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이라는 영화에서는 헬렌 켈러처럼 선천적으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여자 아이 미셸이 나옵니다. 미셸이 사는 세상은 어둡고 적막한 곳입니다. 미셸에게 엄마, 아빠, 유모의 존재는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그녀는 인간답게 사는 법은 커녕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하는 것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주어지는 자극에 원초적으로 반응할 뿐입니다.조금이라도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생기면 상대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침을 뱉기 일쑤이며 마치 짐승처럼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온 집안을 울부짖고 뛰어다닙니다. 그녀는 타인과 소통할 수도 없고 세상이 어떤 곳인지 지각하지도 못합니다. 그녀의 세상에 타인은 없습니다. 아니 그녀에게 세상은 없습니다. 오직 자신만이 존재하며 자신의 욕망만으로 꽉 찬 상태 속에서 오직 주어지는 감각에 반응하며 욕망에 울부짖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둠 속을 방황하던 그녀는 자신에게 빛을 보여주고자 하는 스승 사하이를 만납니다. 그는 마치 설리반 선생님이 헬렌 켈러에게 했듯 엄격하게 그녀와 길고 긴 싸움을 벌이며 가르침을 주고자 합니다. 사하이는 도망치려 하고 울부짖고 폭력을 휘두르는 미셸의 손바닥에 끊임없이 글자를 쓰며 세상을 알려주고자 합니다. 그리고 오랜 겨룸 끝에 결코 사람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던, 결코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던 미셸은 마침내 처음으로 'water', 물의 존재가 손바닥에 주어지는 어떤 자극과 관계가 있음을 어렴풋이 인지합니다.  
 
 
 
저희가 이 블랙이라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지금까지 생각실험실을 다니면서 느끼고 배운 것이 블랙이라는 영화에서 미셸이 느낀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셸처럼 밥을 먹을 때 그릇을 던져가면서 손으로 퍼먹고 조금이라도 심기를 거스르면 주먹을 휘두르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하지만 우리보다 더 적은 감각 기능을 가진 미셸이 자신에게 주어진 감각들 속에 갇혀있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니, 어쩌면 저희 또한 스스로가 가진 오감 이외에 느껴지지 않는,우리가 지각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주어진 자극과 스스로의 욕망에만 반응하며 살고 있었던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셸이 어렴풋이 내 바깥에 무엇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각했을 때 기쁨을 느꼈듯이 저희 또한 생각실험실에서 어렴풋이 스스로의 감각 바깥에 어떤 무언가가 존재함을 더듬거리며 깨우쳐가고 있습니다. 지각할 수 있는 범위 너머의 세상, 어둡고 불분명해 보였던 이 세상에서 가르침과 배움, 저와 비슷한 지적인 갈망을 가진 동료들과의 교류는 저희를 성장시키고 기쁘게 합니다. 생각실험실에 와서 난생 처음 들어보는 철학자들의 오래된 텍스트를 접하고,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도 고민해 보지도 않았을 생각들을 접하며 저희는 어렴풋하지만 빛을 보고 따스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욕망 너머에 있는 타인의 존재와 생각을 접합니다. 이런 생각실험실이라는 공간을 만드는데 마음을 모아주시고 힘을 보태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빛과 따스함이 저희를 넘어 세상에 널리 퍼질 수 있도록 앞으로 잡지도 발간하는 등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생각실험실이 아니었다면 평생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신 점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11월 생각실험실 배우리를 대표하여
참나무 김수민 올림
2010/11/10 17:14 2010/11/1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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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적 방랑자를 위한 배움터. 진리가 무엇이뇨? 바로 내 앞에 있는 사람입니다. 선이 무엇이뇨? 우리가 대화하는 것입니다. 미가 무엇이뇨? 이렇게 마주보는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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