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우와 본래적인 삶

MBC 주말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가 인기를 끌고 있다. 쟁쟁한 가수들의 경쟁이기에 노래의 퀄리티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일까? 실력 있는 가수들의 무대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이 프로그램은 무척 반가운 프로그램일 것이다. <나는 가수다>는 평일 늦은 밤 시간대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나 <김정은의 초콜릿> 등에 방영될 만한 무대들이 주말 황금 저녁 시간대에 방영된다는 점에서 큰 매력이 있다. 더군다나 오디션 등 경쟁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에서 인정받는 가수들이 새로운 편곡을 거쳐 경쟁 형식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이기에 더욱 매력적이라 할 수 있다.
지난 3월부터 4월까지 두 달간 방영되었던 <나는 가수다>는 5월부터 새로운 PD를 영입하고 새로이 방송되고 있다. 새로운 가수들도 3명이나 섭외되었다. 임재범, BMK, 김연우가 그들이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주(2011.05.15) 방송 중 김연우의 인터뷰에서 착안된 글이다.
김연우는 맑고 깨끗한 목소리와 창법으로 사랑 받는 가수이다. 그는 첫 경연에서 6위를 차지하였다. 별다른 기교 없이 부르는 노래에 청중평가단이나 시청자들은 크게 반응하지 않은 듯 보였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순위에 위기감을 느끼고,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절제를 좀 많이 하는 편이거든요, 표현을 많이 안 해요. 그게 저한테는 좀 나름대로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안에 들어간 모든 말은 15일 방송 중 김연우의 인터뷰 내용이다.) 김연우는 자신의 노래가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이 프로그램에서는 단점이 되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는 평소 자신의 창법을 좋아하는 매니아 층이 있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15~6년 동안 진짜 매니아 층 한 200분 만들어놨거든요.”라는 그의 인터뷰에서 이를 알 수 있다. 그는 프로그램을 위해 자신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그거 16년 동안 만든 건데 방송 1~2회로 이 500명(청중평가단을 가리킨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바뀌기로 생각을 했어요.” 이는 같은 날의 다른 인터뷰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확실해요. 제가 불러왔던 대로 부르면 안될 거 같아요. 하하하. 저는 모든 걸 다 버리고 기존 틀을 확 바꿀 거예요. 저한테는 진짜 도전이에요 도전.”, “다음주를 좀 기대를 해주세요. 아 김연우도 저렇게 노래할 수 있구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노래를 부르려고 하고 있습니다.”
스텝들의 이미지 투표에서 김연우는 7위를 차지했다. 김연우의 노래라면 뻔하지 뭐, 새로운 기대 같은 거 없어. 이런 이유에서였을까? 그러나 중간 평가 무대 이후 그는 단숨에 가수들 간의 평가에서 1위로 도약한다. 김연우는 모든 힘을 짜내면서 노래했고, 전혀 넣지 않았던 기교도 듬뿍 선보였다. 자신의 원래 창법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고, 그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는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그 상황이 원하는 바에 따라 자신을 바꾼다. 여태 지켜온 방법을 고수하기보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바꿈으로써 해결책을 찾은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세계-내-존재이자 현존재로 본다. 이는 우리가 이러저러하게 친숙한 것으로서의 세계 곁에 거주하고 있으며, 여기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내-존재이자 현존재인 인간은 본래적 삶이나 비본래적 삶(세인의 삶)의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세인이란 현존재의 퇴락으로, 남들이 사는 대로 사는 사람이다. 타인과의 차이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평균성을 추구하는 삶을 살며 이는 자신을 잃은 삶이다. 불안은 현존재를 본래적 삶으로 돌아가게 하는 계기이다. 불안은 공포와는 다른 것으로, 공포는 대상이 있지만 불안은 대상이 없다. 즉, 불안의 대상은 무, 죽음이다. 죽음은 세인이 현존재를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존재는 죽음에의 선구를 통해 본래적 존재가 될 수 있다. 이렇듯 우리는 삶에 던져져 죽음을 향해 사는 존재이지만 죽음으로 인한 깨우침으로 앞으로의 가능성에 자신을 던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김연우의 변화를 보면서 마음이 왠지 짠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 본래적인 삶의 모습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아닌 모습, 즉 청중이 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다른 가수들과 비슷해지는 전략을 세웠다고 볼 수도 있다. 화려하고, 기교 많고,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는 무대를 구상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김연우도 저렇게 노래할 수 있구나”라는 말이 듣고 싶다고 하는 인터뷰가 슬펐다. 당신은 당신의 모습대로 노래해도 너무 멋져요. 꼭 바뀔 필요는 없어요.
그가 비본래적인 삶을 택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대중에 따라 변하는 부지런한 가수를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그가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다. 더 오래 남아서 좋은 노래를 많이 들려주면 시청자에게는 기쁜 일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뛰어난 가수들의 다양한 무대를 보고 싶은 입장에서는 이런 획일화되는 창법과 무대가 염려되기는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평균성을 추구하면서 사는 것일까? 그 안에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절대적인 미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일까? 나는 너와 달라, 우린 달라, 그런 말을 참 많이 하면서도 평균성을 추구한다는 것이 우습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은 모르지만,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기 위해 나의 선호를 무시할 때도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기 위해. 사랑 받기 위해 그들의 선호에 나를 맞춘다. 힘들 때도 있고 생각보다 쉬울 때도 있고 때로는 나를 더 넓히는 작업이 되기도 한다. 나를 넓히는 작업. 비본래적으로 사는 삶이 나쁜 삶은 아니라는 하이데거의 말이 이런 뜻이었을까? 비본래적으로 사는 삶 속에서 새로운 나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때도 종종 생기니 말이다.
힘내요 당신. 나는 그대로의 당신도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