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에 있니

2009/09/18 01:04
오늘 모임에 참석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그냥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적어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유명한 작품 이름이지요.
저도 문득문득 의문이 듭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무엇으로 사는가.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달콤한 케잌도 시원한 아이스크림도 일시적인 즐거움만 줄 뿐입니다.
그렇다면 초월적인 영역을 차치하고 순수히 인간적인 세계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일단, 저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저와 무관한 것 같습니다.
나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이 나의 의지라고 말하기 어려우니까요.(지금 상황에선 그렇습니다.)
그러면, 나는 각 기관들의 단순한 물리적 작용의 조화 덕분에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그런데, 세포들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고 저마다의 주기를 가지고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한다며 과연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요?
나라고 부를 수 있는 물리적 실체의 동일성조차 보장할 수 없다면 나는 대체 무엇일까요?
나라는 것이 지각할 수 있고 인식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존재라면 그것의 주재자인 나는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 걸까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신경전달물질들의 반짝이는 작용속에 일시적으로 있는 것은 아니겠죠.

어쨋든 적어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내 개별 세포들의 생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들의 목적과 역행하는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인간적 상황은 신을 인간 세계에서 쫓아내놓고 다시 신을 끌어들일 수 밖에 없게 합니다.
그래도 저는, 어떤 형태가 됐건, 아직은 이 지상에서 찾아보고 싶습니다.
보르헤스의 알렙과 같이 세상의 모든 진리가 집약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비록 너무나 거대해서 인간이 읽어낼 수 없을지라도 말입니다.
제가 소위 요즘 유행하는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어쩌면, 제가 살아가는 이유도 이 물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2009/09/18 01:04 2009/09/18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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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드샤드에게 다슬기: 다함께 슬기롭게 2009/10/07 00:08 Delete
  1. redshad
    2009/09/19 14:41
    윽 오타가 많네요..책이름은 <모든 것은 느낀다>에요..
  2. 이정민
    2009/09/20 02:26
    여기 생각은 잠못 이룰 때 하는 게 맞군요.

    먼저 redshad에게. 저도 여러분들 앞에서 마음 속으로 창피할 때가 많답니다. 제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할 때지요. 자기 생각을 꾸밈없이 밝힌다면 무슨 부끄러움이 있겠어요. "물리적 실체의 동일성"은 아마도 내 몸을 이루는 물질은 계속 변해가는데 그걸 어떻게 나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삶에 의미는 있는가?

    어려운 질문입니다. 저는 감히 그렇다고 그 무엇이,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감히"라고 한 것은 "그것이 있다"고 말하기조차 쉽지 않은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그 무엇이 뭔지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이" 때때로 우리 삶을 부질없이 스쳐갑니다.

    쉬운 답은 결코 의미를 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가, 유전자의 보존이라는 도킨스의 답은 명쾌하지만, 마음 한 쪽이 허전해 옴을 떨칠 수는 없습니다. 과연 우리가 겨우 그것 때문에 사는 걸까요?

    초월적 가치를 거부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거부했다고 말하는 순간 다시 뒤로 그러한 가치를 들여오기 마련입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했을 때 그는 신의 그림자와 앞으로도 수천 년은 더 싸워야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에서, 이 땅 위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용기는 언제나 존경스럽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한 순간에 깨달아 한 마디로 얘기할 수 있는 거대한 진리는 초월적 가치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요? 신을 과학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닐까요?

    초월적 가치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넘어선, 밖에서 주어진 가치입니다. 초월적 가치를 진정으로 거부하려면 그러한 가치를 우리 안에서, 내 안에서, 내 영혼에서 찾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너 자신을 알라는 델피의 신탁은 언제나 새롭게 다가옵니다. 삶의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삶이 끊임없이 새로와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그 무엇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내가 정말 있기나 할까요? 플라톤에서 라이프니츠까지 철학자들은 몸을 이루는 물질이나 쾌락의 주체와 구별되는 영혼의 위대함을 확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 스피노자는 모든 과학적 탐구가 바로 그러한 자기 완성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행복(beatitudo)은, 은총은, 누가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게 자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널리 배우고, 간절히 묻고, 깊이 생각하고, 독실히 행하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니체는 말합니다. "우리에게 삶이란 우리 모든 것,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끊임없이 빛과 불꽃으로 승화시킨다는 뜻이다."

    사실 그런 답도 너무 에두른 것이 아닌지. 어떻게 보면 삶은 그 자체로 너무 위대해 어떤 정당화도, 어떤 의미 부여도 필요없을지 모릅니다. 특히 여러분들 모두 저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운 삶을 사시고 있지 않은가요?

    물론 자기 비하, 육체의 고통, 엄습하는 악을 일시적이고 일상적인 즐거움만으로 이겨내기 힘들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들을 끊임없이 고갈시킬 새로운 의식, 새로운 전망, 새로운 삶의 욕구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간절한 물음에 쉽게 답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대신 방학 때 배운 파이드로스 끝의 소크라테스 기도를 적어 드리지요.

    내 내면이 아름답게, 겉 가짐이 내면과 하나되게 하소서.
    지혜가 부유함이라는 생각을, 절제하기에 적당한 만큼의 가짐만을, 허하소서.
  3. redshad
    2009/09/20 11:31
    이정민 샘 글..제가 요즘 추구하고 있는 것들 이네요.

    <내 내면이 아름답게, 겉 가짐이 내면과 하나되게 하소서.
    지혜가 부유함이라는 생각을, 절제하기에 적당한 만큼의 가짐만을, 허하소서.>

    정말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에요!
  4. 시즈
    2009/09/20 22:29
    결국 우리가 기댈 최후의 안식처는 메타포와 시밖에 없는건가요?
  5. 상상화
    2009/09/22 12:04
    '내가 누구인지' 에 대한 질문은 너무 어렵고 생각할 수록 힘들어서 저는 감히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요. 막연히 내가 누구인지 뭐라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여기 있는 것 같기는 하다.라는 생각으로 잠정적 결론을 내리고 '나'는 살아가고있어요..

    하지만 '내가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질문은 힘들어도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 당장 제 행동을 결정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저의 짧은 인생경험과 관찰을 통해 얻은 이 질문에 대한 잠정적 결론은 '욕망'이에요
    사람들은 욕망에 의해 살아간다고 생각했어요. 욕망,욕구,욕심? 어떤 단어가 적합할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인가를 원하는 마음 그 마음이 삶의 방향이자 행동의 근원인 거 같아요..

    생존에 대한 욕구(다니기 싫은 직장다니기,호랑이가 물려고 오면 도망가기),사회에 인정받기 위한 욕구,사랑받고 싶은 욕구(예쁘게 꾸미거나 부모님 말씀을잘듣는다), 돈벌고 싶은 욕구(돈번다), 남들보다 우월해지고 싶은 욕구(1등하기위해 노력한다),지적욕구(공부), 먹고싶은 욕구(밥먹으러간다), 건강해지고 싶은 욕구(운동하러간다)

    절 슬프게 만드는 사실은 요새 뭔가 원하는게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돈에 대한 욕망,성공에 대한 욕망을 매체에서 부르짖고있지만 전 그런것에도 시큰둥하네요. 뭐야 세뇌시키고 있어 난 안당해 이런 마음가짐입니다.물론 마지막에 급해지면 생존욕구가 본능적으로 발동해서 어찌하여 무언가를 하면 살아가겠지만 아직은 대학생이라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 뭘 원해야하는 건지 혼란스럽기 짝이없네요..



    무언가를 원하고 싶은데 의기소침하네요.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거대하고 사람들이 복작거리면서 살아가요. 그 엄청난 세상 속에서 나는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하는지 참 고민입니다 요새.

    초월적 가치,의미 과연 이런 것들이 존재할까요?의미나 가치는 결국 지배계층에 의해 조작되거나 경제적인 생활양식에 기반되어 나타나는 허상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유물론?).

    제 생각이 틀렸다하더라도
    이렇게 세상에 아프고 힘든 사람이 많은데 일상의아름다움이나 내면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내면을 성숙시키는 등 그런 가치를 추구한들 행복할 수 있을까요?

    개인이 만족하면 행복하기야하겠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세상에 불행한(할 수밖에없는) 일들이 이리 많은데 나 혼자 행복하고 만족할래 끝 아니면 일상적인 일시적인 아름다움을 보고 악과 아픔을 이겨내면서 살아갈래. 이러고 사는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요.

    써놓고보니 너무 비관적이고 우울한 글이군요.신이 아닌 미개한 인간이라 무기력하네요 시험도 다가오고 다싫어요 흑.
    • redshad
      2009/09/23 00:47
      먼저, 제가 하는 말은 님의 의견?을 부정하거나 하는게 아니라 단지 저만의 생각을 말한다는걸 말하고 싶어요(혹시나 혹시나)

      욕망, 욕구가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 그것 맞는말이네요.저도 뭔가를 하고싶어서 살고있는 게 분명하니까요. 그런데 참 원하는게 없다니 안타깝네요.. 제 개인적인 판단인데요..

      매체가 돈에대한 성공, 부에대한 성공을 부르짖어서 님은 자신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것에 혼란을 느꼈고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다고 무기력해지는 것 같은데요..그런 고민들은 제생각엔 완전한 속물이 되거나 초인이 되지않는 이상 평생할 고민들인 것 같아요.ㅎ


      [초월적 가치,의미 과연 이런 것들이 존재할까요?의미나 가치는 결국 지배계층에 의해 조작되거나 경제적인 생활양식에 기반되어 나타나는 허상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유물론?).]

      저는 모든 가치나 의미의 출발이 제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이것이 보편적일수 있느냐? 물론 아닙니다.하지만 보편적이지 않더라도 제가 믿는 가치가 남에게 긍정
      적 영향을 미친다면 문제될것이 없겠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초월적 가치들은 지배계층에 의해서 조작되고 경제적인 생활양식에 기반되어 나타나는 허상일수 있겠죠. 하지만 제가 창조하는 가치는 (외부로 부터 조금의 영향은 받겠지만) '허상' 이 아니라 저에게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제 요지는 그러한 가치들이 허상이냐, 왜곡된 가치들이아니냐 하는것은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이 틀렸다하더라도
      이렇게 세상에 아프고 힘든 사람이 많은데 일상의아름다움이나 내면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내면을 성숙시키는 등 그런 가치를 추구한들 행복할 수 있을까요? ]

      저에게 있어서 대답은 yes 입니다.(하지만 그런 추구로 얻어진 산물을 저만 간직해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만약 행복하지 못하다면 세상의 아픔을 보듬으세요ㅋㅋ그럼 행복하지 않겠습니까?ㅋㅋ

      [개인이 만족하면 행복하기야하겠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세상에 불행한(할 수밖에없는) 일들이 이리 많은데 나 혼자 행복하고 만족할래 끝 아니면 일상적인 일시적인 아름다움을 보고 악과 아픔을 이겨내면서 살아갈래. 이러고 사는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요.]

      ㅎㅎ 저는 먼저 제가 행복해야 주변사람도 행복해질수 있고 그리고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먼저 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오늘하루 짜증을 안내려고(일이 꼬일 때 자책하는 버릇이 있었거든요)노력해요.

      음..사회를 조금 더 아름답고 선하게 만들고 싶으면
      작은것이라도 행해보세요ㅋㅋ 완전 성인처럼 말하고 있네요..저 또한 실천 못하고 말만 주절거리는 미개한 인간이지만요.

      그리고 님의 자세와 달리 저는 사회적 성공을 추구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ㅎㅎ 단지 사회적 성공만 추구해서는 안되겠지만요 사회적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주변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죠. 그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수 있다면 더욱 좋다고 생각해요.

      하여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님께 공감이 가요..님의 그러한 고민은 당연히 해야할 것인데..그렇다고 그것에 무기력해하거나 하지 않았음 좋겠어요..(ㄲ이게 마음대로 안되는건데 말이죠??ㅋㅋ)

      아 참, 저는 요즘 사회적 책임을 왜 져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있어요. 음. 그니까 제가 왜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하는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데 그게 또 그렇게 당연하지는 않더라구요..ㅋㅋ
  6. 시즈
    2009/09/23 01:17
    redshad는 파이드로스와 상상화의 논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ㅋㅋ. redshad의 그런 희망적이고 자애로운 관점 또는 자세를 어떻게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느냐 하는 게 파이드로스와 상상화의 의문 아닐까? 그들이 왜 그런 희망을 가져보지 않았겠니? 실제로 그런 희망을 안 가지고 있겠니?

    만일 네가 세포 덩어리라면, 네가 유전자에 종속된 생존 기계라면, 우리가 진화의 산물일 뿐이라면, 어떻게 너의 그런 희망적 자세를 이성적으로 취할 수 있을까? 자아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너는 네가 단순히 세포 덩어리가 아니며, 유전자에 헌신하는 생존 기계가 아니며,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거니? 그렇다면 그런 주장은 어떻게 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니?

    이런 문제 의식이 파이드로스와 상상화에게 있는 것처럼 보이는구나. 물리주의와 자연주의와 생물(학)주의와 진화주의를 정말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내가 창조하는 가치"가 의미가 아니라 허상이 아닌가? ㅠㅠ.

    내가 지금 redshad의 희망을 꺾고자 하는 건 아니야. 나도 너와 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고 그 희망의 근거를 찾고 싶은 사람이니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이성, 우리의 자아를 진화론 위에 근거짓는 순간, 우리 희망을 이성적으로 정당화하려는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갈 거야.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 자체가 희망과 진보를 이성적으로 근거지을 수 없다는 체념에서 시작하는 것이야. 아이러니스트는 그런 체념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는 자들인데 그들은 희망을 이성이 아니라 시와 문학과 예술을 통해 노래할 뿐이야.

    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 30주년 기년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 기만이라고 생각해. "우리의 뇌는 우리의 이기적 유전자에 대항해서 배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정도까지 진화했다."

    이것은 그의 의인법의 극치이다. "유전자에 대항해서 배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정도까지" 진화되었다면, 그런 진화는 유전자에게 치명적인 것이 아닌가? 그런 두뇌를 가진 개체 내에 있는 유전자는 실패한 유전자 아닌가? 오히려 인간 두뇌는 유전자 관점에서 최고로 탁월한 생존 기계라고 예찬해야 하는 것이 마땅할 텐데, 인간 두뇌가 유전자를 초월할 수 있는 양 우리에게 환상을 준다. 이로써 우리가 과학을 말할 수 있고, 철학과 윤리를 말할 수 있는 존재라는 환상을 준다.
    • redshad
      2009/09/29 23:17
      [redshad는 파이드로스와 상상화의 논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ㅋㅋ. redshad의 그런 희망적이고 자애로운 관점 또는 자세를 어떻게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느냐 하는 게 파이드로스와 상상화의 의문 아닐까? 그들이 왜 그런 희망을 가져보지 않았겠니? 실제로 그런 희망을 안 가지고 있겠니?]

      ㅋㅋ 여러번 읽어보아도 상상화님의 글에서는 그런 저의 희망적이고 자애로운 관점, 자세를 이성적으로,과학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는 보이지 않는데요ㅋㅋ그리고 저의 두번째 댓글은 상상화의 댓글에 단것이구요
      선생님의 생각이 그러하셔서 그렇게 읽으신거 아닌가요?ㅋㅋ
      그리고, 저 또한 그런 것을 과학적으로 정당화할 수있지않을 까하는 고민을 해보지 않았을까요? 뭐 고민을 잠시 그만두는게 과학자이기를 포기한다거나 한다면 저야 어쩔수 없겠습니다만, 그것보다 고민을 하더라도 사회를 위한 실천?(그니까 사회에 도움이된다든지 하는?)이 안되기에
      그리고 현실적으로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이기에 썼던건데요.


      [그렇다면 너는 네가 단순히 세포 덩어리가 아니며,
      유전자에 헌신하는 생존 기계가 아니며,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거니?
      그렇다면 그런 주장은 어떻게 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니? ]


      모든것이 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정당화 되어야만 말할수 있는 것이라면 (글쎄요 저는 그런 정당화조차, 과학과 철학이라는 것조차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것이라면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수많은 학문(리더십(성공학),정신분석학)은 말할 필요조차 없는 학문인가요?
      (이 블로그가 철학적 고민만..이야기 해야하는 것인가요?ㅋㅋ)

      [내가 지금 redshad의 희망을 꺾고자 하는 건 아니야. 나도
      너와 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고 그 희망의 근거를 찾고 싶은
      사람이니까.]

      아니요.ㅋㅋ저는 희망의 근거를 찾으려는게 아니라
      사람들이 희망이 근거가 없더라도 그것을 갖게만들고
      싶은겁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이성, 우리의 자아를 진화론 위에 근거짓는 순간, 우리 희망을 이성적으로 정당화하려는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갈 거야.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 자체가 희망과 진보를 이성적으로 근거지을 수 없다는 체념에서 시작하는 것이야. 아이러니스트는 그런 체념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는 자들인데 그들은 희망을 이성이 아니라 시와 문학과 예술을 통해 노래할 뿐이야.]

      진화론은 잘모르겠구요..저는 희망과 진보를 이성적으로 근거짓는 것을 물론 부정?뭐라해야되지...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상상화님의 글에선 사회를 위해 뭔가 하고싶다고하는 느낌이 들어서 하라고 격려한거에요
      그리고 아이러니스트가 예술을 통해 희망을 노래한다면
      저는 행동을 통해 희망을 노래하겠어요ㅋㅋ
    • redshad
      2009/09/29 23:19
      아 글구 물리주의와 자연주의와 생물(학)주의와 진화주의
      가 뭔지 몰라서 그러는데

      [ 물리주의와 자연주의와 생물(학)주의와 진화주의를 정말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내가 창조하는 가치"가 의미가 아니라 허상이 아닌가? ㅠㅠ. ]

      의 의미좀 풀어서 설명해주실수 있나요?^^;
  7. 시즈
    2009/09/30 11:23
    오 반가운 redshad의 반론 폭주. ㅋㅋ. 내가 파이드로스와 상상화의 논지를 제대로 파악한 양 말한 건 아마도 내가 둘에 대한 사전 이해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글에서는 그런 희망을 잘 드러내지 않은 건 사실이다. 인정.

    다만 파이드로스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어떤 적극적 의지로 읽을 수는 없을까?

    "어쨌든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내 개별 세포들의 생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들의 목적과 역행하는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인간적 상황은 신을 인간 세계에서 쫓아내놓고 다시 신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게 합니다. 그래도 저는, 어떤 형태가 됐건, 아직은 이 지상에서 찾아보고 싶습니다. 보르헤스의 알렙과 같이 세상의 모든 진리가 집약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비록 너무나 거대해서 인간이 읽어낼 수 없을지라도 말입니다. 제가 소위 요즘 유행하는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어쩌면, 제가 살아가는 이유도 이 물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에서 파이드로스는 살아있는 내내 자기 삶의 의미, 물질 그 너머를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ㅋㅋ.


    상상화의 글은 자기도 인정했듯이 "비관적이고 우울한" 글이야. 나는 그것을 비관이고 우울하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자기가 기술한 그런 상태가 실상이 아니를 바라는 즉 희망하는 충동에서 나왔다고 생각해. 물론 이 모든 것은 상상화에 대한 나의 선이해에 기반해 있어.

    나는 성공학이나 정신분석학이 필요 없는 학문이라고 말하지는 않아. 다만 네가 언급한 "학문"이라는 게 뭘까? 그것을 바로 science라는 거야. 그러니까 너는 "성공학이나 정신분석학도 과학이 될 수 있잖아요"라고 말하고는 있는 셈이야. 성공이든 정신분석이든 어떤 주제를 과학적으로 정당화하는 노력이자 그 산물이라는 말이야. 나는 과학에 대한 좁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란다. 진실을 추구하는 모든 담론이 과학 즉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니요.ㅋㅋ 저는 희망의 근거를 찾으려는게 아니라 사람들이 희망이 근거가 없더라도 그것을 갖게 만들고 싶은 겁니다."

    아주 멋진 말이야. 하지만 네 말을 곰곰히 따져 보렴. 정말로 희망의 근거가 없는데, 자기가 희망하는 것이 실제로 구현될 아무런 가능성도 없는데, 그런 희망을 갖게 하는 걸 뭐라고 할까? 헛된 희망 즉 허상과 망상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로또를 하는 건 그래도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 0이 아니기 때문이야. 당첨될 확률이 실제로 0인데 로또를 통해 천금을 얻을 희망을 갖게 하는 건 속임수라고 생각해. ㅋㅋ. 내가 너무 강하게 주장하는 건가?

    그리고 정말로 중요한 너의 주장이 이어지는구나.

    "아이러니스트가 예술을 통해 희망을 노래한다면 저는 행동을 통해 희망을 노래하겠어요ㅋㅋ"

    사실 너의 이 발상에 가장 크게 동의한다. 네가 "행동"이라고 표현한 어떤 현상이 문제가 될 거야. 너는 분명 자유의지를 믿을 거야. 믿지 않고서 "행동을 통해 희망을 노래하겠어요"라고 말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하겠어요"라고 할 때 "겠"이 의지를 표현하는 말이잖아. 너의 희망은 사실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고 있는 거야.

    근데 누군가 "자유의지란 없어. 그냥 태엽장치일 뿐이야. 우린 유전자와 신경세포로 만들어진 정교한 기계야"라고 주장한다면, 넌 "아냐, 아냐"라고 말하겠지? 그러면 그 사람은 "왜 아니라고 생각하지?"라고 묻지 않겠니? 거기다가 "난 그런 건 몰라. 근거는 없어. 아니라고 믿고 싶어" 이렇게만 말 수 없지 않을까? 내가 믿는다고 참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야. 그러니까 어느 순간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믿을 모종의 근거가 필요하게 될 거야. 그것이 철저하게 의심받는 순간에 말이야.


    그리고 네가 네 의지로 행동을 하려면 행동의 "이유" "동기" 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바로 희망의 근거가 되는 어떤 것일거야? 네가 희망한다면 너는 어떤 근거가 있다고 생각할 거야. 그리고 그 근거는 망상이나 허상이 아니라 실제적인 근거일 거야. 또 우리가 희망을 가진다는 것 자체를 희망으로 볼 수도 있어. 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물리주의와 자연주의는 똑같은 뜻이야. 앞에 것은 physicalism의 바꿈말이고 뒤에 것은 naturalism의 바꿈말인데, physical이나 natural이나 같은 말이야. 앞에 것은 그리스어에 어원을 두고 뒤에 것은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을 뿐이야. 둘 다 태어나다, 자라다, 변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과 관련되어 있어.

    생물주의는 조금 다른 말인텐데 "만물은 모두 생명이다"이라는 견해라고 보면 될 거야. 내가 의도한 그런 의미야. 생물학주의는 "모든 견해는 생물학에 기반해야 한다"이런 견해이고. 진화주의는 "만물은 진화한다" 또는 "종교, 의식, 생명 등의 현상은 진화의 산물이다" 또는 "모든 현상은 진화론을 통해 설명해야 한다", "모든 과학은 진화론에 기반해야 한다" 등으로 이해하면 된단다.

    즐거운 하루되고... 추석 잘 보내? 진주 내려가지? 좋겠다.
    • redshad
      2009/10/03 18:32
      추석인데 방에 틀어박혀있네요ㅋㅋ
      진주는 안갔고(큰집이 진주가아니라서) 수원갔다가 오늘 점심먹고 돌아왔네요..추석 잘지내시고 계시죠?

      진실을 추구한다라...정신분석학이 진실을 추구한다는 생각을 안했던것 같네요. 제가 작년에 들은 교양수업에서 의대교수님이 정신분석학은 과학적으로 증명되거나 정당화 될수없기 때문에 위력을 가진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오히려 제가 학문에 대한 좁은 정의를 가지고 있었는것 같네요. 정신분석학이 진실을 추구하는 한 수단일 수도 있네요. 그런데요, 제가 하고자 했던말은 성공학에서는요,
      [그렇다면 너는 네가 단순히 세포 덩어리가 아니며,
      유전자에 헌신하는 생존 기계가 아니며,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거니?
      그렇다면 그런 주장은 어떻게 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니] 이런 정당화 없이도 주장한다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이것이 꼭 정당화 되지 않아도 제가 앞서 말한 희망에 대한 얘기를 할수있지 않냐는 거였어요.

      [아주 멋진 말이야. 하지만 네 말을 곰곰히 따져 보렴. 정말로 희망의 근거가 없는데, 자기가 희망하는 것이 실제로 구현될 아무런 가능성도 없는데, 그런 희망을 갖게 하는 걸 뭐라고 할까? 헛된 희망 즉 허상과 망상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로또를 하는 건 그래도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 0이 아니기 때문이야. 당첨될 확률이 실제로 0인데 로또를 통해 천금을 얻을 희망을 갖게 하는 건 속임수라고 생각해.]

      제 앞의 주장을 언제부터인가 희망이란 단어로 축약해서 쓰게 되니까 꽤 모호해졌네요ㅋㅋ 저는 사람들의 실천을 통해서 사회가 아름다워질 수있다는 주장을 했었는데요..이것을 희망이라고 하신건가요?
      (제가 희망의 근거를 찾는게 아니라고 한것은 제 행동을 통해 세상이 변할까?, 그럼 왜 변할까?하는 것을 찾는게 아니라고 했던거구요.)

      그렇다면..
      클샘 글을 여러번 읽어보면서, 오히려 희망의 근거가 제게 필요한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저는 사실 현실을 살면서 희망의 근거를 못찾을 거란 전제를 내렸던것 같아요-
      그런데요 종교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특히 기독교요. 제가 보기엔(역시 제 주관적인 생각입니다ㅜ) 하느님의 존재 증거가 없는데 단지 사람들은 믿어요.(글쎄 성경이 그분의 존재증거라면 전 뜨악합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하구요. 이것도 망상이나 허상인가요?

      계속 댓글에 댓글을 달다보니까..그리고 댓글다는 시간이 늦어지다 보니까 힘드네요...ㄲㄲ

      아, 글구 샘은 희망의 근거를 어디서 찾고 계세요??
  8. redshad
    2009/10/03 18:44
    하긴.. 제가 심폐소생술을 배울때 였어요. 이거 배우는 도중에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사람과 응급조치에 대한 동영상이 었는데요, 사람이 심장마비로 쓰러져서 5분안에 뇌에 산소가 공급이 되지않으면 식물인간이 되요. 하지만 5분안에 응급처치(심폐소생술)을 받으면 뇌에 산소가 공급되서 그후 병원에 실려가서 조금만 치료받으면 정상생활을 할수있는 거에요..

    저는 사람은 유전자와 신경으로 이루어진 생물 그것을 넘는다고 그저 '믿어' 왔는데요.. 위 내용을 배우고 나니 정말 사람이 '생물' 을 뛰어넘는 그런것을 가진 존재일까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네요..
  9. 큐리아
    2009/10/13 23:54
    redshad// 희망보다 차라리 하느님이 더 그 존재를 믿기 쉬운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나는?
    나도 내가 추구해야 할 교육적 가치는 "아이들의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교육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믿어왔고 그렇게 글도 쓴 적이 있는데... 막상 그 근거를 따져보면 물리주의자로서 나는 어디에도 그 믿음들을 근거둘 데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 나도 물리주의자를 자처하면서 막상 별로 진지하게 이 견해를 고려해보지 않은 것 같은데, 교회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받아들이라는 와닿지 않는 설교를 들으면서;; 태초의 순간에 대해 고민해보았는데 - 내가 기존에 갖고있던 세계관에 따라 이 세상의 물질이 태초의 한 순간에 우연히 생겨난 거라면, 언제 우연히 사라질 지 모르는 거니까...(우연한 생성과 우연한 소멸은 동등한 가능성의 무게를 가졌다고 전제 - 그렇지 않다면 특정 사건의 필연성을 인정하게 되니까) 나는 무척 불안정한 세계에 살고 있는거고, 언제 소멸될지 모르는 이 우주에서 영원한 것, 내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어.
    희망은 실체가 없지만, 존재의 궁극적 이유인 "하느님" 개념은 어떤 사람에게는 심적 "실체"로 받아들여질 수 있잖아 - 그러니까 하느님은 희망보다는 덜 망상적인 존재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물리주의자가 아니어서 심적 실체로서의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그 토대 위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면 마음은 편할텐데.
  10. 생각실험실
    2010/08/12 17:51
    이 포스트는 파이드로스가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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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적 방랑자를 위한 배움터. 진리가 무엇이뇨? 바로 내 앞에 있는 사람입니다. 선이 무엇이뇨? 우리가 대화하는 것입니다. 미가 무엇이뇨? 이렇게 마주보는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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