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수꾼"은 윤성현 감독의 데뷔작으로 2011년 3월 발표되었다. 10대 소년들의 우정이 사소한 엇나감으로 틀어지게 되고 종국에는 한 친구의 자살로까지 치닫게 되는 스토리를 갖는다. 영화는 초반에 죽은 아이의 아버지를 등장시켜 아무런 정보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의 원인을 밝혀나가는 역시간의 구조를 취한다. 관객은 감독의 계획된 의도에 따라 어째서 한 친구가 죽을 수 밖에 없었는지를 탐정 노릇을 하며 재구성해 나가게 된다. 이 영화는 상처를 딛고 그를 통해 성장해 나간다는 전형적인 청춘영화와는 다르다. 인물들의 고정되지 않은 캐릭터, 대사, 장면의 전환, 프레임의 구성, 내러티브 방식에서 전형적인 장르 영화와는 차별성을 갖는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파수꾼의 주제를 '소통의 부재'로 꼽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미성숙한 고등학생의 문제일 뿐 아니라 파편화된 현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인간관계에서 관철되는 양상이다. 필자는 이 주제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영화의 독특한 플롯의 구조와 특유의 미감을 유발시키는 씬의 연출방법에 집중할 것이다. 이 글에서 파수꾼의 연출기법과 내러티브 방식에 착안하여 영화의 주제와 얼마나 조응하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롱샷은 감독이 장소를 설정해서 관객에게 배경을 확인시키고 그 배경 속에서 등장인물들간의 관계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카메라 쇼트이다. 이 영화에서 롱샷은 주로 아파트, 학교, 기찻길 등 영화의 주된 공간적 배경을 보여주는 데 쓰였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의문의 한 인물이 집단으로 구타를 당하는 장면이다. 그 후 이어지는 장면은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아파트의 외관을 해질녘 우울한 빛으로 제시된다. 아파트는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거주 형태로 '고립된 공간'을 표상한다. 영화 초반부터 롱샷으로 제시된 배경은 전반적인 분위기와 상황을 효율적으로 관객에게 노출시킨다. 학교는 세 주인공의 주된 활동 장소이며, 기찻길은 그들의 우정을 표상하는 공간이다.

반면,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이 영화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클로즈업을 남발한다. 카메라는 배우들의 미세한 안면 근육과 눈빛을 확대하여 보여주고, 보는 이로 하여금 섬세한 표정 변화, 머뭇거리는 입술, 폭발하기 직전의 불안함 등을 포착하도록 유도한다. 관객은 인물의 동작, 사물 등이 크게 나타나면 즉각 화면에 몰두하게 되는데 그 동기가 강력하면 할수록 클로즈업은 놀라움과 충격으로 다가온다. 클로즈업은 인물들의 감정 위주로 구성된 씬에서 내용에 하이라이트를 마련한다. 주인공인 기태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드러낼 때 얼마나 서투른지를, 상대방에게 의사를 전달할 때 소통할 언어를 잃어 스스로도 혼란스러워 한다는 것을 관객은 클로즈업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기태가 무섭게 폭발하기 전에 보이는 미세한 안면근육의 떨림은 불안한 심리를 반영한다. 그에 반해 대체적으로 안정된 표정을 보이는 동윤은 성숙한 내면의 소유자임을 암시한다. 기태와 희준 사이에 생긴 갈등을 중재하려고 친구들에게 대화를 시도할 때, 소통의 손길을 내미는 그의 얼굴은 진심으로 친구를 걱정하는 표정이 담겨있다. 희준은 보경의 문제로 기태에게 꽁할 때부터 소통을 거부하는 그의 태도와 함께 안색까지도 카메라는 밀착해서 포착한다.

저예산으로 제작되었기에 세트를 제작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실제 아파트의 내부공간을 촬영할 때에는 핸드 헬드가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대부분이 핸드 헬드로 촬영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히 감독이 특수한 의도를 가지고 촬영한 기법이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핸드 헬드 쇼트란 카메라를 삼각대 등에 고정시키지 않고 촬영한 화면을 가리킨다. 상대적으로 불안정하나 삼각대 촬영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생생한 감정과 친밀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 기법은 1960년대 누벨 바그 이후 본격적으로 감독의 지휘 하에 의도적으로, 또 미학적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공간에 대한 새로운 표현 수단으로서 핸드 헬드 쇼트는 인물의 꾸밈 없는 감정과 교감을 이루어 보다 사실적이면서도 자유분방한 화면을 창조하여 과거 도식적이던 연기와 화면 구성을 혁신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또 인물의 후면과 측면에서 인물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트래블링 숏도 빈번히 사용되었다. 이는 현장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극의 마지막 무렵 기태의 아버지와 만난 후 슬픔과 자책으로 괴로워하는 동윤이 밤거리를 헤매는 장면에서 트래블링 숏은 동윤의 괴로운 몸부림을 따라가면서 동윤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현장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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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은 비선형적인 복합 내러티브의 방식을 취한다. 기태의 죽음을 둘러싼 다중 플롯 구조를 갖고, 중심 화자의 이동을 따라 서사가 작동된다. 기태의 죽음에 관해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기태 아버지서부터 희준, 동윤을 통해 내레이션이 조직되고, 세 인물이 각자의 기억과 인식에 의존해서 기태를 구성해낸다. 그들이 알고 있는 기태에 관한 정보의 질과 깊이는 차이를 보인다. 기태가 절망하게 된 계기를 전혀 알지 못하는 아버지, 한때 친했지만 기태의 속내를 알지 못하고 화해의 손길을 뿌리쳤던 희준, 기태를 가장 잘 이해하면서도 여자친구 세정의 문제로 순간 홧김에 기태에게서 등을 돌렸던 동윤. 세 인물 각각은 서사의 엉클어진 조각을 맞추는데 일정 부분 기여한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품고 실제 일어난 사건을 연대기 순으로 재구성할 것을 요구받는다.

다수의 인물이 특정한 논리에 따라 교대로 파편화된 플롯을 끌고 가는 과정에서 연대기적인 선형성은 의도적으로 도외시된다. 다중 플롯 양식은 파편화된 비선형 내러티브를 통해 전통적인 인과성을 철저히 해체한다. 이 같은 양식은 어떤 사고나 언행을 낳는 인과의 논리나 작중 인물의 관계를 탐색하여 드러내는 전통적인 고전적 내러티브 양식에 대해 회의를 갖게 한다. 극 중 드러난 세 친구 사이에 있었던 균열의 계기는 매우 사소하다. 영화는 우리에게 수면 위로 올라온 양상만을 일부 보여줄 뿐이다. 관객은 그들이 왜 파국에 이를 수 밖에 없었는지 충분히 설득되지 못한다. 납득할 수 있을만한 직접적인 계기를 제시하지 않고 끝내는 사건의 전말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영화가 고전적 내러티브를 따랐다면, 우연성은 철저히 배제되어 이야기는 인과관계를 동력으로 전진하고, 선형성과 안정성을 기반으로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해냈을 것이다. 하지만 파수꾼은 표준적인 시퀀스를 거스름으로써 고전적 내러티브를 전복시켰고 관객에게 혼란을 야기한다.

이야기의 줄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갈린다. 아버지가 기태의 죽음의 원인을 알아가는 과정(현재로 설정된 시점)과 희준과의 갈등이 시작된 시점, 즉 세 친구 사이에 조그만 균열이 일어난 시점과 세 친구가 우정으로 한데 뭉쳤던 행복했던 시절로 나눌 수 있다. 그마저도 현재의 시점을 제외하고는 뒤죽박죽 시간을 거슬러 교차된다. 영화의 내레이션은 현재의 사건이 진행되는 도중에 과거의 사건이 끼어 들어와서 현재의 사건의 흐름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플래시백의 구조를 중심으로 비선형적인 내러티브를 잘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시간변조(Anachrony)는 필수적이다. 영화는 플롯을 시간의 순차적 질서에 어긋나게 진행시켜 나간다. 따라서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에서 제시하는 사건들의 시퀀스를 재구성하여 과거와 현재가 순서대로 정렬된, 인과의 고리로 연결되어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로 만들도록 요청한다. 다중 캐릭터의 관점에 따라 파편화된 플롯의 제시로 관객에게 정보를 제공하기를 뒤로 미룬 채, 관객의 반복되는 오해와 질문 속에서 진상에 가까이 접근해가는 구성이 파수꾼의 특기할만한 점이다. 감독은 관객의 기대심리를 유발하고 배반하면서 서사를 조율해간다. 플래시백은 과거 사건의 충격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기 위한 의도로 쓰였으며 이 영화의 내러티브와 긴밀하게 통합되었다.

또한 감독은 파편화된 내러티브로 시간을 자유롭게 변조하면서 영화 특유의 심미성을 추구한다. 플래시백, 몽타주 기법의 주된 사용, 극히 제한되어 쓰이는 음향 효과, 유의미한 플래시 프레임이 자아내는 미감 등 스타일 상의 요소들이 한데 모여 파수꾼만의 짙고 음울한 색채를 자아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플래시 프레임이 등장하는데, 한밤중 길거리를 뛰는 동윤의 옆얼굴을 트래블링 숏으로 따라가다가 장면이 급격히 전환되는 것이다. 고층의 아파트들이 우뚝 솟아있는 정적인 컷을 몇 초간 보여준 뒤 세 친구의 우정의 공간이었던 기찻길로 씬이 옮겨간다. 쇼트를 점프 컷으로 연결할 때 쇼트와 쇼트 사이에 이같은 플래시 프레임을 삽입하여 화면이 편집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리는 것과 동시에 이웃에게서 분리된 현대인의 생활 양식의 단면을 표상하는 이미지를 삽입하여 일순간 보였던 이미지가 갖는 함축된 의미를 고양시켰다. 이것은 단순한 쇼트의 결합이 아니라 쇼트와 쇼트가 충돌하여 제 3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에이젠슈타인은 이러한 몽타주에 대해 "독립된 두 컷의 상극과 충돌에 의해 일어나는 아이디어"라고 말한 바가 있다.


영화 파수꾼은 다중의 인물을 통해 파편화된 내레이션이 퍼즐을 맞추어가는 과정에서, 일면 만으로 그려지지 않는 인간의 특성과 사회의 본질을 발견하도록 우리를 자극한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끝내 깨닫지 못하는 세 친구들처럼 우리네 소통 양식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알지 못하는 사이 서로에게 상처를 내어주고는 그 상처가 채 아물기 전에 또다시 상처를 후벼파는 잘못을 저지르곤 하는 미성숙한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이 영화가 '불통의 사회'라 일컬어지는 현 시점에 대해 미치는 파급 효과는 크다. 이야기를 조직하고 전개하기 위해 동원되는 다양한 전략, 내러티브, 배우, 대사, 카메라워킹 등 스타일 상의 모든 요소들은 주제와 함께 양성 피드백을 일으켜 영화 파수꾼의 표현과 내용은 상호 침투한다.
2012/08/06 22:03 2012/08/06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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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3/02/0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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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각은, 그것이 긍정적 생각이든 회의적 생각이든, 내부에 관한 생각이든 외부에 관한 생각이든, 객관적 진리 개념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이 개념은 오직 타자와 의사소통 중에 있는 피조물들만 접근할 수 있다. 앎의 획득은 주관적인 것에서 객관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것에 기초해 있지 않다. 앎의 획득은 전체론적으로 생기며, 그것은 처음부터 상호인간적이다. 데이빗슨의 <외부주의 인식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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