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3일
1.
정민샘: 플라톤의 문자 비판. 이렇게 얘기하면 이상하게 들리는데...
플라톤이 문자라는 걸 통해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 아니면 생각의 교환 그런 것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어요. 우리가 거의 한달 동안 문자 비판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루었죠. 그 내용을 알고 싶으시면 ‘생생’에 올려놓은 녹취록을 보시면 되요. 근데 제 이야길 안 들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제 말 나오는 데로 받아 적은 것이기 때문에..
지난 시간에 문자얘기만 한 게 아니고, <파이드로스> 마지막 편에 이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이 나와요. 소크라테스와 다른 인물, 플라톤의 경쟁자 그런 거예요.
플라톤이 세운 학교의 그리스어 이름이 아카데미아. 아카데무스 장군의 이름을 딴건데. 요샌 다 아카데미라고 하죠. 원래 아카데미가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였어요.
가영: 공원 이름 딴 거 아니에요?
정민샘: 아카데무스 장군에게 바쳐진 김나지움? 그런 게 있었어요. 뭐냐면 체력단련하는 공터같은 거예요. 그게 아테네에 있었는데, 플라톤이 아카데미를 그 근처에 세워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얘기도 있고.
플라톤이 아카데미를 세운 게 기원전 387년, 소크라테스가 죽은 건 기원전 399년. 12년 정도의 기간이 있죠. 그 사이에 플라톤이 그리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이태리 남부, 보통 시칠리라고 부르는 섬이 있잖아요- 거기도 갔었어요. 돌아와서 세운 게 아카데미예요. 근데 이소크라테스의 학교는 390년보다 좀 앞서서 세워졌다고 이야기해요. 경쟁관계에 있던 학교들이죠.
이소크라테스에 대한 얘기는 거기에 나와요., 제가 추천하는 철학책인데 <지중해철학기행>의 한 장에 보면은, 플라톤과 이소크라테스가 뭐 때문에 대립했는지 나와요. 교육이념이 달라요. 지난 시간에 그 얘길 했는데. 플라톤이 생각하는 교육이념-교육은 이래야한다. 이런 거다-하고 이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교육 이념하고 차이가 있어요. 사실 학교도 다르지만 각 학교에서 추구하는 교육 이념도 다르다고.
지금은 대학교들도 교육이념이 다 다른데. 카이스트를 다닌 제 경험에 의하면, 특수한 학교에서 나도 모르게 받아들인 특수한 가치관 이념들이 있거든요?
..카이스트가 언제 세워졌게요?
가영: 박정희 시대.
정민샘: 네 그때 세워졌어요. 그때의 이념을 계속 이어 받은 거죠..
당시가 70년대 산업화시대잖아요. 산업 기술에 즉각적으로 필요한 인재 양성 그런 게 목표였어요. 빨리 석사 박사 이런 애들을 키워가지고 빨리 갖다 써먹어야 돼. 산업화시대니까 특히 공학 자연과학 분야 인재가 필요한데 그런 인재가 사회에 별로 없어요.
그게 원래 설립 이념이었어요. 기초과학? 아니에요. 기초과학은 그것들을 위한 도구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한국의 노벨상 그런 걸 염두에 두고 설립된 게 아니에요. 산업화 시대 필요한 인재를 수급하기 위한 것.
리나: 지금도 그래요?
정민샘: 그런 전통이 원래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아요. 학교가 한번 10년 20년 그런 식으로 운영되다 보면...
형석: 선생님의 교육 이념은요?
정민샘: 원래 그걸 이야기하려고 했어.
꼭 카이스트의 이념을 염두에 둔 건 아니지만 카이스트인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이념이 있거든. 수학, 과학 이런 게, 교육에서 어떤 부분을 차지해야 하는지.
그걸 지난 시간에 얘기하려다가 다 못한 것 같은데, 그걸 플라톤과 이소크라테스의 비교를 통해서 얘기해보려고 했어요. 감이 오나요?
저도 원래 학부 때는 물리학을 전공했거든요?
철학을 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 철학이 좀 과학 가까운 철학이라.. '과학철학'이라고 부르는데. 그니까 과학을 한 건 아니고 과학에 대한 어떤 학문적인 연구를 했어요. 그래서 제 학위 논문은 보어- 들어보셨죠? 보어의 원자모형 그런 거 있잖아. 그걸 역사적으로 철학적으로 연구했어요.
그리고 김명석 선생님도 원래 물리학을 전공하셨거든요. 선생님들이 다 과학을 하셨죠. 물론 나중에 철학을 하긴 했지만 그게 어디 가지 않는다고.
근데 물리학을 전공하려면 그걸 그냥 하겠어요? 어릴 때부터 과학의 꿈을 먹고 자랐으니까 거기로 가는 거 아니겠어요?
음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교육 이념'.
그래서 원래는 그 이야길 더 하려고 했는데 그 사이에 <생.생>에 관련된 글이 올라와서 그 글을 읽어보려고 읽어오라고 한 거예요. 읽어오라고 한 글이 세 개인데 하나는 <철학의 실용성>, 상상화님이 올리신 거구요. 다른 하나는 <세 가지 둔덕의 비유> 노소영씨가 쓴 거예요. 그리고 김명석 선생님이 쓰신 <과학과 예술>.
상상화님의 얘기는 '철학이 대체 어떤 일을 할 수 있느냐' 그런 걸 얘기하기 때문에 왠지 우리 다슬기에서 다뤄보면 좋을 거 같은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읽고 있어요? 원래 이걸 읽어와야 대화가 술술술... 무슨 얘긴질 알아야 참여도 쉽고 대화가 재밌잖아. 먼저 할 게 <철학의 실용성>이예요. 더 읽을 시간을 드릴까요? 그 사이에 질문하고 싶으신 거 있으면 질문하세요.
가영: 저번 시간에 이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교육을 비교했는데. 플라톤에게는 교육이 선의 이데아를 보기 위한 거라고 했잖아요. 근데 플라톤 시대의 수학과 과학이 뭔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시대에서 지금 제가 생각하는 수학과 과학과 같지 않잖아요.
정민샘: 안 맞을까요? 궁금해요?
가영: 제가 예전에 <공부를 잘 해서 도덕적 인간이 되는길>(?) 그런 책을 봤는데. 그게 중고등학교 입시교육에 대해서 이야길 하면서, 지금 학교에서 공부하는 그런 학문들이 진짜 도덕적 인간이 되는데 필요한 공부가 될 수 있다면서, 플라톤 이야길 하더라구요.
정민샘: 근데 도덕적 인간이 돼서 뭐하려구?
가영: 음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수학공부가 참선을 위한 해탈이었다구 이야길 하는데 그게 제가 보기엔 근거가 좀 빈약했어요. 그래도 그 당시에는 그 당위에 대해서는 저도 찬동을 했어요.
저도 계속 궁금한 주제고. 또, 저 자신이 계속 과학 공부를 하면서도 좀 생각해보고 싶은데. 문제는 그때의 과학과 제가 하는 과학이 얼마나 다른지가 궁금해요.
정민샘: 왠지 내가 뭘 캐치한 거 같아요. 가영씨가 학교교육을 통해 습득한 과학은 '선의 이데아'같은 목적에 별로 마땅치가 않아요? 플라톤이 생각한 과학과 다를 것 같아요?,
가영: 같았으면 좋겠는데.
정민샘: 음. 근데 그 생각을 안 할 수도 있잖아. 그러면 나쁜 거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과학과 수학 공부를 그런 식으로 연결짓는 게 꼭 좋은 게 아닐 수도 있잖아.
미적분학, 공업수학 같이 당장 필요한 지식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거기에다가 “너희 미적분학 배우면서 선의 이데아를 명상해야 돼.” 이런 식으로 별도의 무언가를 부과하게 되면 원래의 목적을 추구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죠.
수학의 목적이 뭐야? calculus를 배우는 목적이 뭘까요? 써먹기 위한 거 아니에요? 물리학에도 써먹고 공학에도 써먹고. 써먹을 데가 많죠? 그러면 잘 써먹으면 돼지 왜 그걸 통해서 딴 걸 얻으려고 해? 그게 딴 거란 생각은 안 드세요?
가영: 그냥 도구적으로 수학 문제 배우고 풀면 삶이 피폐해지는 거 같아요.
정민샘: 수학 자체에 재미가 있잖아. 그런 거 못 느껴봤어요?
그런 재미 때문에 선의 이데아 이런 걸 돌볼 겨를이 없어. 그것만 해도 재밌는데 왜 그 이상의 것을 찾아?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예전에 그런 비유를 든 것 같은데, 공부하고 게임하고 뭐가 틀려? 보세요. 게임은 재밌어서 하잖아. 거기서 도덕적인 목적을 찾지 않잖아.
이 게임을 잘하게 되면 도덕적으로 더 선해질 수 있는 아니면 선의 이데아를 명상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될 거야- 라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 것에 대해 뭐라고 얘기할 것도 없지. 근데 수학에 대해서는 왜 달라요? 수학도 그런 식으로 즐길 수 없는 거예요? 수학이 윤리적인 아니면 실존적인 문제를 풀어줄 수 있나요?
가영: 풀 수 없죠. 플라톤은 그게 직접적이지 않아도 어떤 태도를 기를 수 있다 그런 거 같아요.
정민샘: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면은 벌써 플라톤에게서 멀어지는 거야.
가영: 아, 실천적인 판단 능력은 이소크라테스의 개념이라는 거죠.
정민샘: 맞아요. 분명히 이소크라테스도 그런 이야길 하거든. 분명 그도 수학 과학을 통해 얻어지는 판단력이나 태도는 좋은 거라고 얘길 하거든요? 근데 그러면 내 이념이 아닌데? 플라톤의 이념이 아닌데?
소영: 그럼 플라톤은 자기 아카데미에서 어떤 식으로 교육했어요?
정민샘: 어떤 식으로? 수학을 교육했어요.
수학적 인식이 제대로 들어서면 선의 이데아는 거의 얘기할 게 없는 거야.
소영: 근데 그게 선생님의 교육 이념이면 선생님도 수학교육을 하셔야 되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정민샘: 음 우리도 수학만 해야 돼? 어때요? 수학적인 태도가 필요한 것 아니야?
주희: 수학적인 태도랑 수학적인 인식이랑 뭐가 달라요?
정민샘: 수학적인 인식을 통해서 수학적인 태도가 얻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원래 플라톤을 빌어서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수학적인 인식이 태도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거. 그런 인식이 거의, 진짜 힘이에요.
여기서 얘기하는 실용성이랄까? 아니면, 세계의 모습을 형성하는 힘과 영향력 그런 게 어디서 온다고 플라톤같은 사람은 보느냐? 인식. 그리고 인식의 모범이 뭐냐.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인식.
여러분 뭣 때문에 교육 받아요, 교육하기도 하고?
그런 게 있어요. 교육의 목적은 '자기실현'이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 있잖아. 그런 것들을 여러분들이 발현시키는 거라고 막연히 말할 수 있겠는데..
형석: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은 어떡해요?
정민샘: 수학이 뭔지 알면 수학이 재미없을 수가 없어요. 플라톤 아카데미에 들어가면 이런 생각을 설득시키는 거야.
수학만이 실용적이다.
가영: 그래서 플라톤이 말하는 수학적 인식이 뭔지 힌트를 좀 주세요.
정민샘: 그렇지. 그게 중요해. 근데 그냥 힌트를 주면 안되고 얘기해나가면서...
2.
정민샘: 플라톤 생각에 행복과 불행에 있어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 누구야?
최고에는 철학자가 있는 거야. 직업으로서 철학자가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 제일 밑에는 누가 있을까요?
가영: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정민샘: 음 그럴 수도 있는데, 근데 모델이 있어. 당시 정치체제가 변화하는 사회라고 했잖아. 플라톤 생각에 어떤 정치체계가 제일 나쁜 정치체제에요? <국가>에서 나쁜 정치체제를 제시해요. 민주정보다 더 나쁜 정치체제가 있어요. 민주정이 타락하면 어리석은 백성들이 누굴 추대하잖아. 누구? 독재자.
독재자가 플라톤의 행복의 스케일에서 제일 밑에 있는 사람이에요. 믿거나말거나, 플라톤이 독재자보다 철학자가 729배 행복하다 라는 말도 안되는 논증을 해요.
형석: 행복을 잴 수 있어요?
정민샘: 물론 재미로 한 얘기죠.
봐봐. 독재자는 행복할 거 아니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완벽한 독재권력을 가졌다고 상상해봐.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예요? 여러분들 못하는 게 많잖아 지금.
소영: 플라톤이 독재자가 제일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가 뭔데요?
정민샘: 그걸 알려면, 플라톤은 왜 철학자가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한건지 알아야 해요.
형석: 그럼 독재자는 철학자가 아니라는 거네요?
정민샘: 그렇죠. 독재자는 행복에서 가장 먼 사람.
소영: 독재자가 철학자가 아니라는 말의 의미는 독재자는 앎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정민샘: 지혜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지혜를 사랑하는 삶의 태도에서 제일 멀어지는 거죠.
독재정권이 전복된다든지 하는 가능성은 생각하지 말고, 독재자라고 우리가 얘기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세요. 평생 아무런 위험 없이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권력을 쓸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생각해야해.
형석: 그러면 자기가 나라 안에서 신 행세를 할 수 있는 그런 거요?
정민샘: 그렇지. 플라톤 <국가>에 보면 재밌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기게스의 반지. 왼쪽으로 돌리면 투명인간이 되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다시 형체가 나타나. 투명인간인 동안에는 처벌의 위험없이 하고 싶은 건 맘대로 할 수 있겠지. 여러분들에게 그 반지를 주면 뭘 하고 싶어? 플라톤이 제기하는, 도전이에요.
플라톤의 논적이 던지는 강한 반론이 있어요.
그런 반지를 가지고도 ‘난 철학적 삶이 좋아.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을 거야’ 하는 사람은 바보라는 것. 철학적 삶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반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소영: 투명인간이 되었을 때에도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바보라구요?
정민샘: 플라톤의 논적이 그런 반론을 던지지. ‘그런 상황에서 왜 지혜를 사랑해?’
플라톤, 소크라테스가 반대했던 소피스트들이 그런 힘을 믿는 사람들이거든요. 어떤 생각이 있으면, 말을 통해 설득해서 그걸 더 믿을만한 걸로 만들고, 아무리 믿을 만한 생각이라도 사람들이 못 믿게 할 수 있는 힘.
형석: 그럼 그걸 독재자랑 연결시키는 건 좀 이상한 것 같은데요. 김정일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하고 그러진 안잖아요.
정민샘: 적어도 그런 과정을 통해서 그런 권력을 확보한 거죠. 그가 대중의 마음을 설득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을까요?
형석: 교육시켰죠.
정민샘: 그렇죠 지금 지배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교육하면 되잖아요.
형석: 그건 세뇌잖아요.
정민샘: 세뇌시키면 되죠. 교육이란 게 그런 거잖아. 지금 지배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세뇌하는 것. 그게 연설술이에요. 이건 실패할 수가 없는 기술이야. 우리가 황우석박사 이야기도 했는데. 그가 대우과학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는데 말의 힘이 상당부분 작용했다는 이야길 했어요.
3.
상상화의 글. <철학의 실용성> 링크 http://ss.ize.kr/58?category=31
내가 생각하는 철학의 본질. 대신에 발칙하고 급진적이어서 사회적으로 위험하게 여겨진 경우가 많았던 사유. 그리고 소설이나 신화가 상상력에 기반하는 것과는 달리 체계적인 논리를 가짐으로써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그 자체로 엄청난 힘을 가질 수 있는 사유.
철학은 우표수집처럼 철학사에 대한 지식의 수집이 아니라는 거지. 그런 논조에요. 이런 게 철학이라는 건데, 어려운 얘기예요. 또 상상화의 개인적인 사회학도적인 생각이 담겨있는 정의예요.
그런데 이미 상상화는 철학을 하고 있어. 진리는 그 자체로 가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 논의해보고 싶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에서 단지 내 취향, 네 님의 가치가 아니라 철학의 실용성을 보편적인 설득력으로 논해보고 싶다.
이미 철학적인 논변이 들어간 이야기예요. 물론 플라톤의 사상이라든지, 철학에 대한 상상화 나름대로의 정의에 부합하는 사유가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이런 과정이 이미 철학적인 사유의 과정이라니까. 그런 의미에서 철학을 이해해야 해요.
철학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상상화 나름대로 철학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아가고 있는 거예요. 이미 철학 개념에 대한 반성이 들어온다니까?
이런 게 그래서 신기한 거예요. 이런 걸 쉽게 보면 안 돼. 온갖 사유의 가능성이 풍부하게 담겨있어요. 플라톤의 대화편 못지 않아.
상상화가 생각하는 철학은 왠지 이런 사람이 생각하는 철학하고 비슷한 거 같아요. 헤겔이 무슨 이야길 했냐면 철학은 ‘그 시대의 축도, 사상으로 파악된 그 시대.’
축도란 건 시대의 지축, 그런 거죠. 철학이란 사상으로 파악된 그 시대- 이 말을 한번 음미해보세요. 그 시대 철학을 알면 그 시대를 알 수 있어. 왜? 철학 안에 그 시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그 시대의 문화가 압축적으로 담겨있기 때문에.
우리가 플라톤을 보고 그리스 문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많거든요. 마찬가지로 헤겔같은 사람의 철학을 들여다보면, 프로이센 당시의, 계몽주의 이후의 시대 분위기, 그 시대만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사상들이 헤겔 철학 체계 안에 압축적으로 담겨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어때요?
각 시대마다 철학자들이 다 다른데. 중세에는 아퀴나스. 이 사람은 거의 신학자잖아. 중세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정밀하게 보여주어서 아퀴나스를 읽으면 그 안에 중세를 정말 압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뭔가가 담겨있을 수 있잖아.
가영: 아니 근데 생각해보면, 철학은 외로운 작업이라 그 시대 사람들에게 바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거 같지 않아요.
정민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라.
분명 그 시대에도 아퀴나스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거 아니에요. 예를 들면 무신론자나 반신학적인 사람들. 그래도 그 시대를 규정짓는 어떤 이념같은 게 철학자에게서 가장 잘 보일 수가 있잖아.
그렇게 시대를 반영하는 여러 작업등이 있어요. 심지어 예술도 과학도 시대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게 있단 말이에요. 그럼에도, 헤겔 생각에는 철학이 시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시대의 축도. 사상으로 파악된 그 시대. 철학은 거의 그 시대 자체예요.
이렇게 상상화는 헤겔과 가까운 생각을, 헤겔과 아무 관련없이 ‘상기’해냈어요. 이런 표현을 하면 뭔지 알지. 플라톤 철학에 나온 개념이에요.
근데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또 있어 사실은. 상상화가 사회학도잖아. 헤겔 이런 게 다 말이 씨가 되어서, 말이 낳고 낳아 사회학으로 이어진 거예요. 그게 또 말을 낳고 낳아 상상화까지 이어진 거지.
근데 이건 철학에 대한 한 가지 생각이지. 헤겔이 생각하는 철학을 철학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 나도 있지만 난 그걸 철학이라고 인정 못하겠어. 철학은 시대의 축도 이상의 무언가인데. 철학은 시대를 초월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아요? 저는 오히려 그게 철학의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헤겔의 생각대로라면 과거의 철학은 과거의 시대에 국한될 거 아니냐. 그럼 과거의 철학은 뭐냐? 아퀴나스의 신학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어?
플라톤의 생각은 노예제, 고대, 도시국가같은 것에 기반해서 나온 사상인데 지금 우리에게 대체 무슨 가치가 있어요? 우리가 사는 사회하고 다르고,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하고도 다르잖아.
아까 얘기한 대로 우리에게 이미 개인적인 행복의 기준이 있는데 플라톤은 어떻게 철학적인 삶을 강요할 수가 있지?
상상화의 답은 무엇인지, 제대로 읽어야돼. 플라톤 이상으로 읽어야 돼.
일단 이런 거야. 분명히 시대적인 한계가 있다고 해도 적어도 그 시대에는 매우 참신하고 급진적인 생각을 해냈다는 거야. 플라톤의 생각은 고대라는 한계가 있지만 그 시대 이전의 신화적인 사람들에 비교해서 이성을 내세운 혁명적인 생각일 수 있고. 루소, 볼테르 이런 사람들의 저작은 봉건의 탈을 벗지 못한 당시 프랑스사회에서 의미가 있던 얘기라는 거지.
그런데 왠지 이 답변은 만족스럽지가 않아. 근데 상상화도 왠지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애. 상상화가 재밌는 이야길 하는데, 철학은 한계를 가진다는 한계를 가지는 그 자체로 본받을 점이 있기에..
이 말을 오해하지 않으려면 상상화를 옆에 놓고 물어봐야하는데..(안 오셨음)
시대를 고려해도 한계 안에서 우리가 배울 게 있다는 건지,? 아니면 이 말을 좀 더 심오하게 받아들인다고 하면 그러한 사유의 도약 과정이, 지금 우리가 경험해야할 사유의 도약과정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는 거지.
아직 우리가 플라톤이 경험한 사회의 도약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상태일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철학이 시대를 초월한 뭔가가 있을 수 있는 건데, 저는 이게 철학의 이념에 좀 더 가까운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시대의 특수한 상황들이 있잖아요. 그 특수한 상황들이 꼭 우리 시대에만 일어난 것은 아닐 수가 있거든요. 특수하다고 해도 거기에 어떤 보편적인 의미가 있을 수있단 말이에요. 예를 들면 아이폰- 우리 시대에 나온 것이지만, 아이폰에 들어있는 생각은 아니면 아이폰을 우리가 받아들일 때 할 수 있는 생각, 기술 문명이 가져다주는 혜택이랄까, 아니면 기술이라는 것에 우리가 무얼 담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꼭 우리 시대에 국한 된 게 아니라구. 플라톤 시대에도 계몽주의 시대에도 기술이 있었잖아. 또 그런 문제에 대해 철학자들이 생각한 것은 분명 우리랑 대화할 수 있는 부분이죠. 그래서 철학이 정말 특수한, 아무런 보편적인 의미가 없는 주제를 다루진 않는다고 얘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사유의 도약 과정. 그 예를 프랑스 혁명에 대한 걸 들죠. 그리고 우리나라 는 왜 프랑스 혁명과 같은 변화가 늦었나?
상상화가 받아들이는 입장은 아니지만 유물론, 맑스주의 이런 것도 사회학에서 굉장히 영향력있는 입장이거든요. 맑스의 유물론을 상상화가 얘기하는 대로 이해해보자면 사유, 철학이란 무엇이나? 계급 이동에 따른 결과물. 반동적인 철학.
사상을 만든 사람들이 부르주아에 속한 사람이기에 자기 계급의 이해를 위해 그런 생각을 하는 거고, 반대로 부르주아 계급의 부산물인 사유는 원인이 아니라 현상적 결과. 정말 사회 밑에 있는 것은 물질적인 토대의 변화의 따른 상부구조에 불과하다는 이야긴데. 다 맑스식 표현이고 상상화이야긴 아니에요.
상상화가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거 같기도 하네.
상황은 언제나 우리 생각에 강한 영향을 준다. 그 다음 문장이 중요해
그러나 철학은 그 자체에 내재된 힘이 있다고 믿는다. 이건 내 생각하고 가까워.
철학 자체에 내재된 힘이 있다고 하면, 우리가 철학의 힘을 빌어서 시대적인 어떤 상황을 초월할 수 있는 그런 게 분명 있지 않을까? 아무리 상황에 예속된 측면이 강하다고 해도 다른 어떤 사유 방식이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면, 그리고 기존의 사유에서 도약할 수 있다면, 그런 도약이 아까 얘기한 과거 사유들의 도약의 과정일 수도 있다고.
물론 그건 우리 시대의 도약이겠지만, 만약 그 도약이 보편적인 의미가 있다면 과거의 철학자들이 해온 도약이 우리가 지금 하려는 도약과 분명 연관이 있을 거라고.
일상적 차원에서조차 숨을 쉬는 실용적 기술. 아이폰과 버블티 얘기가 나오는데..
아이폰이 왜 성공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걸 알고, 쓰고, 우리 삶으로 들어왔다는 건 정말 대단한 사태야.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 거 같애?
주희: 핸드폰의 개념이 바뀌었어요.
정민샘: 그렇죠 거기에 사유의 도약이 있잖아.
그리고 젊은이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측면이 있어. 그런 아이디어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성공할 수가 있는 거죠. 그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설득을 시킨 거잖아. 물론 스티브잡스가 연설하는 곳에 가서 설득된 건 아니지만 이 물건을 만들 때 집어넣은 이념이나 어떤 가치관., 그런 거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암묵적으로 설득이 된 거지.
소영: 거기에 철학이 관여했어요?
정민샘: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거지. 철학이 지혜의 사랑이라고 했잖아. 슬기로운 삶을 위한 도구로써. 그런 거에 대한 아이디어가 이미 들어가 있는 거지
형석: 설득당했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데요.
정민샘: 나쁜 의미에서의 설득은 아니에요. 어필? 끌리는? 그런 측면에서 얘기하는 거예요. 뭔가 좋아 보이잖아. 내가 딱 집어서 이야길 할 수 없지만 그 뭔가 끌리는 게 뭔지 분석해보면, 담으려던 정신 같은 게 분명 들어가 있을 거라고.
소영: 근데 그렇게 보면 물건에 철학이 안 들어간 게 없는데요?
가영: 전 여전히 회의적인 면이 있는데요. 아무리 아이폰 자체가 혁신적인 물건이라 해도 사용자의 철학이 필요한 거 같아요.
사용자가 기술을 사용할 때 거기에 인문학적인 가치를 부여하는지는 별개의 문제 아닐까요.
정민샘: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스스로의 예속된 상황을..
우리가 그런 생각을 받아들여도 거기에 고착될 수가 있잖아. 처음에는 참신한 신선한 아이디어라 해도 좀 지나면 또 그저 그런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고.
세상을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과학과는 달리 -아니 과학도 분명 다른 사유의 가능성을 제시해줄 수 있어요. 과학 혁명. 뉴턴 물리학이 우리가 보던 세계를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보게 하잖아.
상상화가 생각하는 건 이런 거 같아요. 과학이 생각의 가능성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어요. 그러면 이제 과학 철학에 가까워지는 거지. 코페루니쿠스의 혁명 같은 거. 실제로 이런 거 없이는 근대철학을 생각할 수 없어요. 그런게 거의 근대적인 사유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게 있거든.
심지어 데카르트는 이런 말도 했어요. ‘만약 코페루니쿠스의 체계가 무너진다면 내 전체 철학 체계가 무너진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상관 있어요. 그걸 빼면 철학에 남는게 없어. 거의 그 정도야. 사유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는 그런 게 과학에서 올수도 있다고.
이말은 무슨 말이야? 무비판적인 수용보다 알고도 굴복하는 상황. 그래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으니.
정말 그래요? 알고도 굴복하는 게 좋을까? 알고도 굴복하면 아는 게 아니에요. 굴복하는 정도까지 모르고 있는 거야.
넘어가요. 이거 또 읽어야지. 잠깐 오분만 쉬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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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파일 뒷부분을 유실한 것 같습니다.ㅜ_ㅜ 그래서 4/23일자는 일단 여기까지 올려두겠습니다..

(다슬기)고르기아스 깊게 읽기.pd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