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어려움으로 다슬기 "오프" 모임은 쉬겠습니다. 대신 가끔씩 친구들이 원하는 내용으로 "온라인" 콘텐츠를 제공하려 합니다. 첫 꼭지는 정약용에 관한 것입니다.



화이트헤드는 라이프니츠를 가리켜 "2000년의 역사를 지닌 서양 사상을 계승했다"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같은 권리로 우리 역사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2000년의 유학 사상을 계승한" 다산 정약용 선생입니다.

부왕이 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고 당파싸움에 선비들을 도륙하던 야만의 시대,
주자와 다른 생각은 이단이고 서학은 빨갱이 사상으로 몰리던 닫힌 시대,
누구보다 그런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했던" 유학자였지요.

하지만 스승이자 서로 가장 친애하던 정조의 때이른 죽음으로
가족은 풍비박산, 본인도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한 채
살아 돌아올 기약 없는 유배를 떠납니다.

"천 사람을 죽이고도 정약용을 죽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반대파의 무서운 저주와 박해를 뒤로 하고 "이제야 겨를을 얻었다"고
흔연히 기뻐하며 오직 고경 속의 학문을 삶의 유일한 끈으로 삼아 견딘 세월 18년.

"곤궁한 뒤에야 비로소 책을 지을 수 있다"는 일념으로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호한한 저작을 남겨
다시 돌아보는 200년 후학을 부끄럽고 눈물짓게 합니다.

도대체가 나는 유배지의 정약용만큼 곤궁한 적이 있었던가.
도대체가 우리 민주사회는 적어도 죽이지는 않지 않는가.
도대체가 스스로를 유배시켜서라도 공부하는 선비는 못 되는가라고.

19세기의 첫 해 정조의 죽음은 분명 우리 역사의 비극이었습니다.
이로써 왕조는 돌이킬 수 없는 내리막길로 급전직하하며
우리는 역사를 자생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구심점을 잃어 버렸지요.

이후 우리 역사는 제국주의라는 속박의 굴레에서 허우적대다
이제야 제국들 간의 견제와 균형에서 잠시 마련된 태풍의 눈 같은 상태에서
(그나마 반쪽짜리) 멍한 상태로 다시 한번 정파 싸움과 이념 싸움에 여념이 없지요.

정조와 정약용의 원대한 비전은 바로 조선을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분명 개혁하지 않으면 망국에 이른다는 절박한 위기의식과 함께
그러한 이상을 차근차근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실천력을 겸비하고 있었습니다.

정조의 국정개혁 청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 [경장대고](1778)는 당시의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함께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명연설로 여전히 배울 점이 많습니다.
그런데 20여년 개혁의 공든 탑이 정조 사후 정순왕후의 주도 아래 일이년 사이에 모두 무화됩니다.

이건 어떤 느낌이냐 하면 현 정부에서 잃어버린 몇 년(실제로는 그들이 못해먹은 몇 년)
운운한 지난 정권보다 몇 배는 더한 치세가 몇 배의 기간 동안 이루어졌는데
MB나 그네 같은 똘i가 나와 일이년 사이에 모두 말아먹는 지경을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아무튼 우리 역사를 검토할 때마다 통감하게 되는 것은
거의 민족의 DNA에 각인된 보수성, 우리 힘으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는 비애,
우리 글과 사상으로 역사를 선도해 나간 적이 없다는 문화의 외래성입니다.

이러한 역사에 대한 반성이나 새로운 비전 없이 우물안 개구리 싸움을 지속할 때
"오래된 나라를 새롭게 한다(新我之舊邦)"는 정약용의 신념을 배반하고
이제는 일제도 미제도 아닌, 중제의 굴레에서 쳇바퀴 도는 한심한 역사만을 반복할 것입니다.


추천할 책과 공부 자료

이덕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2
박석무,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hooz.com에 무료가입하시면 이 책을 요약한 박석무 선생의 강의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27, 8강 다산 정약용을 아십니까 1, 2 입니다.

http://hooz.com/Standard/Sub/Default.aspx?cid1=25&cid2=3

도올 선생의 예술의 전당 강연 "왜 지금 다산인가"도 명강의입니다.

다산은 한시의 귀재이기도 합니다. 저를 감동시킨 시 두 편을 소개합니다.
(박석무 선생님 책 135쪽과 460쪽에 나옵니다)

20대 초 자신의 원대한 뜻을 밝힌 시, 술지(述志)

...
嗟哉我邦人(차재아방인) : 슬프다, 우리나라 사람들
辟如處囊中(벽여처낭중) : 주머니 속에 갇혀서 사는 듯
三方繞圓海(삼방요원해) : 삼면은 바다로 에워싸였고
北方縐高崧(북방추고숭) : 북방은 높고 큰 산이 굽이쳐 있네.

四體常拳曲(사체상권곡) : 사지 삭신 언제나 움츠려서
氣志何由充(기지하유충) : 기상과 큰 뜻 어떻게 채워보리
聖賢在萬里(성현재만리) : 성현은 만 리 밖에 있는데
誰能豁此蒙(수능활차몽) : 누가 이 몽매함 열어줄까.

擧頭望人間(거두망인간) : 머리 들어 인간 세상 바라보아도
見鮮情瞳曨(견선정동롱) : 보이는 사람 없고 정신은 흐리멍덩
汲汲爲慕傚(급급위모효) : 남의 것 모방하기에 급급해
未暇揀精工(미가간정공) : 정밀하게 숙달함을 가릴 겨를 없구나.

衆愚捧一癡(중우봉일치) : 뭇 바보들이 천치 같은 한 사람 받들고
裾唅令共崇(거함령공숭) : 왁자지껄 모두 함께 받들게 하네
未若檀君世(미약단군세) : 순박한 옛 풍속을 지녔던
質朴有古風(질박유고풍) : 단군의 세상만도 못한 것 같네.
 

유배지로 찾아온 큰아들, 자신의 학문을 이해해 줄까?

人生如弱艸(인생여약초) : 인생은 미약한 풀과 같은 것
況乃劇衰疲(황내극쇠피) : 더구나 너무 쇠하고 고단한 몸인데서랴.
艸露一朝晞(초노일조희) : 하루아침에 풀이슬 마르고 나면
此意知者誰(차의지자수) : 이 뜻을 누가 있어 알아줄까.

선비의 뜻(그가 20대에 품었던 뜻?)을 미약한 풀에 맺힌,
짧은 삶이 스러지면 마르고 말 이슬에 비유한 너무도 아름다운 시입니다. 뒤에

내 지금 너에게 책을 주어 읽게 하니 돌아가 네 아우(정약용의 작은아들 학유)의
스승이 되라(吾今授汝讀, 歸爲汝弟師.)

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정약용 얘기로 잠시 동안이라도 주변의 스승이 되는 것은 어떨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해배 이후 고향에서 머물며 그린 풍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배 중 부인이 보낸 치마폭을 찢어 만든 매조도

2012/07/25 23:39 2012/07/25 23:39

http://thinkinglab.kr/t/tl2010/trackback/200

  1. 상상화
    2012/08/02 23:36
    정독했어요 > < 가영이랑 저랑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책을 읽고 같이 원격 다슬기 과제를 해서 올리겠습니다.
    • ㅇㅈㅎ
      2012/08/06 15:52
      수민언니 안뇽 원격 다슬기 과제는 뭐얌?
    • 이정민
      2012/08/10 01:13
      따로 과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수민씨는 아마 책을 읽고 감상문이라도 작성하려 하셨던 듯.
  2. redshad
    2012/08/31 00:07
    선생님의 전체적인 글의 의도와 상관없는 질문이지만, 다슬기는 언제나 그랬으니까.
    음...뭐라해야 할까요, 민족 혹은 국가의 문화를 타 문화와 구분된 것으로 상정해야하나요? 물론 차이가 있는거야 당연하지만...구지 왜 우리 민족, 우리 문화를 구분지어야 하나요? 민족주의에 대한 고민이 해결이 안되서요.ㅋㅋ우리나라가 외국에서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외국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 치우쳐져있는 것) 왜 문제가 있나요? 일제,미제,중제...이 문장에서 다른 나라에 의한 한 나라의 지배를 인정하고 있다고 느끼는 건 억지인가요?ㅋㅋ
  3. redshad
    2012/08/31 00:09
    그리고 만약 안바쁘시면 원격다슬기 글 올려주실 수 있으세요? 선생님 온라인 싫어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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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적 방랑자를 위한 배움터. 진리가 무엇이뇨? 바로 내 앞에 있는 사람입니다. 선이 무엇이뇨? 우리가 대화하는 것입니다. 미가 무엇이뇨? 이렇게 마주보는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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