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은 어두컴컴하고 나 혼자뿐이다.
그런데 복도 저편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그 누구에게도 문을 열어준 적 없다.'
'뚜벅뚜벅뚜벅'
공포영화가 아닌
암흑에너지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위한
글머리이므로 살인자나 귀신은 등장하지 않는다.
저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정체를 알 수 없어서 느끼는 두려움이다.
나는 이런 종류의 두려움을 공간에서 살짝 느낀다.
빅뱅의 순간으로 되돌아가보자.
137억년 전 어느날 갑자기
공간은 태양계보다 10000배 큰 크기로 나타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이런저런 추측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괜찮다.
빅뱅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미스테리이기도 하고
그 이후로는 미스테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미노가 어떻게 쓰러지기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앞으로 어떻게 쓰러져갈지 뻔히 보인다면
지난 일은 대충 덮을 수도 있는 법이다.
적어도 그 발표가 있기 전까지는 그랬다.
1997년 어느 날
천문학자들은 우주 관측결과
감소하던 팽창 속도가 약 70억년 전부터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그냥 내버려둬도 느려지던 것이 빨라지는 일은 없다.
빨라지려면 추가로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어디서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낼 것인가?
빅뱅도 끝났는데 어디서 에너지가 새롭게 생겨난다는 것인가?
에너지 보존 법칙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빅뱅 이후로 또 한번 미스테리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공간이 가장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되돌아보면 137억년 전 1초도 안 걸려서
거대한 우주로 팽창한 것이 우주의 공간이다.
또 그런 일을 못하리란 법은 없다.
빅뱅 당시의 팽창에 비하면
지금 팽창속도가 좀 빨라지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왜 빅뱅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처럼
왜 다시 그런 능력을 발휘했는지는 모른다.
범인의 동기를 알 수 없으니
추리를 할 수 밖에 없다.
가장 유력한 추리는 공간 자체가 가진 에너지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일정 부피의 공간은 일정한 에너지를 가진다.'라는 의미다.
마치 돈이 일정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돈이 많아지면 가치도 늘어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면 공간이 작을 때는 에너지도 작지만
공간이 커지면 그만큼 에너지도 많아진다.
우주공간이 작을 때는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하다가
우주공간이 커지면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꽤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공간이 가진 에너지를 제대로 설명해주는 이론이 없고
앞으로도 당분간 그런 이론이 나올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현재 가장 유력한 이론이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19개)배만큼
'틀린' 답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어떤 과학이론도 이렇게 거대하게 틀려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것 이외엔 별다른 대안이 없어보인다.
차라리 이런 추리가 더 답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공간은 부동산 업자다.
우주의 넓이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넓히기위해
묵묵히 에너지를 모아서
70억년 전부터 다시 공간을 확장하는데 쓰고 있다.
빅뱅 때 워낙 에너지를 많이 써서
그 때처럼 왕창 공간을 늘릴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옆 동네 은행에서 에너지 대출협상을 하고 있다.
만약 대출에 성공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또 빅뱅을 일으키면서
우리의 안락한 우주공간을 찢어놓을지도 모른다.
순식간에 모든 공간이 천만배, 천억배씩 늘어날테니까 말이다.
허황된 상상이긴 하지만 거대하게 틀린 답도 허황되긴 마찬가지로 보인다.
어쨋든 잘 쓰러져가던 도미노가
70억년 전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다른 방향으로 살짝 꺽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앞으로 또 언제 알 수 없는 힘이
방향을 바꾸게 만들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공포영화가 아니므로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간의 속내를 모르는 이상
지금까지 별일 없었음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길 바랄 수 밖에 없다.
'알 수 없다.'라는 의미에서
과학자들은 그 정체불명의 에너지를
암흑에너지라고 부른다.


2011/11/02 2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