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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에 해당되는 글 2건

모임 이름을 뭐라고 할지 모르겠는데 한때 다슬기를 사랑하는 친구들 몇이 저희 집에 놀러온다고 하니 웬지 번개공지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올립니다. 이 사이트를 매일 체크하지 않는 배신자는 초대 안함.ㅎㅎ

그리고 왠지 이런 시국에 그냥 놀기에는 국민으로서 일말의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어, 그런 순전히 이기적인 목적으로 "원격다슬기 3"을 올립니다. 읽어보시길.

모임 시간은 내일 오후 이후가 되겠습니다. 저녁은 같이 해먹습니다.
저희 집으로 오시는 길은 신림역 또는 서울대입구 3번 출구로 나와 버스를 타면 됩니다.

문앞에서의 검문검색을 통해 선물이 발각되면 돌려 보내겠습니다. 다만 같이 해먹을 식재료는 허용합니다. 티비 없고 인터넷 안됩니다. 와이파이는 제 침실에서만 좀 터집니다. 그 사이 프로젝터가 생겼습니다. 원하시는 영화나 음악을 오전까지 댓글로 신청하시거나 담아 오시면 됩니다.
2012/12/24 18:33 2012/12/24 18:33
  1. ㅇㅈㅇ
    2012/12/25 09:33
    헤헤 레미제라블 ost 신청해요 i dreamed a dream, on my own, 하나는 제목 까먹었넹..
    세상에 프로젝터가 있으시다니 ㅋㅋ 이따가 가서 상의해서 영화다운받아도될듯욤 ㅋ
  2. 꺄오
    2012/12/25 11:40
    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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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2월초, 삭풍이 휘감는 도심의 한 건물. 3층의 사무실로 작업복 차림의 초췌한 젊은이가 끌려들어간다. 사무실 맞은편에 앉은 국장의 눈에는 죄수의 표정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해질 무렵이었던 것이다. 순간 '목숨을 구걸하러 왔구나'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면담은 시작되었고 고문에 지친 처연한 목소리 한편으로 생사를 초월한 의연함이 묻어났다.

"나를 한번 도와주실 수 없겠습니까."

짧은 대화 끝에 나온 이 한마디가 국장을 움직였다. 무심코 "도와주겠다"라는 답이 흘러나왔다. (백선엽은 이 말이 '무심코' 나왔다고 뚜렷이 기억한다). 가느다란 운명의 끈이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며칠 뒤 이번에는 충무로 근처의 임시법정에서 열린 군사재판. 정복차림에 이발까지한 단정한 모습의 죄수. 유난히 많이 바른 머리기름이 번득인다. 무언가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한 모습이다. 재판관이 신문을 시작하자 체념한듯 순순히 죄를 자백하고 시인한다. 곧이어 사형이 구형되자 며칠 전 면담이 떠올라 이를 깨물었다. '소용없는 짓이었군.' 같은 날 사형을 언도받은 대부분의 장교들은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나는 박정희를 생각할 때마다 이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만일"을 공상하게 된다. 만일 그때 방안이 좀더 밝아 죄수의 모습이 구걸로 비춰졌더라면. 만일 그때 방안을 채운 공기와 먼지 입자의 미세한 떨림이 목소리의 의연함보다 처연함을 더 부각시켰더라면. 만일 그때 국장의 신경세포 시냅스의 전류 흐름이 그의 마음을 좀더 무디게 했더라면. 만일 그것이 무심코 한 말이었다면, 대신 똑같이 무심하게 '그럴 수 없다'고 내뱉었더라면.

물론 그랬더라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박정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그날의 장교들과 운명을 같이 했을 것이며 그들처럼 그 이름은 이제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박정희 개인만이 아니라 우리 현대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5.16 쿠데타도, 베트남 파병도, 한일협정도, 유신헌법도, 긴급조치도, 10.26도, 12.12도, 5.18도 없었을 것이며, 가깝게는 현 당선자도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 모나드와 이 우주의 다른 모든 모나드가 다르게 연결돼야 했을 것이며, 그러면 우리는 그렇게 새로 짜인 세상이 더 좋았으리라 말하고 싶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모나드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내 모교는 박정희가 파병의 대가로 미국에서 받은 천만 달러의 원조로 처음 설립된 기관이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대학에 갔을까? 아니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베트남전이라면 아버지가 참전한 전쟁이고 어머니를 처음 만난 것이 보훈병원이라고 했으니 그렇다면 ... . 음. 이 가정은 왠지 안 될 것 같다. 박정희가 사라진 가정의 역사에서는 결정적으로 이렇게 수많은 '만일'을 공상하는 나란 모나드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 없는 세상이 더 좋았을 수도 있긴 하다.


***

박정희가 좌익으로 몰려 사형선고까지 받은 역사적 배경에는 해방 이후 혼란스런 정국에서의 좌.우 대립이 자리하고 있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은 남한만의 단정이 수립되기 이전의 좌익은 오늘날의 '빨갱이'가 아닌 다른 정체를 지향하는 정파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3.1운동의 기획자 여운형은 대전 중 일본의 패망을 확신하고 치밀하게 해방 이후의 정국에 대비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구보다 여운형을 높이 평가한다.) 충칭의 임시정부는 일본의 패전과 같은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국내 상황 대처하기에는 너무도 멀리 있었고 임정만이 유일한 법통이라는 김구의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운형은 일관되게 좌우합작의 입장을 견지했으며 미국의 지지를 받은 이승만이나 임정 정통을 고집한 김구와는 다른 통합 노선을 추구했다.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통일국가의 건설은 좌우합작으로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여운형의 통찰이었다. 반면 미군정은 공산당과 단절하도록 여운형을 압박했고 이승만은 '남한만의 단독정부'(46.6 정읍 발언) 운운하며 본색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결국 여운형의 암살(47.7) 이후 좌우합작은 구심점을 잃고 미소공동위원회는 결렬되기에 이른다.




해방 이후 건준과 각 지역에 성립한 인민위원회는 치안 유지와 일제 잔재 청산을 주체적으로 수행하지만, 미군정은 친일 세력을 경찰로 등용하고 인민위원회 불법화(45.12)한다. 그럼에도 미군정과의 협조 아래 인민위원회가 끝까지 활동하던 지역이 바로 제주였다. 1948년의 4.3사건은 이 두 세력의 대립이 단정 성립 이후 '빨갱이 토벌'로 변질된 사건이다. 그리고 이 제주 4.3 사건에 동원된 여수 지역의 14연대 군인들이 동족상잔이냐? 반역이나?의 갈림길에서 후자를 선택해 일으킨 것이 여순 사건이다. 이 두 사건 모두에서 무고한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었으며 특히 후자는 군부 내 좌익을 색출하는 숙군(肅軍)과 국가보안법 제정의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 두 사건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최초로 '빨갱이'를 우리 국민의 의식 속에 죄악으로 각인시킨 사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빨갱이'가 제주와 여순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제주와 여순이 오늘날의 '빨갱이' 개념을 탄생시킨 것이다. 물론 사건의 발단은 우익계 인사와 경찰을 습격한 좌익 세력과 군인들이다. 하지만 이것은 반공을 국시로 하는 정체가 성립하기 이전의 일이다. 그리고 살상의 규모로만 말하자면 해방공간에서는 좌익보다 우익이 더 조직적이고 대규모적인 살상을 감행했다. (여운형 암살도 우익 테러) 다시 말해 이들 사건은 친일 경찰과 결탁한 정권의 정통성이 48년 당시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정권의 정통성은 반대 세력을 빨갱이로 내몰면서 반사적으로 확립되어 나간 것이다. 빨갱이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이 정권의 정통성을 부여해 준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현대사를 이해하는 마스터키이다.

이런 적은 거의 없고                            거의 언제나 실상은
빨갱이 = 마르크스.레닌 사상의 추종자    빨갱이 = 반정부 (반친일, 반미, 정부정책비판) 세력

그리고 이러한 야비한 술책을 우리 정치사에 도입해 정착시킨 인물은 굳이 지목하지 않아도 명명백백한 것이다. 그것은 범죄심리학의 용어로 '누가 이익을 보는가?'(cui bono)의 문제이다. 누가 이 구도를 만들어 가장 큰 이익을 보았는가? 누가 이 구도를 최초로 국민들에게 내면화시켰는가? 그래서 누가 '국민의 이름으로' 권력의 정통성 시비를 일소하고 영화와 권세를 유지했는가? 그것은 처음, 바로 오늘날 일부에서 기념관을 짓고 역사를 날조해 국부로 추앙하는, 언급조차 부끄러운 인간의 가증스런 소행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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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이목을 끄는 연기와 기회주의적 술수에 능했으며 분란의 대가였다. 독립 단체는 그가 참여할 때마다 족족 내분을 겪고 와해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고 돌아섰다. 그가 같은 방식으로 가장 거대하게 해먹은 단체가 바로 이 조선반도이며 대한민국 제1공화국이다. 따라서 그의 유명한 표어는 다음처럼 읽혀야 한다. '[자기로] 뭉치면 살고 [자기에서] 흩어지면 죽는다.' (실제로 라디오 방송에 '나를 따르시오.'라는 말이 바로 앞에 있다.) 그의 정치적 술책은 거의 천재적일만큼 교묘하고 기상천외했다. 가장 완벽하게 자신의 사익만을 추구했으며 가장 완벽하게 사상적 일관성을 결여했다. 그의 정치적 행적 전반에 걸친 거의 유일한 일관성은 반민족.반민주였다. 그의 가장 '위대한' 술책이 바로 '빨갱이'의 발명이었고 박정희는 이를 충실히 계승했다. (솔직히 비열한 죄질로만 따지면 박정희는 명함도 못내민다.) 이들이 드리운 역사의 암운이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현대사를 지배하고 있다.



기억하자. 한국의 현대사에서 부정한 정권의 정통성은 반대 세력을 좌익으로 내몰면서 반사적으로 획득된다. 이것은 참으로 간편하면서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깨지기 힘든 공식이다. 수십 년간의 폭압과 교육과 세뇌와 회유를 통해 국민들의 의식에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것이 '부정하다'고 말하기도 힘들어졌다. 국민들의 표심이, 민주의 이름으로 그 공식과 그 위에서 성립한 정권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빨갱이, 용공, 종북좌파, ... = 반 _____ (제1공화국)
                                     = 반 _____ (제3.4공화국)
                                     = 반 _____ (제5공화국)
                                     = 반 _____ (현 정부)
                                     = 반 _____ (이번 선거와 차기 정부)

실제로 이승만은 45년 10월 귀국 직후 공산주의에 우호적인 발언을 한다. “나는 공산당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의 주의에 대하여도 찬성하므로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세울 때 공산주의를 채용할 점이 많이 있습니다.”(45.10.26 매일신문) 그러다 미군정이 공산당을 불법화하자 사익을 좇아 극렬 반공주의자로 돌아섰다.

여순 사건 이후 숙군 과정에서 걸려든 박정희도 남로당 가입 혐의로 체포되지만 미군정하에서 남로당은 불법단체가 아닌 합법단체였다. 오늘날의 '빨갱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여순 사건을 계기로 남로당과 반 이승만 세력이 일망타진되면서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힌 것이다. 실제로 여순 사건이 남로당의 조직적인 개입에 의해 일어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동족을 죽일 수 없다는 군인들의 우발적인 항명이 사태의 본질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남로당과 관계한 것도 우연의 일치일 뿐 그 사상에 기반해 일으킨 반역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박정희의 행적을 둘러보아도 그가 이론으로 무장한 골수 빨갱이라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주변상황에 영향 받아 남로당에 가입한 '감상적 공산주의자' 정도가 아니었을까 한다. 박정희가 존경한 손위 형인 박상희의 절친으로 그가 숙부로까지 모신 이재복이 남로당의 군 총책이었던 것이다. 이재복이 자꾸 청해 '향우회'에 참석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빨갱이였다는 것이다. (70.7월 회상) 박정희의 의식 속에 남로당은 향우회 수준의 모임이었을지 모른다. 물론 이재복의 의도는 달랐겠지만.


불의를 저지르기보다 불의를 당하는 것이, 비록 죽음을 당한다 해도 덜 나쁜 것입니다.

다슬기 친구들은 내가 어떤 맥락에서 이 글 처음에 그린 사건을 언급했는지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바로 [고르기아스]에서 소크라테스의 말을 설명하며 예로 든 것이다. 여순 사건에 가담한 군인들을 빨갱이로 몰아 죽여야겠는데 물증이 없었다. 유일한 증거는 군인들의 자백이었고 따라서 이를 받아내기 위한 고문 => 자백 => 무고의 사이클이 이어졌다. '빨갱이' 검거에 혈안이 된 군경의 숙군수사에 유능한 군인들이 굴비 엮듯 엮어져 나왔다. 박정희도 '향우회' 명단을 제출하고 수사에 적극 협력했다. 이를 구실로 백선엽에게 선처를 호소한 것이다. 당시 숙군과 관련해 전권을 쥔 백선엽은 자신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다. 어차피 죽을 것, 아까운 인재나 하나 살리자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여기에 박정희의 만군 인맥과 육사 인맥이 큰 힘이 됐다. 백선엽은 실제로 독립군 공격에도 참여한 간도특설대 출신이다. 박정희가 체념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백선엽은 만군 인맥을 동원해 미 고문단에 양해를 구하고 육본에 재심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박정희가 풀려난 뒤로도 백선엽은 그가 현역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뒤를 계속 봐주었고, 이 '은혜'를 박정희는 집권 기간 내내 그를 위한 '자리'로 보답한다.

이렇게 박정희 개인의 부끄러운 과거로 묻힐 수도 있었던 사건은 63년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국민들의 의식 속에 들어온다. 투표일 이틀 전 (63.10.13) 전국에는 동아일보의 호외가 뿌려졌는데 거기에 박힌 제호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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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자료를 공개, 박정희씨에 무기언도



실제로 유세 기간 내내 당시 민정당의 윤보선은 박정희의 ‘남로당 경력’을 문제 삼으며 해명을 요구했다. 재미있는 것인 박정희가 이를 매카시즘적 (빨갱이 사냥) 수법이라고 되받아쳤다는 것이다. 곧 이 시점까지도 박정희는 색깔론의 가해자 아닌 피해자였으며 거기에 대해 부정적인 가치평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호외를 접한 국민들도 녹록치 않았다. 놀랍게도 민정당이 제기한 색깔론이 남부 지방(전남, 경남북, 제주)에서 박정희 몰표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것이다. 당시에는 아직 투표의 지역 구도가 없었다. 그렇다면 제주와 여순의 잔상이 남아 있던 지역민들이 내심 박정희의 과거에 공감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아무튼 색깔론을 비켜간, 아니 어쩌면 그 색깔론 때문에 집권한 박정희는 이제 그 자신이 빨갱이 사냥의 신봉자가 된다. 이승만이 조봉암을 죽인 것이나 박정희가 김대중을 죽이려 했던 것 모두 그 공식의 충실한 이행이었던 것이다.

박정희는 김대중에게 빨갱이 혐의뿐만 아니라 지역색의 멍에를 씌웠다. 망국적인 지역감정, 특히 영호남 갈등이 탄생한 것이 70년대이고 그 주동이 박정희의 대구사범 스승이자 국회의장을 역임한 이효상이라는 주구(走狗)이다. 이효상은 이미 63년 선거에서 박정희의 "신라 대통령론"을 들고 나와 재미를 보았다. 그랬던 그가 1971년에는 "전라도에 정권을 넘겨서 되겠는가"라며 김대중을 "전라도 대통령"에 불과하다고 공격한다.

김대중 = 전라도 대통령
박정희 = 신라 대통령 (= 대한민국 대통령)

다시 이것은 '누가 이익을 보는가?'의 문제이다. 이 구도가 정착되면 누가 이익을 보겠는가? 당연히 인구가 배 가까이 많은 쪽일 것이다. 그러면 아무리 다른 지역에서 선전해도 이 둘의 표차를 메꾸기 힘들다. 곧 이 지역의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다. 71년 선거와 다음 직선인 87년 선거의 결과를 비교해 보면 (위키피디아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다) 그 사이에 지역구도가 얼마나 극단적으로 공고화되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의 선거에서는 지역이 깡패다! 여당은 아무리 위기가 닥쳐도 지역이 '믿을 구석'인 것이다. 여기에 밥숟갈 얹고 박정희 향수를 자극하면 '선거의 여왕'이 된다. 박정희는 이것이 딸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이 될 줄 꿈에라도 짐작할 수 있었을까?


***

불행히도 21세기도 십 수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러한 과거로부터 일보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를 둘러싼 이념과 지역 갈등에 세대 간 갈등마저 더해질 조짐이다. 모든 갈등에는 역사적 뿌리가 있고 해결책은 바로 올바른 역사 인식이다. 많은 이들이 과거는 과거에 묻자고 한다. 왜 과거를 들춰서 분란을 일으키냐고, 그래서 미래로 나아가는데 발목 잡냐고 반문한다. 물론 조상들의 치부를 감추고 대대손손 영화와 권세를 누리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쉽게 처리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과거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바로 우리 현재의 모습과 미래의 제약 조건을 이룬다. 놀라운 것은 현 당선자의 표어가 과거의 그것을 놀랄 만큼 닮아있다는 점이다.

국민대통합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잘살아보세 = 경제만 살리면
국민행복 = 그깟 행복 개나 줘버려
(마지막 등식은 다슬기에서 추모한 복슬이를 기억해야 이해할 수 있음. 보충 설명 밑에)

조선왕조의 역사를 살펴볼 때마다 나는 수양대군 세조의 찬탈을 가슴아파하지 않을 수 없다. 한줌의 치적을 평가해 주기에는 그의 죄업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세조의 집권으로 유교 국가 조선은 하루아침에 가장 반인륜적인 패역 국가로 전락했다. ‘왕권 강화’라는 명분도 실제로는 자기에 붙는 공신 집단만을 키움으로써 장기적으로 조선을 소수의 특권층이 지배하는 사회로 만들었다. 세조의 찬탈 때문에 훈구파가 득세했고, 이들과 사림의 대립은 피비린내 나는 사화로 이어졌고, 대립적 정쟁 속에 조선은 문약에 빠졌고, 양란으로 진즉 망했어야 할 국가는 노론과 세도정치로 수백 년을 더 이어갔고, 결국 강도 일본에게 나라를 강탈당했다. 죄업의 역사적 하중이 그토록 무겁고 오래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세조의 찬탈은 ‘정의의 패배’를 조선 백성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리고 그 정의가 패배하는 일은 대한민국의 현대사로 이어졌다. 이승만의 권력장악은 박정희의 쿠데타를 낳았고, 쿠데타는 유신을 낳았고, 유신은 전두환의 12.12를 낳았다. 세종과 문종의 유교이념은 수양의 찬탈로 배반되었고, 4.19의 민주이념은 박정희의 쿠데타로 배반되었다. 그리고 그 권력찬탈의 명분이란 것은 언제나 ‘정치적 혼란과 위기 상황’이었으며 일단 집권하면 ‘치세’와 '경제발전'이 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모든 의문을 잠재우게 되는 것이다. 과연 ‘잘살아보세’나 ‘국민행복’의 수사로 역사에 대한 반성을 회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가?

불행히도 현 당선자는 역사에 대한 인식도, 아니 그 인식의 필요성에 대한 자각도, 역사의 하중을 감당할 능력이나 청산할 의지도 모두 결여하고 있는 듯하다. 태생적 한계가 너무도 명백한 것이다. 독재자의 딸이라는 사실이 오늘날의 그녀를 있게 한, 그녀를 규정하는 전부인 것이다. 그녀가 과연 정치인으로 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한번이라도 권력에 맞서 진실을 말한 적이 있는가? 한번이라도 국민적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소신 있는 발언을 했는가? 한번이라도 악법 개정이나 민생 현안 해결에 실질적인 공헌을 했는가? 의정활동과 관련된 그녀의 유일한 업적이란 것이 장외투쟁 끝에 개혁 사학법(그녀의 돈줄과 관계)을 도루묵으로 만든 것이다. 그녀의 유일한 정치적 공헌이란 것이 선거 때마다 얼굴마담처럼 표를 몰아주고 난파하는 당을 살려준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민생’ 구호는 진정성을 결여한 공허한 울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그녀가 하루아침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권좌에 오르게 되었는가? 답은 이미 말하지 않았는가? 그녀에게서 아버지를 빼면 듣보잡 국회의원의 지위만이 남을 것이다. (물론 국회의원이 될 수도 없었겠지만) 그녀는 역사를 직시할 용기가 없다. 아버지를 객관화해서 볼 안목이 없다. 그렇게 되는 순간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게 되고 그러면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세습은 일어나고 있다. 만일 우리가 한 개인의 모든 능력이나 배경, 이력 등을 고려할 때 그 자신의 능력보다 그의 아버지가 누구라는 사실에 의해 지도자가 결정된다면 나는 그것을 ‘세습’ 이외의 다른 말로 기술할 수 없다. 그것이 헌법에 명시된 북한 같은 국가는 예외라고 쳐도 민주주의가 발달했다고 하는 미국(부시 부자)이나 한국에서 세습이, 그것도 국민의 자발적 동의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믿기 힘들다. 그것은 과거가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로 되돌아온다는 역사관에 비춰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사태인 것이다. 왕정은 언제라도 부활할 수 있고 민주주의는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잠재적 의식에 중층적으로 겹쳐 있는 과거의 모든 역사에 대한 기억 가운데 하나가 표면으로 떠올라 의식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현 정권 전의 '잃어버린 십년'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두려운 것은 그것이 ‘아름답지만 짧았던’ 십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세조의 찬탈이 왕조에 수백 년간 드리운 암운, 어쩌면 우리는 대한민국의 독재자들이 드리운 그 암운의 터널 초입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정의가 사라진 역사의 기나긴 터널이 수십 년, 수백 년 지속되는 것은 아닐까?

노나라의 대신인 계강자가 정치를 물었다. 공자는 답한다. 정치는 올바름이다. 그대가 올바를진대 누가 감히 올바르지 않겠는가? (政者, 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 계강자가 이번에는 도둑을 걱정한다. 그러자 공자는 그대가 욕심이 없다면 상을 주어도 도둑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다. (苟子之不欲, 雖賞之不竊.) 정치는 정의이며 공동선의 지향이다. 위정자가 바르지 않고서 국민이 바른 경우는 없다. 그리고 정의가 바로서지 않고서는 경제와 민생이 나아질 수 없는 것이다. 어찌 ‘잘살아보는’ 일이 등 따습고 배부른 일에서 끝나겠는가? 어찌 인간의 행복이 복슬이의 행복이겠는가? 그것은 도덕이 구현되며 정의가 바로서고 인정(仁政)이 실천되는 사회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경제를 걱정하는가? 지난 몇 년 간 나라 안 가장 큰 도둑이 누구였는가? 그대들이 해쳐먹지 않는다면 경제는 나쁘게 하려 해도 나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우려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정치와 경제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을 보게 될지 모른다. 극우파이자 최근 자민당의 집권으로 총리가 된 아베 신조. 그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으로 괴뢰정부인 만주국의 산업개발 5개년 계획(어디서 많이 듣지 않았는가?)을 추진했으며 전후 총리까지 지낸 인물이다. 메이지 유신의 정신으로 쿠데타와 유신을 일으킨 박정희와 그의 뒤를 봐준 백선엽의 ‘만주인맥’으로 같이 묶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이 한일 양국에서 최고 권력의 지위에 올랐다. 일본 매체는 벌써부터 우리 당선자가 한일 국교정상화를 단행한 박정희의 딸로 독도나 신사 참배 문제 등으로 더 이상 자신들과 대립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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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정녕 우리의 미래인가? '글로벌 리더십', '세계적 여성지도자'의 현혹스런 수사가 가린 진실은 무엇일까?



강대국의 보수는 자국의 이익을 대변한다. 일본의 극우가 그러하고 미국의 매파가 그러하다. 하지만 우리의 보수는 자국의 이익보다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강대국의 이익을 대변한다. 현 대통령이 뼛속까지 친일.친미라는 사실은 또한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마도 대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미래 한반도의 구도는 이럴 것이다.

중국 - 통일한국 (동북아 균형유지. 조정자) - 일본, 미국

그런데 뉴라이트의 역사 조작이나 중국의 동북공정이 소기하는 구도는 어떠한가?

북한의 중국화 vs. 남한의 친일, 친미 강화

과연 친일.친미의 강화가 앞으로 우리의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중국이건 일본이건 미국이건 모든 강대국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할 뿐이다. 우리의 이익은 우리가 챙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대국에 기생해 분단 구조를 유지하며 사익을 챙기는 국내 세력이 있다 해도 그 사익의 한계란 명백한 것이다. 스스로 통일한국으로 서지 않으면 언젠가는 모두 공멸하고 마는 것이다. 지속된 분단과 공멸이냐? 자주통일과 번영이냐? 여기에는 어떠한 이념논쟁도 무의미하다. 이미 세계는 하나의 시장이 되었고 중국이야말로 세계자본주의의 첨병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어찌 북한만이 고립을 추구할 수 있으며, 어찌 국익을 위한 건전한 정치적 비판을 죄다 종북좌파로 매도할 수 있단 말인가.


***
선거 결과에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긁적인 글이 길어졌다. 서두에서 모나드 운운했듯이 내 존재 자체가 지난 날의 정치 상황과 뗄 수 없이 얽혀 있다. 아마도 모든 이의 삶이 그러할 것이다. 정치를 자기 삶의 조건으로 책임감 있게 받아들이는 것이 민주주의의 시작이 아닐까?



이 글을 쓰는 데는 많은 인터넷 자료의 도움을 받았다.
상당히 충실해진 한국어 위키피디아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중앙일보의 <실록 박정희 시대>,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도 참고했다. 사실 사실적인 정보는 어디에나 널려 있다. 문제는 이를 정치적 사심 없이 선별하고 해석해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 현대사의 여러 인물에 관해 추천할 만한 사이트가 있다. http://blog.ohmynews.com/kimsamwoong/468500 (반민족.반민주로 일관한 이승만) 사진은 모두 무단전제했다. 이미 미디어에 잘 알려진 것들이지만 문제가 되면 삭제하겠다.
2012/12/24 15:12 2012/12/24 15:12
  1. 클라라
    2012/12/27 22:40
    선생님의 정성어린 글 잘 읽었습니다. 옳음과 바름의 관점에서 역사를 관통하시는 선생님의 시각에 거의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저는 우리가 저들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무능하다는 시각에 반대합니다. "무능"이라는 말은 단순히 "약자임"을 뜻하지 않고 모종의 도덕적 함의가 들어 있습니다. 원래 "현자"가 "유능한 자"를 뜻하듯이, "유능"과 "무능"은 단순히 강자와 약자의 대비가 아닙니다. 우리의 무능에 대해 반성하라는 비판에 대해 저는 거의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어제 논쟁에서 저를 화나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친일반민족부패세력이 유능했고 우리는 무능했다는 지적은 정말이지 옳음과 바름의 관점에서 현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힘의 관점에서 현상을 보는 것입니다. 저들은 대한민국의 대부분 부동산 자산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대부분 여론 시장과 금융과 기업들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대한민국 대부분 공권력과 교육 체제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막강합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힘이 몹시도 작습니다.

    혼합주의자 또는 실용주의자들은 제가 이 엄연한 현실을 모른다고 비판하면서, 동시에 모순되게도, 이 현실에 저항하려는 저의 시도를 또한 비판합니다. 하지만 민족민주세력에게 이런 방식으로 비판하다가 갑자기 반민족반민주부패세력의 대변자가 되어, 그들 의견과 입장에 인식적,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고성국 같은 이가 그런 지식인들 중에 하나이죠.

    그들의 막강함이 그들 주장의 설득력을 높여주지 않습니다. 우중들은 그들의 막강함에 위축되어 그들 주장에 압도당하고 있을 뿐입니다. 일베나 뉴데일리나 조중동에 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글을 쓰는 누구에게도 저는 머리카락 하나의 정당성도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모종의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문약 지식인들에게 저는 무척 분노하고 있습니다.

    저는 노무현과 문재인에게 던져지는 "무능"이라는 비난은 매우 악랄하고 사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범주의 비판을 반성없이 해대는 사람들을 올바른 지식인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저의 현재 심정입니다. 제 심정을 아신다면 저를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는 저들에 비해 몹시도 몹시도 힘이 없습니다. 저도 힘을 키우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직 진실과 선함과 아름다움만이 나의 힘에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들을 잘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보다 그들에게 그 어떠한 도덕적 정당성도 부여하지 않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들이 해 놓은 그 어떤 것도 업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들에게 돌려진 잘못된 찬사를 완전히 몰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승만과 박정희에게 약간이라도 더 공적을 돌리려고 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에 왜 제가 귀를 기울여야 합니까? 진실과 논리로 말하지 않고, 조야한 레토릭과 힐난과 협박으로 소리 지르는 저들의 소음에 왜 제가 힘을 빼야 합니까? 그 소리에 계속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신다면, 그것은 선생님의 몫으로 돌리겠습니다.
    • 이민정
      2012/12/29 02:00
      엊그제 이런 논쟁을 했던가요?
      몇 가지 오해가 있어서 덧붙입니다.

      저는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무능하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이 논의를 주로 한 것은 12월 8일 선거 전입니다.

      친일반민족부패세력이 "유능했다"고 표현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보수가 "교묘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교묘해질 필요가 있다고 한 것입니다. (엊그제)

      저는 노무현과 문재인을 무능하다고 비난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무능하다는 표현을 쓴 것은 선거 전의 민주당입니다.
      지난 총선을 겪고도 단일화만 되면 이길 것처럼 안일하게 생각한 민주당을 염두에 둔 표현이었습니다. (12월 8일 논의에서)

      그리고 이번 선거 이후에 친노와 비노의 "책임" 공방을 벌이는 것은 (언론조작 때문에 그렇게 비칠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무능의 한 예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자살 노동자를 찾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 올바른 대응이라고 봅니다.

      제가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해 알지 못했다면 이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을 모르고 그들에게 돌려진 찬사가 왜 잘못된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아는 것이 왜 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지요? 저는 왜 "우중"들이 "잘못된" 이유에서 여당에 투표를 하는지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일베나 조중동에 글을 쓰는 사람을 알지도 못하며 읽을 가치를 느끼지도 않습니다. 다만 개인적 이유로 뉴데일리의 박성현을 언급했고 조국 선생도 읽을 만한 글이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쓰레기도 많지만 보수 이데올로기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권해 드린 것입니다. 사태를 파악한다고 거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읽은 고성국의 유일한 기사는 몇 년 전 그가 프레시안에 쓴 글입니다. 민주당이 박근혜를 너무 무시한다는. 물론 그는 이후 빠돌이로 전락하지만 되돌아보면 그때부터 체계적인 박근혜 견제전략을 짤 필요가 있었습니다.

      오해가 풀리셨기를 빕니다.

      아 그리고 페이스북에는 선생님 댓글만 올라가 있는데 제 원글을 링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클라라
      2012/12/31 03:13
      저의 대부분 진술은 제 생각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쓴 글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진술을 했다는 것은 아니고요. 다만 제가 선생님의 논지를 잘못 파악했는지 모르겠으나 선생님이 결국 하고자 한 말씀은 우리 진영이 현명하지 못했고 나도 사태를 잘못 보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요? 트위터 타임라인을 보고 있는 나를 보고 "세뇌"라는 표현을 사용했죠. 제가 사태를 오판하고 있다고 여러 번 지적했고요. "우리는 더 교묘해질 필요가 있다"에서 "교묘"가 권모술수가 아니라면 "현명"을 뜻하는 것이겠지요. 선생님 말씀은 안철수가 단일 후보가 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말씀인지요? 저는 문재인이 그리고 우리 진영이 거의 더할 나위 없이 최선을 다했고 우리 한계 내에서 최대한 현명하게 처신했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저와 선생이 사태를 보는 차이이겠지요?

      저쪽은 우리보다 더 현명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요? 권모술수에 능하고 원래 힘이 막강하다는 말씀이었다면 우리 의견 차이는 정확히 어디에서 발생한 것일까요? 민주당 의원 중에서 안일하게 생각하거나 오히려 문재인이 낙마하거나 낙선하는 것을 바라는 사람이 분명 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일명 비노 또은 반노로 분류되는 사람들이겠지요. 그러면 선생님의 화살은 그들을 향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박정희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함께 자리를 했던 이 선생님이 언급한 현대사학회 내 인사들은 박정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실 텐가요? 그래야 하겠지요. 제가 화가 난 것은 박정희의 공과에 대해 한국 현대사학자의 압도적 다수가 박정희 예찬론라는 주장입니다. (현대사학회 내 한국 근현대사 전공자는 고작 4명뿐이라 하더군요. 양심도 지성도 없는 학자라고 전 생각해요.) 그 주장이 참이라면 한심한 사태라서 화가 나고, 그것이 거짓이라면, 박정희론을 학자 간 논란의 여지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이해하는 마인트세트에 대해 불쾌해서 화가 난 것입니다. 박정희를 안다면 이제는 그 어떤 공적과 찬사도 몰수해야 한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박정희에 대해 알면서도 그를 옹호하는 학자를 사이비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거나 나쁜 사람입니다. 이것이 제 주장이고 선생님이 여기에 반대했다고 저는 기억합니다. 물론 제가 틀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리석지 않으면서 착한 박근혜 지지자를 선생님이 쉽게 찾아내신다면 제 주장을 간단히 반박할 수 있을 겁니다.

      칸트가 아무리 위대한 학자라 하더라도 나치 기관지에 나치를 대변하는 정견을 연재 기고하는 순간 그의 정견은 읽을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순수이성비판은 읽어볼 여지가 있겠지만 말입니다. 선생님이 박성현의 글을 읽을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순간 그 글에 최소한 모종의 인식적 설득력 내지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박성현도 표현의 자유가 있고 일베충들에게도 글 읽을 자유가 있을 테니 그의 글은 일베충이나 21세기 서북청년단에게나 적합할 뿐입니다. 박성현이 뉴데일리라는 매체 자체의 성격을 모르고 기고할 리가 없고 주요 독자가 누구인지 모를 리가 없고 자신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지 모를 리 없습니다. 윤창중보다 더 나은 게 그의 논리와 식견인가요? 대한민국 최악질의 반민족반민주부패세력을 옹호하는 논리와 식견에 대해 저는 일고의 가치도 느끼지 못합니다. 제가 만일 박성현과 논쟁한다면 필패한다고요? 만일 정말로 "논쟁"해서 진다면 그것은 그의 논거와 식견 때문이 아니라, 제가 논리도 식견도 부족하거나, 합리성 자체가 무기력하거나, 반민족반민주부패 자체가 정당하기 때문이겠지요. 이 세 가지 중에 아마 첫째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겠군요.

      고성국이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박근혜라는 인물에 정치적 및 도덕적 정당성을 과대해서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민주당도 박근혜 일파가 막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대통령이 될 털끝만큼의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내가 아는 한 고성국은 박근혜의 퇴장을 위해 글을 쓰거나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지나치게 차갑게 대해서 미안해요. 저는 저 자신을 지키고 싶습니다. 선생님을 공격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닙니다.
    • 이민정
      2012/12/31 23:53
      저는 괜찮습니다. 아무튼 오해가 풀려서 다행입니다. 2012년도 몇분 안 남았군요. 오프라인 이야기는 조만간 또 이어갈 기회가 있겠지요. 괴테의 말대로 새해에는 우리 모두에게 더 많은 빛을(mehr li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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