
이러한 역사에 대한 반성이나 새로운 비전 없이 우물안 개구리 싸움을 지속할 때
"오래된 나라를 새롭게 한다(新我之舊邦)"는 정약용의 신념을 배반하고
이제는 일제도 미제도 아닌, 중제의 굴레에서 쳇바퀴 도는 한심한 역사만을 반복할 것입니다.
추천할 책과 공부 자료
이덕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2
박석무,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hooz.com에 무료가입하시면 이 책을 요약한 박석무 선생의 강의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27, 8강 다산 정약용을 아십니까 1, 2 입니다.
http://hooz.com/Standard/Sub/Default.aspx?cid1=25&cid2=3
도올 선생의 예술의 전당 강연 "왜 지금 다산인가"도 명강의입니다.
다산은 한시의 귀재이기도 합니다. 저를 감동시킨 시 두 편을 소개합니다.
(박석무 선생님 책 135쪽과 460쪽에 나옵니다)
20대 초 자신의 원대한 뜻을 밝힌 시, 술지(述志)
...
嗟哉我邦人(차재아방인) : 슬프다, 우리나라 사람들
辟如處囊中(벽여처낭중) : 주머니 속에 갇혀서 사는 듯
三方繞圓海(삼방요원해) : 삼면은 바다로 에워싸였고
北方縐高崧(북방추고숭) : 북방은 높고 큰 산이 굽이쳐 있네.
四體常拳曲(사체상권곡) : 사지 삭신 언제나 움츠려서
氣志何由充(기지하유충) : 기상과 큰 뜻 어떻게 채워보리
聖賢在萬里(성현재만리) : 성현은 만 리 밖에 있는데
誰能豁此蒙(수능활차몽) : 누가 이 몽매함 열어줄까.
擧頭望人間(거두망인간) : 머리 들어 인간 세상 바라보아도
見鮮情瞳曨(견선정동롱) : 보이는 사람 없고 정신은 흐리멍덩
汲汲爲慕傚(급급위모효) : 남의 것 모방하기에 급급해
未暇揀精工(미가간정공) : 정밀하게 숙달함을 가릴 겨를 없구나.
衆愚捧一癡(중우봉일치) : 뭇 바보들이 천치 같은 한 사람 받들고
裾唅令共崇(거함령공숭) : 왁자지껄 모두 함께 받들게 하네
未若檀君世(미약단군세) : 순박한 옛 풍속을 지녔던
質朴有古風(질박유고풍) : 단군의 세상만도 못한 것 같네.
유배지로 찾아온 큰아들, 자신의 학문을 이해해 줄까?
人生如弱艸(인생여약초) : 인생은 미약한 풀과 같은 것
況乃劇衰疲(황내극쇠피) : 더구나 너무 쇠하고 고단한 몸인데서랴.
艸露一朝晞(초노일조희) : 하루아침에 풀이슬 마르고 나면
此意知者誰(차의지자수) : 이 뜻을 누가 있어 알아줄까.
선비의 뜻(그가 20대에 품었던 뜻?)을 미약한 풀에 맺힌,
짧은 삶이 스러지면 마르고 말 이슬에 비유한 너무도 아름다운 시입니다. 뒤에
내 지금 너에게 책을 주어 읽게 하니 돌아가 네 아우(정약용의 작은아들 학유)의
스승이 되라(吾今授汝讀, 歸爲汝弟師.)
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정약용 얘기로 잠시 동안이라도 주변의 스승이 되는 것은 어떨까요?
![]() 해배 이후 고향에서 머물며 그린 풍광 | ![]() 유배 중 부인이 보낸 치마폭을 찢어 만든 매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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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shad
2012/08/31 00:07선생님의 전체적인 글의 의도와 상관없는 질문이지만, 다슬기는 언제나 그랬으니까.
음...뭐라해야 할까요, 민족 혹은 국가의 문화를 타 문화와 구분된 것으로 상정해야하나요? 물론 차이가 있는거야 당연하지만...구지 왜 우리 민족, 우리 문화를 구분지어야 하나요? 민족주의에 대한 고민이 해결이 안되서요.ㅋㅋ우리나라가 외국에서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외국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 치우쳐져있는 것) 왜 문제가 있나요? 일제,미제,중제...이 문장에서 다른 나라에 의한 한 나라의 지배를 인정하고 있다고 느끼는 건 억지인가요?ㅋㅋ
다슬기 쉽니다.
2012/06/04 19:59학생도 없고 기말고사이기도 해 쉽니다. 새 장소에서 추후에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6월 2일, 9권 3-4장을 읽었습니다.
5월 26일, 9권 1-2장을 읽었습니다.
3월 31일부터 당분간 쉽니다.
3월 24일, 8권을 다 읽었습니다.
3월 17일, 8권 9-10장 중간까지 읽었습니다.
3월 10일, 개인 사정으로 쉬었습니다.
3월 3일, 8권 7-8장을 읽었습니다.
2월 25일, 인원 부족으로 쉬었습니다.
2월 18일, 8권 6장을 읽었습니다.
2월 11일, 8권 5장을 읽었습니다.
2월 4일, 카이스트 개강 준비로 쉽니다.
1월 28일, 8권 4장까지 읽었습니다.
1월 20일, 설날 연휴로 금요일 6시에 모입니다.
1월 14일, 8권 2장의 중간까지 읽었습니다.
잠시 쉬었던 다슬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우리가 다슬기를 시작한지도 2년하고 몇 달이 더 되었고 햇수로는 벌써 4년째입니다.
그 동안 친구들의 나고 듬도 있었고 책도 여러 번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갈아치우곤 했네요.
그럼에도 이런 모임이 이때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여러분의 열정, 그리고 김명석 선생님의 배려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식 아니고 진정으로)
둘러 보면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돈, 고르기아스와 같은 철학서가 한 축이고
괴델의 증명이나 부분과 전체와 같은 과학 고전이 다른 축이었습니다.
이번 겨울에 읽을 책은 제안해 준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입니다.
플라톤도 그렇지만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제 지식은 한층 더 단편적입니다.
그럼에도 또 다시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려는 까닭은
표면적으로는 이 책이 2500년 서양 윤리학사의 제1서이자 여전히 그 놀라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8, 9권에 나오는 '우정'이라는 아주 친숙한 주제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부분입니다)
'친애'(philia)라고 번역된 이 말은 번역자가 지적하듯 우정보다 더 넓은 인간 관계의 친밀함을 모두 포괄하며 그 외연은 오히려 현대어의 '사랑'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와 자식 관계도 친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친애의 그물망에 던져지고 그 안에서 자아와 사회를 형성하며 한 평생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너무도 친숙한 주제에 대해서 사유해 볼 기회를 가지지 못한 것이지요.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우정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는 것이 비단 저만의 후회는 아닐 것입니다.
친구가 무엇일까요? 아니 누가 내 친구일까요? 우리는 왜 친구를 만들까요? 우리의 가족은, 연인은, 지인은, 아니 우리가 '친구'라고 하는 이들이 모두 다 나름대로 내 친구일까요? 친구는 많은 것이 좋을까요? 나쁜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없을까요? 등등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주제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도난마의 기세로, 그러면서도 과학적 엄밀성을 갖춘 이론적인 해답을 내놓습니다.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지나쳤던 사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에서 심오하면서도 반짝이는 진리로 탈바꿈합니다.
제가 너무 띄운 것 같나요? 우정이라는 세속적 주제가 진정한 학문으로서의 '윤리학'이 되어 가는 과정을 직접 확인해 보세요.
![]() 렘브란트가 그린 (아마도 모델이 원하지 않았을 방식으로) 호메로스 상을 명상하는 아리스토텔레스 (1653) | ![]()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16세기 그리스-라틴어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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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소영
2012/01/13 20:58호오.....!ㅋ
근데 저 내일 A-TURN활동하느라 못가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 담주는 아마 설이라 안할테고 그 담주부터 참여하겠습니다 -
김새롬
2012/01/25 21:57안녕하세요. 김새롬입니다. 혹시 저를 기억하고 계시는 분이 있으실까요?(ㅇㅅㅇ) 생각실험실 메일을 받고 뒤늦게 다시 참여하고 싶어 댓글 남깁니다. 2010년 가을에 다슬기 모임에 2번 참여한 일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상황이 허락하지 않아 금방 그만두었었습니다. 다시 시작해보겠다고 마음먹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네요. 미천한 저를(ㅋ_ㅋ)받아주시면 이번에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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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
2012/06/06 10:22그렇군요. 아쉽네요. 새 장소에 자리가 잡히려면 7월 둘째 주나 되어야 다시 시작할 수 있겠죠? 그 동안 혼자서/친구들끼리 다슬기에서 배운 것 되새겨보고 새 멤버도 모집해 볼게요.
다슬기 11월 26일 오후 7시
2011/10/20 16:13이번 가을 학기에는 과학 고전을 읽습니다.
같이 읽고 싶은 책 추천은 계속 받습니다.
9월 3, 17일: 화이트헤드의 [과학과 근대 세계] 13장을 읽었습니다.
9월 24일은 쉬었습니다.
10월 1일: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7장, 131-8쪽.
10월 8일: 쉬었습니다.
10월 15일: [부분과 전체] 7장, 139쪽부터.
10월 22일: 7장 마무리. 17장 쉴러의 '공자의 격언'까지.
10월 29일: 쉬겠습니다.
11월 5일: 17장 거의 마무리.
11월 12일: 개인 사정으로 쉽니다.
11월 19일: 17장을 끝내고 5장을 하려다가 "청년운동"에서 4장으로 빠졌습니다.
11월 26일: 5장 "아인슈타인과의 대화"를 하겠습니다. 이번 학기 마지막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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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미
2011/09/04 19:04읽고싶은 책 목록 +_+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정신과 물질>
일리야 프리고진 <확실성의 종말>, <있음에서 됨으로>,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자크 모노 <우연과 필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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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미
2011/09/18 17:59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에서 보어와의 대화가 있는 장을 읽고 싶어요!
선생님께서 최근에 보어 이야기를 종종, 문득문득 해주셨는데, 단편적인 내용이지만 매력적인 인물 같아요^^ 측정에 대한 양자역학은 없다고 했던, 물리학은 존재론이 아니라 인ㅋ식ㅋ론ㅋ이라 했던 보어를 하이젠베르크를 통해서 만나보고 싶어요!
측정에 의해 일어나는 collapse를 어떻게 보는지, 두 사람의 입장차를 자세히 알고 싶어요.
보어는 양자역학의 해석에 관한 '최소주의자'처럼 느껴지는데 ㅋㅋ 해석을 체계화한다는 것은 일관된 합리성을 고수하기 위해 중요할지도 모르는 어떤 내용들을 사상할 수 밖에 없는 과정인 것 같아요.-
이정민
2011/09/27 22:22책 전체가 거의 보어와의 무언의 대화. 우리가 읽을 7장과 17장 모두에 보어가 등장합니다.
하이젠베르크는 물리적 관측 행위에 의한 파속 붕괴를 인정. 이것이 잠재태에서 현실태로의 전이라고 함. 엄청난 혼돈.
보어에게서 파괴 붕괴는 없음. 물리 이론은 측정의 결과를 놓고 여기에 대해 이야기하지 측정 과정 중에 세계 저편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얘기하지 않음.
보어는 매력적임. 봄이 인정하듯 사유가 매우 subtle - 미묘하고 포착하기 힘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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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shad
2011/10/12 21:30저의 선동으로 10월 8일은 불꽃놀이를 갔다왔어요.
선생님들이 아무도 같이 가시지 않아서 아쉬었지만..ㅠㅠ
(ㅈㅁ샘 잘들어가셨나요??)
그래도 불꽃 짱 예뻤어요! 비록 옆에서 ㄱㄱㅇ의 불꽃 오비탈 얘기를 들어야했지만..
하하하
다음에 다함께 놀러가요!ㅋㅋ
이번주는 다슬기 열심히 하구요~ 기대되요.ㅋㅋ -
박혜정
2011/10/22 13:29안녕하셔요~ 다들 잘 지내시는지^^ 보고싶어용!! 저는 오늘도 불참 ㅠㅠ 이에요. 다음주까지 모두모두 감기조심하세요~. 이정민선생님 관악산이 누가 똥을 싼 거처럼, 누렇게 붉게 물들고 있어요. 산을 등지고 밥한그릇 해요~!!
[다슬기] 고르기아스 읽기: 8월은 쉼.
2011/07/28 13:206월 18일 다슬기는 쉽니다.
6월 25일에 뵈어요!^^
4월 23일
이번주도 다슬기! 토요일에 뵈요. ^^ 씨앗 모임은 또 일찍오는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 시간.
4월 16일
다슬기 씨앗을 어떻게할지가 묘연. 다슬기때 배우는 텍스트를 가지고 대본을 짜서 우리끼리 연극을 해볼까? 하는 제안이 있었어요. ㅋㅋ 이번주나 다음주, 칸트 모임 없는 이 두 주의 다슬기 씨앗은 일찍 오는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 시간.
4월 9일
금요일에 모이던 것을 토요일로 옮겼어요.
4월 1일
다슬기 이번주는 한 주 쉬어갑니다. 4월에 만나요 ^^!
3월 25일
요번주에는 미리 공지했듯이 씨앗 모임이 있습니다. 저번 시간에 다슬기 모임 참여했던 분들은 다슬기 시간에 배운 것, 느낀 것 짧게 글로 써서 금요일 5시에 모여요~
3월 4일
안녕하세요. 다슬기 매니저를 맡게 된 이주희입니다.ㅋㅋ 새 학기 새 계절을 맞아 다음주(3월 11일)부터는 금요일 저녁에 다슬기 모임을 합니다. 장회익 선생님의 <물질,생명,인간>은 좀 쉬기로 하고, 플라톤의 <고르기아스>를 새로 읽습니다. <물질,생명,인간>도 다시 읽을 기회가 있겠죠?
그리고 다슬기 시작 전에 조금 일찍 모이는 다슬기 씨앗 모임을 3월 18일부터 시작합니다. 생각실험실 웹진을 운영하기 위해 모임마다 글쓰기를 활성화시키자는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다슬기는 봄학기 첫 모임부터 다슬기 모임이 끝나고 다음 씨앗 모임 전까지 다슬기 시간에 배운 것, 느낀 것을 토대로 글을 한 편씩 써오기로 해요. 다슬기 씨앗에서는 그 글들을 읽어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다슬기 씨앗에 대해 다른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
**다슬기 씨앗
이제 당분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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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2011/03/04 16:00주희씨 고맙습니다.
<고르기아스> 링크: http://www.jungam.or.kr/node/1384
수많은 고전이 있지만 플라톤은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샛말로 고전 종결자!)
그것은 플라톤 고유의 심오한 생각만큼이나 다양하고 매력적인 논적들의 견해가 한데 펼쳐져 가능한 인간 사유의 모든 원형이 탐구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칸트처럼 어려운 철학 개념과 논설이 아닌
일상어와 대화로 얘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은 저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
아마도 사유의 난해함보다 그 과감함과 자유로움을 감당하지 못해서가 아닌가 합니다.
제게 처음 사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이가 라이프니츠라면
플라톤은 인간이 이렇게 과격하고 거리낌 없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격한 논쟁의 한가운데서도 기품과 쾌활함, 위트, 도회풍의 세련됨을 결코 잃지 않습니다.
화이트헤드가 서양철학사를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라고 했을 때도
플라톤의 일관된 사상이 아닌, 그 안에 던져진 풍부한 암시와
그가 열어 놓은 사물의 무한히 다양한 가능성에 주목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플라톤을 읽는 독자는 극중 인물들과 내면의 대화를 진행하게 됩니다.
논적들의 견해에 부지불식간 공감했던 자신이 소크라테스에게
통렬히 논박당하는 쾌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곧 플라톤의 매력은 그의 견해에 대한 공감보다
그가 끊임없이 자극하고 도발한다는 데 있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저희가 2009년 가을에 <파이돈>을 했는데
사실 제게 더한 충격을 준 대화편이 그해 여름에 읽은 <고르기아스>입니다.
여기에는 철학에 대한, 아니 철학적 삶에 대한 가장 강력한 고발과 동시에
가장 열띤 옹호가 펼쳐집니다. 또한 수사(말발)와 철학, 죄와 벌과 같은
영원한 철학적 문제에 대한 놀라운 견해들이 난무합니다.
우연히 이 책을 집어든 고린도인 농부가
논밭 다 팔고 자기 영혼을 플라톤에 저당잡혔다는 일화가 보여주듯
고대에도 매우 인기 있던 대화편이며
그 문제의식의 동시대성에서 가장 현대적인 대화편이기도 합니다.
2500년전 기록된(창작된) 대화가 마치 지금 누가 옆에서 얘기하듯
생생하게 재현된다는 데에 감개무량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저는 니체를, 그의 우상파괴와 반신화화, 삶에 대한 긍정을 사랑합니다.
철학 안에서 과도한 플라톤"주의"와 기독교에 대한 균형을 잡아준 측면을 높이 평가합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몇몇 주석가가 지적하듯
니체적 사유의 가능성이 이미 <고르기아스>에서 소크라테스의 논적인
칼리클레스에게 열려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반플라톤주의를 얘기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플라톤은 자신 안의 반플라톤주의를 열어 두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향유하는 과학적 문화, 철학적 문화를
가능하게 한 이가 플라톤임을 부정하기는 힘듭니다.
그가 제시하는 철학적 삶이 <고르기아스>를 통해 여러분의 영혼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
redshad
2011/03/07 23:12플라톤은 모르겠고..선생님의 사유도 저에겐 충분히 과감해보이고 자유로워요.ㅋㅋ
이번학기에는 다슬기에서 배운걸로 글도 쓰기로 했으니 즐겁게 해보아요! -
상상화
2011/03/14 22:14이번주 금요일에는 사정이 생겨서 못가요 정말 아쉬워요ㅠㅠ 과학 지진아라 다슬기를 잘 못따라가고 있었는데 고전을 읽으면서 다시 즐거워하고 있어요~ 고르기아스 재밌어요, 자기 확신에 찬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사랑하는 방식이라니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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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2011/04/12 18:17맞습니다. 안그래도 좀 더 오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주는 <파이드로스> 스캔본 142쪽 아래 단락 62부터 끝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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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2011/04/22 15:29이번 주에는 파이드로스 마지막 페이지와 함께 다슬기의 이념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마침 생생에 올라온 관련 글들이 있으니 같이 얘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상상화 - 철학은 정말 비실용적인가? 철학의 강력한 실용성에 대하여
노소영 - 세계의 모습을 형성하는 힘과 영향력 -세 가지 둔덕의 비유
클라라 선생님 - 과학과 예술
읽어오시고 시간이 나면 고르기아스로 돌아가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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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2011/05/12 23:11고르기아스 452d부터 하겠습니다. 소크라테스와의 논의에서 고르기아스가 어떤 모순에 빠지는지, 피할 방법은 없었는지 각자 읽으면서 정리해 보고 함께 논의해 봅시다.
그리고 노파심에서, 작년 같은 이벤트는 사절! 저는 여러분과 1년을 같이 한 것만으로도 기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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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2011/06/08 17:00이번 주는 24쪽 밑(469c)에서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책이 바로 나올 줄 알았는데 늦어지네요.
읽어오셔야 하니 급한대로 스캔해서 올리지요.
여러분 모두 책이 출간되면 사셔야 해요.
http://www.cyworld.com/philist/4354261
첫부분 링크는 여기에
http://www.jungam.or.kr/node/1384
참고로 역자이신 김인곤 선생님의 해제 및 분석이 있습니다. 더 읽고 싶으신 분들은 보세요.
http://philosophy.snu.ac.kr/center/analysisPDF/7-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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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2011/06/27 16:58[고르기아스 링크] 폴로스와의 대화가 끝났습니다. 이제 게임으로 치면 끝판왕 칼리클레스가 남았습니다.
분량으로도 가장 길고 여러 관문을 거치면서 서로의 내면에만 담고 있던 솔직한 얘기가 어느 때는 폭풍같이 다른 때는 실오라기처럼 풀려나옵니다.
이 정도의 솔직함과 지적 긴장으로 가득찬 대화를 현실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요? 과연 소크라테스는 강적 칼리클레스의 도전을 극복하고 슬기사랑(철학적 삶)을 제대로 방어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칼리클레스의 '후안무치'한 강건함 앞에 서로 화해할 수 없는 간극만이 남는 것일까요? 개인적으로는 이후 소크라테스의 독백으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씁쓸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스캔 링크:
http://www.cyworld.com/philist/4434149
다슬기: 읽기보충자료 <생명이란 무엇인가?>
2011/02/15 17:59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1장, 2장입니다.
17일에 1장을 제가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볼게요.
처음 스캔떴을 땐 pdf파일이 100MB가 나와서 경악했는데 djvu 파일로 만드니 상콤하게 용량이 줄어드네요.
뷰어가 없다면 아래 뷰어를 다운받은 후 문서를 열어주세요.
다슬기 2011 겨울
2011/02/09 23:11어울려 놀고 밤 새워 얘기해 봐도 공부만한 재미와 소득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올해도 모두 슬기로운 한 해 되시길.
장회익 선생님의 [물질, 생명, 인간]을 이어서 합시다. 아직 1장이 다 안 끝났는데 칸트 이야기와 함께 하지요.
그리고 하나만 하면 재미 없으니 지난 학기처럼 '게릴라식' 읽기도 중간중간 준비해 갑니다. 여러분도 시도해 보시길.
노정태, 얼 쇼리스 [희망의 인문학] 서평
스피노자, [지성개선론] 앞부분
맑스, [경제 철학 수고] '화폐' (돈의 힘), 또 있었던가?
시간과 장소는 목요일 3시반, 포스코관이 어떨까 합니다. 금요일이나 주말도 괜찮은데 김명석 선생님 수업이 이날 3시에 끝나기에 일단 그렇게 잡았습니다. 그러면 이번 주 6일 이후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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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리아
2011/01/04 22:296일 이후라면 6일도 한다는 건가요??
포스코관에 아직 예약은 안된거죠? 이미 화요일이라 이번주는 예약을 못하겠네요. 그래도 아마 빈 강의실이나 세미나실이 열려있을 거에요~
게릴라식 읽기, 논어 제6편 옹야 중 스스로 획을 긋는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아침놀 서문 읽을 때 젊은 예술가의 초상 중 일부도 했어요. 'non serviam'을 잘 보여주는 스티븐의 대사로 "나는 내가 이제 더 이상 믿지 않는 것을 섬길 수는 없어. 그것이 비록 나의 가정이건, 나의 조국이건, 나의 교회이건 말이야. 그리고 나는 될 수 있는 한 자유롭게,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완전하게, 인생 또는 예술의 어떤 양식 속에서 나 자신을 표현하도록 노력하겠어." 이 부분이었는데 제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에 늘 서툴러서 그런지 다시보니 감동적이네요...
그럼 목요일 오후에 뵈어요~ -
이정민
2011/01/05 19:56"하지만 난 내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너에게 말해 주겠어. 나는 외로운 것, 다른 사람을 위해 자리에서 쫓겨나는 것 또는 내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든지 버리길 두려워하지 않아. 그리고 나는 과오, 심지어 아무리 커다란 과오라 할지라도, 일생동안 저지를 과오, 그리고 아마도 영원히 계속될지 모를 과오라 할지라도, 그걸 범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겠어." 언제 읽어도 멋있습니다.
내일 포스코관 367호(김명석 선생님 강의실)인데 문을 잠근다고 하네요. 일단 여기 모여 다른 장소를 찾아야 할듯. -
이주희
2011/01/05 23:49우왕 *_* 드디어 내일 다슬기네요 ! 스티븐 같은 사람이 실제로 있을 수 있을까요? 믿지 않는 것을 섬길 수는 없다는 말도,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든지 버리기를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말도 너무 어려운 요즘이네요. 어렵지만 좋아요 ㅎㅎ 모두 내일 뵈요 ! -
이보미
2011/01/13 23:58감당할 수도 없는 전체에 대해 형이상학적 의문을 품는다는건 인간의 숙명이라는 칸트 >.< 인간에게는 그런 지울 수 없는 형이상학적 욕구가 내재되어있다(!)
엉엉 ㅠㅠ 역시 놓칠수없어염 칸트칸트
문학작품의 정수는 시 이듯, 철학의 정수는 형이상학이라고 생각돼요^^;
그리고 저도 상식으로 통용되는 도덕과는 다른, 윤리(저는 윤리를 self-operating 이라 칭하고 싶어요)문제에서 독창적인?^^;; 의견을 갖고 있어요. 아마도 제가 스피노자에게서 기대하는 것일 거에요.
He let others live, provided that others let him live. 제게도 재미있는 구절이에요. 헤헤
오늘 여쭈고 싶은 게 있었는데 다음 시간에 ^.~ -
서상욱
2011/01/18 12:19제가 블로거가 아니라 그런지 굉장히 복잡하네요 ^^ 어디다가 인사를 남겨야 할 것 같아서 글을 남깁니다 ^^ 일단은 홈페이지부터 좀 적응을 해야겠습니다 -
이정민
2011/02/06 23:212월 10일 모임 => 오후 3시 ECC B130호 근처의 빈 강의실
김명석 선생님께서 몇 주 동안 못 오십니다. 2월은 아쉬운 대로 저희들끼리 해야 할 것 같습니다. 10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1장을 끝냅시다(왠지 양치기 소년이 된 듯한). 그리고 다음 주부터 생명에 관한 2장으로 넘어갑시다.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외 여러 관련 도서와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은데 이 부분은 모여서 얘기합시다. -
이정민
2011/02/15 16:452월 17일부터 [물질, 생명, 인간] 2장. ECC B130호 주위 빈 강의실, 오후 3시.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마굴리스/세이건 [생명이란 무엇인가]와 같이 하겠습니다. -
이정민
2011/02/22 17:262월 24일 다슬기 모임은 오후 4시 국제교육관 14층입니다. 시간과 장소에 주의하세요. 할 내용은 [물질, 생명, 인간] 2장 2절 이후, 가영씨가 준비해 주신 마굴리스와 세이건 [생명이란 무엇인가] 1-2장입니다.
12월 19일 다슬기 종강 모임
2010/12/10 23:45다슬기와 함께 했던 한 해도 저물어 가네요. 작년처럼 뒷풀이 모임 한 번 합시다.
리나씨 시험이 24일이라 미안한데 그래도 조금 여유는 있으니 괜찮겠지요, 리나씨? *^^*
밖에서 모이기보다 저희 집에서 같이 저녁이라도 해 먹어요. 재료는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아무 것도 사오지 마시고, 선물 이런거 들고 오면 가까운 지하철역 행인에게 기부합니다. '직접' 기부하세요.
날짜는 12월 19일 일요일, 오전에 장을 보고 집에 계속 있을 테니 점심 식사 하시고 아무 때나 오시면 됩니다.
저희 집으로 오시는 길 - 2호선 신림역(3번출구)이나 서울대입구역(3번출구)에서 꼭 서울대까지 가는 버스를 타세요. 아래 지도 클릭해 보시고 모르겠으면 연락주세요.
티비도 없고 인터넷도 안되지만 음악은 마음껏 들려드릴 수 있어요. 씨디나 USB에 담아 오시면 됩니다. 그러면 학기 잘 마무리하시고 그날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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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민
2010/12/11 22:14리나 혜연 가람(아마) 주희 수민 보미 클라라샘 된다고 답변했습니다. 기대되요저 어떤 과학자의 글을 봤는데요 저는 과학철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조금 심오한 문제제기를 하는 거 같기도 하고 조금 기분나쁘기도 한데요 나중에 다슬기친구들과 이야기해보고싶어요http://bit.ly/g3TpAb-
수민
2010/12/11 22:18많은 철학도들이 교화를 찾기 위하여 철학강의에 들어간다; 그는 성서나 세익스피어를 읽는 것처럼 플라톤을 읽는다 pp. 319.이 구절이 ㅠㅠ 동의하고 싶지 않은 부분인데 조금 혼란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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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shad
2010/12/13 13:59친절한 유기화학 교수님께서 시험을 17일로 앞당겨주셨네요..
감정이 미묘해요..(유기화학을 포기하기로 했거덩요.ㅠ) 좋은데 좀 찝찝한..ㅋㅋㅋ
그래서 19일에는 마음편히! 다슬기사람들과 시간을 보낼수 있을것 같아요.ㅋㅋ-
이보미
2010/12/13 14:56나는 시험을 늦게 쳤으면 좋겠는데 ㅠㅠ 우리학교가 타학교에 비해 유난히 종강이 빨라요.. 수리물리학 특히 마지막에 늦춰진 진도 따라잡는답시고 무리하게 속도를 내서 급히 종강하고 바로 3일뒤 시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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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미
2010/12/13 14:59와웅 우왕 >.< 작정하고 맥북 싸들고 갈거여요! 과연 하루만에 선생님이 갖고 계신 방대한 양의 CD를 모두 옮길 수 있을지^^;; 여러분께 들려드릴 곡을 선곡해 가야겠어요. 헤 '-'
다슬기: 9월 16일
2010/09/05 11:28친구들 다슬기 모임은 문턱이 낮은 고전읽기 모임입니다.모든 친구들에게 개방하는 모임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오세요.
장소: 생각실험실 둥지 또는 이화여대 ECC
시간: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 매달 첫째 주 목요일은 가칭 "생각실험실 포럼"이 있습니다.
9월 9일 읽을 텍스트: 니체의 <아침놀> 서문
9월 16일 읽을 텍스트: 니체의 <아침놀> 계속
* 장소는 이화여대 ECC B265호입니다.
이후 공지는 다슬기 블로그에서
가을에도 다슬기
2010/08/28 00:502010년 11월 12일 오후 3시반부터 6시 15분까지 ECC 국제강의실 B137호 (승인)
2010년 11월 18일 ECC 세미나실 B251호 (미승인)
2010년 11월 25일 ECC 세미나실 B251호 (미승인)
2010년 12월 2일 ECC 세미나실 B251호 (미승인)
오늘 박물관 방문까지 다슬기가 있어서 즐겁고 행복한 여름이었습니다.
춘래불사춘을 뇌아리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계단 앞 오동나무가 가을 소리를 내네요. 촌음을 아껴 모두 슬기슬기.
다음의 책들 가운데 선택해서 하려 합니다.
1. 네이글 & 뉴만 [괴델의 증명] - 제 논리학 수업 교재이기도 해요. 보미씨가 진행하는 [괴델, 에셔, 바흐]의 배경이 되는 책으로 짧으니 한두 장씩 한 달이면 마칠 수 있을 것 같아요.
2. 니체
원래 [도덕의 계보]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번역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백석현 선생님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를 하려 했는데 이 책은 절판이라 구하기 어렵습니다.
다행히 니체의 다른 몇몇 저작은 박찬국 선생님 번역이 있습니다.
[아침놀] - 지금 읽고 있는데 니체를 차분히 차근차근 이해하기에 좋은 니체 자신의 저술입니다.
[니체 인간에 대해서 말하다] - 박찬국 선생님이 뽑은 주제별 선집으로 선생님 해설이 곁들여져 있어 이해가 쏙쏙 됩니다. 해석의 방향도 저랑 비슷하고.
[들뢰즈의 니체] - 들뢰즈의 니체 소개와 함께 초록도 있어 니체 저작에 대한 수준 있는 입문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장회익 [물질 생명 인간] - 포럼 준비용
이 것은 오늘 김명석 선생님과의 대화 중 제안받은 것인데 알다시피 생각실험실에서는 한 달에 한 번, 포럼이라고 외부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시간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강의만 듣는 게 아니라 그 분의 저작을 먼저 읽고 준비하면 더욱 뜻있는 시간이 되리라 봅니다. 그래서 저희 모임과 연계해 포럼 강사 선생님의 저작을 읽는 겁니다. 예를 들면 오늘 장회익 선생님 얘기가 나왔는데 그 분이 최근에 출판하신 [물질 생명 인간](석학인문강좌 권6)을 한 달 전부터 읽고 선생님을 초청하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당장 읽어도 좋은 책입니다.
가을 학기 모임 시간 및 장소
일단 시간은 목요일 7시로 잡혀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는 가영씨와 주희씨가 안 된다고 하므로 금 또는 토에 뵙던지 아니면 9월 9일 첫모임을 갖는 걸로 합시다.
장소는 이대보다는 새 공간을 쓰는 것이 좋겠지요. 제가 조금 멀어서 지난 학기처럼 늦게까지 있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제안과 피드백을 해 주세요.
아침놀 스캔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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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미
2010/08/30 01:32저야 선생님께서 <괴델의 증명>으로 길을 터주시면 좋다만,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야겠죠? ㅠㅠ
니체 자신의 저서를 읽고 싶습니다. 입문서나 해설서는 각자 따로 읽는게 좋을것같아요. <아침놀>부터 시작하는게 좋겠죠?
평상 다슬기에서 읽는 커리를 하나 정하고, 한달에 한번 있을 포럼 준비를 동시에 진행했으면 좋겠어요. 1교시, 2교시로 나누어서 하는게 효율적이지 못하다면 격주로 하나씩 진행하는건 어떠신지요? 둘 다 진행하기에는 주1회 3시간 모임이 너무 짧게만 느껴져요 ㅠ.ㅠ -
김민정
2010/08/30 23:06우선 책은 「아침놀」읽고 싶어요. 내용은 잘 모르지만, 제목이 예뻐서 마음에 들어요.
벌써 이번 주가 가을 학기 다슬기 시작이네요. 이번 주는 금요일 저녁을 제외하면 괜찮습니다.
장소는 ecc에 한표요. 학기 중에는 아무래도 학교가 이동하기에 편할 듯합니다.
홈페이지 이사 후 처음 남기는 글입니다. 뒷북이지만 이사를 축하합니다. -
이주희
2010/09/01 01:41슬기슬기슬기슬기
저는 괴델의 증명이 좋구요, 니체도 해보고 싶어요!!
저는 토요일이 안되고,(또 과외가 밀리지 않는다면..)
금요일 저녁은 괜찮아요. -
김가영
2010/09/01 12:54세 가지 모두 다 끌리는군요~ 어느 걸 먼저 하든 상관은 없지만 분량이 덜 되는 <괴델의 증명>부터 하고 <아침놀>을 읽는게 나을 것 같아요. 보미언니 제안대로 포럼 준비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격주로, 아니면 한 달에 한 번)
저는 금요일 안되고, 토요일 오후나 저녁은 괜찮아요. 책을 정해서 읽어 올 여유도 필요하고, 주희가 토요일이 안되니까 이번 주는 아쉽지만 다음 주 목요일부터 시작하는게 어떨까요? -
손혜연
2010/09/06 13:56부득이하게 첫 시간에는 참석을 못하게 되었네요 ㅠ 오랜만에 뵙는 건데 아쉬워요. 새로운 분위기에서의 다슬기가 어떨지 궁금해요 ㅎ 저는 다음주에! 함께 하겠습니다! -
이정민
2010/09/12 23:05[아침놀] 서문에서 4,5가 남았습니다. 이걸 끝내고 바로 [괴델의 증명] 서문을 읽도록 해요. 보미씨가 책 구하기 힘들다고 해서 저작권 완전 무시하고 스캔해서 올립니다. 파일 크기가 커 djvu 파일로 만들었습니다. 원문 pdf 파일도 올립니다. -
自然
2010/09/20 15:03저, 김재영입니다. 지난 목요일에 아침놀 이야기를 놓쳐서 아쉬움이 많습니다.
다음 모임도 이대에서 하는 거죠? 클라라님은 새 공간을 더 선호하시는 것 같지만... 이대에서 하는 거라면 제가 ECC에 세미나실을 예약해 두겠습니다.
괴델의 증명은 정말 정말 흥미로운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自然
2010/09/26 00:25어쩌죠? 추석 연휴 동안 여유가 있을 줄 알았더니, 이미 꽉 차 버려서 ECC에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10월 7일은 자리를 얻었는데 말이죠. 9월 30일은 일단 포스코관에 자리를 예약해 두었습니다. 아니면 다음 모임은 새 공간에서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참... 추석 연휴 즐거우셨나요? ^^ -
클라라
2010/09/26 16:27자연 선생님 추석 잘 보냈나요? 약한 목감기로 조금 불편했어요. 맛난 음식도 별로 먹지 못했고요. ㅠㅠ. 9월 30일 포관에 예약되었다면 거기서 해도 좋아요.
10월 7일 다슬기 모임은 이정민 선생에게 맡길게요. 휴강할 계획이었는데 예정된 모임이 다른 날로 변경되었습니다. 이정민 선생님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
自研
2010/09/27 11:42목요일 (9월 30일) 6시반부터 이화.포스코관 - 세미나실455호로 예약해 두었습니다. 제 수업이 6시에 끝나니까 이화사랑 들러 김밥 사가지고 갈수 있겠네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아주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Principia Mathematica도 한번 스르륵 넘겨보고 있습니다. 하긴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는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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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2010/09/27 22:38김재영 선생님 고맙습니다. 김명석 선생님 앤 여러분 9월30일, 10월 7일 모두 하도록 해요. [괴델의 증명] 한 장씩 일단 2장까지를 목표로.-
自研
2010/09/29 10:2910월 7일과 14일에 이화캠퍼스복합단지 - 세미나실B268호로 예약되었습니다. 새 공간도 맘에 들었는데 또 기회가 있겠지요. 생각실험실과 다슬기 멋진 성취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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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여름모임
2010/08/01 21:53휴가 없는 삶에도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아름답고 행복한 여름밤이에요. 헤.
저는 스탕달의 [적과 흑]에 이어 단테의 [새로운 삶]을 읽고 있네요.
혼자만 읽지 말고 같이 읽어 볼까요? 한 달 동안 논리캠프로 대신했던 다슬기 모임을 이어.
그런데 형식을 좀 달리해 여러분 각자가 읽을 거리와 토론 거리를 준비해 오면 어떨까요? 그동안 제가 했던 일을 이제 돌아가면서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고 싶으신 분만.
웹에 있는 자료도 좋고 아니면 스캔해서 올리셔도 좋아요.
저는 몇 번 언급했던 굴드의 [판다의 엄지]를 내일 발췌해서 올리겠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이나 토요일이 좋을 것 같은데 누가 이대에 장소를 알아보시고 예약해 주실 수 있겠어요? 8월에 네 번 모두 모일 수 있으면 좋겠네요. 각자 좋은 시간을 댓글로 알려주세요.
Incipit vita nova - Here begins a new life (D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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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연
2010/08/03 02:19그리고 정민쌤의 선물 '처음읽는 진화심리학' 잘 읽었어요. 읽기 쉽고 흥미로운 내용이라 재미있더라구요! 진화심리학이라는 것 정말 처음 접했는데 좀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는 것같아서 아리송해 하면서 읽기도 했어요ㅎ
저는 요즘 방학인데도 바쁜 생활을 하고 있어서 ㅠㅠ 선생님의 아름답고 행복한 여름밤이 무척이나 질투나는 밤이네요 ㅋㅋ 다슬기때 뵈요 ^^ -
이보미
2010/08/03 14:46도시의 소음으로부터 하루종일 시달렸는데 집에와서도 귀마개를 껴야 하는 아름답고 괴로운 여름밤이에요. 후.
단테라니.. 선생님은 클래식하셔요. 올드한 풍미를 좋아하시는것 같아요'-' 저는 그로테스크한 모던에 끌리나봐요'-'
'중앙도서관 폐인 다윈'으로 읽히는데요. ㅋㅋ(재미없나)
그럼 이번주는 <판다의엄지>를 함께 읽는건가요?
나머지 3번의 모임은 학생이 준비를 하는거고요?
그러고보니 저는 금요일에 일이 있어서 안되는데...ㅠㅠ -
김수민
2010/08/04 23:21전 다 시간 되네요, 할 일 없는 한량입니다.ㅋㅋ
다슬기 사람들과 전 관심사가 다른 것 같아서..
모임 사람들이 원하거나 아무도 할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제가
(막스베버-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나 심리학자 아들러의 책이나 음..문화사회학 쪽의 서적들(순수와 위험/문화사회학으로의 초대-가메야마요시아키 외 지음) 관련해서는 발제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이건 고전이 아닌가요ㅋㅋ
가급적 제가 발제를 하기 보단 다른 사람의 발제를 듣고 싶습니다 -
큐리아
2010/08/05 02:15저는 금/토 모두 괜찮고요, 주희는 금요일 안되고, 토요일 저녁 7시부터 안된대요.
이대 강의실 예약은 3일 전까지만 가능해서, 금요일은 못하고 토요일 오후 3시 반부터 계속 ECC 세미나실 예약을 해 두었어요. 승인이 될 지 몰라서 보미언니도 포스코관 예약을 하기로 했었어요.
저도 '중앙도서관 폐인 다윈'으로 읽었어요 ㅋㅋ 물론 다윈은 책에 파묻혀 산 게 아니라 실제 경험을 통해 관찰한 사실들을 갈아서 법칙을 뱉어내는 자연학자였지만요. 아 참, 저는 그런 다윈이 부러웠는지 얼마 전에 비글호 타고 항해하는 꿈 꿨었다는 ㅋㅋㅋㅋㅋ (갈라파고스 군도가 어딘지 정확히 몰라서 항로를 정하지 못하고 헤매었지만요 ㅠㅠ 이 참에 비글호 항해기를 읽어볼까나 ㅋㄷ) -
이주희
2010/08/05 21:24아, 쌤이 저번에 말씀하셨던 대나무 껍질 슥슥 벗기는 그 판다의 엄지네요 ㅋㅋㅋ 그런 엄지는 은근 부러웠었는데.. ㅋㅋ 재밌을 것 같아요.
저희가 발제하는 것은 음.. 좀 부담스러운데요, 한다면 레오나르도 믈로디노프의 '유클리드의 창: 기하학 이야기' 혹은 애머 악첼의 '무한의 신비' 이런 수학 교양서들로 제가 할 수도 있구요, (ㄷㄷㄷㄷ) 어쨌든 저도 발제를 하는 것 보다는 듣는게 좋아요.. 그런 성격이에요.. ㅋㅋ
단테도 한번쯤 읽고 싶은데ㅡ! 그리고 다슬기 시간은 (토요일에 한다면) 제가 6시에 과외하러 여기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너무 저녁이 아니었음 좋겠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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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실험실
2010/08/12 17:53이번 주 다슬기 모임이 토요일인지 금요일인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토요일이 안 되는 사람은 댓글을 남겨주세요. 일단 토요일에 하는 걸로 잠정하겠습니다.
우리 과학철학회 참가 후기를 쓰도록 해 봅시다.
2010/07/03 14:02학회 분위기야 나에겐 큰 차이는 없었어. 과학철학회는 무주리조트에서 하는 관례가 있었는데 저번에 제주도에서 하고 이번에는 강원도에서 했는데, 무주에서 했을 때 운치도 있고 여유로웠던 것 같아. 이번엔 세션이 많아서 학회 자체가 크게 성장한 것처럼 보이고. 이정민 선생의 말처럼 발표 하나 하나에 담긴 메시지와 주장들이 의미가 깊고 수준이 높다고 했나, 아무튼 좋았던 것도 사실이야.
나는 과학철학회에서 논평을 몇 번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학회에서 발표는 세 번 한 것 같은데 첫째 둘째 셋째 모두 양자역학을 다루었어. 첫째는 2003년인데 나만의 양자역학 해석을 제안했어. 과학철학회엔 처음 참석하였고 과학철학회 데뷔 무대인 셈이야. 이 논문은 나중에 조금 수정해서 (학회에서 제기된 질문들에 대해 무려 6쪽이나 되는 답변을 첨가했어) 학술지에 발표되었는데 이 논문 감사의 말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
이 논문의 초안은 2003년 6월 25일과 26일 무주리조트 국민호텔에서 열린 2003년 한국과학철학회 하계합숙세미나 「현대물리학과 철학의 만남」 분과에서 발표되었다. 고인석 선생은 과분한 격려와 함께, 논문의 질을 압도하는 논평을 해주셨다. 날카로우면서 해명적인 질문으로 이 논문의 진보를 가져다주신 고인석, 이상욱, 이영의, 이중원, 이한구, 최성호 선생과 그 외 저자의 현재 연구와 향후 연구에 호의적인 관심을 보여주신 김국태, 김유신, 정계섭 선생께 감사드린다. 여러 각주들과 부록을 통해 이들의 논평과 지적에 답변해 놓았다.
위에 이름이 거론된 사람들은 거의 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고 나에게 질문한 사람들 중에서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을 감사의 말에 거의 다 적었던 것 같아. 논문 발표 하나로 고인석 이상욱 이영의 이중원 최성호 김유신 정계섭 김국태 이런 선생님들은 나를 과대평가하는 수준으로 늘 호의적으로 인정해주셨던 것 같아. 그 외에도 다른 과학철학회 학자들은 여기서 거의 모두 처음 만났는데 내가 학회에서 뻘줌하지 않게 된 계기가 되었어. (분석철학회도 비슷한 방법으로 그렇게 되었어.) 지방의 무명 서생에 불과한 내가 이들로부터 7년 동안 받은 호의와 관심은 (대학에 자리를 마련해주려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애쓴다든지 강의를 맡긴다든지 여성을 소개해준다든지) 세계 자체가 은총이라는 생각을 강화시켰어. 아니면 그들의 존재 그 자체가 사랑이자 은총인지도 모르겠다.
둘째 발표 때는 특색 없는 발표였던 것 같다. 드 브로이와 보옴의 양자역학 정식체계를 소개한 논문이었어. 나는 점차 드 브로이와 보옴의 포말리즘이 양자역학에 대한 바른 이해라고 (물리학도들에게 이 포말리즘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국내에선 좀 편파적으로 거부되고 있다는 생각에서 그냥 담담하게 소개하는 수준이었는데 별 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어. (해석이 아니라 포말리즘을 소개했으니까. 우리 양자역학 스터디에서 이 부분을 다루지 않지만 언젠가 이것도 공부했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좀 거창한 주장을 했는데 다른 학회에서는 가끔 거창한 주장을 하곤 했는데 과학철학회에서는 처음으로 거창하게 주장한 것 같다. 물론 첫째 발표도 행간에 거창한 것들이 있어. 결론은 이렇게 되어 있다:
내 해석은 전체적이고 비국소적인 물리량만이 물리적 실제 속성에 대응하는 존재량이며, 부분적 물리량은 전체적 물리량에 의해 상황적으로 규정되는 부수량이라고 가정한다. 이 가정을 수용할 때 우리가 얻게 되는 실재주의는 비국소적 상황적 실재주의이다. 실제로 사물의 속성이 그 사물의 다른 속성이나 다른 사물의 다른 속성과 독립되어 있지 않으며, 부분들의 성격과 본성이 전체의 속성에 의해 영향 받는다면, 세계는 더 이상 부분들의 집적체가 아니다. 부분은 세계의 한 측면에 불과하고, 그 측면들의 총합은 전체 세계와 동일하지 않다. 세계는 그런 측면들의 종합물이 아니라, 세계 전체가 오히려 측면들의 모습을 결정짓는다. 우리가 국소적 현상만을 감각하는 한, 그래서 전체 세계를 알지 못하는 한, 우리의 세계 이해는 측면들에 관한 이해에 불과하며, 그 이해는 그만큼 불완전하고 불충실하다.
암튼 이 번 발표는 드러내 놓고 거창하게 주장했다는 점에서 나에게 의미 있는 발표회였다. 거창하게 말하는 것이 나의 자양분인 양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내 주장이 너무 거창한 나머지 술자리에서 한 대학원생은 내 이야기를 '제로존이론'이라는 황당무계한 이론에 빗대기도 했다.) 내 발표는 내 미래의 자연철학 연구를 예고하고 압축한 것이다. [나는 자연의 원리를 석차 1년차 가을학기 기말 에세이에서 처음으로 제안했다.] 그리고 내 심리철학과 언어철학과 생각철학 연구(사랑의 원리라고 언급한 부분)를 어떻게 자연철학과 연결할지를 넌지지 말하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나의 이 자연철학 연구 기획을 가장 잘 파악한 사람은 아마도 이정민 선생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민 선생은 지혜를 사랑하는 진짜 철학자라서 이런저런 투박함과 미숙함과 난잡함 속에서 거창하게 사소한 내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고, 내가 그를 만난 게 크나큰 은총이라고 생각한다. 짧지만 호텔로 가는 차 안에서 이중원 선생과 이정민 선생과 나눈 10분 동안 나눈 대화와, 잠 들기 전 정민 선생과 나눈 30분 대화가 이번 학회에서 가장 중요한 지적 대화였다. (하지만 아직 내 심리철학과 언어철학과 생각철학 연구의 뇌관을 발견한 사람은 아직 만나지 못한 것 같다. 철학 공부를 시작한 1997년 이후부터 계속된 이 연구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이것은 내 발표에 대한 이야기이고 무엇보다 나에게 의미 있었던 것은 과학철학회에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가영 리나 주희 성경 보미 수민의 존재였다. (피곤해서 눈이 가물가물한 것 빼고) 친구들은 거기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지적 열정을 세계에 발산했고 다른 선생들도 이것을 감지하고 있는 듯했다. 정민 선생의 말처럼 너희들이 자랑스러웠다. "지금 이 감정은 뭐죠?" (이 문장의 기분을 모르는 사람은 에프엑스의 누예삐오를 들어보길 ㅋㅋ) 특히 간친회와 그 이후 자리에서 여러 선생들이 너희들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고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 거기에 다른 학교 과학철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이 많았지만 말야. (나는 간혹 대학원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무 선생도 그렇게 이야기해주지 않아서 나라도 그렇게 하려고 했어. ㅋㅋ)
친구들이 얼마나 이해했는지 모르겠어. 나는 학술발표회에서 발표된 것은 아주 조금만 이해하는데 그것만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 단초가 되는 게 많아. 친구들은 한두 개념을 듣는 것만으로도 지성적 변화가 생길 만큼 지적 유연성을 가지고 있을 테니 뭔가 얻은 것이 많았을 거야.
학회를 마치고 동지천과 소양강(맞나) 주변을 걷고 쪼그려 앉거나 벤치에 앉아 이야기 나누었던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 점심을 먹을 때 내가 좀 거칠게 말한 부분만 없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정민 선생의 의도와 생각을 내가 파악하는 데 게을렀던 것도 있고, 내가 하려는 일들, 내가 지금까지 했던 말들에 대해 오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게으름과 오해는 차차 풀면 되겠지. 그리고 나의 성깔, 특히 독선적인 성깔과 다른 사람을 과소평가하고 비하하는 우월감을 너무 많이 드러내었던 것 같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몇몇 친구들에게 그리고 이정민 선생에게 너무 함부로 대해 왔다는 것을 내가 자각했다는 사실이다. 나에겐 예의를 차리는 것과 친한 것 사이에 반비례가 성립하는데, 이런 식으로 행동할 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하지만 이런 반비례가 좋지 않다는 것을 때때로 경험한다. 대인관계에서 내가 이 부분이 좀 서툴다. 고슴도치 딜레마 비슷한 것인데 가까이 가면 상처주기 쉽고, 상처를 덜 주기 위해 조금 더 멀어져야 한다. 이정민 선생은 상처 받지 않을 분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가까이 가는 데 주저함이 없었는데, 이 또한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친구들에게 이제 나의 이런 방식으로 계속 가까이 갈 수 없을지 모르겠다.
이정민 선생이 제3자적 관점에서 웃으며 "집요해"라고 말할 때 사실 뜨끔했는데 나에게 그런 유형의 집요함이 있다. 내가 매사에 진위를 판단하는 데 집요한 것은 아니지만 친한 사람일수록 문장 또는 판단의 진위 그리고 그 평가에 대해 좀 집요할 때가 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선배가 있는데 술자리에서 여배우들에 대한 취향들을 이야기할 때 그 선배가 "김정은이 TV에 나오면 꼴도 보기 싫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문제를 트집을 잡았는데 내가 김정은을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김정은도 내 취향이 아니다.) 나는 그런 판단을 가지는 것은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평가했고 그 선배는 정서적 취향에 대한 판단은 그런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것은 정서적 취향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사람 일반에 대한 판단이 반영되어 있고 그런 판단은 나쁘다고 주장했다. 나는 정말 집요할 정도로, 새벽 4시까지 이것으로 논쟁했다. 그 선배가 너무 놀라 나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다. ㅋㅋ. 내가 그 선배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집요했으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요즘엔 반성을 많이 한다. 내가 뭔가 진지하게 주장할 때 표정이 무섭게 변하잖아. ㅠㅠ)
이것과 상관 있는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 친구는 정말로 착한 친구인데 그 아버지는 정말 말썽이었다. 이 친구가 고생을 많이 했다. 반면 그 친구의 동생은 정말 문제아 비슷한 아들이었던 것 같은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무덤에 들어가겠다며 난리를 피웠다. 그리고 바닥에 엎드리고 흙을 긁고 아버지의 죽음을 정말로 고통스럽게 슬퍼했다. 하지만 내 친구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그때 외쳤다. "임마, 울어!" 원래 하관식 때 "아이고 아이고"를 외치는 게 예의이고 특히 상주는 큰 슬픔을 드러내야 한다. 나는 "임마, 울어!"라는 말이 우스웠다. 조롱이 아니고 정말로 웃음이 나왔다.
내가 군대에 막 들어갔을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와 누나가 별세했다. 가족의 의미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가해자는 음주운전으로 중앙선을 침범하였는데 그는 보험도 들어 놓지 않았다. 그가 우리에게 지불한 것은 거의 없다. 책임 보험으로 받을 수 있는 돈도 고작 천만원 내외였다. 우리 집안은 살길이 막막했다. 돈을 버는 사람은 아버지와 누나였고 동생 둘은 대학생이고 나는 학교를 자퇴하고 아무에게도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군대에 가버린 지 고작 한달이 되었다. 가진 집도, 가진 재산도, 심지어 전세금까지 없는 집안이었다. 거기에 남동생은 당시 사고로 눈 주위가 함몰되었고 어머니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거의 패닉 상태였다. [내가 제대 후 곧장 한 것이라고는 무책임하게도 철학을 공부한 것인데 이제 내가 가족을 벗어나도 괜찮을 정도로 가족이 안정을 찾았다.]
장례식장에 가해자 가족들이 찾아 왔는데 약간의 조의금을 가지고 왔다. 우리 친지들이 그 사람 앞에 그 돈을 돌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거 다 필요 없고 죽은 사람 그대 살려 놓아라." 나는 이 말이 너무 우스워 속으로 웃었다. 그냥 조롱이 아니라 웃음이 나왔다. 친지의 그 말이 레토릭일까, 아니면 정말로 진지하게 그런 문장을 발화한 것일까? 그런 레토릭을 사용한다는 게, 그런 레토릭을 사용하게끔 의식이 작동한다는게 좀 재미 있었다.
나는 상주로서 그 가해자 가족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 사람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아무런 비난도 아무런 증오도 없었다. 그가 법정에서 높은 처벌을 받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친지들이 그 가해자 가족들을 박대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 이후 가해자가 한 번도 우리를 방문한 적도 없고 어떤 사죄의 말이나 배상도 없었지만 나는 한번도 그에게 미움의 감정을 가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자. 그 가해자 가족이 자신이 가해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자기들이 사고 낸 것이 아니고 내 아버지가 과실을 한 것이라고. 이럴 경우 내가 어떻게 반응했을지 모르겠다. 나의 선천적인 집요함이 발동했을까? 진실을 알기 위해 집요하게 따졌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그 가해자가 정말로 내가 친한 사람이라면, 최소한 내가 계속 관계해야 할 사람이라면, 집요하게 따졌을 것 같다. 그것은 단순히 처벌과 보상 때문이 아니라, 발화에서 표현된 명제의 진위에 대한 집요함 때문일 것이다.
연애한 경험은 매우 적지만 사랑하려고 한 경험은 (사랑한 경험이 아니라) 좀 있다. 한 사람에게 내가 몇 년 동안, 그와 함께 한 거의 모든 시간동안 가장 집요하게 물었던 것은 "그때 그런 행동이 나를 사랑한 행동이었냐"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집요해서 그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진짜 잔인하다." 이 답변이 그 물음에 대한 Yes일까 NO일까, 먼저 생각했지 그 물음 앞에서 그가 얼마나 고통스워울지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할수록 그에게 미안하다. 부디 나의 집요함을 용서해.
부록1: 내가 석사 1년차일 때 쓴 에세이 중 "제3절. 자연학"
자연학이란 이것이다.
P: 오직 하나의 자연이 있다.
자연학은 P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P는 자연학의 가설이 아니다. 가설은 검증의 법정에 서야 하지만 P는 그럴 필요가 없다. P는 전제가 아니라 자연학을 여는 원리이다. 자연학은 P에 의해 열린 어떤 학이다. P는 자연학의 자리를 만든다. P는 자연학을 시작하게 하고 창출한다. P가 어떻게 자연학을 창출하는지를 보기 위해 P를 다르게 표현해 보자.
P*: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보이는 오직 하나의 자연이 있다.
이 말은 사람의 그 어떤 상태과 사정에 의해서도 변형되지 않은 오직 하나의 자연에 대한 서술이 있음을 뜻한다. 자연에 대한 그 하나의 서술을 자연학이라고 하자. 자연에 대한 절대적인 그 하나의 서술을 서술하는 자를 자연학자라고 하자. 그러면 원리 P는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P**: 자연학자에 대해 상대적이지 않은 절대적인 하나의 자연학이 있다.
위에서 등장한 <자연학자>는 물리학에선 주로 <실험장치>로 표현되기도 한다. 물리학의 역사에서 P**는 다음의 세 조건으로 표현된다. 이 세 조건들은 공간의 동질성homogeneity, 공간의 등방성isotropy, 시간의 동질성 등으로 각각 불려진다.
> 자연학은 자연학자가 자연을 보는 위치에 상대적이지 않다.
> 자연학은 자연학자가 자연을 보는 방향에 상대적이지 않다.
> 자연학은 자연학자가 자연을 보는 시간에 상대적이지 않다.
여기서 물리학에서 자연학자가 자연을 보는 위치와 방향, 시간은 물리학자 또는 실험장치의 좌표계coordinate system로 표현된다. 이제 자연학자가 할 일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i) 실재로 그런 자연학을 찾는다. (ii) 그 자연학이 원리 P를 만족하는지 검증한다. 따라서 만일 자연학자가 그가 찾은 자연학이 만일 P를 만족시키면 그 자연학은 과연 자연학이 된다. 자연학자는 위의 (i)과 (ii) 단계를 수행하기 위해 소위 <과학적 방법>을 사용한다. (i)를 위해 반성적 평형, 선험적 반성, 아니면 콰인의 그 <자극으로부터> 구성된 과학 등이 필요하다. (ii)를 위해 <관찰>, <실험> 등이 수행된다.
만일 P를 만족하는 두 개의 자연학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다음 중 하나의 결론을 얻을 것이다. (a) P를 만족하는 두 자연학은 완전히 같은 것이다. 따라서 둘은 확정적으로 서로 번역된다. 예를 들어 뉴턴의 역학과 라그랑지 역학. (b) 둘 중에 하나는 틀렸다. 다시 말해 둘 중에 하나는 P를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뉴턴의 역학과 양자역학. (c) 더 많은 실험에도 불구하고 두 자연학이 P를 만족하면서, 번역되지 않는다면, 즉 같지 않다면 그 둘은 더 큰 하나의 자연학에 포함된다. 다시 말해 둘을 동시에 포함하는 더 큰 자연학이 존재한다. 더 큰 자연학을 찾기 위해서는 번역되지 않는 두 자연학을 잇는 다른 자연학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그리고 아직 나타나지 않은, 대통일이론Grand Unified Theory.
뉴턴이 최초의 물리학자라고 말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이다. 그는 지금까지 간략하게 설명한 그 <자연학>을 찾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의 운동에 관한 세 개의 법칙 중 제1법칙을 아주 쉽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N: 자연의 모든 일부, 즉 물체는 가만 두면 가만 있다.
여기서 <가만 둔다>는 것은 영향 또는 힘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오직 그 물체만 홀로 둔다는 것이다. <가만 있다>는 것은 정지해 있거나, 속도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제2법칙을 쉽게 표현하면 <모든 물체는 가만 두지 않으면 가만 있지 않는다>이다. 위의 N은 물론 <관찰>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진술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다. 뉴턴은 이것이 물리학의 첫 법칙임을 알아차렸다. N은 그 어떤 물리학자에게 동일하게 관찰될 수 있는 사실이다. 뉴턴은 N을 관찰의 결과로, 다시 말해 케플러의 방식으로 N을 법칙이라 하지 않았다. 이것은 흄이 묘사한 것과는 전혀 다른 식의 법칙이다. 뉴턴는 N은 <제1법칙>이라고 불렀다. 그가 N을 <제1법칙>이라고 불렀을 때 물리학은 시작되었다.
뉴턴의 세 개의 운동법칙은 20세기 초의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이 출현하기 전까지 유일한 물리학이었다. 뉴턴 물리학 또는 고전역학은 정확히 말해 그의 N을 포함하여 세 개의 운동법칙이 저 위의 P를 만족하는 자연학임을 고집하는 이론체계이다. 쿤의 표현을 빌자면 그것은 하나의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분명히 쿤이 말하는 그런 패러다임은 아니다. 뉴턴의 물리학은 그의 세 개의 법칙이 모든 물리학자에게 동일한 의미를 산출하게 하려는 개념체계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뉴턴의 물리학은 절대적인 그 자연학이 아니었다. 그것은 틀린 물리학이었다. 비록 그가 틀렸다 하더라도 저 원리 P는 여전히 유지된다.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자연학을 찾았다.
E: 빛의 속도는 변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은 빛은 속도가 모든 물리학자에게 동일하게 관측된다는 E의 사실을 그의 상대성이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로써 뉴턴의 물리학은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에 의해 대체된다. 물론 E는 실험결과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관찰>이 아니다. 이것은 저 원리 P를 만족하는 자연학이다! 아인슈타인은, E가 바로 그 자연학이이기 때문에, 이것이 모든 물리학자에게 동일한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 공간, 시간, 동시성 등의 개념을 수정해야 했다. 그의 이런 활동은 분명히 <자극으로부터> 부추겨진 것이 아니다. <자극>은 그토록 완고한 <동시성> 개념을 수정하게 할 수 없다.
나에게 나의 딸국질과 나의 방귀가 동시에 일어났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그 사건은 동시에 발생된 것으로 관측될 것이다. 동시성에 관한 수많은 <경험>들은 완고한 경험이다. 그러나 이 동시성 개념은 틀렸다! 한 사람에게 동시적인 사건은 다른 사람에게 동시적인 사건이 아닐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그때까지 확고했던 시공간, 동시성 개념을 수정하게 한 것은 저 원리 P 때문이었다. 그가 E를 단순한 <관찰자료>로 간주했다면 그는 상대성이론을 발견할 수 없었다. 따라서 자연학은 <자극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저 P에 의해 열린다. 자연학이 과연 이런 것이라면, 자연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연 말고 어떤 무엇을 알 수는 없는가? <인식론>이란 과연 무엇인가? 철학이란 무엇인가? 19971126
부록2: 인간적인 학문을 위한 정초 일부
[[위 글은 아마도 기말 에세이의 초안 같다. 아래 첨부 파일은 1998년 10월에 제출되었지만 거절된 논문 일부. 제목은 "인간적인 학문을 위한 정초"라는 엄청나게 거창한 제목인데 자연의 원리와 함께 사랑의 원리를 제안한 최초 원고이다.]]
부록3: 인간적인 학문을 위한 정초 예비심사 발표문 결론
[[앞 논문 노트에 언급된, 예비심사회의에서 발표한 발표문의 결론 부분. 이게 논문이냐, 라는 비난을 들었던 글. 하지만 내가 철학을 계속하게 된 붉은 열정 같은 것.]]
글을 맺어야 할 때가 왔으니 내가 살아있는 날 동안 묻고 또한 지금 여기서 현재-세계적 삶을 살기 위해 답하고 싶은 것을 말해야 하겠다. 사람의 본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어떤 것인가? 나는 물리적인 속성과 심적인 속성을 동시에 가진다. 나는 같은 자리, 같은 때에 물리적 상태와 심적인 상태를 가진다. 나의 몸에서 육체적인 사건과 정신적인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다. 사건이란 어원상 ‘출현하는 것’ 또는 ‘나는 것’, ‘생기는 것’인데, 자연의 원리를 따르며 세계에 의해 생기는 것은 물리적 사건이다. 사랑의 원리를 따르면서 지적인 존재에게 생기는 것은 심적 사건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사랑의 원리와 자연의 원리 아래서 의미를 가지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사랑과 세계 사이에서 생기는 존재이다. 세계와 사랑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기 위해 서로 협력한다. 세계가 있기 때문에 사람은 무가 아니라 몸을 가진다. 사랑은 사람이 세계 속에 거주하면서 여전히 사람다움을 유지하게 한다. 이때 세계는 사랑이 작동할 수 있는 배경을 마련해 준다.
사랑이 있기 때문에 나는 아는 존재가 된다. 사랑 때문에 나는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른 말할 수 있다. 나의 감각기관이 고장 나도 나는 여전히 해석가능하다. 애니 설리번은 사랑의 힘으로 헬렌 켈러를 해석할 수 있었다. 유전자나 생존가치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바로 사랑과 자연의 협력 아래서 우리는 인간적이고 공적인 언어를 창출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본성상 해석가능하고 사람의 믿음은 참말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본성상 해석가능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일 타인에게 해석되지 못한다면 나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될 것이다. 사실 인간의 비극은 자신이 사랑받지 못했고 해석되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가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루돌프 아이히만이 정말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그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이지 이곳 땅 위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사랑하지 않고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들인지 모른다. 예컨대 에른스트 블로흐의 말대로 우리는 아직-아닌-존재들 또는 아직-아닌-의식들인지 모른다.
사랑이 없다면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해프닝에 불과하다. 다다 그룹에 속해 있었던 마르셀 뒤샹은 사람들이 자기의 그림을 볼 때 어떤 불결함을 느끼도록 자극함으로써 인간이 스스로를 파괴하도록 선동했다. 뒤샹은 '해프닝스'라는 이름의 전람회에서 거대한 그러나 텅빈 액자를 설치했다. 이때 관객들은 우연히 그 액자의 인물이 된다. 이쪽 사람은 저쪽 사람을, 저쪽 사람은 이쪽 사람을 액자의 주인공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 액자에 담긴 내용의 주제는 우연 그 자체이다. 암스테르담의 프로보스 투사들은 자신의 무정부주의 시위를 ‘해프닝스’라고 불렀다. 피에르 쉐페르에 의해 전개된 ‘뮈지크 콩크레테’의 연주들에서 인간의 언어는 우연히 발생되는 뒤틀린 소리로 재현된다. 그 소리를 듣는 이들은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순하디순한 여성이 그 자리에서 죽어 썩어가는 모습을 보는듯 할 것이다. 베르히만은 그의 영화 <침묵>에서 사람들의 인생을 재현하기 위해 외설적 장면들을 단편적으로 짜집어 놓았다. 존 오스본은 <마르틴 루터>라는 연극에서 역사의 우연성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 준다. 그 연극은 “자네는 자네가 옳다고 생각하는가?”라는 한 수도원장의 물음에 대해 “그렇게 되기를 바랍시다”라는 루터의 대답으로 끝난다. 헬리 밀러는 지금 이곳의 개별적인 인간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범우주 속에서 새로운 존재가 새롭게 부상할 것이기 때문에, 개인상호간의 진리, 개인적인 의미는 무의미하며 그래서 개인적인 섹스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말 것을 제언한다.
진정한 사랑이 없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해프닝스로 가득할 것이고 사막 같은 곳이 된다. 우리는 절망 자체에서, 비극 자체에서, 무 자체에서, 우연성 자체에서 의미를 창출할 수 있는가? 오직 사막뿐이라면 과연 우리는 땅에 충실할 수 있는가? 사막뿐인데 어떻게 우리가 신앙의 비약을 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이 우연인데 어떻게 우리가 어떤 최후의 경험 소위 실존적 경험을 기다릴 수 있는가? 절망뿐이라면 어떻게 우리가 무엇 무엇을 하려는 행위에 의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가? 정말 사막뿐이라면 존재하는 어떤 언어 또는 시를 지시하는 것이 삶의 모든 것이라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우리는 앨더스 헉슬리처럼 마약을, 아니면 티머시 레어리처럼 LSD를 제일차적 경험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로 인정해야 하는가?
예수는 자기의 살을 찢고 피 흘리게 하는 이들을 자기들이 정녕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 그들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붉디붉은 피를 쏟았던 것은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했고 해석되지 못했으며 그래서 자기를 알지 못하는, 진리가 없는 동료 인간들의 비극을 체현하기 위해서였다. 사막 같은 땅에, 다시 말해 오직 물질밖에 없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 때가 늦기 전에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고 그래서 타인들과 대화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정녕 모를 것이고 나 또한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 채 시간이 흘러갈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한 인간이 될 것이므로. 그래서 언젠가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으리라. 진리가 무엇이뇨? 바로 내 앞에 있는 사람입니다. 선이 무엇이뇨? 우리가 대화하는 것입니다. 미가 무엇이뇨? 이렇게 마주보는 얼굴입니다. 1998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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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미
2010/07/04 01:47새로 글을 쓰려면 가입을 해야 하나요? (인터넷 상의 과정은 뭐든 복잡해보이고 귀찮음'-')
학회에 초대해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꾸벅) 발표도 있으신데다 저희들까지 챙겨주시느라 힘이 많이 드셨을것같아요. 그래도 이와 같은 기회가 생기면 또 저희들을 초대해주셔요. 분석철학회, 논리학회 *.* 머릿속에 콕콕 입력해두었답니다. 철학이라면 뭐든 좋아요.
자유예술캠프 강좌에 무려 20분정도나 지각을 했지만 다슬기 친구들과 함께 해서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 . ^ ^ ; ; ; ; ; ; ; ; ;
참, 여쭐 타이밍을 놓쳐버렸는데 이정민선생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궁금해요. 알려주세용~용용
그리고 선생님의 성깔에 대한 염려는 놓으셔도 돼요. 허울 없이 저희를 친근하게 대해주시는 데에 기쁨을 느껴요. 저도 예의를 차리는 것과 친한 것 사이에 반비례가 성립하는데 ㅋㅋ 제가 간혹(혹은 종종?) 예의에 어긋나는 게 있다면 지적해주세요 ㅠ.ㅠ 쓸데없는 가식을 걷어내는 게 곧 애정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게 마련인걸요.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황에따라 타인에게 내세우는 나의 가면은 각기 다르기에, 저희에게 가까이 오시는 데 방식을 달리하지 않으셔도...ㅠ.ㅠ -
이보미
2010/07/04 02:18ㅋㅋ 저도 그런 의미없는 레토릭엔 신물이 나는 사람이라, 그런 불만을 자주 표출했던 때는 많은 오해를 받기도 했어요. 나름대로는 진리에 닿기 위한 노력이었고 외침이었는데, 그런 오해때문에 상처받기도 했어요. 쿠쿠.. 지난 날 이야기
선생님! 이번 발표 내용도 플로어에서나 다른 선생님들로부터 받은 질문에 대한 답변까지 포함해서 학술지에 게재하실 건가요? ㅇ.ㅇ
저기 부록2에있는 '저주받은'논문의 전문이 궁금해요*.*-
시즈
2010/07/04 14:35'저주받은' 논문은 헛소리로 가득 찬 글이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내 생각도 무르 익었을 때 세상에 다시 내어놓을 생각이다. 이번 발표회 때는 질문이 별로 없어서 답변할 것도 없고... 네가 질문을 좀 해봐라. 논문에 답변해 놓을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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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avier
2010/07/04 03:15후기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사실 여기에 있는 내용들은 질문하고 함께 대화해가면서 알 수 있었을 것들일 텐데 활자로 적힌 것을 보고 상상만 하려니 힘에 부쳐요. T-T 모두에게 인상깊게 남겨질 여행을 같이 하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다들 어떤 발표를 들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게 됐는지 많이 궁금해요.
우리 모두가 세계를 동일하게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이 뭔지, 자연학이 무언지는 김명석 선생님의 1998년 논문 본문에 쓰여있겠죠? 몹시 궁금하지만 전 솔직히 서론과 결론의 몇 페이지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조금 나중으로 미뤄봅니다. -
Klavier
2010/07/04 03:17으앗 글을 읽고 덧글을 다는 사이 보미씨의 덧글이 :) 반가워요.
오픈 아이디를 사용하는 게 이름/비밀번호로 글쓰는 것과 뭐가 다른지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이메일 주소를 남길게요. einsundeins@nate.com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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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
2010/07/04 14:37오픈아이디는 로그인을 하는 방법 중에 하나이고. 암튼 여기에 네가 로그인을 해서 새로운 글을 쓸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왼쪽에 Author에 네 이름이 보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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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화
2010/07/07 19:22클라라 선생님과 이정민 선생님께 과학철학회 같은 멋진 경험을 하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학생들끼리 사회학회를 만들어서 공부해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전문적인(?)학회에 참여해본 것은 처음이라 정말 색다르고 즐거운 경험이었어요.내용도 내용대로 인상깊었지만 지적인 활동에 열정적이신 분들을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본 것도 처음이라 감동적이기도 했어요. 제가 생각했던것보다 지성적인 사람이 대한민국엔 많구나! 뭐 이런 ㅋㅋ 여담이지만 많은 분들이 거대한 등산가방을 메고 계시더라구요 ㅎㅅㅎ.. 뭔가 신기했어요.
또 학회가 뭔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좀 더 인간적이고 드라마틱했었던 것 같아요. 전 뭔가 냉철한 지식인들의 전문적인 대토론장! 이런 걸 생각했는데 ㅋㅋ 자신을 잘 알아주지 못하는 평가(?)비판(?)에 대해서 눈물을 글썽이던 어떤 분의 모습이나 논문 코멘트 할때 수위높은 비판을 얼굴을 마주보고 서슴없이 하는 모습등등 ,여러가지로 다 신기했었어요.그리고 발표자분들이 개성이 참 강하시더라구요. 뭔가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지만 보는 것만으로 성격이나 아우라같은 것이 느껴져서 즐거웠어요.
내용은.. 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첫번째 색션, 참여적 비판에서는 솔직히 아직도 참여적 비판의 뜻이 뭔지(;;) 감이 안와요ㅋㅋㅋ
두번째 색션, 사회과학 부분에서는 이렇게 수리적인 사회과학을 접한 건 처음이라 살짝 당황했어요. 경제학에서는 진짜 이렇게 수학적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하는구나~ 근데 뭔가 이상하다. 과연 사람의 행동을 수리적으로 계산하고 더 나아가 예측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실 몇몇은 경제사회학 시간에 살짝 배운 것 같은데 어려웠습니다..
세번째 색션에서는, 대상없는 표상(?)강의에서는 논문모음집을 받지 못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하나도 알아듣지를 못했어요.ㅠㅠ 두번째 한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의 강의는 인상적이었어요. 제일 나이가 어려보여서 왜인지 동질감도 느끼면서 그나마 제일 잘 알아들었어요 ㅋㅋ 이 사람은 물리주의자들을 비판하기 위해 그들의 논리적 결함을 들춰내고 있구나! 이런 느낌. 세번째 강의는 너무 빨리 넘어가서 솔직히 이해를 잘 못했어요. 뭔가 제가 제일 흥미있어할 내용인 것 같았는데 그 후이어지는 수위높은 코멘트에도 엄청 놀랐구요!
여러모로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특히 막국수랑 춘천닭갈비가 +_+ 정말 맛있었어요. 클라라 샘의 발표를 놓친게 아쉽지만 ㅠ_ㅠ.. 담에 기회가 되면 꼭 선생님의 발표를.. 더나아가 이정민 선생님의 발표도 볼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
인간적인 학문의 정초보고 놀란 상상화
2010/07/08 01:05선생님 부록 글들을 보니 뭔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네요.. 크흑 이과문외한 문과생.. 공부해야하는데 시간은 없고 잠은 많고 할 건 많구나 ㅜㅜ
그나저나 '인간적인 학문을 위한 정초'대단하신데요. 더 나아가서 학문 분야 하나 만드셔도 되겠어요.아닌가요?
왜 논문 심사에서 거부 당했지?? 파격적이라서 그런가?
사실 제 지성적 수준에서는 제대로 이해하기 힘드네요. 공을 들여서 꼼꼼히 읽어봐야겠어요.
선생님은 석사때나 지금이나 항상 진보적이시고 시대를 앞서가시는 것 같아요 ㅎㅎ 재능이 빛나고 진심이 느껴지는 논문이라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선생님의 의지,뜻,세상에 대한 사랑,진심같은 게 느껴져요.선생님이 조금 더 연구에 몰두하실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을텐데-
다슬기 여름 프로젝트
2010/06/15 18:37친구들 안녕. 여름 때 우리 뭘 하지? 먼저 7월 1일 춘천 과학철학회 참관을 하자.
아침에 청량리역에서 기차 타고 춘천으로, 그리고 각자 듣고 싶은 논문을 청강하는 거야. 그리고 1일 밤을 학회에서 마련해주는 숙소에서 자도 되고 아니면, 따로 구하는 것도 가능할 거야. 학회 숙소가 더 편하고 저렴할 것 같은데, 사정 봐가면서 정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7월은 논리캠프 듣고 싶은 사람은 거기서 보면 되고. 나의 생각실험실 구상이 7월에 실행될지 모르겠다.
암튼 7월 1일 함께 춘천으로 갈 사람들 모집한다. ㅋㅋㅋ
오 큐리아, 수민, 성경, 보미, 혜연 접수 ㅋㅋㅋ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은데. 거기서 내가 발표할 논문 초안을 완성했다. 내 것은 좀 어려우니까 내것 듣지 말고 다른 것을 듣도록.
혹시 이걸 읽고 싶다면 3절은 빼고 읽어도 좋아. 너무 전문적인 주제이니까. 읽고 피드백을 주는 것은 언제나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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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리아
2010/06/13 22:44저 갈래요!! 가서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초대장 보니 관심가는 주제들도 있고,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ㅎㅎ 학회 숙소가 몇 명이 수용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학생들은 한 방을 같이 써도 될 것 같네요ㅋ -
[김우재] 통섭의 경계
2010/06/01 18:09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id=104¶1=57&Board=0003
윌슨과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막스에게도 물리학과 생물학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세기를 장식한 양자역학과 분자생물학 모두를 자유롭게 넘나들던 경계인조차, 사회과학이나 철학, 예술이 아닌 이웃한 생물학의 경계에서 멈칫거렸다. 그리고 자신은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막스는 성공했다. 자신은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새로운 학문을 탄생시켰기에, 자신의 한계를 알고 다른 분야의 학자들을 존중했기에 그는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손으로 그걸 이뤄냈다.
윌슨은 <자연주의자>라는 책에서 왓슨이 하버드에 부임한 시절을 기억하며 짜증을 낸다. 새파란 애송이 분자생물학자의 오만함을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새로운 생물학에 맞서 오래된 생물학을 지키고 싶어했다. 통섭을 시도하는 윌슨도 통섭 당하는 것에 저항하는 가시고기같던 시절이 있었다. 이걸 '윌슨 역설'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인문학자들에게 조금의 위안이 되리라.
경계 같은 건 원래 없었다. 17세기 학자들의 다양한 관심사가 전문화 이전의 역사라는 이유로, 그들을 폄하할 이유도 없다. 경계는 언제나 모호했고, 지금도 모호하다. 학문의 역사는 지속적인 간섭과 충돌과 화해의 역사였을 뿐이다. 융합과 통섭이란 말장난일 뿐이다. 언제나 융합과 통섭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이뤄낸 학자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입이 아니라 손으로 그걸 한다. 그것이 경계를 넘고 통섭을 바라는 과학자들이 윌슨에 대해 조용한 이유다.
막스와 벤저라는 두 명의 경계인을 거친 노교수의 실험실엔 "유행하는 과학을 하지 말라"는 막스의 말이 걸려 있다. 그 앞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말이 너무 많았다. 막스의 그 모호한 경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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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미
2010/07/04 04:53윌슨은 19세기 중반 과학사가인 윌리엄 휴얼의 consilience의 용어를 부활시킨 것과 다름없는데요. 각자 사용한 뜻이 달라요. 어원으로는 라틴어 consiliere에서 온 것으로 휴얼의 사용하던 consilience의 의미는 jumping together에 가깝다고 해요. 윌슨은 환원주의적이라면, 휴얼은 가법적 성격을 띠고 있어요. '통섭'이란 용어는 최재천이 번역하면서 한자어로 조탁한 용어인데, 거기서 중의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환원주의적 통섭은 경계하되, 비환원주의적 통섭은 지향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델브뤽의 "상호 배타적인 것들은 상보적이다"를 다른 분야에서도 발견하고 싶었던 열정. 과학이 모든 대상에 대해 이와 같은 상보성을 발견할 수 있을 때에야 완성된 것이라고 믿었다는 델브뤽. 따스함이 느껴집니다. 또, 보어의 상보성 원리에 감응한것에서 학문의 역사는 지속적인 간섭의 역사라는 것이 잘 보였구요. 저도 제 주변에 있는 배움동무들과 활발히 의견교환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헤헤
우리는 현대의 칸막이식 분과학문 체제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서 통섭이니 융합이니 새로운 과제인 양 부각시키고 있지만, 원래부터 경계같은건 없었다는 것. 경계는 모호하다는 것.을 저는 늘 염두에 두고 있답니다. 그래서 주변인들의 진심어린? 충고, 현실적인 고민들 깡그리 무시하고 눈감고 귀틀어막고 제가 조망할 수 있는 세계를 넓혀가고자 한답니다.♡
눌함(吶喊) - 추모를 대신해
2010/05/23 06:20어제 오늘 여러 가지로 울었습니다. 김명석 선생님이 알려주신 기사를 읽고 울고, 위독하신 할머니 병문안 드리러 갔다 울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울었습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소리에 잠못 이루고 누군가에게 넋두리라도 풀어 놓고 싶은데 그럴 사람이 제 곁에 없네요.
저는 정치를 잘 모릅니다. 정치인에 대해서는 더욱 무지합니다. '천안함' 사태가 무엇인지, 더 나아가 현실 정치 사안에 대해 꼭 어떤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임권택 감독님의 [창]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박정희 서거 직후 거국적인 애도 분위기를 전하는 뉴스가 흘러나오는데 직업여성들이 박통 죽은 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며 조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쩌면 저도 그들처럼 삶에 치어 정치를 조소하며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02년 유학 시절이었습니다. 노무현 이름 석 자가 처음 제 의식에 들어온 건. 인터넷으로 지켜본 그 해 선거는 월드컵보다 저를 더 열광시켰습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매체와 결합해 형성 중인 민주주의(democracy in the making)를 관찰할 수 있었으며, 부정으로 얼룩진 2년전 미국의 선거와 비교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탄핵이라는 광란의 사태가 있었지만 저는 모든게 잘 돌아가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2006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모두가 노무현을 욕하고 있었습니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심지어는 안좋은 기사마다 "xxx 때문에"라는 탓이 댓글로 달렸습니다. 제게 민주주의 정신을 대변하던 이름 석 자가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퇴 임 후 불과 일년, 검찰 수사가 시작되었고 처음에는 당당하고 꿋꿋이 이겨내던 당신도 어느 순간 감당하기 어려운 시점이 옵니다. 그 결정적 계기가 2009년 4월 22일 오후에 홈페이지를 닫는다는 글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은 더 이상 민주주의나 진보와 같은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으며 자기를 버려야 한다는.
저는 이 글을 김명석 선생님이 파고라는 모임 게시판에 올리셔서 읽었는데 그 어조가, 그 분위기가 평소와 너무도 달랐습니다. 그의 정치적이력에서 드러나는 낙관과 자신감, 유연함, 당당함이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때 제가 단 댓글입니다.
클라라 선생님이나 다른 분들 혹시라도 너무 실망하지는 마세요. 예전에 무슨 강연을 들었는데 항상 "도덕적 명분"을 중요시 하더군요. 자기가 젊은 시절부터 쌓아온 명분이 지금의 자기를 만들었다는 요지의.그런데 퇴임 후 그러한 명분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있으니 당신도 견뎌내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좀 다르게 생각해 보면 자기가 내세운 도덕과 명분 안에 갖힌 느낌이 드는군요. 그는 죽어도 그가 남긴 가치는 죽지 않습니다. 도덕을 넘어선 가치를 본다면 그는 민주주의라는 정체가 낳을 수 있는 가장 민주주의적인 정치인일지 모릅니다. 09.04.23 15:10
그런데 이번에 안희정 씨 인터뷰 끝에 동영상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저 사람, 임기 중에도 항상 그런 마음 가지고 있었구나. 정치라는 흙탕물 싸움에서 생긴 인간적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또 삭이고 있었구나. 그러한 감정의 응축과 승화가 그의 정치적 감각의 근원이었구나 라고.
아무튼 위의 짧은 글귀를 적을 때 스쳐가던 불안감은 비단 저만의 느낌이었을까요? 다른 댓글을 봅시다.
권혁중: 좀 더 지켜 봐야 겠지만......'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달아나게 하는 상황' 을 자꾸 기대하게 되는군요! 제게는 노무현에 대한 애정보다 이명박에 대한 증오가 더 큰가 봅니다. 09.04.23 22:34
익명: 근데 최종 승자는 사마의; 09.04.24 11:11
휘날리다: 헐 익명씨의 댓글 한줄에 난 두려움을 느꼈다...........09.04.25 07:38
안희정 씨의 인터뷰 중: "아, 그때부터... 언제였지 4월 30일, 31일, 그때 검찰 소환 될 때, 그때 내가 버스를 막아서라도 못 가게 했어야 하는데. 그때 막았어야 했는데.(눈물...)"
그리고 노대통령 검찰 출두 시 이창동 씨가 느꼈던 불안감 등등.
이 모든 것이 그저 우연일까요? 사후 관점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 노무현의 죽음은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4월 22일 이후 운명의 수레바퀴는 불과 한달 뒤 저 비극을 향해 맹렬히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막을 수 없었을까요? 누군가가 이 모든 것이 부당하다고, 비극을 막아야 한다고 권력을 향해 용기 있게 외칠 수 없었을까요?
"그 소리를 내가 할 수 있나...."
그 소리를 누가 낼 수 있었을까요? 누가? 누가? 당신이 할 수 없었다면 주변 사람이 대신? 팔다리가 다 잘린 상황이었다는데? 국민이! 내가 아니면 여러분이!
그런데 누구도 나서기를 주저주저한 것입니다. 설마 별 일 있을라고. 생업에 바쁜 일반 국민들이, 법 제도와 절차가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 나서기를 기대할 수 없더라도 예견했다면 막을 수도 있었던 사태가 아니었을까요? 따스한 손길로 힘과 용기라도 북돋아 줄 수 없었을까요? 우리 모두 신탁을 받고도 비극을 피할 수 없었던 외디푸스 왕처럼 운명의 노예가 된 것일까요?
한 달 뒤 토요일, 여느 때처럼 학교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데 노대통령 관련 뉴스가 티비에 뜹니다. 순간 머릿속을 치는 첫 반응, "아까운 사람 죽이는구나!" 자살이라는 정보가 주어졌음에도 왜 '죽인다'라는 표현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죽였을까요?
도스도예브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에는 아버지 까라마조프의 죽음과 이를 둘러싼 세 형제의 갈등이 펼쳐집니다. 형제들 중 누구도 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지만 셋 모두, 심지어는 천사와 같은 알로샤조차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지요. 결국 세상의 강팍함, 우리 모두의 무관심이 그를 떠밀었습니다.
사흘 동안 감정이 가장 예민한 아침이 되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의 죽음이 슬펐다기보다, 노무현이란 이름 아래 우리 세대가 대변했던 가치들이 짓밟히는 느낌이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문득 그리스어 테텔레스타이(tetelestai)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눈물을 그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순간 그의 곁에 있던 경호원의 증언입니다.
부엉이바위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노대통령 “혹시 담배 가지고 있느냐” / “없습니다. 가지고 올까요?" / “그럴 필요는 없다” / (마을 앞길을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지나가네”라고 말하자, 경호원이 잠시 노대통령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이 순간 노대통령은 갑자기 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다.
예수, 자신의 일 모두 끝마치심을 아시고 "나 목마르다" 하시니 마침 포도주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 포도주 적신 해면을 나무줄기에 매어 그의 입에 대었다. 예수 이를 마시고 "다 이루었다"(tetelestai) 하시매 머리 숙이고 숨을 거두더라. (요 19:28-30)
신약성서 전체에 걸쳐 가장 장엄하고 숭고한 한 마디입니다. 예수는 마지막 순간 포도주까지 대접받으며 다 이루었지만, 그는 담배 한 대 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 없이 이미 다 이룬 것은 아니었을까요? 온갖 증오와 질시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 모든 것을 불사른 다 이룬 삶이 아닐까요? 인한 사람, 죽어도 잊히지 않는 사람이 오래 산다는 말대로(仁者壽, 死而不忘者壽). 그러나 세상에 남은 우리는 ...
우리는 세상과, 천사, 그리고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 시간까지도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 없이 떠돕니다. 우리는 세상의 찌끼 같이 되었습니다. 부끄럽게 하려는 말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식 같아 권면하려 하는 말입니다. (고전, 4:9-14)
어쩌면 우리는 삶에 치어 가까운 사람들을 잊고 살지나 않은지,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곁에서 또한번 주저주저하고 있지 않은지요? 그가 눈물 흘린, 목숨 바친 가치들을 잊고 살지는 않은지, 사람보다 이익에, 돈이나 편안함에 먼저 눈돌아가지는 않았는지요? 오히려 우리 친구들을 질투하고 깎아내려고 하지는 않는지, 해도 해도 부족한 존경과 사랑에 너무 인색한 것은 아닌지요?
바울의 말대로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노력하기 위한 질문입니다. 여러분도 세상에 나아가 사랑을 베푸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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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
2010/05/23 19:48정민 선생, 나를 위로하는 글이군요. 나는 정민 선생을 위로해 본 적이 없는 것 같군요. 슬픔이 가시길, 그대의 정순하고 여린 정신이 다시 맑아지길, 발랄해지길.
정치인, 그런 존재가 우리 우주에 존재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면, 그런 존재에게 모종의 본질을 가진다면, 노무현은 그런 본질을 잘 보여준 정치인, 그런 충분한 이유를 드러내준 개별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정치인의 본질 같은 것은 사유를 통해서 파악되는 것 아니라, 오히려 경험을 통해서, 노무현이라는 그런 개별자를 경험함으로써만, 우리에게 파악되는 것입니다. 그런 개별자를 경험할 수 있어서 고마운 일입니다. 같은 시대에 살아서 고마운 일입니다. 그를 사랑할 수 있어서 고마운 일입니다. 내가 그리고 우리들이 정치와 정의와 사랑의 관념들을 반성할 수 있게 되어서 고마운 일입니다. 그는 정치인으로 자기 운명을, 자기 존재 이유를, 사명을 다 이루었습니다. 그는 솔성했으며 성실했으며 충실했습니다.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영화 시 중에서 아네스의 노래 -
희정
2010/05/25 18:22"어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신지 1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분을 모시고 20년 동안 충성과 의리를 다해온 저로서는 피눈물이 나는 날입니다. 지금 이렇게 생각해도…… (눈물)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했습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했습니다. 왜 좋아했냐구요? 그분이 저에게 한자리를 주었습니까? 그분이 저에게 돈을 주었습니까? 하지만, 저는 노무현이 좋았습니다.
노무현은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말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했습니다. 왜 출세를 합니까?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고 출세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출세하면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밟아도 되는 겁니까? 돈을 벌던, 권력을 갖던 다른 사람의 눈에서 피눈물나게 하면 안 되는 겁니다. 내가 설령 출세하더라도 사람이 바뀌면 안 되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제가 그 노무현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것은 아직도 시골에서 농사짓고 있는 우리 부모님과 평범한 보통사람들에 대한 저의 충성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국민에게 충성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에게 충성하는 것은 제가 살아온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이요, 힘없고 빽 없는 이 땅의 보통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충성이었습니다. 그것이 저의 도전이 가지고 있는 저의 간절한 꿈입니다." 안희정, 2010년 5월 24일 충남 강경 젓갈시장 앞 유세 중에서. -
이보미
2010/06/01 21:52갖힌(X)->갇힌(O)
치어(X)->치여(O)
....죄송해요 ㅋㅋ 이런 거 발견하면 짚지 않고는 견디질 못해서 (딴지보미)
요새 통 컴퓨터할 시간이 없었는데 모레 있을 발표 ppt작성하다 잠시 들어왔어요. 삶에 치여, 과제에 치여 ㅠㅠ 꾸준히 관심 갖기가 힘에 부칩니다.
그런데 경호원의 증언은 사실이 아닌것으로 판명나지 않았나요? 제 기억이 잘못됐나요?;;
며칠 전 신문에서 보았는데 대통령의 민생탐방 친서민 업적 등에 대해 보도하는 건수가 노무현 정권때 가장 낮았다는 통계가 있었어요. 현 정권의 행보 보도는 선별'적'이다는 것도요.
전에는 어린 마음에 '정치판은 지방덩어리들의 영역싸움이다.' 라 단정짓기도.. (이런 말 여기다 해도 되나?^^;)
이렇게 쓰고 시고 너저분한 일 보다는 마음에 기름칠을 해주는 음악과 인문학에 더욱 마음을 쏟고 싶어져요. 아까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한 후보가 트럭 위에서 땀에 흥건히 젖어 연방 힘겨운 미소를 사방으로 날려대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내일이 선거인데 무언들 못하겠어'라 비아냥 거리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는 마음이 찢기는 듯 했어요.
별 것 아닌 댓글 하나 다는 데도 왜이리 마음이 조마조마한지 모르겠어요.
다슬기 2010년 봄학기 모임 안내
2010/05/10 00:55읽을 글: 중용, 임동석 역주, 동서문화사
5월 13일 목요일 모임: 중용 계속
5월 15일 토요일 특강
- 오후 1시 이화여대 이화캠퍼스복합단지 국제강의실B137호
- 말씀하실 분: 박효엽
- 텍스트: 브라흐마 수뜨라 주석 서문
이정민 없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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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2010/03/02 22:48무모하게도 [중용]을 하겠습니다. (지난 학기에 [파이돈]이 무모했듯) 다행히 건국대 임동석 교수님께서 번역하신 [중용](임동석중국사상 9, 동서문화사)이 그 무모함을 조금 덜어 주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주자 주와 퇴율의 언해, 그 외 이해를 돕는 글들이 달려 있습니다.
그 동안은 스캔한 파일을 썼는데 이 책 정도는 팔아줍시다. 마일리지해서 8000원에 같이 사실 분은 댓글을 달아주세요. 첫 모임에 갖다 드리겠습니다.
임동석 교수님에 대한 기사와 짧은 인터뷰입니다. 그의 삶이 중용의 메시지네요.
http://kr.news.yahoo.com/etc/print_text.htm?articleid=2009041103364028634
사이후이(死而後已), 임중도원(任重道遠)에 이어 제가 힘들 때 뇌까릴 말이 하나 늘은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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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2010/03/13 22:46도올선생 중용강의 링크
http://www.cyworld.com/philist/3085005
제가 고등학교 때 읽고 충격을 받은 책입니다 (상권, 하권은 출판되지는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재미 있습니다. 저는 다시 안 읽을테니 여러분들이 읽어오셔서 얘기해 주세요. -
시즈
2010/03/27 15:47위 글을 읽었어요? 친구들 생각은 말해보세요. "Reply"를 눌러 의견을 남겨주시면 됩니다.
ㄱ. 1을 해요.
ㄴ. 2를 해요.
ㄷ. 3을 해요.
ㄹ. 1, 2, 3 중에서 아무 거나 해요.
ㅁ. 모두 싫어요. 다른 걸 해요. [제안해 주세요.]-
김가영, 이주희
2010/03/28 04:27저흰 다 좋지만,
사실 이주희는 영어는 좀 부담스럽대요.. 그리고 둘다 사랑은 얘기하기 힘들 것 같대요.. 결론적으로 저흰 3번이 좋을 것 같아요. -
다슬기모임이 기다려지는 수민
2010/03/29 13:55선생님 준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번 2번 다 좋은데요 ♥
1번이 좀더 도전적인 과제로 보이네요 ㅋㅋ
이정민 선생님이 해주셨던 화이트 헤드의 종교 관련 텍스테에서도 개인의 'belif'에 대해 나와있었으니 그 후속작으로 심리철학을 더 공부해보는 것도 좋아요.
p.s.전 기독교도가 아니라서 그런지 별로 재미없어 보여서 3번은 싫어요ㅠㅠ -
손혜연
2010/03/30 08:33아 1, 영어 텍스트 부담&도전 이구요 ㅋ
2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 따로 읽어보긴 할거에요 ㅎ 그리고..3은 선생님 얘기가 너무 궁금해서 하고싶구요 제 종교생활에 해답이 되어줄 것 같기도 하고요.
맘 같아선 다 하고 싶은데, 1,3중에 하나 어떨까요?! -
이보미
2010/03/31 16:151번이 끌려요 >ㅅ<
무교인 제겐 3번주제는.....
전부터 앙리 베르그송 저 <물질과 기억>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3주는 너무 짧네요 ㅠ_ㅠ
다슬기 친구들에게 드리는 편지
2010/04/16 04:06김명석 선생님, 그리고 여러분 잘 지내세요? 세 주 동안 못 뵈었는데 참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네요. 오늘이 모임 있는 목요일인데 잘 하셨겠지요? 포스트가 한 동안 안 올라와 소식이 궁금하네요.
제가 지금 이 편지를 쓰는 곳은 네델란드 브레다라는 작은 도시의 호텔방입니다. 제 발표는 어제 무사히 마쳤고 오늘은 좀 편안한 마음으로 방에 돌아와 그 동안의 성과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학회는 내일 끝나고 헤이그에서 하루 머물고 모래 돌아갈 예정입니다.
4년전 미국에서 돌아온 이후로 처음 외국에 나온 셈인데 그때 느끼지 못했던 많은 것을 새로 느끼게 됩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더 성숙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장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완벽한 개인이었던 반면 지금은 제게도 작게나마 어떤 사회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을 가리치는 것도 분명히 그 중의 하나겠지만 강의도 영어고 밥벌이인 만큼 얼마나 충심으로 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에 비해 다슬기 모임은 여러 모로 제게는 소중하고 애착을 느끼게 됩니다.
우선 살아가는 방식인지 몰라도 저는 우리말로 대화할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친구들은 생업에 바쁘며 가족과는 떨어져 있습니다. 김명석 선생님도 대전에 있을 때는 자주 뵙지 못했습니다. 우리 모임이, 때론 거의 일방적인 제 얘기가 되어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죄송하게 생각) 그래도 제가 가장 편한 우리말로 이야기하고 그걸 들어 주는 여러분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고마워집니다.
사실 국내 학계에서 우리말로만 학문 활동을 해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많은 대학이 영어 강의를 강화하고 국제학술지 논문 게재를 학자의 학문적 역량을 재는 척도로 삼고 있습니다. 분명 지난 며칠 간은, 제가 사숙한 분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각을 들으며 좁은 안목을 넓힐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또한 제가 좋아하는 그림들과 보낸 시간을 잊을 수 없고, 특히 렘브란트 "에케 호모"는 지금 상상해도 눈물이 글썽여집니다. 그러나 때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나 느끼한 음식을 접하고 나는 지나가는 여행객일 뿐 결코 여기 속하지 않는다는 자의식이 들 때마다 고국의 친구와 가족, 그리고 여러분 생각이 스쳐가는 것은 왜일까요?
여행도 그렇습니다. 사실 세상을 많이 둘러보지 못했다면 외국이 새롭고 설렐 수도 있겠지만 정작 우리 나라는 여행해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여행할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유럽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우리 나라가 정말 그러한 여행지가 아닐까요? 어려서부터 동경한 학문과 예술, 그리고 모든 근대 문물이 유럽을 발상지로 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전통과 관습의 무게가 현시대를 짖누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비해 우리는, 물론 조선 시대가 많은 문화적 유산을 남겼지만 일단 얼마나 "잘 죽어버린" 문명인지 감사하게 생각할 따름입니다.
짧은 시간이어서 깊이 있는 관찰을 할 수는 없었지만 사회적 유대감이나 활기, 변화의 속도, 문물 조직에서 이미 우리 나라는 유럽 이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도 별다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나 민주주의의 발달로 선진국을 얘기한다면 우리가 세계 제일의 선진국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많은 병폐가 있고 또한 한국 안에만 있으면 그러한 측면이 부각되어 우리 사회가 못살 사회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할 것은, 좋건 나쁘건 지금 여러분이 사는 사회가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 자본주의, 민주주의 등의 혜택을 누리는 사회라는 것입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선진국을 운운한단 말입니까? 우리는 누구의 모델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필요하면 우리 안에서 창조하면 될 뿐입니다.
다만 그런 사회에서 아직까지 학문과 예술은 유럽이 몇 세기 전에 이룬 수준에 조금 못 미치는 것 같다는 우려는 있습니다. 네델란드는 작은 나라이지만 17세기 황금 시기에 렘브란트와 스피노자, 호이겐스를 낸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세계사적 개인이 우리 사회에 아직 없다는 것은 단지 우연일까요, 아니면 그러한 천재나 개성의 발현을 억누르는 어떤 기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요? 유럽이나 미국이 이러한 이러한 일을 하기에는 이제 낡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수세기 안에 동아시아, 특히 우리 나라에서 그런 인물들이 줄지어 나온다고 생각하면 그러한 사회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제 자신에 대한 확신이 듭니다. 한때 상상했던 것과 달리 저는 결코 이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우리 사회, 우리 말, 우리 나라 사람들보다 좋은 것은 없다는 자부심을 갖기 바랍니다.
춘래불사춘이라고 4월에도 많이 추운 모양이네요. 중간 고사로 많이 바쁘겠지만 다음 주에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문득 케런 앤의 Not Going Anywhere이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people come and go and walk away
but I'm not going anywhere.....
I won't go anywhere so give my love to every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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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
2010/04/17 13:32보고 싶은 정민. 잘 지내죠? 봄을 보고 있어요. 조금 기온이 더 올라갔으면 좋겠지만 꽃들을 보니 나와 정민과 다슬기 친구들의 영혼을 보는 것 같아요.
글을 읽으면서 좀 불공평하다는 느낌을 받는군요. ㅋㅋ. 정민 샘은 글로벌하게 살면서 조선 사람이 되어 가지만, 나는 늘 로컬하게 살면서 조선 사람이 된다는 것이 뭔지 모르겠으니 말입니다. 정민 샘은 연고를 찾아가는 중이고 나는 연고를 잃어가는 중이니까요. ㅋㅋ
테일러인가 어떤 공동체주의 정치철학자는 연고에 의해 우리 정체성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연고를 잃어가면서 살았어요. 태어난 곳, 출신학교, 친구들 등. 그래서 내 정체성은 연고 없는 정체성이며, 그런 점에서 시대적 공간적 떠돌이 세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식으로 어쩌면 나는 조선 사람이 되지 못할지 모릅니다.
아무튼 반은 농담이고 .... 정민의 글이 오늘 토요일은 풍요롭게 하는군요. 빨리 다녀오세요. 아무 곳에도 가지 않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
이정민
2010/04/21 21:48화산 폭발에 이은 항공 취소로 네델란드에 발이 묶여 있습니다. 토요일에나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 모임은 못하겠네요. 아무데도 못 간다는 얘기가 여기를 말한듯.-
정민선생님이 보고픈 수민
2010/04/25 01:12안 그래도 뉴스에서 아이슬란드 화산재로 인해 유럽전역 항공기 결항이라는 소식을 듣고 선생님 생각을 했었는데 ㅠㅠ.. 어서 빨리 뵙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노래대로 정말 not going anywhere가 됐네요 ㅠㅠ/
네덜란드는 비행기 경유하느라 땅만 잠시 밟고 다시 떠났던 경험이 있는데,네덜란드에서 좋은 그림들도 많이 보시고 부러워요.킬러들의 도시라는 영화의 배경으로 나왔던 걸로 알고있는데(어,,아닌가 덴마크인가?!) 그 때 영화에서 보고 정말 아름다운 동화같은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전 항상 여행을 동경해요. 사실 어느 곳도 서울이라는 공간과 다를 바가 없고 오히려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이 더 좋은 곳이라는 걸 여행을 해보면 늘 깨닫지만, 그래도 항상 더 다른 좋은 곳 이색적인 새로운 곳을 꿈꾸게 되네요.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는 서울이 더 새롭고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환상의 공간일 수 있을텐데 ㅋㅋ 시험을 많이 봐서 시험이 없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고싶은지도 모르겠네요. 선생님 글을 읽으니 정말 풍요로워지네요. 무사히 돌아오세요 선생님: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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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ological space
2010/04/22 00:25쌤.. 노래가 너무 좋아요 ㅠ_ㅠ 아직도 네덜란드시겠네요, 저는 시험이 아직 4개나 남았고 오늘도 밤샘 공부를 해야되는 처지지만 쌤 글을 읽으니 그래도 좀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ㅎ 아마도 당연히 내가 선택한 공부를 하고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발산적인 생각들을 추스리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나봐요.
다슬기 모임은 저희에게도 자칫 건조해질 수 있는 학교 생활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서로 만나고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이에요. 저희에게 의미있는 공동체이기도 하구요. 아무래도 아는 것들이 없고 견해가 부족해서 말을 아끼다보니 저도 말이 많이 트이진 않았지만 쌤 말씀은 늘 재밌게 경청하고 있지요, 뭣보다 다슬기가 쌤께도 소중한 공간이 된다니 감사해요. ㅎㅎ
노래가 따뜻해요.. 저도 고향을 잃어버렸다고 느끼곤 했지만 사실은 쭉 아무데도 가지 않고 제자리에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네요. 사고 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주에 뵈요 ^^, -
redshad
2010/04/25 13:45샘 오랜만이에요~!
그래도 잘 지내시고 계신것 같아 다행이네요ㅋ
저는 저번주 내내 시험공부하느라 일주일을 보냈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우리나라 여행은 많이 해봤는데..여름휴가마다 가족끼리 유적지를 찾아 다녔거든요...외국을 아직 한번도 안가봐서 그런지 외국은 동경의 장소에요. 어디든지. 색다른 언어, 생각, 풍습을 소유한 곳에 가면 나는 어떤 나로 존재할까 하는 고민을 요즘 하고있어요. 그래서 아예 휴학해버리고 외국에서 살아볼까하는 상상도 하구요..ㅋㅋ
하여간 담주는 샘 다슬기에 오시죠?
저번주에 다슬기 못가서 넘 슬퍼요..이번주 목요일에는 시험도 끝났으니 다른 분들도 많이 오시겠네요. 기대되요, 다가오주 다슬기 모임. 그때 뵈요^^
참된 큰 배움에 자기를 내던질 용기
2010/03/18 12:50심해린 배움동무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같은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비정규직교수입니다. 저는 학생에게든 교수에게든 ‘이 더러운’ 대학을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학은 우리 인류의 오래된 유산입니다. 그 유산을 현행 대학교의 행정적 지배자들이나 국가의 관료들 또는 시장의 보스들이 독점하게 할 순 없습니다. 우리는 그 유산을 지키고 드높일 의무가 있고 권리가 있습니다. 저는 제 위치에서, 제 탐구에서, 제 성찰에서 그런 의무와 권리를 다하며 살고 싶습니다.
이 말은 김예슬 배움동무의 행동이 옳은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그의 글과 실천을 보고 그가 선지자처럼 느껴졌습니다. 가까운 장래에 뜻을 같이 하는 배움동무들과 힘을 합쳐 진짜 대학을 만들어나가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저는 철학을 가르치니까, 만일 김예슬 배움동무가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면, 저는 그 한 사람을 위한 철학 교수가 될 수도 있어요. 아니면 언젠가 그가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해도 강하고 숭고한 그의 정신이 훼손되지 않았을 것이라 믿습니다.
심해린 배움동무는 선생 중에서 대학을 박차고 나오는 그런 선지자가 있기를 기대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에게 올곧은 메시지를 전하는 데는 여러 가지 스타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김예슬의 방식은 그 다양한 것 중에 하나이고 몹시도 아프지만 아름다운 방식이었습니다. 다수는 아니지만 일부 선생들은 지금 다양한 방식으로 대학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믿어 봅시다.
저는 김예슬 선언에 공감하는 이 나라 모든 배움동무들이 대학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는 구체적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를 희망합니다. 대학교에 다니는 것을 그만 두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정말로 없을까요? 김예슬 배움동무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절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런데 심지어 대학을 그만 두는 것조차 희망과 용기의 산물이 아니라 어쩌면 절망과 두려움의 산물인지도 모릅니다. (아 여기서 김예슬 배움동무의 결행을 가치절하하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는 대학에 남아 있는 것이 반드시 순응과 좌절을 함축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라면서 대학교 안에서 싸워보는 방법도 가능한 스타일 중 하나입니다.
먼저 아주 작은 실천을 해보도록 합시다. 가령 소위 명문대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바꿀 수 있습니다. ‘듣보잡대’, ‘지잡대’라는 낱말과 관념은 대학의 이념을 왜곡시키는 악성 밈들 중 하나입니다. 한 대학이 단순히 서울에서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그 대학을 저질 대학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대체로 고등학교 때 성적이 나빴다는 사실은 그 대학을 저질 대학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부모가, 우리의 동생들이 대학들을 평가하는 방식이 대학 행정가들의 정책을 좌우하게 됩니다. 하나의 관념을 바꾸는 것이 쉬운 일처럼 보입니까? 하나의 관념을 바꾸기 위해서 생각의 전반을 바꾸어야 할지 모릅니다.
악성 밈들은 이뿐만 아닙니다. 높은 연봉이 보장된 직장을 추구하는 우리의 열망과 욕구는 결국 잘 나가는 기업과 직종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자기를 길들이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그런 열망과 욕구를 아주 조금만이라도 줄일 수 없을까요? 조금만 줄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걸 줄이게 되면, 친구들이 비웃기 시작할 겁니다. 네가 능력이 없으니까 그렇게 했다고, 이류 인생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사소한 욕망 하나라도 그것을 줄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재조정해야 합니다. 정말이지 그런 실천은 지성과 절제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많은 힘과 에너지가 동원되어 만들어진 것입니다. 자본이 투입되어 있고 토지가 투입되어 있으며 제도가 투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의 투입을 결정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과 열망과 욕구입니다. 균형발전이고 뭐고, 지속가능한 성장이고 뭐고 관계없이, 세금 적게 내는 대신 자기 연봉이 더 많아지고,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기를 희망한다면, 이명박 같은 모리배가 의원이 되고 시장이 되고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만들어지고, 그 제도 아래에서 이익이 증대되는 시장의 보스들과 의견 통제자들은 이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 서로 더욱 강력하게 결탁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대학 4년 동안 자신이 가진 관념과 생각과 욕구와 열망을 되짚어보고 검토할 시간을 얼마나 가질까요? 우리 사회가 그대에게 그렇게 할 시간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학교의 선생들이 그런 것을 반성할 지성적 힘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성찰해야 할 때, 이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이런 방식의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낸 원래 동인인 바로 그 욕망들을 더욱 가열해야 했으며, 그런 욕망을 실현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선생을 찾아 다녔고, 선생들에게 그런 것을 요구했을 것입니다. (김예슬 배움동무나 심해린 배움동무가 그렇게 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20대들은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관점에서, 20대는 현재의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데 전체 인구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만큼의 기여를 했습니다. 20대들이 숭상하는 인간상들이 우리 사회가 숭상하고 있는 인간상을 부분적으로 형성합니다. 20대들이 이건희나 이재용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도 어느 정도 그들을 수치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20대조차 박정희를 최고의 대통령으로 존경하면, 박정희는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분량보다 더 많은 존경을 우리 사회에서 받게 될 것입니다. 20대가 조중동의 의견들에 흡족해 한다면, 그만큼 그들의 불량의견들이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이 유통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20대가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에게 기대하는 것들이 대학교의 현재 형태를 일정 정도 결정하게 됩니다.
우리의 신성한 노동과 실천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의 숭고한 뜻과 깔끔하고 또렷하고 새로운 생각들도 세상을 크게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우리가 선호하는 것, 우리가 우러러 보는 사람, 우리의 시간과 열정을 바치는 곳을 변화시키면, 우리 사회 시스템도 그에 따라 약간은 변모하게 됩니다. 우리가 부패보다 무능력이 더 나쁘다고 믿게 되면 우리 사회도 권력을 맘대로 부리면서 부패한 자들이 판을 치는 방식으로 바뀔 것입니다.
제 말의 요점은 젊디젊은 그대 배움동무들이 본디 힘이 없거나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그대들은 자신의 힘을 발휘했고 능동적으로 자기 욕망을 실현시키고 있는 중이라는 말입니다. 다만 그렇게 하는 것이 나중에 나쁜 결과를 낳게 될 줄 모른 채, 너나 나나할 것 없이 명문대를 추구했고, 돈 잘 버는 학과를 선택했고, 학점과 자격증에 매달렸으며, 거대 자본에 복무하는 ‘부품’이 되는 걸 동의했고, 이런 식으로 육체를 돌보는 데 바빠 철학적 성찰과 탐구에 게을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것은 정말로 좋은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그에 따라 능동적으로 자기 삶을 주도하는 것이 아닐까요?
삶에서 성공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에 내 시간과 에너지를 바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이 승리한 삶이 아닐까요? 결국 저는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배움을 계속해야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삶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더 아름답고 더 착하고 더 참된 것을 찾는 삶이 우리가 좇아야 할 삶이고, 실제로 그렇게 살게 되는 게 진짜로 성공한 삶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요? 한 때가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내내 그렇게 믿을 용기가 있나요? 혹시 그것이 성공한 삶이 아니라면 어쩔까하는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고, 지금 대학교를 다니고 있지는 않나요? 대학교를 박차고 나오든지, 대학교를 지금처럼 계속 다니든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살아야 할 삶, 알아야 할 앎, 사랑해야 할 사람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실 김예슬 선언은 제가 말한 거의 모든 것을 이미 담고 있습니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정말이지 ‘대학’은 단순히 현행 제도나 건물을 뜻하지 않습니다. 큰 배움, 보편적인 배움, 통합적인 배움을 뜻해야 할 것입니다. 대학교 다니는 것을 이제는 그만 두겠다는 말은 그런 참된 큰 배움에 자기를 내던지겠다는 말로 이해해야 합니다. 시베리아와 만주에서 독립투쟁을 했던 그런 독립투사의 심정으로 말입니다. 이것은 저의 아주 오랜 배움동무들인 소크라테스도 스피노자도 감행했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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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랑
2010/03/24 19:53선생님 쓰셨다는 글이 이거구나, 했어요. 그저껜 보니까 오마이뉴스에도 떴던데요? 소감은... ㅎ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저는 다른거 잘모르겠고, 그냥 김예슬씨나, 선생님의 글에서나, 거기 묻어나는 진정성이 좋을 뿐입니다.
이리나 읽어 보렴: 김상봉 선생의 글
2010/03/11 16:20그러므로 내가 경향신문에 실리지 못한 칼럼을 인터넷 매체에 발표하면서 경향신문을 비난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까닭은 노후대책으로 소설을 쓴다거나 밥벌이 때문에 소설을 쓴다는 위인들이 말하듯이 무슨 밥벌이의 엄숙함 때문이 전혀 아니었다. 세상만사가 밥벌이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미신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은 제주도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가서 그 가난한 예술가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었는지 순례하는 마음으로 참배하길 권한다.
그 사나이는 1985년 제주도에 정착하여 200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직 제주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했다. 가난을 각오하고 결혼 같은 것은 처음부터 포기했던 이 예술가에게 유일한 걱정거리는 쌀이 아니라 필름과 인화지였다. 이것들을 살 돈마저 떨어지면 그는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해 번 돈으로 필름을 샀다. 그리고 다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해서 제주의 신비를 2만장의 필름 속에 남기고 루게릭 병으로 오십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가 불쌍해 보이는가? 제주에 가 그가 남긴 사진을 보라. 그 앞에서 우리가 눈시울을 붉힐 때, 그는 숭고한 빛 속에서 웃고 있다.
부끄러움은 영혼의 소금과 같아
철학자는 지혜를 위해 살고, 예술가는 아름다움을 위해 죽는다. 기자는? 진실을 위해 싸운다. 밥벌이 때문이라면 그 좋은 머리로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은 얼마든지 널려 있다. 광고 끊어지고 월급 못 받을까 두려워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신문이라면, 경향신문과 조선일보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런 신문이라면 감싸고 돌 까닭이 아무것도 없다. 40년 전에 박정희를 비판하지 못한 신문이 신문 아니었듯이 지금 이건희를 비판 못하는 신문도 신문이 아니다. 그런 신문사는 망해서 아쉬울 일 없다.
내가 경향신문을 비난하지 않은 건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이다. 그 칼럼을 보내고 나는 편집국 기자 세 사람과 직위 순으로 올라가며 통화를 했다. 나중에 용기 있게 고백했듯이 그분들은 광고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솔직하게 전하면서 표현을 조금만 완화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거절했더니 다음엔 단 하루만이라도 기다려 달라고 거의 애원하듯 간청했다. 나는 매몰차게 거절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참 뒤 문자가 왔다.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 말에 담긴 부끄러움 때문에 나는 그들을 비난할 수 없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난할 필요가 없었다.
부끄러움은 영혼의 소금과 같다. 수치를 아는 영혼은 결코 썩지 않는다. 그리고 반드시 그 부끄러움으로 찌든 영혼의 거적대기를 팽개치고 일어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내 글이 인터넷 매체에 올라온 뒤 경향신문 평기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래서 맹자가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의(義)의 싹이라고. 그런 신문사를 광고 끊어져 망하게 내버려둔다면, 이제 그건 우리 모두의 부끄러움이다.
‘씨알의 소리’가 가르쳐준 진실
올해는 함석헌이 <씨알의 소리>를 창간한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그는 돈에 매여 진실 앞에서 침묵할까 염려해 처음부터 일절 광고를 받지 않고 오직 독자들의 구독료만으로 월간지를 발행했다. 그렇게 찍어낸 것이 많을 때는 1만부가 넘었는데, 그런 정성이 모여 유신독재를 끝냈던 것이다. 군사독재가 자본독재로 바뀌었을 뿐,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할 일은 비슷하다. 삼성 휴대폰과 노트북은 바꾸고, 삼성카드는 자르고 가맹점 해지하고, 삼성에 든 보험은 해약하고, 삼성을 비판하는 경향신문은 정기 구독하면 된다. 부수 늘수록 적자라는 간첩들의 유언비어에 속지 말고!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출처: http://bit.ly/dhBcaF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2010/03/11 11:01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나를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우월하고
또 다른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무력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앞서 간다 해도 영원히 초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 또한 나의 적이지만 나만의 적은 아닐 것이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피라미드 위쪽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전문과정에 돌입한다.
고비용 저수익의 악순환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세계화, 민주화, 개인화의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
아니, 이런 건 잊은 지 오래여도 좋다.
그런데 이 모두를 포기하고 바쳐 돌아온 결과는 정말 무엇이었는가.
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깊은 분노로.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내 작은 탓을 묻는다.
깊은 슬픔으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학비 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 앞을 가린다.
'죄송합니다, 이 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2010년 3월 10일 김예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자퇴하며
출처: http://blog.daum.net/peacenanum/5291273
12월 23일 모임 안내
2009/12/21 14:422. 다른 친구들은 11시까지 안산 정상으로 오면 됩니다.
3. 12시경에 이대 건너편 쪽으로 내려올 예정입니다. 12시에 후문 건너편으로 오세요.
4. 후문 건너편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예정입니다. 늦게 오는 친구는 연락을 주세요. 식당이 정해지면 알려드릴게요.
5. 그 이후 모임은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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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2009/12/24 00:01주희와 가영이 편지를 읽고 조금 울다가 ...
내가 조심스럽고 어렵니? 나는 너희들이 그렇다.
교학상장(敎學相長) - 너희들이 나를 키운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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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
2010/01/06 12:42너 레드샤드 아니니? 맨 아래 AD를 누르고 네 한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비번을 입력하면 로그인이 된다. 비번이 안 먹히면 초기화를 하면 네 메일에서 초기화된 비번을 볼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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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도 2학기 다슬기 모임 뒷풀이
2009/12/13 23:04안녕하세요 :)
다들 학기 마무리 잘하고 계신지요?
마지막 다슬기 모임이 끝나고 정문에 서서 얘기한 대로, 뒷풀이 모임을 하려고 합니다.
종강 모임 후 꽤 시간이 지났는데, 기말고사 기간이라 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글을 올리네요 ㅠㅠ(사실 기말고사는 핑계지만;ㅂ;)
12월 23일 점심 저녁식사(리나가 시험이 1시에 끝난다)
를 함께 할까 하는데, 다들 시간이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김명석 선생님, 이정민 선생님, 주희, 리나, 그리고 저는 참가 가능합니다.
아, 장소를 아직 못 정했는데, 괜찮은 장소를 아신다면 제안해주세요! ^-^
2009년 가을 종강 모임 [0911126]
2009/11/23 00:42시간: 09년 11월 26일 목요일 오후 7시
장소: 이화여대 이시시 세미나실 B250호
텍스트: 플라톤의 <파이돈>
* 다운로드: 아래 클릭
* 강의실 예약
- 1029~1126 세미나실B250호
장소: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 세미나실B245호
소설: 윤대녕의 <추억의 아주 먼 곳>
장소: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 세미나실B245호
소설: 오정희의 <옛우물>
장소: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 세미나실B154호
텍스트2: 노무현의 <성공과 좌절>
장소: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 세미나실B250호
텍스트2: 쉼. 시간이 나면 노무현의 <성공과 좌절> 계속
시간: 09년 10월 15일 목요일 오후15시 이후. 혹시 시간되나요? 안 되는 사람?
장소: 이태준 생가 근처. 성북동
텍스트: 이태준, 무서록
장소: 이화여대 이시시 세미나실 B250호
텍스트: 플라톤의 <파이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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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2009/09/12 12:45이기적 유전자 텍스트 파일을 저작권 무시하고 올렸습니다. 필요하신 분 받아서 읽어보세요. (특히 서문과 1장)
http://www.cyworld.com/philist/2482453 -
시즈
2009/09/18 21:38지금 ECC가 강의실이 꽉찼어요. 강의실 변경이 어렵군요. 아무튼 다음 주에는 좁게 B245에서 하고요 다다음 주에는 B154에서 합니다. 추석이라 집에 내려갈 친구들도 있을 것 같은데.... -
이정민
2009/09/18 23:22어제 제 악플 듣다가 기차 놓치신 것 아닌가 걱정했어요. 오늘 전화기 고치고 나니 다행히 들어가셨다는 문자가 와 있네요. 강의실 잡느라 또 고생하시고.
진화론 문제는 다음 시간에 계속 이어서 하지요.-
시즈
2009/09/20 16:03그 날은 정말 이삼초만 늦었어도 차를 못탔을 겁니다. 열심히 뛰지 않았다면... 차안에서 거친 숨을 내쉬었죠. 이정민 선생이 악플러가 아닌 거 아는데 어쩌면 독설가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ㅋㅋ. 요즘 내가 노망이 들었나 수다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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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물학 심포지움이 있어 올립니다.
2009/11/03 19:45
관심있으신 분들 많을 것 같아 올립니다^^
저번 모임은 베를린에 있어서 참석 못했습니다.
급하게 결정하고 급하게 갔다왔더니 남아있는 건 졸업시험과 면접뿐이네요ㅠ
이번주에는 참석하여 얼굴보고 싶습니다.
그럼 오프라인에서 뵙겠습니다^-^
다음 주 읽기(10.29)
2009/10/24 16:46영혼을 돌보라 - 상상화에 답해
2009/10/24 16:37상상화가 말한 사건도 별다르지 않겠지만 범인은 아무런 개전의 정이 없었습니다. 몇 년, 몇십 년의 형량이 문제가 아니라 이 생애에서, 아니 아마도 그의 영혼을 영원히 가두어 둔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는 듯이 행동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모두가 더 강한 처벌을 원했고, 일부는 범죄만큼이나 끔찍한 처벌을 원색적 언어로 그리기도 했습니다.
제게 물어본다면 저 또한 더한 처벌 쪽에 무게를 두었을 것입니다. 이런 제도는 정비해야 하고 문제는 은폐하기보다 공론화시켜 지속적인 논의의 토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위 사건을 취재해 처음 알린 기자에 따르면 더 비참한 사건이 많은데도 피해자들이 꺼려 보도를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개탄스러울 따름입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의의 문제, 선과 악의 문제는 다릅니다. 어떤 완전한 법 제도 아래 모든 악행을 적절한 처벌로 다스려도 정의의 문제는 풀리지 않습니다. 아니 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건드려지지도 않습니다. '미드'를 보면 아시겠지만 사회 모든 영역에서 그러한 제도를 철저히 구비한 미국이란 나라에서 정의가 실현되기는커녕, 가장 참혹한 범죄를 양산하고 있다는 사실은 반성할 만합니다. 처벌이 범죄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입니다. 더한 제도는, 더한 처벌은 더한 교묘함, 더한 악랄함만을 낳을 뿐입니다. 처벌이 되지 않는 한 모든 행위가 정당화되는 지옥을 상상해 보셨는지요? 공자는 말합니다. 정치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려 한다면 백성은 빠져나가려고만 하고 부끄러움을 모르게 된다(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이 점에서 철학은 법이나 사회과학과 다릅니다. 윤리나 도덕은 어떤 의미에서 법이나 처벌 밖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벌되지 않는 거대한 악행이 있는가 하면, 처벌되어도 정당한 선행이 있습니다. 사회과학을 전공한다면 이러한 생각이 낯설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철학자가 바라보는 관점이 그렇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러면 당하고만 있으란 말이냐'라고 오해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당한다'라는 표현을 문제삼지 않더라도 이러한 반론은 '당하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처벌이나 보복밖에 없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짜라두짜처럼 생각하려면 '호탕'하기보다 좀 더 지혜롭고 냉정해야 합니다. 상상화의 다음 말을 살펴봅시다.
피해자는 정신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자살시도를 수없이 했다고 하는데 왜 가해자는 4년제 대학도 다니고 취업도 하고 전과기록도 없고 반성도 안하고 아무 일 없이 잘 살고 있을까요? 약자-피해자 박수진 양(가명)은 사회하위계층으로 보임-들은 왜 저렇게 당하고만 살아야할까요?
여기서 제 마음에 걸리는 표현은 '잘 산다'입니다. 과연 그들이 잘 사는 걸까요? 잘 사는 것,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이 무엇일까요?
얼마 전에 우리 사회에 유행한 웰빙(well-being)이란 말이 있습니다. 건강 적당히 챙겨가며 취미나 여가 적당히 즐기는 삶을 가리키는 말 같은데, 씁쓸한 것은 바로 이런 말에 우리 사회에 흔한 '잘 삶'의 기준이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어로 '잘 산다'는 말에 유 젠(eu zen)이 있습니다. 분명 그리스 시대에도 통용되던 잘 삶의 기준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소크라테스의 논적인 소피스트 칼리클레스는 원하는 만큼 쾌락을 추구해도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는 독재자와 같은 삶을 제시합니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잘 산다는 것은 영혼이 잘 산다는 것이며 가장 잘 사는 삶, 가장 행복한 삶은 영혼에 아무런 사악함이 없는 삶이라고 합니다. 만일 영혼에 죄가 있다면 이를 치유하는 벌을 받는 것이 다음으로 좋은 것이며, 영혼에 죄를 짓고도 아무런 치유(=벌)을 받지 않는 삶이 가장 나쁜 삶입니다. 이는 선행에 대한 보상과 악행에 대한 처벌을 얘기하는 권선징악과도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는 잘 사는 삶에 대한 기준의 전면적인 변화를 뜻합니다. 이러한 기준에 비춰 보면, 가해자들이야말로 가장 나쁜 삶을 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쁜 일은 그런 삶을 살면서도 자신이 나쁜 삶을 살고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의 기분이 어떤지, 주변 사람들이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별 관련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떻게 보이는지가 아니라 그들이 진정으로 어떤 상태에 있는가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죽은 삶, 그것은 살지 않는 삶과 같습니다. 내가 바로 내 영혼이기 때문입니다(우리 게시판 '나는 어디에 있니' 참고). 제가 항상 수수께끼처럼 생각했던 성서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I am crucified with Christ: nevertheless I live; yet not I, but Christ liveth in me. (Galatians 2:20)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내 몸이며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삶이야말로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성령으로 충만한'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영혼이 몸을 보살피기 위한 종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 그 자체를 보살피는 삶, 그 마음을 잃지 않는 삶은 맹자가 안타까워한 것이기도 합니다.
슬프다. 사람들은 닭이나 개를 잃어버리면 그것들을 찾을 줄을 알면서 마음을 잃어버리면 찾을 줄을 모른다(哀哉! 人有鷄犬放, 則知求之; 有放心而不知求).
많은 사람들이 얼굴이 '마음'에 안 들면 성형으로 고칠 줄은 알면서 정작 그 마음의 흉함은 보지 못하지 않습니까?
반면 피해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피해자의 영혼이 순수한 한에 있어서는 저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고통받는다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는 그를 둘러 싼 주변과 우리 사회에 영혼의 삶에 대해서 무지한 탓이 큽니다. 부디 수진 양의 영혼이 이를 이겨낼 수 있기를.
그리고 이 모든 논의가 관념론이고 현실은 다르다는 반론에 대해서는 오히려 진정한 현실은 바로 이러한 영혼으로 이루어진 세계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철학에서 영혼과 인식 밖에 또 다른 현실은 없습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우선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현명해지고 만일 당하더라도 긍정할 수 있을 때까지 긍정하는 것, 그리고 자기 영혼의 순수함, 그것이 가장 좋은 삶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이러한 문제는 우리 모임에서 앞으로도 계속 논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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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화
2009/10/27 06:00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입에 담기 어려운 사회의 암울한 사건에 분노하고 상처받았던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성폭행에 관련한 사건들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한국의 수사과정,사회적 관념,가해자를 처벌하는 법,제도 자체가 얼마나 더 피해자를 피해입게하는지에 분노해 저 밑에 밀양성폭행 사건의 그 후 처리과정을 써놓았습니다.
물론 저도 처벌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환상이라는 사실은 수업에 통계자료까지 동원해 배웠건만 이 사실을 선과 악의 문제에 대한 생각에까지는 연결시키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그러면 이정민 선생님의 말대로라면 피해자는 당해도 선한 존재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위안을 삼으며 게속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일까?!이 건 너무 억울하다!'라고 오해를 했었습니다.
이제 이정민 선생님의 생각이 어느정도 이해 되었습니다. 처벌되든 되지 않든 정당한 정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처벌과 정의는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찌보면 정말로 당연한 사실인데 이제까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선과 악의 문제, 정의의 문제는 참으로 어렵군요.. 사실 이제까지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부분이에요. 특히 영혼으로 이루어진 현실세계, 벌이 치유 라는 구절은 제겐 굉장히 생소합니다.단순한 제게 잘 산다는 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마음 편하게 누릴 것 다 누리면서 사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부분을 많이 고민하면서 살아야겠어요. 수업시간에 이와 관련된 논의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답변 감사합니다!
짜라두짜처럼 호탕하려면 어느 정도 수련을 해야할까요?
2009/10/15 00:081. 경찰:
피해자 실명 나이 거주지역까지 보도자료로 다 공개, 기자들이 알아서 처리할 줄 알았다고 해명.
'나같으면 너 안데리고 산다' '밀양 물 흐려놨다' 파격 발언/
대질심문시 41명 되는 가해자들을 한방에 몰아놓고 얼굴마주보고 손으로 집게하는 수사방식.
가해자들 내가 언제그랬냐 소리지르고 정신적 충격 가중, 심지어 피해자 얼굴은 가려지고 가해자들 얼굴만 볼 수 있는 영상기술이 있는 대질심문방이 존재했음에도 불구 사람 많다는 핑계로 사용안함
노래방도우미랑 놀던 경찰 수사과정 다 떠벌리고 노래방 도우미가 인터넷에 글을 올려 파문. 그러나 증거 없다는 이유로 잡아땜.
2. 아버지:
알코올 중독자임에도 불구 아버지라는 이유로 친권가져 아버지가 고소해야만하는 제도
정신병원에 입원해있는 딸 의사의 극구반대에도 불구 치료중단시키고 1500만원에 합의시킴->딸 정신치료는 안하고 고모들이랑 나눠가짐 심지어 서로 더가지겠다고 싸움,
심지어 그 후 계속 술을 마시고 딸 폭행
3. 가해자들 과 밀양주민들:
여자에게 잘못이 있다 1년이나 당한게 정상적이냐 라는 가해자의 발언
밀양주민 64프로가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 생각함. 여자애가 돈뜯어내려는 꽃뱀이라는 인터뷰도 함.
4. 법원
이러한 처사에 국가를 상대로 경찰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판결에 보도자료에 실명공개한 것 뺴고는 다 패소판정내림
가해자들에게 처해진 처벌-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형사처벌내리지 않았고 전과기록에도 남지 않음. 피해자의 합의로 인해 소년원에 얼마 있는 것으로 끝남.
성폭행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남성판사들, 판결 내릴 때도 피해자가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하고 있으니 등의 이유로 솜방망이 판결
5. 학교들
그 후 다른 곳에서 새삶을 시작하고자 했던 피해자 그러나 모든 학교에서 피해자의 학교 입학거부함. 그 이유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 피해자인데 무슨 사회적 물의냐는 방송국의 질문에 그래도 좀 꺼려진다고 말로 답변 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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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해자 부모들
합의를 하면 처벌을 받지 않는 제도로 인해 가해자들 집요하게 피해자 박수진양을 괴롭힘.
합의하고 나서는 용서를 구하는 태도 없음.
형사처벌 받은 사람들 아무도 없고 그 처벌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거의 없음에도 불구(전과기록도 안남음)
가해자 부모가 1년뒤 학교 화장실까지 피해자를 쫓아와서 탄원서 써달라고 요구
자기 아들만 처벌이 조금 더 과중하다고 낮춰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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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성범죄가 10년 넘게 형을 받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들이 30년 넘게 받는 것에 비하면 성폭행에 대한 사회의 제도적 처리 방식이 얼마나 야만적이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참고로 이런 피해자가 더 피해를 보는 국가의 처리방식으로 인해 성범죄 신고율이 6~7%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했을때 얼마나 전국의 여성(혹은 소수의 남성들)이 강간을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는지를 알수 있었습니다.
혈압이 오르고 정말 화가나는데 어떻게하면 짜라두짜가 독뱀을 처리하는 것 처럼 호탕하게 이 일을 처리할 수 있을까요?
제게는 온 국가와 사회에서 여성은 굉장한 약자이고 제도적으로 가부장제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 진짜 화가 납니다. ㅜㅜ(물론 남성도 성폭행을 당하는 일이 드물게 있기는 하지만 주된 피해자는 여성이기에, 또 이 일을 처리한 모든 남성 판사 남성 경찰 남성 검사 들이 모두 가부장적 사고관을 가지고 피해자 여성에게 더 피해를 가하고 있는 이 가부장적 잔재로 인해 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
저 피해자는 정신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자살시도를 수없이 했다고 하는데 왜 가해자는 4년제 대학도 다니고 취업도 하고 전과기록도 없고 반성도 안하고 아무 일 없이 잘 살고 있을까요?
약자- 피해자 박수진 양(가명)은 사회하위계층으로 보임-들은 왜 저렇게 당하고만 살아야할까요?
저번에 이정민 선생님께서 선한자는 선한 것 그 자체만으로 보상을 받은 것이고 악한자는 악한 거 그자체로 불행한 것이다. 선한 것으로 어떤 보상을 받으려고 하면 안된다.(권선징악) 하셨는데 전 그 말에 감동받아'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네!난 착하게 살아야지.. '하다가도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을 목격하면 정말 열이 받아서 어찌해야할 도리를 모르겠습니다 ㅠ_ㅠ
그리고 전 솔직히 짜라두짜가 지나가던 37마리의 곰에게 1년간 윤간을 당해도 그렇게 호탕하게 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에요. 제가 그 글을 이해 못한 것 같지만.. 니체가 다시 살아돌아와서 짜라두짜라면 그런 일을 당한 경우에는 어떻게 하는지 를 써주면 더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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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
2009/10/18 17:03지난 시간에 너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구나.
사실 나도 예전에 이야기를 듣고 피가 거꾸로 흐르는 분노를 느꼈어. "정의"란 정말 뭘까? "처벌"이란 뭘까? 내가 전에 토론에서 이정민 선생의 생각에 좀 반대를 한 건 악행과 정의에 대한 내 자신의 직관에 기인한 것인데 내 직관이 옳다는 확신은 없어. 하지만 악의 문제가 니체 식으로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생각은 변함 없어. 내가 아직 니체를 잘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정민 샘도 뭔가 생각을 많이 했을 거야. 개별 인간 차원에서 범죄나 악행은 전 우주적 차원에서 사소한 문제인지도 모르고. 의지박약, 심신미약, 무지, 결정론, 운명, 숙명 등이 악행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암튼 다음 기사는 인권 개념이 발전된 서구에서 특정 범죄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중앙선데이: 아동 성폭행범, 외국에서는 어떻게 하나
선진국에선 아동 성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아예 없앴거나 피해자가 성년이 될 때까지 공소시효를 정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에선 피해자가 18살이 될 때까지, 미국은 25살이 될 때까지 공소시효를 정지시킨다. 공소시효가 지난 탓에 9살 때 자신을 성폭행했던 범인을 처벌할 수 없게 되자 스스로 범인을 살해한 91년 김부남씨 사건과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다.
그뿐 아니다. 아동 성폭행범에 대한 엄벌 수준은 한국에 비할 바 아니다. ‘조두순 사건’이 미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졌다면 최소 형량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라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캘리포니아에서는 14세 미만의 어린이를 납치만 해도 15년 형, 성폭행까지 했다면 종신형에다 가중처벌로 100년 형이 추가로 구형된다. 지난 7월 텍사스주는 10대 소녀 3명을 20개월 동안 성폭행한 43세 남자에게 4060년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얼굴을 공개했다. 플로리다주에서는 아동 성범죄자에게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고, 12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에게는 초범이라도 최소 25년형을 선고한다.
인권을 중시하는 유럽이지만 아동 성범죄에 대해서는 단호하다. 프랑스는 일반 성폭행 범죄엔 15년이나, 피해자가 15세 미만이면 20년 징역형이 양형 기준이다. 영국은 13세 이하 어린이에 대한 성폭행범에게는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스위스는 아동 성폭행범에게 예외 없이 종신형을 선고한다.
성범죄자가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막는 예방책도 철저하다. 이웃 주민들에게 얼굴을 공개하고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기본이다. 두가드와 슈잇 사건의 범인 얼굴은 인터넷에서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고, 그들의 범행을 도운 배우자의 얼굴도 볼 수 있다.
94년 뉴저지주에서 발생한 메건 니콜 칸카(당시 7세) 살해 사건은 성범죄자 신상 공개의 계기가 됐다. 당시 메건은 성범죄 전과 2범인 이웃집 남자에게 유인돼 살해됐으나 이웃 주민은 아무도 그가 아동 성범죄 전력자라는 사실을 몰랐다. 여론의 반발이 거세지자 성범죄자의 정보를 공개하는 ‘메건법’이 만들어졌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부동산 계약서에 메건법 사이트(성범죄자의 범죄 관련 기록과 거주지 등을 제공하는 정부 사이트)를 소개해준다. 텍사스주는 아동 성범죄자 집 앞에 ‘성 범죄자가 살고 있다’는 팻말을 세우고 자동차에도 유사한 문구가 들어간 스티커를 붙인다.
프랑스에서도 아동 성범죄 같은 흉악범에 대해 이름과 얼굴사진을 공개한다. 영국에선 부모가 자신의 자녀에게 접근하는 사람의 성범죄 전력을 경찰에 요구할 수 있는 신상정보 공개 제도도 시범 실시하고 있다. 폴란드·러시아·프랑스 등은 성범죄자의 강제 거세를 허용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캐나다는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아동 성범죄자에 대해 화학적 거세를 할 수 있다. 술에 취해 저지른 범죄라며 형량을 깎아주는 한국과는 천양지차다. 대부분의 나라에선 알코올 또는 마약 복용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가중처벌을 한다.]]
다음 주 모임 보충
2009/10/11 00:39그리고 시험 등으로 못 오신다는 분들께도 죄송합니다.(사실 저도 힘든데) 그래도 김명석 선생님을 꼭 뵙고 싶어서요. 시간이 되는 분들만 같이 하시면 됩니다.
이번 모임은 좀 색다른 의미에서 "가볍게"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 수필(아니 산문) 문학에서 으뜸으로 생각하는 이태준의 [무서록]을 하겠습니다. 수십 개의 단편을 순서 없이 모은 수필집입니다. 그런데 제가 하는 게 아니라 각자 돌아가면서 마음에 드는 한 편(아니면 여러 편)을 읽고 감상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하지요. 책은 문고본으로도 많이 나와 있으니 쉽게 구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소는 세미나실 빌려 놓은 게 아깝긴 하지만 가을의 운치도 느낄 겸 성북동 이태준 고택에서 하면 어떨까요? 지금은 수연산방이라는 찻집이 들어와 있습니다. 찻값이 부담되기는 하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됩니다.
원래 금요일을 생각했는데 지난 주에도 목요일 3시에 뵈었다고 하시네요. 15일 목요일 3시 한성대 입구역 6번 출구에서 보면 좋겠습니다. 예약을 해야 할지도 모르므로 참여하실 분은 답급을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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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우
2009/10/11 03:14꺅꺅 너무 좋아요>_< 참석합니다! 아, 그런데 저는 좀 늦을 듯! 수업이 3시 15분에 끝나서 한성대까지 가면 40분 정도가 될 것 같아요. -
이정민
2009/10/14 01:50그러면 4시에 보는 걸로 해요. 한 7시까지 예약이 되면 해 놓지요.
늦게라도 오실 분은 한성대 입구역 6번 출구에서 1111번이나 2112번 버스(03번 마을버스)를 타고 성북초교 다음 동방대학원 앞에 내려 금왕돈까스 옆골목으로 들어오면 된다고 하네요. (덕수교회 건너편)



9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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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5 09:33
세상에 프로젝터가 있으시다니 ㅋㅋ 이따가 가서 상의해서 영화다운받아도될듯욤 ㅋ
2012/12/25 1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