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여러 가지로 울었습니다. 김명석 선생님이 알려주신 기사를 읽고 울고, 위독하신 할머니 병문안 드리러 갔다 울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울었습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소리에 잠못 이루고 누군가에게 넋두리라도 풀어 놓고 싶은데 그럴 사람이 제 곁에 없네요.

저는 정치를 잘 모릅니다. 정치인에 대해서는 더욱 무지합니다. '천안함' 사태가 무엇인지, 더 나아가 현실 정치 사안에 대해 꼭 어떤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임권택 감독님의 [창]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박정희 서거 직후 거국적인 애도 분위기를 전하는 뉴스가 흘러나오는데 직업여성들이 박통 죽은 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며 조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쩌면 저도 그들처럼 삶에 치어 정치를 조소하며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02년 유학 시절이었습니다. 노무현 이름 석 자가 처음 제 의식에 들어온 건. 인터넷으로 지켜본 그 해 선거는 월드컵보다 저를 더 열광시켰습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매체와 결합해 형성 중인 민주주의(democracy in the making)를 관찰할 수 있었으며, 부정으로 얼룩진 2년전 미국의 선거와 비교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탄핵이라는 광란의 사태가 있었지만 저는 모든게 잘 돌아가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2006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모두가 노무현을 욕하고 있었습니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심지어는 안좋은 기사마다 "xxx 때문에"라는 탓이 댓글로 달렸습니다. 제게 민주주의 정신을 대변하던 이름 석 자가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퇴 임 후 불과 일년, 검찰 수사가 시작되었고 처음에는 당당하고 꿋꿋이 이겨내던 당신도 어느 순간 감당하기 어려운 시점이 옵니다. 그 결정적 계기가 2009년 4월 22일 오후에 홈페이지를 닫는다는 글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은 더 이상 민주주의나 진보와 같은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으며 자기를 버려야 한다는.

저는 이 글을 김명석 선생님이 파고라는 모임 게시판에 올리셔서 읽었는데 그 어조가, 그 분위기가 평소와 너무도 달랐습니다. 그의 정치적이력에서 드러나는 낙관과 자신감, 유연함, 당당함이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때 제가 단 댓글입니다.

    클라라 선생님이나 다른 분들 혹시라도 너무 실망하지는 마세요. 예전에 무슨 강연을 들었는데 항상 "도덕적 명분"을 중요시 하더군요. 자기가 젊은 시절부터 쌓아온 명분이 지금의 자기를 만들었다는 요지의.그런데 퇴임 후 그러한 명분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있으니 당신도 견뎌내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좀 다르게 생각해 보면 자기가 내세운 도덕과 명분 안에 갖힌 느낌이 드는군요. 그는 죽어도 그가 남긴 가치는 죽지 않습니다. 도덕을 넘어선 가치를 본다면 그는 민주주의라는 정체가 낳을 수 있는 가장 민주주의적인 정치인일지 모릅니다. 09.04.23 15:10


그런데 이번에 안희정 씨 인터뷰 끝에 동영상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저 사람, 임기 중에도 항상 그런 마음 가지고 있었구나. 정치라는 흙탕물 싸움에서 생긴 인간적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또 삭이고 있었구나. 그러한 감정의 응축과 승화가 그의 정치적 감각의 근원이었구나 라고.

아무튼 위의 짧은 글귀를 적을 때 스쳐가던 불안감은 비단 저만의 느낌이었을까요? 다른 댓글을 봅시다.

   
권혁중: 좀 더 지켜 봐야 겠지만......'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달아나게 하는 상황' 을 자꾸 기대하게 되는군요! 제게는 노무현에 대한 애정보다 이명박에 대한 증오가 더 큰가 봅니다. 09.04.23 22:34

    익명: 근데 최종 승자는 사마의; 09.04.24 11:11

    휘날리다: 헐 익명씨의 댓글 한줄에 난 두려움을 느꼈다...........09.04.25 07:38


    안희정 씨의 인터뷰 중: "아, 그때부터... 언제였지 4월 30일, 31일, 그때 검찰 소환 될 때, 그때 내가 버스를 막아서라도 못 가게 했어야 하는데. 그때 막았어야 했는데.(눈물...)"


그리고 노대통령 검찰 출두 시 이창동 씨가 느꼈던 불안감 등등.

이 모든 것이 그저 우연일까요? 사후 관점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 노무현의 죽음은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4월 22일 이후 운명의 수레바퀴는 불과 한달 뒤 저 비극을 향해 맹렬히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막을 수 없었을까요? 누군가가 이 모든 것이 부당하다고, 비극을 막아야 한다고 권력을 향해 용기 있게 외칠 수 없었을까요?

"그 소리를 내가 할 수 있나...."


그 소리를 누가 낼 수 있었을까요? 누가? 누가? 당신이 할 수 없었다면 주변 사람이 대신? 팔다리가 다 잘린 상황이었다는데? 국민이! 내가 아니면 여러분이!

그런데 누구도 나서기를 주저주저한 것입니다. 설마 별 일 있을라고. 생업에 바쁜 일반 국민들이, 법 제도와 절차가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 나서기를 기대할 수 없더라도 예견했다면 막을 수도 있었던 사태가 아니었을까요? 따스한 손길로 힘과 용기라도 북돋아 줄 수 없었을까요? 우리 모두 신탁을 받고도 비극을 피할 수 없었던 외디푸스 왕처럼 운명의 노예가 된 것일까요?

한 달 뒤 토요일, 여느 때처럼 학교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데 노대통령 관련 뉴스가 티비에 뜹니다. 순간 머릿속을 치는 첫 반응, "아까운 사람 죽이는구나!" 자살이라는 정보가 주어졌음에도 왜 '죽인다'라는 표현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죽였을까요?

도스도예브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에는 아버지 까라마조프의 죽음과 이를 둘러싼 세 형제의 갈등이 펼쳐집니다. 형제들 중 누구도 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지만 셋 모두, 심지어는 천사와 같은 알로샤조차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지요. 결국 세상의 강팍함, 우리 모두의 무관심이 그를 떠밀었습니다.

사흘 동안 감정이 가장 예민한 아침이 되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의 죽음이 슬펐다기보다, 노무현이란 이름 아래 우리 세대가 대변했던 가치들이 짓밟히는 느낌이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문득 그리스어 테텔레스타이(tetelestai)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눈물을 그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순간 그의 곁에 있던 경호원의 증언입니다.

    부엉이바위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노대통령 “혹시 담배 가지고 있느냐” / “없습니다. 가지고 올까요?" / “그럴 필요는 없다” / (마을 앞길을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지나가네”라고 말하자, 경호원이 잠시 노대통령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이 순간 노대통령은 갑자기 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다.


    예수, 자신의 일 모두 끝마치심을 아시고 "나 목마르다" 하시니 마침 포도주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 포도주 적신 해면을 나무줄기에 매어 그의 입에 대었다. 예수 이를 마시고 "다 이루었다"(tetelestai) 하시매 머리 숙이고 숨을 거두더라. (요 19:28-30)


신약성서 전체에 걸쳐 가장 장엄하고 숭고한 한 마디입니다. 예수는 마지막 순간 포도주까지 대접받으며 다 이루었지만, 그는 담배 한 대 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 없이 이미 다 이룬 것은 아니었을까요? 온갖 증오와 질시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 모든 것을 불사른 다 이룬 삶이 아닐까요? 인한 사람, 죽어도 잊히지 않는 사람이 오래 산다는 말대로(仁者壽, 死而不忘者壽). 그러나 세상에 남은 우리는 ...

    우리는 세상과, 천사, 그리고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 시간까지도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 없이 떠돕니다. 우리는 세상의 찌끼 같이 되었습니다. 부끄럽게 하려는 말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식 같아 권면하려 하는 말입니다. (고전, 4:9-14)


어쩌면 우리는 삶에 치어 가까운 사람들을 잊고 살지나 않은지,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곁에서 또한번 주저주저하고 있지 않은지요? 그가 눈물 흘린, 목숨 바친 가치들을 잊고 살지는 않은지, 사람보다 이익에, 돈이나 편안함에 먼저 눈돌아가지는 않았는지요? 오히려 우리 친구들을 질투하고 깎아내려고 하지는 않는지, 해도 해도 부족한 존경과 사랑에 너무 인색한 것은 아닌지요?

바울의 말대로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노력하기 위한 질문입니다. 여러분도 세상에 나아가 사랑을 베푸시길 바랍니다.
2010/05/23 06:20 2010/05/23 06:20

http://thinkinglab.kr/t/tl2010/trackback/64

  1. 진보적인, 너무나 진보적인 생각을 생각하라 2010/05/25 17:48 Delete
  1. 시즈
    2010/05/23 19:48
    정민 선생, 나를 위로하는 글이군요. 나는 정민 선생을 위로해 본 적이 없는 것 같군요. 슬픔이 가시길, 그대의 정순하고 여린 정신이 다시 맑아지길, 발랄해지길.

    정치인, 그런 존재가 우리 우주에 존재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면, 그런 존재에게 모종의 본질을 가진다면, 노무현은 그런 본질을 잘 보여준 정치인, 그런 충분한 이유를 드러내준 개별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정치인의 본질 같은 것은 사유를 통해서 파악되는 것 아니라, 오히려 경험을 통해서, 노무현이라는 그런 개별자를 경험함으로써만, 우리에게 파악되는 것입니다. 그런 개별자를 경험할 수 있어서 고마운 일입니다. 같은 시대에 살아서 고마운 일입니다. 그를 사랑할 수 있어서 고마운 일입니다. 내가 그리고 우리들이 정치와 정의와 사랑의 관념들을 반성할 수 있게 되어서 고마운 일입니다. 그는 정치인으로 자기 운명을, 자기 존재 이유를, 사명을 다 이루었습니다. 그는 솔성했으며 성실했으며 충실했습니다.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영화 시 중에서 아네스의 노래
  2. 시즈
    2010/05/25 17:58
    칸트 읽고 있다는 도올. http://bit.ly/dmLk6T
    강연 전체: http://bit.ly/ckbDdF
  3. 희정
    2010/05/25 18:22
    "어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신지 1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분을 모시고 20년 동안 충성과 의리를 다해온 저로서는 피눈물이 나는 날입니다. 지금 이렇게 생각해도…… (눈물)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했습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했습니다. 왜 좋아했냐구요? 그분이 저에게 한자리를 주었습니까? 그분이 저에게 돈을 주었습니까? 하지만, 저는 노무현이 좋았습니다.

    노무현은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말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했습니다. 왜 출세를 합니까?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고 출세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출세하면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밟아도 되는 겁니까? 돈을 벌던, 권력을 갖던 다른 사람의 눈에서 피눈물나게 하면 안 되는 겁니다. 내가 설령 출세하더라도 사람이 바뀌면 안 되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제가 그 노무현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것은 아직도 시골에서 농사짓고 있는 우리 부모님과 평범한 보통사람들에 대한 저의 충성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국민에게 충성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에게 충성하는 것은 제가 살아온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이요, 힘없고 빽 없는 이 땅의 보통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충성이었습니다. 그것이 저의 도전이 가지고 있는 저의 간절한 꿈입니다." 안희정, 2010년 5월 24일 충남 강경 젓갈시장 앞 유세 중에서.
  4. 이보미
    2010/06/01 21:52
    갖힌(X)->갇힌(O)
    치어(X)->치여(O)
    ....죄송해요 ㅋㅋ 이런 거 발견하면 짚지 않고는 견디질 못해서 (딴지보미)
    요새 통 컴퓨터할 시간이 없었는데 모레 있을 발표 ppt작성하다 잠시 들어왔어요. 삶에 치여, 과제에 치여 ㅠㅠ 꾸준히 관심 갖기가 힘에 부칩니다.
    그런데 경호원의 증언은 사실이 아닌것으로 판명나지 않았나요? 제 기억이 잘못됐나요?;;
    며칠 전 신문에서 보았는데 대통령의 민생탐방 친서민 업적 등에 대해 보도하는 건수가 노무현 정권때 가장 낮았다는 통계가 있었어요. 현 정권의 행보 보도는 선별'적'이다는 것도요.
    전에는 어린 마음에 '정치판은 지방덩어리들의 영역싸움이다.' 라 단정짓기도.. (이런 말 여기다 해도 되나?^^;)
    이렇게 쓰고 시고 너저분한 일 보다는 마음에 기름칠을 해주는 음악과 인문학에 더욱 마음을 쏟고 싶어져요. 아까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한 후보가 트럭 위에서 땀에 흥건히 젖어 연방 힘겨운 미소를 사방으로 날려대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내일이 선거인데 무언들 못하겠어'라 비아냥 거리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는 마음이 찢기는 듯 했어요.
    별 것 아닌 댓글 하나 다는 데도 왜이리 마음이 조마조마한지 모르겠어요.
  5. 생각실험실
    2010/08/12 17:36
    이 포스트는 이정민 선생이 쓴 글입니다.
Leave a Comment
블로그이미지
About
생각실험실

지성적 방랑자를 위한 배움터. 진리가 무엇이뇨? 바로 내 앞에 있는 사람입니다. 선이 무엇이뇨? 우리가 대화하는 것입니다. 미가 무엇이뇨? 이렇게 마주보는 얼굴입니다.

Recent Trackback

241915
Today : 30   Yesterday : 29
rss 구독하기
Textc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