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ㅅ 선생님께.
메일을 쓰려니 왠지 어색하네요. 그래도 직접 하지 못하는 얘기를 메일로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 메일을 두고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도 있고 해서요. 초안, 여러 번 읽어 보았습니다. 인큐베이팅 기간 동안 검토하시겠다고 하신 다음 물음에 대해 주제넘게 여쭤 보겠습니다.
1. 생각실험실을 통해 누가 어느 정도 지성적 수혜를 받는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인가? 우리가 지금까지 같이 한 공부 모임에서 얼마나 더 나갈 수 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고정된 장소가 있으면 편하겠지요. 그런데 그런 장소를 운영하는 게 또 일입니다. 오히려 일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러면 많아진 일만큼 지금은 얻을 수 없는 소득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조금 회의적입니다. 지성적 수혜를 생각하면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학생들에게 지금과 같은 정도의 지성적 수혜가 생각실험실을 통해 돌아갈 것입니다. 물론 더 많은 새로운 학생이 올 수도 있고, 실험실 이름을 내걸면 기존 학생들도 더 진지하게 참여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학생이 많아지면 그만큼 개별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관심은 적어집니다.
2. 대안대학원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해서는 좀 더 회의적입니다. 예를 들어 학부를 졸업한 학생들을 과연 생각실험실로 오라고 할 수 있느냐? 저라면 책임감에서라도 절대 그렇게 못할 것 같습니다. 철학, 물리학, 수학을 진지하게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철학과 대학원, 물리학과 대학원, 수학과 대학원을 가야 할 것입니다. 예술가가 되고 싶은 학생이라면 마찬가지로 그쪽 길로 가야겠지요. 그렇다면 대안대학원은 학교 밖의 학원 정도의 위치가 될 것입니다. 대학원생들에게 자기 전문 분야 아닌 여러 분야에서의 지적 자극을 줄 수 있는 그런 학원. 그러면 처음부터 ‘대학원’을 내걸 이유는 없겠지요. 사실 우리 친구들이 무엇을 공부하게 되건 제 관심은 거기 있지 않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철학하는 삶의 방식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이것조차 너무 주제넘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제도’ 안에서 생각한다고 나무라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선생이나 저나 제도 안에서 학위를 받았기에 그나마 지금 위치에 있지 않은가요? 대안대학원은 또 다른 제도가 되지 않을까요? 꼭 그런 제도와 사업 안에서만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지금 하는 모임들의 순수성을 해치지 않을까요?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8월부터 교육 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고 이미 학생들에게 약속했습니다. 제 스스로 마음을 잡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약속인지 모르겠지만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선생님 마음을 잡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는데 아마도 다른 관심 끊고 공부와 연구에만 하시겠다는 생각이신지요? 그러면 오히려 생각실험실 일이 공부와 연구에 집중하셔야 할 선생님 주의를 분산시키지 않을까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여러 선생님들 그리고 우리 친구들 같이 모여 논의해 보고 결정하셔도 늦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이전부터 논의했던 것인데 제 진심이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좀 안타깝습니다. 물론 제 생각이 짧고 선생님이 더 깊게 생각해 보셨을 줄 믿습니다. 그래도 왠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메일 드려 봅니다. 넓은 아량으로 헤아려주시길. ㅈㅁ 드림.
ㅈㅁ 선생님께.
일어나면 아이폰에서 늘 메일을 확인하는데 일어나자마 본, 제 기를 꺾는 선생님의 메일. 하지만 이런 말씀을 해주실 분은 선생님밖에 없죠. 애써 어렵게 말씀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모나드가 창이 없다는 말을 믿지 않는데, 그리고 그것이 데모크리코스의 기계론이든, 신의 전지에 의한 예정설이든,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든, 스피노자의 운명이든, 유물론자의 물리주의든, 어떤 유형의 결정론도 나는 믿지 않는데, 선생을 배움으로써 내가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예측할 수 없군요. 고맙다고 해야 하나, 이런 걸 표현해야 하나, 아무튼 선생을 만나 교류하게 되어 내 삶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다슬기 같은 우리 공부 모임이 의미 있는 모임이 되었다면 거의 모든 것은 선생님의 지성적 성실과 지혜사랑과 그리고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 작은 공부 모임을 선생님께서 잘 맡아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 작은 모임이라도 있어서 ㄹ이나 ㅁ 같은 친구들이 새로 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수업시간에 이런 모임에 오라고 하지 않고 그냥 블로그에 알림을 해 놓는 정도인데 이렇게 알아서 오는 친구들이 너무 귀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선생님께서 지금처럼 해주시면 이곳에 오는 친구들이, 선생님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지성적으로 성숙할 것입니다.
우리 공부 모임의 현재 매력이 바래질까 하는 우려는 선생님 메일의 일부분에 불과하고 오히려 제가 하는 일, 또는 저에 대한 걱정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걱정을 저도 하루에도 여러 번하고 지금 메일을 쓰는 중에도 하고 있습니다. 제 스스로에 의해 매번 기가 꺾입니다. 내가 이걸 왜 하려고 하지? 내가 이런 것을 하려는 것은 개인적 성깔과 관련되어 있을지 모릅니다. 취미 생활의 한 유형인지 모릅니다.
저는 선생님보다 기존 교육 제도에 대해 불신이 큽니다. 물론 제 교육 경력을 회고해보더라도 공교육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인정하고 이것이 강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누구보다 큽니다. 제가 기존 교육 제도를 불신한다는 것은 현재 상태가 만족스럽지 못하고 자발적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외부적 충격이 필요한데, 가령 선출직 교육관료가 정치 및 제도적 권위를 발휘하는 충격 같은 것 말입니다. 물론 선생님처럼 좋은 선생들이 기존 제도에 계속 유입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할까 고민을 좀 했습니다. 기존 기관에 들어가서 좋은 교육을 하면 될까? 정치적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관료나 정치인이 될까? 나 혼자 그냥 공부 열심히 하고 논문 쓰고 책을 쓰면 될까? 모두 적절한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이 모든 대안들이거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좋은 대안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평생 비정규직 교수를 할 각오를 오래 전부터 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대학원을 자퇴하고, 군복무 후 다시 눈물을 머금고 학과를 전과해가며 다시 기존 제도 대학에 들어올 때도 비정규직 교수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아무튼 내가 제도권 대학에 진입할 생각을 거의 하지 않게 된 것은 거기에 진입해서 열심히 하는 것, 또는 거기에 진입하기 위해 열심히 하는 것보다, 거기에 진입하지 않으면서 열심히 탐구하는 것, 심지어 진입하기를 거부하면서 열심히 학문하는 것이 내가 대한민국 공교육을 위해 할 수 있는 더 좋은 기여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종의 정치적 행위이자 정치적 퍼포먼스입니다. 내 퍼포먼스의 주된 목적은 뭔가를 비판하거나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도 충분히 선호될 수 있다는 퍼포먼스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선생의 자극 없이 특별한 도움 없이 박사까지 거의 홀로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 때 산천을 뛰어놀았던 기억 밖에 없고 고등학교 졸업 아니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무슨 인문학 책이든 교양이라고는 거의 읽지 않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지적으로 조금 더 자극을 받았다면 이런 아쉬움이 내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원 때, 내가 철학을 배울 때, 당신 같은 선생을 만나 더 자극을 받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 이 말은 내 신세 한탄이 아닙니다. 저는 이미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앞으로 계속 지혜를 사랑할 힘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아무도 부럽지 않을 만큼 독립된 학생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방금 말한 그 환경 속에서, 더 클 수 있는 친구들이 크다가 마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ㅂ을 만나서 그 친구가 쓴 단상 같은 것 조금씩 보면, 어떤 지성적 방황 같은 게 있습니다. 혼돈 비슷한 것. 하지만 그 혼돈 속에는 그의 에너지와 깊이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코스모스로 바꾸어줄 수 있는 선생, 그의 깊이를 더 깊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임에서 우리 친구들이 ㅈㅁ 선생님에게 받는 자극과 성숙은 선생님 예상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이 모든 것은 작은 공부 모임이라도 있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예컨대 다슬기도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고 어떤 무형의 건축물 같은 제도적 형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과 저는 다슬기라는 작은 제도를 만든 것입니다. 다슬기 그 이상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슬기를 처음 시작할 때 선생님이 하실 수 있고 생각한 것보다 그 이상을 하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지혜를 구하고자 하는 이에게 내가 하루에 몇 시간을 바치고, 연간 천만 원 이상의 자본을 투입해도 아깝지 않아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 일은 그들 스스로가, 최소한 그들의 가족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생물학적 가족은 아니지만, 그리고 지속가능한 가족이 아니지만, 이들을 만나는 이 짧은 시간만큼은 가족 비슷한 애정이 저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투입할 수 있는 시간과 재화를 이들에게 투입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움과 보람 비슷한 게 있습니다. 내가 만날 수 있는 한, 내 능력이 되는 한 이런 가족, 내가 더 자주 쓰는 배움벗을 더 만나고 싶을 뿐입니다. 이것을 내 개인적, 정서적 욕심이라고 누군가 말한다 해도, 내 즐거움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내가 뭔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재 기존 국가나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제도 대학들은 처음에 사소하게 시작했습니다. 물론 국가나 대기업이 대규모로 출자하여 만든 대학도 있고요. 연세대나 이화여대는 작게 시작해서 이렇게 크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제가 생물학적 후손을 남기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몇 가지 논문과 책을 남기겠죠. 내 욕심은 나도 하나의 제도적 기반, 모임과 장소 같은 것을 후세대에게 남기는 것입니다.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무일푼으로 품삯을 해서, 나중에는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동원해 돌밭에서 돌을 치우고 하나 둘 밭을 일구었습니다. 심지어 내가 어릴 때도 내가 그런 노동에 동원된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내 선조들은 생물학적 후손을 먹이고 입혔고 지금 내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생겼다 사라집니다. 그들은 토지를 남겼고 유산 받은 토지를 팔아서 나는 우리 가족의 빚 일부를 청산했고 동생은 그것으로 전세금을 마련해서 아이 둘 낳아 키우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평생을 바쳐 일군 토지가 후세대 삶의 토양이 되곤 합니다. 저도 이제 남은 생애 동안 토지 같은 걸 일구고 싶습니다. 돌밭에서 돌을 하나씩 치우면서 작은 밭이라도 가꾸고 싶습니다. 이런 열망의 결정체가 생각실험실입니다. 일이 많아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제가 하루 종일 돌 몇 개 날랐던 것, 대나무 뿌리 하나 제거하기 위해 하루 종일 곡굉이로 땅을 팠던 것, 이런 기억들이 있는데, 이것을 평생 할머니 할아버지가 했다고 생각하니, 내 나름의 유산을 남기기 위해 더 일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선생님의 질문에 상당 부분 답했다고 생각하지만 몇 가지 물음에 대해 다시 답변합니다. 생각실험실을 구상할 때, 그리고 내가 대안대학원을 생각했을 때, 함께 공부할 학생의 수는 5명 이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의 공부 모임에서 생각실험실 체제로 가면 핵심 학생 수는 더 줄어들 것입니다. 다슬기는 가볍기 때문에 10명이라도 온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더 많아져서 관심이 적어질 것이라는 우려에 동의하고, 관심이 더 많아져야 한다면, 더 많아지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 삶에 제가 너무 많이 개입한 것 같아 미안합니다. 지금보다 더 선생님 시간을 뺏고 싶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마음이 내키는 만큼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학생들이 선생님을 통해 자극받는 만큼,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선생님께서 갑절로 자극 받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안대학원 개념에 대해 제가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그냥 대학원이 아니고 “대안” 대학원입니다. 그리고 기존 대학원을 대체하는 대학원이 아닙니다. 저도 더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자 한다면 기존 대학원 진학을 권유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안대학원이 석사 학위나 박사 학위를 발급할 수 없는 한, 일종의 통과의례로서 대학원 교육은 필요할 것입니다. 저는 가능한 한 통과의례를 마쳐야 하고, 가능한 한 저비용으로 단시간에 마쳐야 한다고 언제나 조언합니다. 대안대학원은 연구소 개념의 대안대학원입니다. 무엇을 연구하게 될지는, 생각실험실에 참여하게 될 교수진의 열정과 능력에 달려 있을 겁니다. 최소한 나 한 사람의 열정과 학문적 능력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그런 열정과 능력에 비추어, 사람들이 이곳이 들어오고 나가게 될 것입니다. 열매가 없으면, 밭을 일구지 않고 씨앗을 뿌리지 않고 김을 매지 않을 것입니다. 그 열매는 이런 제도를 구상하고 만드는 사람이 만들어야 하는, 증명해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학부 졸업한 학생들을 오라고 하는 게 아니라, 오게 할 수 있는 다른 뭔가를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반드시 철학과 대학원에 가야 하는 게 아니라, 수유너머나 철학아카데미 같은 곳에 가도 됩니다. 저는 철학아카데미보다 좀 더 전문적 교육을 하고, 수유너머보다 더 철학적인 교육을, 그리고 둘 다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더 통섭적인 교육을 하는 기관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학과 대학원에 다니는 사람들이 철학 전문교육을 받고 싶어 할 때 생각실험실에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모든 학생이 아니라, 단 한 명이라도 우리가 좀 더 나은 철학교육을 시키면, 내가, 우리가, 그에게 줄 수 있는 유산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학원”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키운다고 해서 실제로 얼마나 클지 저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 어머니를 생각하면, 당신은 내가 얼마나 클지 예상했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별로 크지 않아도, 당신의 모든 것을 바칠 듯한 기세로 나를 바라보았던 것 같습니다. 나도, 우리 친구들이 많이 컸으면 바라지만, 실제로 우리의 키움으로 커진 것이 종이 한 장이라 하더라도, 저는 만족하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우리 역할이 보조적이고 심지어 그들이 그 역할조차 인정하지 않고, 나중에는 까마득히 잊는다 하더라도, 내가 바친 시간과 재화가 아깝지 않습니다. 그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함께 한 그 시간 그 자체가 나에게 즐거움이었기 때문입니다. 몇 만 원, 몇 십만원을 내고 공연을 듣거나 관람하듯이, 그들과 이야기하고 공부하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그 자체로 즐거움입니다. 나아가 그들이 고맙게도 아주 조금이라도 실제로 큰다면, 나는 엄청난 수익을 얻은 셈입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철학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철학하는 삶은 또한 성찰하고 탐구하고 알아가고 사랑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나 홀로 골방에서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앞에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모임에서 보여준 선생님의 아름다운 모습처럼 말입니다. 저는 기존 제도에 대해 만족하지 않을 뿐, 기존 제도를 부정하지도, 제도 그 자체가 순수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족도 하나의 제도이고 작은 공부 모임도 규칙과 규범을 가진 하나의 제도이니까요. 다만 법적 권리를 지닌 법인이 아닐 뿐입니다. 선생님 우려가 큰 만큼 저도 주저하는데 나도 내 능력과 내 순수성과 내 성실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냥 현재 노력할 뿐입니다. 그런 애씀이 나의 역사를 만들고 나를 만들 것입니다. 내가 어디로 갈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단순히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결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가 너무 긴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진지한 관심을 제가 왜곡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께도, 다른 선생님께도 제가 뭔가를 더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다만 내 욕심일 뿐입니다. 욕심의 수단이 아니라 어쩌면 욕심의 목적입니다. 뭔가를 하는 것, 서로 기쁜 일이 되는 뭔가를 하는 것, 바로 이것이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인데, 만일에 선생님께 그것이 기쁜 일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의욕하지 않습니다. 함께 하자는 말은 이런 전제 하에서 하는 말입니다. 제가 선생님 마음도 모르고, 혹시 부담을 주었다면,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생각을 더 많이 하겠습니다. 당장 다른 몇 분 선생님과 만남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진심을 앞으로 계속 듣기를 바랍니다. 사실 진심은 정말 전달되기 어렵죠. 우리 마음이라는 것이 제대로 포장할 수 없을 만큼 넓고 흩어져 있으니까요.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ㅁㅅ 드림.
ㅁㅅ 선생님께.
선생님 기를 꺾을 생각은 없었어요. 그래도 한 번의 메일 교환으로 문제의 본질에 다가간 것 같네요. 짧게 쓰겠습니다. 선생님 고민이 저와 별다르지 않네요. 저도 비정규직을 디폴트로 받아들입니다. 이 안에서 연구와 교육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면 정규직과 다를 것이 없겠지요. 선생님의 학생들을 향한 사랑과 열정, 높게 평가합니다. 저는 이런 점에서는 한참 못 미칩니다. ㄱ의 '지성적 자서전'을 읽어 보았습니다. '무신론' 운운했던 제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놀라운 글입니다. ㄴ의 홈페이지에도 가 보았습니다. 그 열정과 혼돈이 부럽습니다. 학생들의 혼돈을 코스모스로 바꾸어줄 수 있는 선생,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역할이네요.
제 혼돈을 코스모스로 이끌어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멀게는 인류의 스승, 가깝게는 김용옥, 이정우 선생과 같이 우리 사회 안에서 일가를 이루신 분들입니다. 열정이나 사랑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교학상장이란 표현을 몇 번 썼지요? "내가 크려면 너희들이 커야 한다." 반대로 "너희들이 크려면 내가 커야 한다." 선생님 과학철학회 논문을 보면서 살려 키워 볼만한 무언가가 있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2005년부터 손을 떼셨다는 말이 기억납니다.
"제 인생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너무 조급히 생각하시는 것이 아닌지요? 인생을 좀더 길게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생각실험실, 그리고 차후 구상인 대안대학원의 프로그램을 보면 주로 교육 사업과 교재 개발과 같은 일이 있고 정작 선생님의 연구 계획이 빠져 있습니다. 그 연구 계획이 실험실의 이념을 구성할 터인데 말이지요. 이념 없는 제도는 모래성과 같습니다. 선생님의 전문성, 그리고 그 전문성이 우리 사회의 학문적 업적으로 계속해서 쌓여 갈 때 이런 사업이 더 의미 있습니다.
이정우 선생의 철학아카데미가 분열하기 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로 운영되었던 것도 선생님 자신의 지속적인 연구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시간과 자본, 열정을 어디다 투자해야 할 것인가? 정말로 학생들을 사랑하시면 선생님 연구에 어느 정도 투자하세요. 그리고 다슬기를 제도라고 부르면 싫어요. 물론 사람 사이 모든 일을 정치로도 보는 선생님 관점에서는 그럴지 몰라도.


2010/08/17 0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