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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정현을 위해서 쓴 글이다. 너의 글에 대한 답변이 아주 조금 녹아 있다. 네 정신은 매우 싱싱하다고 나는 믿는다.

어제 대화에서 내가 진화론을 얕잡아 보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리나, 그렇니? 사실 나는 진화론이나 물리주의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이다. 어떤 주장을 당연히 여기는 사람은 그 주장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주장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지만, 그것의 힘과 함축을 무엇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늘 그 견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나의 탐구 자체를 형성하고 있는 문제의식이다. 나의 연구 프로그램을 결정할 정도의 어떤 것인데 왜 내가 진화론을 얕잡아 보겠나. 내가 그것을 얕잡아 보지 않는다는 것과 그것에 반대한다는 것은 양립가능한 것이다. 나는 그것에 반대할 뿐이지 얕잡아 보지 않는다.

어제 이정민 선생은 논쟁 중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슷하게 옳기면:

진화론을 거부하면 (현대) 생물학이라 할 만 것이 거의 없다.

정확한 표현이 아니면 고쳐주시길. 어제 논쟁에서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을 분명히 이해하려면, 저 발언에서 "생물학"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명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어제 우리 논의의 주제는 개별 분과학문으로서 생물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유전자는 단순히 생물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사람과 다른 생물들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것으로서 물질 또는 정보이다.  즉 내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 그리고 그 유전자와 나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 모두가 생물학이라고 한다면, 나는 이정민 선생의 저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 (현재 제도권 학교나 학회에서 사회적으로 상정된 개별 분과로서 그 의미를 한정할 경우에, 저 말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따로 놓아두어도 말이다.)

도킨스는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인간 본성에 관한 한 진화론에 기반을 둔 생물학 이외 다른 이야기는 진실일 수 없다. 즉 과학일 수 없다.

이제 내가 어제 하려는 주장이 좀 분명해졌다. 나는 제도적 분과로서 생물학에서 유행 중인 그리고 표준적 이론 또는 거의 과학으로 간주되는 진화론에 대해, 생물학적 소견을 가지고 반대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이론을 수용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인간 본성에 관한 한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내 말은 그런 영역은 허구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문화적 환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영역은 자연화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도킨스식 기계주의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콰인은 언어의 의미를 해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자연선택은 형이상학을 녹이는 다윈의 용매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인, 그리고 목적론을 동력인 속으로 용해시켰고, 이제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 역시 용해시킨다. W. V. Quine 1996, “Progress on Two Fronts”, The Journal of Philosophy 93, 1996: 159-63, 161쪽.


진화론 특히 자연선택은 목적론을 제거하고 있다. 진화론은 그런 것이다. 도킨스는 목적론을 제거해야 하는데, 보다 엄밀하게 말해서 과학적 설명에서 목적, 의도, 의향, 의지 등을 표현하는 모든 지향적 어구들을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아마 J. J. C. 스마트가 이를 주장했을 것이다. 언어의 의미를 진화론에 기반해서 해명하려는 콰인도 그런 지향적 어구들이 제거되어야 하고 제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제거하기 위해 "자연선택에 의한 예정조화"를 가설로 제시했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와 맥락은 나의 2002년도 논문 "콰인이 평행론"에 있다.]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산낙지를 불판에 올려 놓으면 다리를 비비 꼰다. 왜 그럴까? 우리는 당연히 뜨거움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내가 고양이를 목욕시키기 위해 물에 담기면 고양이는 다리를 뻗어 "반항"한다. 왜 그럴까? 우리는 당연히 고양이가 물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표범이 영양을 향해 뛰어가고 있고 영양은 표범의 반대 방향으로 달아난다. 우리는 이것을 뭐라고 설명하는가? 표범을 영향을 잡아먹고 "싶어" 뛰고 영양은 살기 "위해" 달아난다.

자 그러면 이것은 어떤가? 두 자석을 놓았는데 한 자석의 N극이 다른 자석의 S극 쪽으로 이동했다. 왜 그럴까? N극은 S극에 붙고 "싶은" 것일까? N극은 S극에 붙기 "위해" 움직인 것인가? 지금 이런 표현은 대단히 비과학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낙지와 고양이과 표범과 영양에 관한 위의 저 표현도 같은 의미에서 대단히 "비과학적인" 표현이다. (물론 좁은 의미에서 과학이다.)

내가 어제 <이기적 유전자>에 등장하는 과도한 의인법적 용어들을 들어서 (특히 진화론에 관한 대부분의 대중서적들이) 이것은 "민간생물학"(folk biology)라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합당한 진화론은 DNA의 해밀토니안, 생명체 내의 깁스 자유에너지, 화학반응방정식, 통계역학 등을 동원해서 DNA의 자연선택 또는 적응을 설명하려고 해야 한다. 생물의 변화(성장과 운동)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문제는 인간이다. 인간의 모든 구두적 발화, 행위들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비과학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바로 나의 논지는 이것이다. 도킨스는 사실상 그렇게 말하는 것이 비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듯이 보인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이제 도킨스의 견해와 (그리고 이정민 선생이 실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단지 설명을 위해 옹호하려는 견해와) 나의 차이점이 분명해졌다. 다시 말해 나는 분과학문으로서 생물학 내의 생명기원에 관한 진화론을 공격하려거나, 아니면 내가 그 대안적 이론을 지금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와 도킨스의 차이는 이것이다.

ㄱ. 내가 받아들이는 주장: 지향적 어구를 제거할 수 없다. 제거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로 벌어지는 어떤 사건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식 목적론 자체가 참이라는 말은 아니다.
ㄴ. 내가 거부하는 주장 그리고 아마 도킨스가 받아들여야 하는 주장: 지향적 어구는 제거해야 하거나 제거할 수 있다. 제거해야 하는 이유는 그 어구에 연관된 모종의 실재가 없기 때문이다. 자석의 예를 상기하라.

내가 어제 논쟁에서 계속 물었던 것은 도킨스가 ㄴ을 받아들이는지 아닌지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마치 내가 진화론을 거부하기 때문에 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겠다. 이것은 정확하지는 않다. 내가 ㄱ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제일철학(제일과학)으로서 진화론 특히 ㄴ을 거부하는 것이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진화론을 입증하는 책이 아니다. 진화론이 옳다고 가정하고 생명 현상과 진화를 설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결코 완전히 자연화(naturalize) 또는 기계화(mechanize, machinize)할 수 없는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진화론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신의 존재를 믿기 때문에 진화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진화론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인간 운명과 자연에 대한 다른 관점을 추구하는 것이다. 나의 잠정적 결론은 약간의 목적론과 약간의 관념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 그 다음 내가 받아들이는 주장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가? 그리고 내 주장이 근거하고 있는 것은 진화론의 증거보다 더 명백한가? 나는 양자역학과 진화론 중에서 양자역학이 더 명백한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영자역학과 논리학 중에서 논리학이 더 명백한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기반으로 하고 있는 근거는 진화론의 증거보다 더 명백하다고 생각한다. 내 주장은 근거 몇 개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말한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의 수는 원리상 무한히 많다. 즉 나는 무한히 많은 문장을 말하고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맨땅에서도(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도)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으면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 다른 사람은 내 말을 맨땅에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는 내 신경상태를 관찰하거나 유전자를 관찰하지 않아도 된다 등.

이와 같은 근거로부터 어떻게 ㄱ이 도출될 수 있는지는 좀 학술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추론 과정이 엉성할 수 있다. 이것은 보다 철저한 탐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나의 탐구가 현장 진화생물학자보다 덜 과학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나의 저 근거들이 진화론을 통해 설명되거나 확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콰인이나 도킨스는 비록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 그리고 세상에 증식하는 것은 많다. 눈이나 수정의 결정. 섭씨 0도 근처에서 얼음 얼기 등. 나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유전자의 복제는 강 바닥에서 얼음이 번져가는 현상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얼음은 아마도 한 물 분자를 구성하는 수소와 다른 물분자를 구성하는 산소 사이의 수소결합에 의존할 텐데 이 수소결합은 전자기적 상호작용 및 양자효과(분자오비탈) 등에 의해서 창출된 것이다. 물론 미세하게 핵력이나 중력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DNA의 복제는 RNA와 단백질 등 다양한 고분자이 사이의 전자기적 상호작용과 양자효과 등에서 창출된 것이다. 여기서 물리적 상호작용을 넘어서 신비로운 작용(파라켈수스가 말한 미세한 연금술사, 엔텔레키, 나이서스, 마법 등)이 개입되지 않는다.

"More is different"나 "Complex is different"를 정말 과학적으로 진지하게 주장할 만한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메커니즘은 없다. 더 많아도 여전히 물리적 상호작용만 있고, 더 복잡해져도 여전히 물리적 상호작용만 있다. 그것이 양자포텐셜이든 양자상태붕괴든, 카오스나 프랙탈이든, 모두 물리적인 어떤 것이다. 

분자량이 100이든 10000000이든 그것은 목적과 의도와 지향을 가지지 않는다. DNA가 목적과 의도와 지향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바이러스는 매정한 것이 아니다. 0도에 물이 얼듯이 그렇게 번식하는 것이다. 가난한 어머니의 사랑스런 아이를 죽이는 뇌염모기는 사악한 놈이 아니다. 번개가 내리치듯이 그렇게 쏘는 것이다. 그리고 복잡한 물리적 상호작용을 "느낀다"고 표현하는 것은 의인법의 일종이지, 근본적 수준의 술어는 아니다.

생명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 장회익 선생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전자 속에 이미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성질이 들어 있다." 이 말은 한편으로 생기론처럼 들리고 다른 한편에서 완벽한 환원주의와 물리주의처럼 들린다. 초창기 양자물리학자 중 어떤 이는 전자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코펜하겐 해석은 전자의 파동함수에 개별 전자에 관한 완전한 (모든) 정보가 들어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파동함수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따른다. 전자가 가진 전하량, 질량, 고유스핀은 양자중력이나 슈퍼스트링 아니면 모종의 궁극물리이론으로 설명될 것이다.

나는, 펜로즈와 달리, 궁극물리이론 속에 생기, 목적, 의식, 자유 등이 숨어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전자 속에 이미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성질이 들어 있다" 는 말은 생명은 단순히 쿼크와 렙톤과 게이지의 복합이라는 물리주의의 귀결을 색다르게 표현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인간도 이렇게 이해된 생명의 일종에 지나지 않는다. 경멸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의미에서,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물리주의와 진화론의 함축이다.

이 점에서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도킨스는 솔직한 사람이다. 진화론을 믿으면서 "지나지 않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덜 솔직한 것이다.


다시 한 번 내가 내세우는 주장을 정리하면:
 
목적과 지향과 의도와 의미는 결코 자연화되거나 기계화될 수 없다. 유전자든 호르몬이든 신경이든 신경전달물질이든 자연환경이든 그런 것들로 지향이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엄밀하게 검토되지 않은 신화이다. 진지한 진화론자라면 (자연화될 수 없는 것으로서) 지향이나 의미에 대한 담론은 허구적 대상에 대한 신화일 뿐이라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과학에서 그런 것들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이럴진대 만일 도킨스가 비록 신화이긴 하지만 과학에서 몰아낼 수도 없고 몰아내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의 미신 추방 아젠다는 기만이다. (나는 도킨스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견해가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성실하고 진지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2009/09/18 16:07 2009/09/18 16:07
  1. redshad
    2009/09/19 23:07
    그저 그날 샘이 진화론에 대해 평한걸
    좀 표면적으로 들었던것 같긴해요..하지만
    그날 그렇게 깊은 얘기..근거 같은것 없이
    말씀하셔서 전 당연히 그렇게 느꼈던거죠..ㅋ
    • 시즈
      2009/09/20 01:59
      ㅋㅋ. 진화론에 반대하면, 반대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그 반대 자체를 표면적으로 듣게 된다. 이런 것은 정상 패러다임이 가지는 마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마력에 사로잡히는 순간 우리는 과학자이기를, 아니 최소한 철학자이기를 포기하는 길에 접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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