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423

 

 

 

 

1.

정민샘: 플라톤의 문자 비판. 이렇게 얘기하면 이상하게 들리는데...

플라톤이 문자라는 걸 통해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 아니면 생각의 교환 그런 것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어요. 우리가 거의 한달 동안 문자 비판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루었죠. 그 내용을 알고 싶으시면 생생에 올려놓은 녹취록을 보시면 되요. 근데 제 이야길 안 들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제 말 나오는 데로 받아 적은 것이기 때문에..

지난 시간에 문자얘기만 한 게 아니고, <파이드로스> 마지막 편에 이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이 나와요. 소크라테스와 다른 인물, 플라톤의 경쟁자 그런 거예요. 

플라톤이 세운 학교의 그리스어 이름이 아카데미아. 아카데무스 장군의 이름을 딴건데. 요샌 다 아카데미라고 하죠. 원래 아카데미가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였어요.

 

 


가영: 공원 이름 딴 거 아니에요?

 

 

 

정민샘: 아카데무스 장군에게 바쳐진 김나지움? 그런 게 있었어요. 뭐냐면 체력단련하는 공터같은 거예요. 그게 아테네에 있었는데, 플라톤이 아카데미를 그 근처에 세워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얘기도 있고.

플라톤이 아카데미를 세운 게 기원전 387, 소크라테스가 죽은 건 기원전 399. 12년 정도의 기간이 있죠. 그 사이에 플라톤이 그리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이태리 남부, 보통 시칠리라고 부르는 섬이 있잖아요- 거기도 갔었어요. 돌아와서 세운 게 아카데미예요. 근데 이소크라테스의 학교는 390년보다 좀 앞서서 세워졌다고 이야기해요. 경쟁관계에 있던 학교들이죠.

이소크라테스에 대한 얘기는 거기에 나와요., 제가 추천하는 철학책인데 <지중해철학기행>의 한 장에 보면은, 플라톤과 이소크라테스가 뭐 때문에 대립했는지 나와요. 교육이념이 달라요. 지난 시간에 그 얘길 했는데. 플라톤이 생각하는 교육이념-교육은 이래야한다. 이런 거다-하고 이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교육 이념하고 차이가 있어요. 사실 학교도 다르지만 각 학교에서 추구하는 교육 이념도 다르다고.

지금은 대학교들도 교육이념이 다 다른데. 카이스트를 다닌 제 경험에 의하면, 특수한 학교에서 나도 모르게 받아들인 특수한 가치관 이념들이 있거든요?

  ..카이스트가 언제 세워졌게요?

 


 

가영: 박정희 시대.

 

   

 

정민샘: 네 그때 세워졌어요. 그때의 이념을 계속 이어 받은 거죠..

당시가 70년대 산업화시대잖아요. 산업 기술에 즉각적으로 필요한 인재 양성 그런 게 목표였어요. 빨리 석사 박사 이런 애들을 키워가지고 빨리 갖다 써먹어야 돼. 산업화시대니까 특히 공학 자연과학 분야 인재가 필요한데 그런 인재가 사회에 별로 없어요.

그게 원래 설립 이념이었어요. 기초과학? 아니에요. 기초과학은 그것들을 위한 도구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한국의 노벨상 그런 걸 염두에 두고 설립된 게 아니에요. 산업화 시대 필요한 인재를 수급하기 위한 것.

 

   

 

리나: 지금도 그래요?

 

 

 

정민샘: 그런 전통이 원래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아요. 학교가 한번 1020년 그런 식으로 운영되다 보면...

 

 

 

형석: 선생님의 교육 이념은요?

 

 

 

정민샘: 원래 그걸 이야기하려고 했어.

꼭 카이스트의 이념을 염두에 둔 건 아니지만 카이스트인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이념이 있거든. 수학, 과학 이런 게, 교육에서 어떤 부분을 차지해야 하는지.

그걸 지난 시간에 얘기하려다가 다 못한 것 같은데, 그걸 플라톤과 이소크라테스의 비교를 통해서 얘기해보려고 했어요. 감이 오나요?


저도 원래 학부 때는 물리학을 전공했거든요?

철학을 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 철학이 좀 과학 가까운 철학이라.. '과학철학'이라고 부르는데. 그니까 과학을 한 건 아니고 과학에 대한 어떤 학문적인 연구를 했어요. 그래서 제 학위 논문은 보어- 들어보셨죠? 보어의 원자모형 그런 거 있잖아. 그걸 역사적으로 철학적으로 연구했어요.

 그리고 김명석 선생님도 원래 물리학을 전공하셨거든요. 선생님들이 다 과학을 하셨죠. 물론 나중에 철학을 하긴 했지만 그게 어디 가지 않는다고. 

근데 물리학을 전공하려면 그걸 그냥 하겠어요? 어릴 때부터 과학의 꿈을 먹고 자랐으니까 거기로 가는 거 아니겠어요?

 

음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교육 이념'.

 

그래서 원래는 그 이야길 더 하려고 했는데 그 사이에 <.>에 관련된 글이 올라와서 그 글을 읽어보려고 읽어오라고 한 거예요. 읽어오라고 한 글이 세 개인데 하나는 <철학의 실용성>, 상상화님이 올리신 거구요. 다른 하나는 <세 가지 둔덕의 비유> 노소영씨가 쓴 거예요. 그리고 김명석 선생님이 쓰신 <과학과 예술>.


상상화님의 얘기는 '철학이 대체 어떤 일을 할 수 있느냐' 그런 걸 얘기하기 때문에 왠지 우리 다슬기에서 다뤄보면 좋을 거 같은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읽고 있어요? 원래 이걸 읽어와야 대화가 술술술... 무슨 얘긴질 알아야 참여도 쉽고 대화가 재밌잖아. 먼저 할 게 <철학의 실용성>이예요. 더 읽을 시간을 드릴까요? 그 사이에 질문하고 싶으신 거 있으면 질문하세요.



 

가영: 저번 시간에 이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교육을 비교했는데. 플라톤에게는 교육이 선의 이데아를 보기 위한 거라고 했잖아요. 근데 플라톤 시대의 수학과 과학이 뭔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시대에서 지금 제가 생각하는 수학과 과학과 같지 않잖아요.

 


 

정민샘: 안 맞을까요? 궁금해요?

 

 

 

가영: 제가 예전에 <공부를 잘 해서 도덕적 인간이 되는길>(?) 그런 책을 봤는데. 그게 중고등학교 입시교육에 대해서 이야길 하면서, 지금 학교에서 공부하는 그런 학문들이 진짜 도덕적 인간이 되는데 필요한 공부가 될 수 있다면서, 플라톤 이야길 하더라구요.

 

 

 

정민샘: 근데 도덕적 인간이 돼서 뭐하려구?

 

 

 

가영: 음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수학공부가 참선을 위한 해탈이었다구 이야길 하는데 그게 제가 보기엔 근거가 좀 빈약했어요. 그래도 그 당시에는 그 당위에 대해서는 저도 찬동을 했어요.

저도 계속 궁금한 주제고. , 저 자신이 계속 과학 공부를 하면서도 좀 생각해보고 싶은데. 문제는 그때의 과학과 제가 하는 과학이 얼마나 다른지가 궁금해요.

 

 

 

정민샘: 왠지 내가 뭘 캐치한 거 같아요. 가영씨가 학교교육을 통해 습득한 과학은 '선의 이데아'같은 목적에 별로 마땅치가 않아요? 플라톤이 생각한 과학과 다를 것 같아요?,

 

 

 

가영: 같았으면 좋겠는데.

 

 

 

 정민샘: . 근데 그 생각을 안 할 수도 있잖아. 그러면 나쁜 거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과학과 수학 공부를 그런 식으로 연결짓는 게 꼭 좋은 게 아닐 수도 있잖아.

미적분학, 공업수학 같이 당장 필요한 지식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거기에다가 너희 미적분학 배우면서 선의 이데아를 명상해야 돼.” 이런 식으로 별도의 무언가를 부과하게 되면 원래의 목적을 추구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죠. 

수학의 목적이 뭐야? calculus를 배우는 목적이 뭘까요? 써먹기 위한 거 아니에요? 물리학에도 써먹고 공학에도 써먹고. 써먹을 데가 많죠? 그러면 잘 써먹으면 돼지 왜 그걸 통해서 딴 걸 얻으려고 해? 그게 딴 거란 생각은 안 드세요?

 

 


가영: 그냥 도구적으로 수학 문제 배우고 풀면 삶이 피폐해지는 거 같아요.

 

 

  

정민샘: 수학 자체에 재미가 있잖아. 그런 거 못 느껴봤어요? 

그런 재미 때문에 선의 이데아 이런 걸 돌볼 겨를이 없어. 그것만 해도 재밌는데 왜 그 이상의 것을 찾아?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예전에 그런 비유를 든 것 같은데, 공부하고 게임하고 뭐가 틀려? 보세요. 게임은 재밌어서 하잖아. 거기서 도덕적인 목적을 찾지 않잖아.

이 게임을 잘하게 되면 도덕적으로 더 선해질 수 있는 아니면 선의 이데아를 명상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될 거야- 라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 것에 대해 뭐라고 얘기할 것도 없지. 근데 수학에 대해서는 왜 달라요? 수학도 그런 식으로 즐길 수 없는 거예요? 수학이 윤리적인 아니면 실존적인 문제를 풀어줄 수 있나요?


 

 

가영: 풀 수 없죠. 플라톤은 그게 직접적이지 않아도 어떤 태도를 기를 수 있다 그런 거 같아요.

 

 

   

정민샘: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면은 벌써 플라톤에게서 멀어지는 거야.

 

 

 

가영: , 실천적인 판단 능력은 이소크라테스의 개념이라는 거죠.

 

 

 

정민샘: 맞아요. 분명히 이소크라테스도 그런 이야길 하거든. 분명 그도 수학 과학을 통해 얻어지는 판단력이나 태도는 좋은 거라고 얘길 하거든요? 근데 그러면 내 이념이 아닌데? 플라톤의 이념이 아닌데?

 

 

 

  소: 그럼 플라톤은 자기 아카데미에서 어떤 식으로 교육했어요?

 

 

 

 

정민샘: 어떤 식으로? 수학을 교육했어요.

수학적 인식이 제대로 들어서면 선의 이데아는 거의 얘기할 게 없는 거야.

 

 

 

소영: 근데 그게 선생님의 교육 이념이면 선생님도 수학교육을 하셔야 되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정민샘: 음 우리도 수학만 해야 돼? 어때요? 수학적인 태도가 필요한 것 아니야?

 

 

 

주희: 수학적인 태도랑 수학적인 인식이랑 뭐가 달라요?

 

 

 

정민샘: 수학적인 인식을 통해서 수학적인 태도가 얻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원래 플라톤을 빌어서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수학적인 인식이 태도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거. 그런 인식이 거의, 진짜 힘이에요.

여기서 얘기하는 실용성이랄까? 아니면, 세계의 모습을 형성하는 힘과 영향력 그런 게 어디서 온다고 플라톤같은 사람은 보느냐? 인식. 그리고 인식의 모범이 뭐냐.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인식.


여러분 뭣 때문에 교육 받아요
, 교육하기도 하고?

그런 게 있어요. 교육의 목적은 '자기실현'이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 있잖아. 그런 것들을 여러분들이 발현시키는 거라고 막연히 말할 수 있겠는데..

 

  


형석: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은 어떡해요?

 

 


정민샘: 수학이 뭔지 알면 수학이 재미없을 수가 없어요. 플라톤 아카데미에 들어가면 이런 생각을 설득시키는 거야.

수학만이 실용적이다.

 


 

가영: 그래서 플라톤이 말하는 수학적 인식이 뭔지 힌트를 좀 주세요.

 

 

   

정민샘: 그렇지. 그게 중요해. 근데 그냥 힌트를 주면 안되고 얘기해나가면서...

 

 





2.
 

정민샘: 플라톤 생각에 행복과 불행에 있어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 누구야?

최고에는 철학자가 있는 거야. 직업으로서 철학자가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 제일 밑에는 누가 있을까요?

 

 


가영: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정민샘: 음 그럴 수도 있는데, 근데 모델이 있어. 당시 정치체제가 변화하는 사회라고 했잖아. 플라톤 생각에 어떤 정치체계가 제일 나쁜 정치체제에요? <국가>에서 나쁜 정치체제를 제시해요. 민주정보다 더 나쁜 정치체제가 있어요. 민주정이 타락하면 어리석은 백성들이 누굴 추대하잖아. 누구? 독재자.

독재자가 플라톤의 행복의 스케일에서 제일 밑에 있는 사람이에요. 믿거나말거나, 플라톤이 독재자보다 철학자가 729배 행복하다 라는 말도 안되는 논증을 해요.

 

 

 

형석: 행복을 잴 수 있어요?

 

 

 

정민샘: 물론 재미로 한 얘기죠.

봐봐. 독재자는 행복할 거 아니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완벽한 독재권력을 가졌다고 상상해봐.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예요? 여러분들 못하는 게 많잖아 지금.

 

   


소영: 플라톤이 독재자가 제일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가 뭔데요?

 

 

 

정민샘: 그걸 알려면, 플라톤은 왜 철학자가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한건지 알아야 해요.

 

 

 

형석: 그럼 독재자는 철학자가 아니라는 거네요?

 

 

 

정민샘: 그렇죠. 독재자는 행복에서 가장 먼 사람.

 

 

 

소영: 독재자가 철학자가 아니라는 말의 의미는 독재자는 앎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정민샘: 지혜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지혜를 사랑하는 삶의 태도에서 제일 멀어지는 거죠.

독재정권이 전복된다든지 하는 가능성은 생각하지 말고, 독재자라고 우리가 얘기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세요. 평생 아무런 위험 없이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권력을 쓸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생각해야해.

 

 

 

형석: 그러면 자기가 나라 안에서 신 행세를 할 수 있는 그런 거요?

 

 

 

정민샘: 그렇지. 플라톤 <국가>에 보면 재밌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기게스의 반지. 왼쪽으로 돌리면 투명인간이 되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다시 형체가 나타나. 투명인간인 동안에는 처벌의 위험없이 하고 싶은 건 맘대로 할 수 있겠지. 여러분들에게 그 반지를 주면 뭘 하고 싶어? 플라톤이 제기하는, 도전이에요.

 

플라톤의 논적이 던지는 강한 반론이 있어요.

그런 반지를 가지고도 난 철학적 삶이 좋아.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을 거야하는 사람은 바보라는 것. 철학적 삶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반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소영: 투명인간이 되었을 때에도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바보라구요?

 

 

 

정민샘: 플라톤의 논적이 그런 반론을 던지지. ‘그런 상황에서 왜 지혜를 사랑해?’

플라톤, 소크라테스가 반대했던 소피스트들이 그런 힘을 믿는 사람들이거든요. 어떤 생각이 있으면, 말을 통해 설득해서 그걸 더 믿을만한 걸로 만들고, 아무리 믿을 만한 생각이라도 사람들이 못 믿게 할 수 있는 힘.

 

 


형석: 그럼 그걸 독재자랑 연결시키는 건 좀 이상한 것 같은데요. 김정일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하고 그러진 안잖아요.

 

 

 

정민샘: 적어도 그런 과정을 통해서 그런 권력을 확보한 거죠. 그가 대중의 마음을 설득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을까요?

 

 

 

형석: 교육시켰죠.

 

 

 

정민샘: 그렇죠 지금 지배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교육하면 되잖아요.

 

 

 

형석: 그건 세뇌잖아요.

 

 

 

정민샘: 세뇌시키면 되죠. 교육이란 게 그런 거잖아. 지금 지배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세뇌하는 것. 그게 연설술이에요. 이건 실패할 수가 없는 기술이야. 우리가 황우석박사 이야기도 했는데. 그가 대우과학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는데 말의 힘이 상당부분 작용했다는 이야길 했어요.

 

 

 

 



 

3.

상상화의 글. <철학의 실용성> 링크 http://ss.ize.kr/58?category=31

 

 

내가 생각하는 철학의 본질. 대신에 발칙하고 급진적이어서 사회적으로 위험하게 여겨진 경우가 많았던 사유. 그리고 소설이나 신화가 상상력에 기반하는 것과는 달리 체계적인 논리를 가짐으로써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그 자체로 엄청난 힘을 가질 수 있는 사유. 

철학은 우표수집처럼 철학사에 대한 지식의 수집이 아니라는 거지. 그런 논조에요. 이런 게 철학이라는 건데, 어려운 얘기예요. 또 상상화의 개인적인 사회학도적인 생각이 담겨있는 정의예요.

 

그런데 이미 상상화는 철학을 하고 있어. 진리는 그 자체로 가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 논의해보고 싶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에서 단지 내 취향, 네 님의 가치가 아니라 철학의 실용성을 보편적인 설득력으로 논해보고 싶다.

이미 철학적인 논변이 들어간 이야기예요. 물론 플라톤의 사상이라든지, 철학에 대한 상상화 나름대로의 정의에 부합하는 사유가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이런 과정이 이미 철학적인 사유의 과정이라니까. 그런 의미에서 철학을 이해해야 해요.



철학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상상화 나름대로 철학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아가고 있는 거예요. 이미 철학 개념에 대한 반성이 들어온다니까?

이런 게 그래서 신기한 거예요. 이런 걸 쉽게 보면 안 돼. 온갖 사유의 가능성이 풍부하게 담겨있어요. 플라톤의 대화편 못지 않아.

 

상상화가 생각하는 철학은 왠지 이런 사람이 생각하는 철학하고 비슷한 거 같아요. 헤겔이 무슨 이야길 했냐면 철학은 그 시대의 축도, 사상으로 파악된 그 시대.’

축도란 건 시대의 지축, 그런 거죠. 철학이란 사상으로 파악된 그 시대- 이 말을 한번 음미해보세요. 그 시대 철학을 알면 그 시대를 알 수 있어. ? 철학 안에 그 시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그 시대의 문화가 압축적으로 담겨있기 때문에.

 

우리가 플라톤을 보고 그리스 문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많거든요. 마찬가지로 헤겔같은 사람의 철학을 들여다보면, 프로이센 당시의, 계몽주의 이후의 시대 분위기, 그 시대만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사상들이 헤겔 철학 체계 안에 압축적으로 담겨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어때요?

각 시대마다 철학자들이 다 다른데. 중세에는 아퀴나스. 이 사람은 거의 신학자잖아. 중세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정밀하게 보여주어서 아퀴나스를 읽으면 그 안에 중세를 정말 압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뭔가가 담겨있을 수 있잖아.

 

 


가영: 아니 근데 생각해보면, 철학은 외로운 작업이라 그 시대 사람들에게 바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거 같지 않아요.

 

 

 

정민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라.

 분명 그 시대에도 아퀴나스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거 아니에요. 예를 들면 무신론자나 반신학적인 사람들. 그래도 그 시대를 규정짓는 어떤 이념같은 게 철학자에게서 가장 잘 보일 수가 있잖아. 

그렇게 시대를 반영하는 여러 작업등이 있어요. 심지어 예술도 과학도 시대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게 있단 말이에요. 그럼에도, 헤겔 생각에는 철학이 시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시대의 축도. 사상으로 파악된 그 시대. 철학은 거의 그 시대 자체예요.

이렇게 상상화는 헤겔과 가까운 생각을, 헤겔과 아무 관련없이 상기해냈어요. 이런 표현을 하면 뭔지 알지. 플라톤 철학에 나온 개념이에요.


근데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또 있어 사실은. 상상화가 사회학도잖아. 헤겔 이런 게 다 말이 씨가 되어서, 말이 낳고 낳아 사회학으로 이어진 거예요. 그게 또 말을 낳고 낳아 상상화까지 이어진 거지.

 

근데 이건 철학에 대한 한 가지 생각이지. 헤겔이 생각하는 철학을 철학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 나도 있지만 난 그걸 철학이라고 인정 못하겠어. 철학은 시대의 축도 이상의 무언가인데. 철학은 시대를 초월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아요? 저는 오히려 그게 철학의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헤겔의 생각대로라면 과거의 철학은 과거의 시대에 국한될 거 아니냐. 그럼 과거의 철학은 뭐냐? 아퀴나스의 신학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어?

플라톤의 생각은 노예제, 고대, 도시국가같은 것에 기반해서 나온 사상인데 지금 우리에게 대체 무슨 가치가 있어요? 우리가 사는 사회하고 다르고,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하고도 다르잖아.

아까 얘기한 대로 우리에게 이미 개인적인 행복의 기준이 있는데 플라톤은 어떻게 철학적인 삶을 강요할 수가 있지?

상상화의 답은 무엇인지, 제대로 읽어야돼. 플라톤 이상으로 읽어야 돼.

 

일단 이런 거야. 분명히 시대적인 한계가 있다고 해도 적어도 그 시대에는 매우 참신하고 급진적인 생각을 해냈다는 거야. 플라톤의 생각은 고대라는 한계가 있지만 그 시대 이전의 신화적인 사람들에 비교해서 이성을 내세운 혁명적인 생각일 수 있고. 루소, 볼테르 이런 사람들의 저작은 봉건의 탈을 벗지 못한 당시 프랑스사회에서 의미가 있던 얘기라는 거지.

그런데 왠지 이 답변은 만족스럽지가 않아. 근데 상상화도 왠지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애. 상상화가 재밌는 이야길 하는데, 철학은 한계를 가진다는 한계를 가지는 그 자체로 본받을 점이 있기에..

이 말을 오해하지 않으려면 상상화를 옆에 놓고 물어봐야하는데..(안 오셨음)

시대를 고려해도 한계 안에서 우리가 배울 게 있다는 건지,? 아니면 이 말을 좀 더 심오하게 받아들인다고 하면 그러한 사유의 도약 과정이, 지금 우리가 경험해야할 사유의 도약과정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는 거지. 


아직 우리가 플라톤이 경험한 사회의 도약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상태일 수 있어요
. 그런 의미에서 철학이 시대를 초월한 뭔가가 있을 수 있는 건데, 저는 이게 철학의 이념에 좀 더 가까운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시대의 특수한 상황들이 있잖아요. 그 특수한 상황들이 꼭 우리 시대에만 일어난 것은 아닐 수가 있거든요. 특수하다고 해도 거기에 어떤 보편적인 의미가 있을 수있단 말이에요. 예를 들면 아이폰- 우리 시대에 나온 것이지만, 아이폰에 들어있는 생각은 아니면 아이폰을 우리가 받아들일 때 할 수 있는 생각, 기술 문명이 가져다주는 혜택이랄까, 아니면 기술이라는 것에 우리가 무얼 담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꼭 우리 시대에 국한 된 게 아니라구. 플라톤 시대에도 계몽주의 시대에도 기술이 있었잖아. 또 그런 문제에 대해 철학자들이 생각한 것은 분명 우리랑 대화할 수 있는 부분이죠. 그래서 철학이 정말 특수한, 아무런 보편적인 의미가 없는 주제를 다루진 않는다고 얘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사유의 도약 과정. 그 예를 프랑스 혁명에 대한 걸 들죠. 그리고 우리나라 는 왜 프랑스 혁명과 같은 변화가 늦었나?


 

상상화가 받아들이는 입장은 아니지만 유물론, 맑스주의 이런 것도 사회학에서 굉장히 영향력있는 입장이거든요. 맑스의 유물론을 상상화가 얘기하는 대로 이해해보자면 사유, 철학이란 무엇이나? 계급 이동에 따른 결과물. 반동적인 철학.

사상을 만든 사람들이 부르주아에 속한 사람이기에 자기 계급의 이해를 위해 그런 생각을 하는 거고, 반대로 부르주아 계급의 부산물인 사유는 원인이 아니라 현상적 결과. 정말 사회 밑에 있는 것은 물질적인 토대의 변화의 따른 상부구조에 불과하다는 이야긴데. 다 맑스식 표현이고 상상화이야긴 아니에요.

 

상상화가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거 같기도 하네.

상황은 언제나 우리 생각에 강한 영향을 준다. 그 다음 문장이 중요해

 

그러나 철학은 그 자체에 내재된 힘이 있다고 믿는다. 이건 내 생각하고 가까워.


철학 자체에 내재된 힘이 있다고 하면
, 우리가 철학의 힘을 빌어서 시대적인 어떤 상황을 초월할 수 있는 그런 게 분명 있지 않을까? 아무리 상황에 예속된 측면이 강하다고 해도 다른 어떤 사유 방식이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면, 그리고 기존의 사유에서 도약할 수 있다면, 그런 도약이 아까 얘기한 과거 사유들의 도약의 과정일 수도 있다고.

 

물론 그건 우리 시대의 도약이겠지만, 만약 그 도약이 보편적인 의미가 있다면 과거의 철학자들이 해온 도약이 우리가 지금 하려는 도약과 분명 연관이 있을 거라고.

 

 

일상적 차원에서조차 숨을 쉬는 실용적 기술. 아이폰과 버블티 얘기가 나오는데..

  

아이폰이 왜 성공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걸 알고, 쓰고, 우리 삶으로 들어왔다는 건 정말 대단한 사태야.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 거 같애?

 



 

주희: 핸드폰의 개념이 바뀌었어요.

 


 

정민샘: 그렇죠 거기에 사유의 도약이 있잖아.

그리고 젊은이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측면이 있어. 그런 아이디어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성공할 수가 있는 거죠. 그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설득을 시킨 거잖아. 물론 스티브잡스가 연설하는 곳에 가서 설득된 건 아니지만 이 물건을 만들 때 집어넣은 이념이나 어떤 가치관., 그런 거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암묵적으로 설득이 된 거지.

 

 

소영: 거기에 철학이 관여했어요?

 



정민샘
: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거지.
철학이 지혜의 사랑이라고 했잖아. 슬기로운 삶을 위한 도구로써. 그런 거에 대한 아이디어가 이미 들어가 있는 거지

 



 

형석: 설득당했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데요.


 


 

정민샘: 나쁜 의미에서의 설득은 아니에요. 어필? 끌리는? 그런 측면에서 얘기하는 거예요. 뭔가 좋아 보이잖아. 내가 딱 집어서 이야길 할 수 없지만 그 뭔가 끌리는 게 뭔지 분석해보면, 담으려던 정신 같은 게 분명 들어가 있을 거라고.

 


 

소영: 근데 그렇게 보면 물건에 철학이 안 들어간 게 없는데요?

 


 

가영: 전 여전히 회의적인 면이 있는데요. 아무리 아이폰 자체가 혁신적인 물건이라 해도 사용자의 철학이 필요한 거 같아요. 

사용자가 기술을 사용할 때 거기에 인문학적인 가치를 부여하는지는 별개의 문제 아닐까요.

 

 

 


정민샘: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스스로의 예속된 상황을..

우리가 그런 생각을 받아들여도 거기에 고착될 수가 있잖아. 처음에는 참신한 신선한 아이디어라 해도 좀 지나면 또 그저 그런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고. 


세상을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과학과는 달리 -아니 과학도 분명 다른 사유의 가능성을 제시해줄 수 있어요. 과학 혁명. 뉴턴 물리학이 우리가 보던 세계를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보게 하잖아.


상상화가 생각하는 건 이런 거 같아요. 과학이 생각의 가능성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어요. 그러면 이제 과학 철학에 가까워지는 거지. 코페루니쿠스의 혁명 같은 거. 실제로 이런 거 없이는 근대철학을 생각할 수 없어요. 그런게 거의 근대적인 사유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게 있거든.

 심지어 데카르트는 이런 말도 했어요. ‘만약 코페루니쿠스의 체계가 무너진다면 내 전체 철학 체계가 무너진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상관 있어요. 그걸 빼면 철학에 남는게 없어. 거의 그 정도야. 사유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는 그런 게 과학에서 올수도 있다고.

 

말은 무슨 말이야? 무비판적인 수용보다 알고도 굴복하는 상황. 그래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으니.

정말 그래요? 알고도 굴복하는 게 좋을까? 알고도 굴복하면 아는 게 아니에요. 굴복하는 정도까지 모르고 있는 거야.

 

넘어가요. 이거 또 읽어야지. 잠깐 오분만 쉬었다가.

 

 

 

 

 

 

 

 

 

--

 

녹음파일 뒷부분을 유실한 것 같습니다._그래서 4/23일자는 일단 여기까지 올려두겠습니다..

2011/09/30 15:01 2011/09/3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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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 다슬기 시간에 고르기아스를 같이 읽고 이야기한 것을 바탕으로 내용 정리를 해보았어요.제가 필기만 더 잘한다면 고르기아스를 심도있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좋은 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점차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이해 안되는 부분이랑 필기 못한 부분, 너무 사적인 이야기 등은 다 뺐는데도 15쪽이 나오네요. 힘들어서 오탈자나 매끄럽지 않은 문장 등은 차차 고쳐놓겠습니다.

외부사람도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의 구절들도 인용해놓았는데, 저작권 문제가 염려가 되네요. 문제되면 지울게요

2011/07/21 13:02 2011/07/21 13:02
  1. 이정민
    2011/07/21 19:05
    정리 참 잘 하셨어요. 저라면 절대 못할 듯. 이거 정말 언젠가 책 내야겠네요. 급한 대로 하나만. "정조는 그 당시에는 본인이 세도정치로 많이 해먹었다" => 세도정치는 보통 정조 사후 (1800년 이후) 붕당 간의 최소한의 견제조차 무너진 상황에서 일족이 권력을 독점하는 정치 현실을 가리킵니다. 정조 자신은 인류사에 유래 없는 플라톤의 철인 정치를 구현한 인물로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근대 서구정치사에서 프랑스 혁명을 놓고 보수와 진보의 대립 구도가 발생하듯 우리 역사에서도 정조와 노론을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사관의 차이까지 만들어집니다(이덕일 선생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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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샘: 당신의 동무도 우리는 지나쳐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소크라테스가 나오는데, 이소크라테스가 중요해. 이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아카데미 전에 이미 자기 학교를 세웠어요.

플라톤의 추상적인 철학을 내놓고 비판했어. 플라톤이랑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이에요.

 

소크라테스가 죽고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쓴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에요. 거의 장르에요 장르. 소크라테스가 컬트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글쓰기가 하나의 장르가 된다고. 거기 참여한 사람 글 중에 남아있는 게 플라톤하고 크세노폰 것밖에 없지.

 

마찬가지로 이런 생각을 해보세요. 플라톤의 아카데미가 있지만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학교들이 있거든요. 그때는 뭐가 이길지 모르는 거야. 뭐가 문명세계에 있어 영속한 영향을 남길지 모르는..

 

그 시대에 플라톤이 정말 위대한 철학이고 수천년 뒤에도 빛을 잃지 않을지 읽는 것만으로 알겠어요? 아무 관련 없는 대한민국 한반도에서 누가 이 글을 읽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 학교도 마찬가지야. 플라톤의 아카데미가 무슨 학교가 될지 어떻게 알아? 이소크라테스 학교가 더 좋아 보이는데? 플라톤은 가르칠 거 안 가르치고 수학은 가르친다는데?

 

근데 거기보세요. 이소크라테스는 아직 젊네. 이소크라테스가 아직 젊을 시절에 대화가 일어났다고 기록을 하는 거야. 극적 재구성이지. 실제로 이소크라테스가 젊을 때 플라톤이 이소크라테스를 몰랐을 때니까.

 

왜 이소크라테스를 여기 끼워 넣는지 그 얘기가 나와요. 타고난 본성의 능력 면에서는 뤼시아스 주변에서 나오는 연설. 그냥 연설가가 아니야, 이소크라테스는 연설가 중에서도 탁월한 연설가. 거기에다가 그 무리하고 다른 굉장히 고상한 습성까지 가지고 있어.

 

그래서 뤼시아스와 이소크라테스의 차이는 거의 애하고 어른 수준이야. 그것들이 그에게 만족을 주지 못할 때, 그것들이란 아마 연설들이겠죠?

연설들이 이소크라테스에게 더 이상 만족을 주지 못할 때, 어떤 신적인 충동이 그를 더 높은 수준으로 이끈다면. 아까 얘기했던 영혼에 불꽃이 튀는 일이 그에게 일어난다면, 진짜 철학자가 될 수 있을 거야. 왜냐면 본성적으로 지혜에 대한 사랑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가영: 근데 플라톤 상기설 떠올려보면, 모든 사람에게 다 지혜에 대한 사랑이 깃들어 있는데, 그걸 얼마나 상기해냈느냐가 중요한 거잖아요.

 

 

정민샘: 특히 이소크라테스에게는 고상한 습성이 있다고 하죠. 플라톤이 왜 이런 얘길 할까요?

 

 

소영: 희망. 연설가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정민샘: 그런데 왜 이소크라테스를 언급하면서까지?

 

 

소영: 자기와 적대적인 사람까지도 그렇게 해줄 수 있다.

 

 

정민샘: 대화편이 쓰여진게 경쟁 관계에 있던 시기야. 이소크라테라스의 학교가 세워지고 플라톤의 아카데미가 세워진 이후.

물론 이소크라테스가 어렸을 때로 대화를 셋팅하지만 이게 거의 극적인 재구성이라고. 지금 경쟁 관계에 있는 애를. 지금은 다 어른이지. 플라톤보다 나이가 많은데.

 

옛날에 어땠을 거라고. 소크라테스와 파이드로스가 이런 얘기를 이소크라테스에 대해서 했을 거라고 끼워 넣은 건데, 왜 끼워넣었을까?

 

 

정민샘: 희망을 주는 발언일 수 있는데.

 

이소크라테스에 대해 좀 알아야 돼. 정말 이게 희망을 주는 발언인지. 표면상으로는 분명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이소크라테스에 대한, 아니면 이소크라테스 학파에 대한 호의가 진심이었나.

 

플라톤같은 작가가 악의적으로 이런 발언을 했다고 생각되진 않아요. 뭔가를 숨기고.

 

그니까 악인을 매력 있게 그리는 작가가 좋은 작가에요. 악인을 매력있게 그리면 더 이상 악인이 아니지. 도스토예프스키 읽어보셨어요?

 

 

소영: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좋아해요.

 

정민샘: 도스토예프스키가 뒤미트리를 어떻게 그리는 지 보세요. 보통의 기준으론 거의 악한인데 도스토예프스키의 뒤미트리는 매력적이에요. <백치>. 백치의 로고진과 무쉬킨이 거의 상반되는 인간 유형인데.

그렇듯이 플라톤이 자기 대화편안에서 얘기하는 인간들이 결코 적대하고 폄하하는 게 아니라고 붙었다 떼었다 하는 사람이 자긴데.

 

플라톤이 반대하는 견해가 가장 매력적으로 드러나는...

나중에 고르기아스 할 때 칼리클레스 읽을 거예요.

 

아 내가 칼리클레스처럼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얘길 들어보니까 그게 아니야. 그 목소리가 이미 플라톤 안에 잇을 수가 있다고. 플라톤이 칼리클레스에게 이끌리는 그런 충동이 있을 수가 있고. 물론 플라톤이 진정으로 내세우는 건 소크라테스지.

 

백치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내세우는 인간상은 뮈슈킨이잖아요.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의미의 아름다운 사람을 그리려는 그런 노력이 들어간 인물인데. 마찬가지로 로고진도 도스토예프스키 안에 어두운 충동? 도박 충동? 그런 걸 대변하는 인물인지 몰라요. 이게 섞여 있어요. <노름꾼> 읽어보셨어요? 그 주인공이 양면적이죠.

 

 

소영: 근데 이렇게 해서 목적이 뭔데요? 낙관적인 자신의 태도를 보여주려는 건가요?

 

 

정민샘: 상대를 그렇게 그리기 때문에 더 첨예한 뭔가가 있는 거야. 지혜에 대한 사랑이 깃들어 있어. ?

 

소영: 다르죠. 다르게 나타난다.

 

 

정민샘: 그렇죠.

이소크라테스가 얘기하는 철학은 철학이 아니야. 여기서 그것까지 추론하기는 힘들지만 이소크라테스가 철학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보면 이건 절대로 플라톤이 용납할 수 있는 견해가 아니야.

 

실제로 이소크라테스 이후에 그리스 교육 사상에 분열이 일어나요. 플라톤이 생각하는 교육사상과 이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교육 사상. 누가 이길까?

 

이소크라테스의 사상이 헬레니즘 시대의 교육 사상 그리고 더 나아가서 로마, 키케로가 이소크라테스의 사상을 대변해요. 인문학이 키케로에서 나오는데. humanity. 인문이라는 단어에 이소크라테스의 이념이 담겨 있어. 거대한 이분이 여기서 생기는 거야.

 

 

가영: 하찮은 구절이 아니었군.

 

 

정민샘: 의미심장한 부분이에요. 아까 앞에서 철학의 독자적인 규정을 내리는 부분도 그렇고 이소크라테스를 얘기하는 부분도 그렇고,.

 

이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철학은 뭐냐? 행동을 가능케 하는데.

서로간의 관계를 부드럽게 하고, 무지에 의해 발생하는 부름과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을 구분을 하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을 구분하고, 무지에 의해 발생하는건 피하고,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은 용기 있게 참아내는 게 철학이야.

 

인간관계. 우리가 성숙한 시민이 된다는 건, 대립하는 게 아니라 서로간의 합의를 통해서.

일신상에 불행이 생긴다. 불행이 나의 무지 때문에 생긴 거 아니에요. 어쩔 수 없이. 자연재해가 나면 아무리 자기가 지혜로운들 무슨 소용이야. 불행은 지혜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우리가 분명 통제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고.

 

좋네. 근데 뭐가 문제야?

 

이소크라테스는 철학을 이렇게 얘기해요. 철학자들이 누구냐? 지혜가 뭐냐? 가능한 것의 범위 내에서 생각하는 것?

 

우리가 불가능한 것을 생각할 수는 없어. 불가능한 것에 대한 지혜는 불가능해. 그런데 가능한 것 안에서 자신들의 의견 올바른 의견 식견에 의해서 가장 좋은 것을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라든지 가장 좋은 해결책,. 철학자는 그런 판단 능력을 가장 쉽게 얻는 데 필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데 시간을 많이 쏟는 사람이야. 일종의 노하우 같은 거지. 실천적인 판단 능력.

 

뭔가 좀...

 

 

주희: 상식적인.

 

 

정민샘: 그렇지 뭔가 냄새가 좀 나지 않아?

그런데에 필요한 게 연설술이에요.

 

 

소영: 정치적인?

 

 

정민샘: 그걸 꼭 정치적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그래서 또 구분을 하는 거야. 이소크라테스한테는 그런 사람들하고 다른 또 뭔가가 있다고.

 

 

소영: 그게 뭔데요?

 

 

정민샘: 교육을 통한 덕성 함양. 좋은 거잖아.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의사소통 능력. 말에 대한 능력이 그런 거잖아요. 우리가 언어를 배우는 게 꼭 국어 점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의사소통을 위한... 다 좋은 거 같은데. 뭐가 문제야?

 

 

소영: 연설이라서?

 

 

정민샘: 연설.

 

의견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어요. 식견에 의해서 가장 그럴 듯한, 즉 최선의 방책을 찾는.

판단력. 실천적인 판단능력. 그게 물론 정치 영역에서 쓰일 수가 있겠지.

근데 꼭 정치가들이 하는 게 정치가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시민들의 시민로서의 의사 소통 능력. 그런 걸 얘기하는 걸 수도 있거든요.

 

뭔가 여러분이 판단을 내려야 하잖아. 시사, 경제.. 그런 판단을 해야지. 등록금. 생활에 있어 경제 현상들에 대해 자기 판단을 내려야지. 그래야 자기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잇잖아. 근데 뭐가 불만이야? , 플라톤과 이소크라테스의 교육 이념이 대립을 하는 거야?

 

이게 그냥 연설가보다는 왠지 나아 보이는데. 대중을 설득시키는. 교언영색 이런 거.

 

플라톤이 불만족스럽게 생각하는 건 뭘까? 뭔가 굉장히 가깝게 오는데. 거의 철학 비슷한 거 같은데. 우리 사회에서 얘기하는 철학, 희망의 인문학, 덕성 함양. 이런 거 철학이 해주는 거 아니야?

 

소영: 아 가르치려고 하는 게 플라톤은 지혜를 사랑하는 게 깃들어있고 이미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소크라테스는 자꾸 너넨 무지하니까 내가 가르친다 이런식으로.

 

 

정민샘: 앎이 뭐야? 플라톤한테.

어떤 게 진짜 앎이야?

 

 

가영: 무지를 깨닫는 것.

 

 

정민샘: 무지를 깨닫는 건데. 거기서 힌트가 뭐야? 이데아 세계에는. 뭐가 가장 중요한 앎이 뭐에요? 자기 안에서 나오는 앎의 모델이 뭐에요?

 

 

가영: 선의 이데아.

 

 

정민샘: 선의 이데아 얘기할 때 뭘 얘기해요?

선에 대한 강의에서 뭘 얘기했다고 했어요?

 

 

주희: 수학.

 

 

정민샘: 그거야. 수학과 과학. 플라톤에게는 교육에 있어서 과학적 인식이 중요해요.

 

이소크라테스. 희망의 인문학 이런 거 하는 사람들이에요. 수학과 과학은 뭐야? 중요하지,

그런 이념 하에서는 수학과학 공부해봐야 보조적인 역할 밖에 못해요.

 

플라톤이 생각하는 수학과 과학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야. 그런 능력이 아니라구. 오히려 이데아, 삼각형 그런 거에 대한 추상적인 관념들을 통해서 선의 이데아, 도덕성. 이데아를 보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온전한 의미에서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없어. 진정한 철학자가 될 수 없다구.

 

 

소영: 응 근데 선의 이데아와 도덕적인 기준은 따로 있는데, 플라톤이 교육에 있어서 수학과 과학을 가지고 이런 게 이데아다 보여주려고 한 거지. 그게 곧 수학과 이데아가 같다고 한건 아니지 않은가요?

 

 

정민샘: 같지는 않은데 많은 부분을 공유해.

 

 

소영: 선의 이데아를 알게 도와주는 역할?

 

 

정민샘: 아니야 그렇게 두면 안 돼. 수학 과학이 덕성 함양에 보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거는 오히려 이소크라테스에 가까운 얘기야.

 

 

주희: 선을 가르치려고 수학을 가르치는 약간 이상한 행동이..

 

정민샘: 약간 이상한 행동인거 같은데 그게 플라톤의 본질이야.

 

소영: 도움의 수단이란 게 나쁜 의미가 아니라 높은 차원에서 말한거예요. 선을 가르치려고 수학과 과학을 하는 거예요?

 

정민샘: 수학이 다루는 대상. 과학적 인식의 대상이 가지고 있는 성질이 선의 이데아의 성질.

플라톤에겐 궁극적 이데아가 그거야. . 심지어는 아름다움.,

 

 

소영: 근데 전부는 아니고 선의 이데아의 성질의 일부다?

 

 

정민샘: 그렇게 말하기도 어려운데.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이 어떤 관념이냐? 비애. 조화. 음악의 화성.

 

 

 

 

소영: 선에 이데아의 전부를 그런 식으로 설명한다구요?

 

 

정민샘: 그런 식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으니까, 선의 이데아에 대한 강연을 천문학과 기하학으로 한거예요.

 

 

국가에서, 철학자의 교육에서 중요한 것이 그런 인식이에요,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인식이 있어야만 속견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요.

수학자가 고지식하잖아. 자기가 증명한 것만 받아들이잖아, 물론 수학자도 그냥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을 상대할 때에는 자기가 수학에서 하던 것과 뭔가 다른 일관되지 않은 모습이 드러날지도 몰라. 그런데 플라톤 생각에는 사회의 모범을 그런 인식에 두어야 돼.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인식.

 

 

주희: 일관된?

 

 

정민샘: 그런 거예요.

그러니 이런 이념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지. 이런 식의 교육 이념이, 가능한 이념이 아니에요.

플라톤은 승리한 적이 없어.

 

수학 과학 교육을 통한 도덕성 함양.

 

갑시다. 너무나 아름다운 얘기로 끝나는데 이걸 하고 그 다음에 고르기아스로 돌아가자. 그 동안 그걸 생각해보세요. 교육의 이념. 더 나아가서 다슬기의 정체성.

 

 

가영: 갑자기 왜 다슬기의 정체성을?

 

 

정민샘: 우리 다슬기에서 하는 게 뭐야. 고전을 읽는 거잖아. 인문학적인 이념이 있을 수 있잖아. 이런 걸 어떻게 하나로 묶어서 일관된... 우리가 딴 거 하는 게 아니다. 뭔가를 묶어줄 수 있는 이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가영: 선생님 힌트를 좀 주세요. 수학과학을 실제로 배우면서 플라톤이 얘기한 선의 이데아를 보기 위한 수학적 과학적 인식이 어떤 건지.

 

 

정민샘: 나도 그게 어려워요. 여러분이 생각해봐요.

 

 

가영: 제가 카이스트 과학캠프를 갔었는데 한 조교님이 과학이란 무엇인가란 강의를 하실 때 되게 인상 깊었던 말이 있었어요. 나중에 너희들이 어떤 분야를 하든지 간에 지금 너희들이 과학적 마인드를 배우면 어떤 곳에서든지 적용될 수 있다.

 

 

정민샘: 플라톤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야 거의 과학적인 마인드가 곧 선한 마인드.

물론 과학이 또 우리 식의 과학이 아닐 수도 있어요. (5편 끝)

2011/06/29 21:29 2011/06/2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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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샘: 그리고 이제 마지막.

뤼시아스와 이소크라테스에게 전하는 말.

뤼시아스는 앞에 나온 켑팔로스의 아들, 에로스에 대한 연설. 이소크라테스에 대해서 이야길 좀 해야하는데.,. 좀 이따가 할게요.

 

 

연설에 대한 우리의 논의를 적당히 즐긴 것으로 하세. 그리고 자네는 뤼시아스에게 가서 이런 말을 전하게.

이 대화가 일어나는 장이, 아테네의 교외에요. 나무도 있고 시냇물도 졸졸 흐르는 굉장히 목가적인.. 이런 장소가 플라톤의 대화편에 없는데, <파이드로스>편은 대화가 그런데서 나와.

님프들의 시내와 성소. 영기가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다 이런 걸 세우고 그랬거든요. 님프의 상 같은 거. 우리도 예전에 성왕당같은 게 있잖아. 돌 쌓아올리고 띠 두르고,.

그리스사람들은 조각품을 세웠나봐. 사람들 없을 때 거기서 님프들이 잔치하고 춤추고.,.근데 사람들은 못 보지 그런걸.

 

뤼시아스를 비롯해서 연설을 작성하는 다른 사람, 호메로스를 비롯해서-반주음악이 있건 없건- 시를 짓는 사람, 그리고 솔론을 비롯해서 정치연설을 통해 법률들을 제정하고 문서를 작성했던 사람.

이게 플라톤이 공격하는 대상이라고 했잖아요. 플라톤이 대변하는 어떤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문화적인 가치가 있는데. 그 얘기 안했나? 모르는 표정들.

이게 플라톤의 주적이야 거의. 연설문 작성가, 소피스트, 호메로스. 호메로스가 얼마나 대단한, 그리스 세계의 문화를 거의 만든 사람인데. 플라톤은 부도덕하다고, 막장이라고 공격을 하잖아. 솔론(입법가)도 있고 페리클레스 이런 사람들. 민주주의적 정치가. 연설의 힘에서 권력을 끌어낸. 플라톤의 삼적. 그런 거야 거의.

그런 사람들이 진상-진짜 진리-에 대해서 알고, 단지 어떤 설득의 효과만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하는 얘기에 대한 논거를 제시하는- 논거를 제시한다는 게 결국 로고스를 제시하는 거예요. 말이 그런 뜻으로 쓰인다고 했죠. 그리스어의 로고스가, 이유나 account 같은 게 된다고 했잖아. 어떠한 말이든 근거를 댈 수가 있어야지.

 

그것들을 도울 능력.

글은 자기가 자기를 도울 수가 없거든. 남이 자기를 공격해도 얘는 방어를 못하잖아.

글을 누가 비난을 해. ‘이거 틀린 얘기야.’ 근데 글이 맞서서 싸울 힘이 없잖아. 얘를 도와줄 수 있는 애는 이글을 쓴 사람이지. 글쓴이의 의도를 오해하고 곡해할 수 있잖아. 글을 쓴 사람과 대화를 하면 어디까지가 제대로 된 비난인지 알 수 있는.

 

도울 능력이 있으며, 글로 쓰인 것이 하찮은 것임을. 그것까지 증명을 해야 돼. 글을 쓰면, 자기 글이 하찮은 걸 알고 놀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을 때에만.

그런 사람은 뭐가 될 수 있느냐. 연설가? 비극 작가? 서정시인? 법률가? 정치가? 가 아니라, 그런 사람은 이런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

대단한.. 왜 이런 게 대단한가.

그런 사람이 누구야?

 

그렇다면 그런 사람에겐 어떤 명칭을 주겠다는 겁니까?-파이드로스.

지혜로운 자? 는 좀 과분하고.-소크라테스.

왜냐면 그리스 시대에 현자가 있잖아. 신탁을 받아야 현자 소리를 듣지. 신탁이 내려오지 않으면 신이 그렇게 불러주지 않으면. 제멋대로 지혜로운 자 칭할 수가 없는 거예요. 지혜롭다는 건 신에게나 가능한 일이고.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이 정도는 되지 않을까.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지혜를 갖고 있을까 갖고 있지 않을까?

 

소영: 갖고 있지 않아요.

 

정민샘: .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무지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죠. 향연에 그런 얘기가 나와요. 사랑이란 거의 본질이 결국 자기가 없는 것에 대한 갈구잖아요. 그 대상이 연인이건, 아니면 지혜건 간에..

자기가 지혤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혜를 갈구하는 거죠.

좀 전에 내가 왜 쾅 두드렸냐면, 파이드로스가 이런 식으로 묻잖아.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철학자라는 게 여전히 어떠한 문화적 정체성이 없다는 거야. 연설가, 작성가들에 비해서.

호메로스- 시인. 극작가. 법률을 만드는 사람, 정치를 만드는 사람-중요한 사람.

철학자? 못 들어봤는데? 뭐하는 사람이지? 거의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거야.

 

철학에 어떤 아이덴티티를 부여하잖아. 그런 것과 맞설 수 있는 문화적인 어떤 아이콘으로서.그런 걸로 철학자가 이 구절에서 등장을 하잖아. 이게 감격스러운 구절이야, 지금 철학자의 어떤 상을 하나 만들어냈어. philosophy, philosophia.라는 게 원래 그런 이름이 아니었다구.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인데. 지혜를 사랑하는 그런 표현은 일상어의 어떤 걸로 많이 등장하잖아. 신발을 만드는 사람 같은..

물론 philosophia라는 게 복합어이긴 하지만. 근데 철학자라는 게 그렇게 대단해? 그렇게 얘기하고 나니까. 소크라테스를, 입법가 정치가 연설가 시인만큼이나 아니면 그 사람들보다 더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잖아. 플라톤이 철저히 의도한 바겠죠.

 

파이드로스 플라톤 말에 또 따라와요.

이치에 어긋난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자기가 짓거나 글로 쓴 것보다 더 고귀한 것들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채. 영혼이에요 영혼. 고귀한 영혼. 영혼은 썩었는데 시간 들여서 괜히...이것들을 위 아래로 돌려보면서 이게 뭔지 모르겠어요. 이거 번역을 어떻게 했지?

음 여기에는 비유적인 의미로. ..turing upside down. 그러니까 자기가 쓴 글을 뒤집는다는.

거의 그런 의미로도 읽힐 수 있겠는데?

위에 있던 걸 아래로 보내고, 아래에 있던 위로 보내는, 그러면 거꾸로 되잖아.

그런 사람들은 철학자는 못 돼도 마땅히 시인이나 법률작성가 그 정도는 될지 몰라.

이러면 철학자가 좀 더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는.

 

소영: 시인한테도 영혼이 빠져 있다구요?

 

정민샘: 그렇지.

불만이야?

 

가영: 이주희, 불만 없나?

 

주희: 나는 지금 좀 피곤한 거 같다.

 

효주: 시인한테 영혼이 없다고 하는 게, 시라고 하는 게

목적 자체에 두는 거잖아요. 근데 만약 시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정민샘: 음 이런 걸 염두에 둔 거 같아요. 드라마 작가들 중에 그러니까 막장을 조장하는 작가들이 있잖아요. 누구지? 김수현.

그런 사람들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고 하면 너무 약하고, 그건 당연한데.

 

시라는 것의 본질에 그런 성격이 있다는 거야.

도덕을 고려하지 않아요. 도덕을 고려하면 좋은 시가 나오기 힘들어.

 

소영: 그건 좀,..

정민샘: 그건 좀 아닌 거 같애? 이런 걸 한번 생각해보세요.

 

근데 이게 누구얘긴지 알아? 플라톤의 죽음에 대해서 여러 가지 얘기가 전해오는데, 플라톤이 죽고 플라톤 베개 밑에서 무슨 책이 나왔냐. 자기 대화편이나 성서가 아니라,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이 나왔다는 얘기가 있고- 그거 가지고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기도 해요. 이건 내가 니체에서 읽은 건데, 니체는 문헌학자니까 그런 얘기를 알고 있었겠죠.

이거 하면서 찾은 얘기. 붙였다 떼었다. 플라톤이 죽고나서 베개 밑인지 침대 밑인지 모르겠는데 무슨 명판이 발견되었어. 원래 그리스인들은 흑판 같은 데 쓰곤 했거든요. 명판에 뭐가 쓰여 있냐. 국가편의 첫 문장이 수십 개. ? 붙였다 떼었다... 수십 번 붙였다 떼었다.

 

주희: 왜 컨트롤 c, v가 생각나지.

 

정민샘: 국가 첫 문장이 뭔지 아세요? 별 문장도 아니야.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외항, 항구로 내려갔다..’ 이런 식의 문장이에요. 그 문장 하나 쓰는데 ...

고르기아스 처음에 칼리클레스가 이런 말로 시작하잖아. ‘소크라테스, 전쟁에는 그처럼 늦게 참가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이게 전쟁 전투를 암시하는 복선이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이 전승이 믿을 만하다면 플라톤의 문장 하나하나가 별거 아닌 문장도 철저하게 의도된- 플라톤이 대화편처럼 풀어쓰지만, 결코 자연스러운 대화가 아니라는 거지. 철저하게 계산된, 의도된 단어선택이라든지. 붙었다 떼었다하는 사람이, 결국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는 거야. 플라톤 안에 있는 다른 목소리, 다른 모습을 봐야 돼. 자기를 희화화한 거일수도 있다고.

이러니까 플라톤이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거지.

철학자 앞에서 얘기해놓고, 위 아래로 돌려보면서 서로 붙였다 떼었다 하는 사람. 자기가 그렇게 대화편을 그렇게 쓴 건데. 자기의 모습을 그린 거야 어떤 장면에서는. 그니까 결코 플라톤의 대화상대자들이 악인이 아니라고. 플라톤의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몰라. 자기가 걸어가지 않은, 들어서려고 했다가 미처 밟지 않은, 그런 흔적이 소크라테스의 대화상대자들이나 또는 이런 표현에 남아있을지도 몰라요.

 

소영: 그리고 선생님이 말씀하면서 오해가 생긴 거지, 이 글만 읽었을 때는 맞거든요?

 

정민샘: 뭐가요?

 

소영: 붙었다 떼었다 하는 사람을 분류할 때 시인, 연설문작성가, 법률작성가를 같은 위치에 둔게 맞는데, 선생님은 영혼이 없다 이런 식으로 말하셨잖아요. 앞에 철학자,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을 영혼을 다루는 거고, 뒤의 붙었다 떼었다 하는 사람은 영혼이 없는 거이렇게 말했잖아요.

 

정민샘: ‘영혼의 본질에 대해 무지하고.’

 

소영: 그래서 제가 질문을 한 거였는데, 질문할 필요가 없는 거였어요. 여기에는 그런 내용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여기 말은 맞는 말이었어요.

 

정민샘: 무슨 질문?

 

소영: 시인이 왜요? 했잖아요. 그 질문은 이 질문이 아니라, 선생님이 말씀하신 영혼이랑 왜 관련이 없다고? 그 질문이었어요. 붙었다 떼었다 하는 거는 사실 맞죠. 시인이.

 

정민샘: 근데 고귀한 것들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채이런 거라는 거지.

 

소영: 고귀한 것들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채라는 게 고귀한 것의 기준이 다른 거지, 영혼이 없다 이런 건 아닌 거 같은데..

 

리나: 근데 플라톤이 생각하기에 고귀한 것이 영혼이라고 생각한 거 같..

 

정민샘: 앞에 우리가 한 내용을 반영해보면, 글로 쓴 것보다 더 고귀한 것들은 그 사람의 영혼. 영혼에 쓰인 말.

 

그러니까 여러 가지 생각을 읽을 수 있는데, 자기의 모습을 이런 식으로 그리면서, 또 철학의 뭔가 고유한, 이런 활동들보다 고귀한 지위를 부여하려고 하는..

 

소영: 철학만의. 철학만의 그런 게 따로 있는 거 같아요.

 

정민샘: 그렇지. 설득됐다 이제.

 

소영: 근데 너무 포함관계를 명확히 하질 않고 싸잡아서.. 마음에 안 들어요.

 

정민샘: 음 말이 다 힘을 가지는 일들이에요. , 연설, 법문. 그래서 다 묶이죠.

 

효주: 이 때 힘은..

 

정민샘: 듣는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여러 가지 기술들이 있다고 했잖아요. 강한 걸 약하게 하고 약한 걸 약하게 하고, 헬렌의 경우를 들었죠. 헬렌을 악녀가 아닌 불행한 희생자로...

 

소영: 이 시대에는 시가 사람들의 마음을 꼬이고, 권력과 연관되는 그런 게 있었어요?

정민샘: 정치권력은 아닐지 몰라도, 시 때문에 미치는 사람이 많지.

 

소영: 지금으로 생각하면 되게 아니잖아요.

이 나머지 두 개는 권력이랑 밀접한 거고 시는..

 

정민샘: 음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이문열? 이런 사람들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애.

이문열 또 누구 있지? 심지어는 김지하.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생각해보세요.

 

소영: 그런 걸 잘 몰라서.

 

리나: 누군지는 아는데, 뭘 하고 있는지 몰라요.

 

정민샘: 맞아요. 지금 거의 보수 논객이야.

 

리나: 운동권 출신 아니에요

 

정민샘: 응 맞아요. 그 정도까진 안 갈 거 같은데 김동길? 그 사람도 한 때 젊은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좋은 글들을 많이 쓰다가, 어디서 미쳤는지 모르겠는데. 김동길 이 사람은 조갑제 이상이야 지금은 거의. 그렇게 되어 버렸어.

 

 

주희: 김지하가 뭔 일 했는데요?

 

정민샘: 원래 박정희 유신 정권 시절에 국회의원들을 비판하는 <오적>이라는 판소리 비슷한 시를 썻어요. 그래서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했죠. 그 뒤로 생태운동 이런 것도 하고, 김지하 장모가 그 사람이잖아. 토지 박경리.

 

소영: 그런 것도 이미 도덕이랑 관련이 있는 건데. 시인의 도덕성.

근데 아까 말씀하신 것 중에, 시인이 이미 도덕이랑 떠나있다고 하셨잖아요. ..좋은 시면 도덕적이지 않다고 하셨나?

 

정민샘: 무관한.  

 

 근데 시에 좀 제대로 미쳐보지 않으면, 시의 본질에 대해 잘 알 수 없는 그런 부분이 있어요. 나도 미쳐 본 건 아니고, 미쳐본 시인들의 얘기만 읽어서.

 

이런 사람들 있잖아요? 베를렌느와 랭보.

아니면 낭만주의 시인들. 셸리.

그런 걸 낭만적인 시인이라고 얘기하잖아?

 

소영: 그건 낭만적인 시인이고.

 

정민샘: 그럼 낭만적이지 않은 시인들?

 

소영: 그런 게 이미 도덕성이나, 시을 떠난 그 사람의 삶의 도덕성이나, 파의 구분이나 그런 게 이미 다 들어가 있는 건데.

 

정민샘: 이걸꼭 굳이 우리가 생각하는 시인 개념으로 보지 말고, 문화적인 유형으로 한번 생각해보세요.우리 사회에서 이런 시인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내 생각에는 드라마 작가가 가까울 거 같아요. 그런데 드라마작가 뿐만이 아니야. 뭔가를, 만들고 지어내는 사람들.

 

윤대녕 같은 사람들이 작가로 대접받고 있다는게...

 

막장. 막장이란 표현을 썼는데, 드라마는 막장인 줄 알고 보지만, 윤대녕은 막장인 줄 모르고 읽는다고.

 

 

소영: 그런 건 위험성일 뿐이지, 그게 전부가 아니잖아요.

 

정민샘: 근데 내 생각에는 그게 윤대녕이 호소할 수 있는 본질이야.

 

소영: 아니 그 사람만이고.

 

주희: 도덕에 대한 혼란 그런 거?

 

정민샘: 그렇지. 호메로스를 얘기하는 거예요. 호메로스만한 시인이 고대에 어디 있어. 고대 근세를 다 털어도. 플라톤이 호메로스를 주타겟으로 하고 있는 거에요,

이걸 잘 이해해야 돼. 플라톤 이게 단순한 놈이 인물이 아니야. 플라톤 자신도 비극 경연대회에 나갔거든? 근데 실제로 작품을 출품한 건 아니고, 작품을 들고 디오니소스신전으로 가는 길에 그 앞에서연설하고 있는 소크라테스를 처음 만났어. 그에게 감화되어서 자기의 비극을 다 찢어버리는.

근데 죽을 때 아리스토파네스가 머리맡에서 나왔다는 건 뭐야.

이게 음, 플라톤이 단순한 인물이 아니야.

플라톤이 정말 이를 갈고 죽일 놈이라고 공격하는 게 아니에요. 자기 모습일 수 있어. 이게 분명 뭔갈 복잡하게 하는 건데. 나도 분명 그런 생각을 하거든. 나도 막장을 좋아할 수가 있어. 그런 얘길 남이 써주기를 원할 수가 있다고.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비이성적인 해결. 그게 뭐든지 간에.

사람들이 그런 걸 바라잖아요. 위안이나 감동같은 거.

 

주희: 그게 뭐 잘못되었어요?

 

정민샘: 그렇지. 뭔가 잘못되었을까 생각하는데. 속이는 기술일 수 있다고. 조작된 감동일 수가 있어요.

그런 얘기하죠. 헐리우드식 감동스토리. 왜 그런 얘길 할까요? 사태에 대한 진실 그런 걸 숨기고 있잖아요. 일상의 피로에 대한 삶의 위안이나 그런 건 될지 몰라도..

얼마 안 남았어요, 끝내자. (계속)

 

 

 

 

2011/06/29 20:51 2011/06/29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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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샘: . 더는 나눌 수 없는 것.

 

 

아 근데, 여러분 플라톤 다른 대화편을 읽어보면 정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나눔의 방식을 쓰느냐? 이런 게 있어요. 소피스트의 대화편. 좀 후기대화편인데.

 

소피스트가 대체 어떤 사람이냐. 대상이냐? 정의 내리기 위해서 이 방법을 쓴다고.

 

뭐부터 쓰는지 아세요? 낚시. 소피스트는 사람을 낚는다. 이것도 나눔이야.

 

 

소영: 성경에 나오는데

 

 

주희: 나도 그 생각 했는데

 

 

정민샘: 성경이 플라톤을 갖다 쓴 건지 몰라. 그런 거 많이 있어요. 왠지 그랬을 거 같은..

 

 

소피스트를 그런 식으로..(나눔) 몇 단계 가요. 굉장히 복잡해요.

 

막 도표를 그리면서 가야 돼. 나눔이 몇단계로 진행이 되기 때문에, 어디서 갈라지고 이게 어디 밑에 있고.. 헷갈려요. 이정우 선생님이 쓰신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이 이 소피스트에 대한 대화편에 대한 책이에요.

 

 

이 소피스트가 재밌는 대화편이에요. 물론 후기로 갈수록 얘기가 어려워져요. 추상성이 막 높아져. 그런데 소피스트 이런 대화편은 물론 소피스트를 정의하는 그런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유물론에 대한 공격이 들어가 있어요. 실제가 뭐냐. 신족거인족이라는 게 그런 의미에요. ‘거인족이라는 사람들은 유물론자. 세계에 존재하는데 육중한 물리적인 뭔가를 가지고 있는 것만 존재하는.

 

신족은 뭐냐.

 

지금으로 얘기하면 이상주의자. 관념주의자?세계에 존재하는 건 신적인 영혼, 이데아 이런거야. 플라톤은 뭐 일거 같아요?

 

 

가영: 신족.

 

 

정민샘: 신족일거 같아? 그니까, 플라톤이 잘 빠져나간다니까.

 

 

가영: 영혼불멸은 뭐에요?

 

 

정민샘: 그니까, 이분법인데. 이분법을 극복할 수 있는 체계를- 체계라고 해야 하나 이론이라고 해야 하나.

 

 

실제를 파워라고 정의해요. 뭔가를 할 수 있는 힘. 물리적 대상이건 영혼의 힘이건.

 

 

주희: 그럼 권력은요?

 

정민샘: 이 파워는 권력이 아니지. 세계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힘이죠. 그 힘이 물리적인 대상에서 나올 수도 있지만.

 

 

소영: 의지?

 

 

정민샘: 응 그런 거일 수 있죠.

 

초기 대화편에는 이런 게 있는데. 도덕적인 사람과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 분명 차이가 난다는 거죠. 도덕이란 게 만질 수 없는 대상이지만, 그런 게 들어있는 사람과 들어있지 않는 사람과 뭔가 행동에 차이가 난다는 거예요.

 

 

소영: 아까 말한 태도가 힘, 의지 그런 걸로 나오는 거잖아요.

 

 

정민샘: 현실세계에서 뭔가 차이를 만들어내는. 그래서 도덕의 실재성을 주장해요.

 

 

초기대화편엔 그런 얘기가 나오고, 후기 대화편으로 가면 형이상학적 이야기가 되죠. 좀 전에 얘기한 유물론 관념론의 대비. 이런 게 낚시얘기하고 같이 나오는 거예요.

 

 

효주: 힘이 일정한 양이 있다고 보았나요?

 

 

정민샘: 플라톤의 세계관에 따르자면, 힘을 부여하는 최고의 원리라고 해야 하나. 그건 선의 이데아에요. 그것 때문에 이 모든 게 힘을 가질 수 있어요. 물리적인 존재조차도.

 

 

소영: 근데 그게 이성주의자랑 그것 사이의 중간이라구요?

 

정민샘: 그걸 그렇게 들으니까 또 이상한데. 궁해지는데.

 

근데 이 대화편에는 관념주의자와 유물론자의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둘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실제의 정의가 뭘까?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온 대답이, 실제성은 뭔가를 할 수 있는 힘에 있다고 해요.

 

 

효주: 왜 실제를 정의하려고 했을까요..?

 

 

정민샘: 왜 그랬을까, 실제 대화편을 읽어봐야 되는데.

 

 

소피스트 이런 사람들은 존재 자체가 좀 불분명한 사람들이야.

 

소피스트라는 기술이- 기술이 아니야 사실은. 연설술 이런 것도 기술이 아니지만. 뭔가 힘을 가진 원천이 아니라구.

 

소피스트가 소피스트의 기술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다른 기술을 빌어 와야 해. 그 자체에 힘을 가지는 게 아니거든. 어디서 가져올까? 연설술도 마찬가지. 말의 힘에 엄청난 뭔가를 두는 기술이잖아.

 

 

말이 어떻게 힘을 가질 수 있어? 다른 기술에 참여함으로서, 다른 기술을 빌어옴으로서 힘을 가질 수 있죠. 좀 이따 또 나와요.

 

그런 의미에서, 실제에 대한 얘기가 나와요. 딴 얘기가 아니라...

 

 

딴 얘기야 거의. 근데... 이런 걸 다 어떻게 이렇게 교모하게 갖다 붙였는지 모르겠어. 이런 나눔의 기술도. 굉장히 이상한 기술, 사람을 낚는 기술. 이런 걸로 시작해서. 거기다 나눔이 좀 복잡해져요. 후기 대화편으로 갈수록,.

 

좀 이따 또 나와요. 또 아까 나온, 진지한 태도, 철학 이런 거..

 

소피스트의 기술, 연설술은 왜 기술이 아닌가..의 문제도.

 

 

그래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영혼의 본성을 갈라서 알아낸 다음, 본성적으로 각각의 영혼에 알맞은 연설의 형태. 앞에 무슨 얘기가 나오느냐 하면,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들을 비판하는, 아니면 연설술 작성가, 뤼시아스 같은 사람들에 대한 강한 비난이 뭐냐? 영혼의 본성에 무지하다는 거지. 그러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은 영혼의 본성에 대해서 잘 아느냐? 그걸 위해서 앞에서 영혼에 본성에 대한 어떤 비유를 얘기하는 거예요. 그 얘기 했었잖아요. (말 끄는거)

 

 

영혼의 부분 중에서 그러니까 이성이 이제 통제할 수 있는, 기수죠.

 

그리고 말들 중에서, 좋은 말이 있고 나쁜 말이 있는데, 좋은 말은 하늘로 올라가려고 하고, 나쁜 말은 땅으로 쳐 박히는..

 

기수가 좋은 말과 나쁜 말을 잘 몰아서, 날아갈 수 있다고 했잖아요. 그게 물론 에로스에 대한 얘기도 되지만, 영혼의 부분에 대한 비유이기도 해요. 영혼의 부분에 대한 시적인 비유인데. 국가에도 이런 비유가 등장해요, 근데 좀 거대해지지.

 

영혼에 부분에 대응하는 사회 계층. 생산에 관계하는 부분과 전투에 관계하는 부분. 그리고 수호자, 가디언,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들. 각각이 영혼의 부분에 대응하는 사회 계층이기도 해요.

 

그런 식으로 영혼의 본성에 대해서 알고 난 다음에, 적어도 그런 식으로 나눔에 대해서

 

영혼이 대체 무엇이느냐에 대해 알고 난 다음에 연설을 해도 연설이 되지.

 

그러면 뤼시아스 같은 사람이 하는 건 뭐냐. 연설가들은 뭐가 중요해요?

 

 

주희: 설득하는..

 

정민샘: . 설득의 기술이잖아요. 근데 어떤 설득이죠?

 

 

주희: 본성에 관계없는..

 

 

정민샘: 맞아요. 영혼에 호소하는 설득이 아니잖아요.

 

 

가영: 개별적인 영혼을 다 고려하지 않고...

 

정민샘: 뭐 그런 거일 수도 있어요. 연설의 형태 자체가 일방적인 어떤 전달.. 그런 부분도 분명 있을 수 있어요 각각의 영혼에 적합한 이야기 방식이 있을 수 있는데... 연설은 그런 걸 고려할 수 있는 어떤 장이 아니죠. 그리고 또 다른건? 영혼에 호소하지 않으면 뭐에 호소해야 할까요?

 

 

소영: 권력?

 

 

리나: 정념?

 

 

정민샘: 맞아요 정념.

 

 










정민샘: 복잡다단한 영혼에게는 복잡다단하고 조화로운 말들을. 단순한 영혼에게는 단순한 말들을. 이렇게 적어놓으니 왠지 복잡다단한 게 좋은 거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아요. 영혼의 부분들이 이성의 주재 하에 통일되어 있는 상태가 좋은 거예요.

 

그렇게 보면 단순한 게 좋은 거예요. 말들이 지 갈길 막 가는 그런 상태는 좋은 상태가 아니에요, 사람이 좀 복잡하면, 그 복잡한 측면을 묶어줄 수 있는 그런 게 있어야 돼요,

 

그런 거 없이는 기술이라는 게 성립하지 않아.

물론 신발 만드는 기술, 성립할 수도 있겠지. 인간 영혼에 무지한 상태라면. 아니야 거기에도 그런 게 필요할지도 몰라. 인간의 영혼이 발을 어떻게 움직이느냐 같은..

 

 

효주: 필요할 거 같아요.

 

 

정민샘: 근데 이건 설득의 기술이니까, 청자의 영혼을 고려한 설득이 되어야지.

 

그리고 이제 63, 다음 단락., (148p)

 

 

연설을 말로 하거나 글로 쓰는 것이,. 이런 데서도 잘 드러나는데, 말과 글이 구분이, 꼭 문자와 발화의 구분이 아니라도 했잖아. 형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지는지. 그런 게 중요하다고 했죠.

 

연설이 말로 하든, 글로 쓰든 부끄러운 일이라는 거예요. 나중에 폴로스와의 대화에서 나와요. 연설술은 부끄러운 일이다.

철학이, 사람들이 이런 걸 부끄럽게 생각하게 해야 해.

 

 

리나: 사람들이 자기가 얘길 해놓고도, 연설술인지 자기가 제대로 말하는지 모르는 거 같아요.

애매모호하게 얘길 하면서, 애매모호하게 얘길 하는지도 몰라요.

 

 

정민샘: 왜 부끄러움이 없을까?

 

 

리나: 몰라서.

 

 

정민샘: 비난받아 마땅하네. 어떤 점에서? 연설술이라는 게 이런데도 쓰인다고 했죠.

 

물론 연설술 작성이 법률의 초안을 잡을 때- 민주주의 사회니까- 정치적 문서를 작성하면서 그 안에 커다란 확실성과 명석함.

 

그니까 글로 써놓은 법전보다 명확한 게 없잖아. 법률적인 처벌의 근거를 갖는데. 그렇게 생각을 하지만 그건 이미 말이, 글로 쓰인 말이 힘을 갖는다는 거지.

 

앞에서 그게 확실성과 명석함이 아니라고 했잖아. 영혼에 쓰인 말이 아니면, 확실성과 명석함을 가질 수 없다고. 143. 275c 문자로부터 무언가 명석함과 확실함이 생겨나리라는 생각, 플라톤한테는 순진한 생각이다. 그 명석함과 확실함은 쓰인 말에 있는 게 아니라, 영혼에서 나오는 말만이 명석함과 확실함을 가질 수 있는. 우리 그 얘기도 했잖아요. 고전역학 책에 쓰여진 수식들이 굉장히 확실한 무언가라고 하지만, 그 명석함과 확실성은 결국 갈릴레오, 뉴턴들의 영혼에서 나온다고 했잖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사람들의 영혼이 상기해 냈던, 종이위의 먹물에 자극을 받아서 다시 상기해내는 일이지. 그 안에서 명석함과 확실성이 생겨나는 거지, 글이 그걸 만들어내지 않는다고. 지난 시간에 얘기했는데~

 

 

가영: ..과연 그런가 싶어서..

 

 

정민샘: 과연 그런가? 법전도 마찬가지라는 거야. 몇 조 몇 편. 그거보다 더 명석하고 확실한 근거가 어디 있어. 법률관의 판단은 그 법전에 근거한 판단이죠. 판사가 됐던, 변호사가 됐건... 근데 그게 아니라는 거야. 그런 영역에서조차도 확실성과 명석함은 범죄자의 영혼, 그리고 사법관의 영역, 자기 영혼 안에서.

 

그 말에 대한 어떤 깨달음 같은 걸 이끌어내야지.. 법전에 근거한 사법 판결은 비난을 살만한 일이라는 것, 부끄러워해야 할 만한 일이라는 거야.

 

 

정의로운 것과 불의한 것, 나쁜 것과 좋은 것에 대해 무지하다면. 여기 이런 표현 있잖아요. 깨어있는 상태이거나 잠이 든 상태에서나. 우리 잠이 들면 정의 불의 나쁜 것 좋은 것 생각 안 할 거 아니에요? 근데 플라톤에게는 개인의 의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잠든 상태에서도 영혼이 참여하고 있는 정의의 이데아가 있을 거 아니에요. 영혼은 잠들지 않죠. 영혼이 잠들면 그건 죽은 이, 정말 죽은 거지.

 

온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칭찬한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라네.

 

 

정말 엄격한 법률에 의거한 판결을 온 세상 사람들이 칭찬해도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야. 이런데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과격한 측면이 있는데. 온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얘기해도 자기 이성에 따른 판단을 신뢰하는 거죠. 그래서 아테네 사람들과 재판에서 맞서잖아.

 

 

근데 이런 게 굉장히 낙관적이에요. 불행한 사태가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뭔가를 칭찬한다 해도, 내가 진짜 내 영혼에 쓰인 말에 따라서 다른 판단을 내릴 수가 있으면. 나하고 진정으로 대화하는 사람은 똑같이 비슷한 어떤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거거든.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서, 진짜 그 사람의 영혼을 바꿀 수 있는 무언가. 그러면 두 사람이 되잖아.

 

 

소영: 지금 그런 생각이 플라톤의 생각이라고요?

 

 

정민샘: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이야길 하죠.

 

두 사람이 또 대화를 하면 네 사람이 될 거 아냐.

 

세상 사람들의 의견, 속견에 따라서건 아니면 연설술의 힘에 의해서건-대중, 다수의 견해가 있다구.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아니야 그게 뭐가 중요해.

철학에선 결코 그게 근거가 될 수 없어요. 플라톤에게는 상식에 대한 무시가 있다고 했잖아. 아리스토텔레스는 상식을 존경하는 반면에.. 상식에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을 해.,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플라톤은 그게 아니야. 상식은 연설술이라든지 언론에 의해서 오도되기 쉽거든 굉장히.

 

 

소영: 근데 플라톤은 일대일 대화를 행동으로 옮기려고 했어요?

 

 

정민샘: 어떻게 했을까? 했겠지. 아카데미에서. 그게 자기가 공언하는 철학의 방법인데.

그건 대화를 통한 진지한 말이고. 글로 쓴 건 여가, 놀이라고 했잖아. 정원을 비유로 들었잖아요 앞에서. 아도니스의 정원. 재빨리 키우는 말이 있고 정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말이 있다고 했잖아.

  

그 말도 생각을 해보면.. 여러분 근데 파이드로스 이거 얼마나 걸린 거야? 한 장을 못 나가네. 우리가 네 번 모였나요?

 

 

가영: 세 번째.

 

 

정민샘: 이렇게 해서 진도 나가겠어요? 여러분 수업을 이런 식으로 한다고 생각해봐요. 한 학기동안 얼마나 할 수 있을 거 같애? 한 학기 동안 책 하나 하면 잘한 거지. 그러면 그게 대학이야? 여러분이 전공 지식을 습득할 수 있어요? 고전역학 이런 책은 훨씬 더 두꺼운데. 한 학기동안 고전 역학만 하는 것도 아니잖아. 물리학과 가면 별거별거 다 들어요. 고전역학. 통계물리, 전자기학, 수리물리, 열물리, 양자역학...

 

그걸 어떻게든 머리 속에 주입을 해서 내보내야, 화학과든 화학교육과든 제대로 교육한 거 아니야.

 

주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가영: 주입을요? 시험을 치면 돼요.

 

정민샘: 시험은 뭘로 치지?

 

 

리나: 문자. .

 

 

정민샘: 답안을 쓰잖아. 답안 정보 밖에 교수에게 안 가잖아. 물론 오랄 테스트 같은 게 있을 수도 있어요.

 

 

 

가영: 근데 그것도 별 차이 없는데..

 

정민샘: 별 차이 없어요? 미리 답안이 있어요?

 

가영: 고등학교 때 구술 준비하면, 다 있어요.

 

정민샘: 왜냐? 그게 빠르니까.

 

실제로 면접에서 그 사람의 영혼과 대화한다고 생각해봐. 그게 면접인가. 철학적 대화지.,

 

그렇게 해서 안 돌아가는 현대 사회 자본주의 시스템의 부분들이 있잖아요. 빨리 빨리 사람 뽑아서 일 시켜야지. 언제 철학적 대화를 하고 있나, 전공이라는 것도 문자로 된 광대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집어넣어야지. 물론 분명히 효율적이에요. 우리가 대화로 몇 시간 해도 몇 페이지 못하는 걸 일방적으로 책을 통해서, 답안을 통해서 가르치게 되면 온갖 진도를 나가기 쉬운데.. 뭔가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아 근데 또 지식이라고 하잖아. 물론 그걸 현대사회에서 지식이라고 하지. 아도니스의 정원? 그거 알면 뭐해. 여기서 뭐가 나와요? 고전역학 보면 뭐가 내용이 많잖아. 아도니스의 정원이 그런 비유도 돼요. 축제 같은 걸 위해서, 원래 여덞달 걸릴 일을 8일 만에 끝내.

 

 

효주: 예전에 중국에 관한 기사를 본 적 있는데, 정치적인 행사를 하나 봐요. 외국에서 외부 인사들이 온다고 마을을 정비해야 한다고, 나무를 심어야 되는데 심으면 오래 걸리니까, 산에다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거예요.

 

 

정민샘: 그런 게 자본주의일지 몰라요. 중국이 그걸 제일 잘 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아니야, 정말 진지한 거는 오랜 세월이 걸려, 지난 시간에 그런 것도 했잖아요. 그런 표현이 나오죠.

 

가영씨 한번 읽어주세요.

 

 

가영: . 주체 자체와 관련하여 이루어진 오랜 교유와 공동생활로부터, 예컨대 튀는 불꽃에서 댕겨진 불빛처럼 갑자기 혼 안에 생겨나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길러내기 때문입니다.(7서한)

 

 

정민샘: 영혼에 호소하는 그런 말, 글로 쓰인 말이 아니라.

 

 

교유는 아마 교류.. 아니 교유한 단어는 처음 들어보는데.

 

노는 거야 노는 거. 우리도 많이 놀았잖아요. 크리스마스에도 놀고, 우리 집에 와서도 놀고.

 

 

주희: 선생님은 공부가 더 좋다면서요.

 

 

정민샘: 공부가 노는 거지. 그니까, 놀아야 뭘 알거 아니야. 영혼을. 얘가 도대체 뭘 좋아하나 같은.

 

심지어는 공동생활, ‘수유 너머같은. 거긴 진짜 공동생활이야.

 

 

(다시 돌아와서 149쪽)

 

반면 글로 쓰인 말은 놀이이자, 진지하게 고려할만한 대상이 아니야.

 

글로 쓰인 중에 제일 훌륭한 것은 무엇이냐. 상기의 수단이죠. 이미 앎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정의로운 것과 아름다운 것과 좋은 것에 대한 가르침, 배움...참으로 영혼 안에 쓰인 말. 그것만 진지하게 받아들일 가치가 있다...그런 종류의 말들은 말하는 사람의 적자..

아까도 이런 말이 나왔죠.

아비가 있고 적자가 있고 서자가 있는데, 아비의 적자가 영혼에 호소하는 말이고 아비의 서자가 글로 쓰인 말.

 

먼저 어떤 말이 발견되어 말한 사람 안에 들어있다면, 그 자신 안에 있는 말, 그 말이 그렇고 그 다음 그 말의 자손들이자 형제들로서 어떤 말들이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다른 영혼 안에서 가치 있게 자라난다면.

 

불꽃처럼 댕겨진 그 말이 똑같이 자라날 거 아니에요. 영혼에 호소하는 말을 들은 다른 영혼이. 이런 것도 아름다운 표현인데.

 

 

다른 말들에게는 작별을 고하고 떠나보내야 하네. 그 말들 말고는 가치 있는 말이 없어. 바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나와 자네가 우리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기원하는 그런 사람일 것이네.

  (계속)

 

 

2011/06/29 20:09 2011/06/2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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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다슬기







정민샘: 잠시 얘기가 샜는데, 용기란 걸 정의하기 위해서 두려움과 앎을 끌어들여왔잖아. 이건 자체로서 정의한건가? 어때요?

 

 

소영: 그렇게 따지면 다른 것도 다 그런 식으로 말할 것 같아요.

 

 

정민샘: 그럴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변과 도형의 정의. 삼각형은 세 변으로 둘러싸인 도형. , 삼이란 아이디어가 들어 있다구. 그건 어때요?

 

 

가영: 삼각형 안에 이미 3이라는 개념이 들어있지 않을까요.

 

 

정민샘: 음 심오한 생각이다. 그게 그 자체로서 정의하는 건데. 그런 게 플라톤이 생각하는 형상, 이데아에 속하는 것과 가까운 것들이거든. 사람마다 형태는 천차만별이여도 삼각형의 형상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잖아,

 

 

소영: 그런 건 정의하기 쉬운 거고, 도덕이나 덕 같은 건 정의 못하잖아요.

 

 

정민샘: 그렇지. 좋은 질문이에요.

그런데 플라톤은 도덕적인 덕목들도 삼각형처럼 그 자체로 정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 게 플라톤에게는 앎, 선의 이데아.

 

 

가영: 그런데 아까 용기가 두려워할 대상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대상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모르면, 용기에 대한 정의를 갖고 있을 순 없는 거예요?

 

 

주희: 모르면서 용기 있는 행동을 할 수 없어요?

 

 

정민샘: 그러면 아는 거야. 아는 정도까지만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다고.

 

 

소영: 그럼 아는 것의 기준이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네요? 아는 걸 모르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거네요.

 

 

정민샘: 그렇지. 맞아요.

 

 

소영: 자기는 스스로 몰라도 용기있는 행동을 할 수 있다고? 그럼 주변 사람들이 아는 거예요? 누가 안다는 거예요?

 

 

정민샘: 누가 아는 게 중요하지 않아. 앎이 가능하려면 이데아가 있어야 하잖아. 어떤 행동이 용기라는 이데아에 참여하는 한에 있어서 그 행동은 용기 있는 행동이고 또 참여한다는 행위가 결국 앎이기도 한데.

 

 

소영: 이데아에 참여한다고 생각하는 건 누가 생각하는 거예요?

 

 

정민샘: 플라톤이 생각하는 거지.

 

 

소영: 그걸 자기가 판단하는 거예요?

 

 

정민샘: 그걸 누가 판단하느냐구?

 

 

소영: 만약 플라톤이 볼 때, 어떤 사람이 용기 있는 행동을 했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자기가 생각하는 이데아에 참여하는 거라면서요.

 

 

정민샘: 아니, 플라톤의 이데아가 아니라. 이데아의 세계가 있다구.

 

 

소영: 그럼 이데아가 있는 건 누가 알아요? 저 같은 사람은 모르죠. 이데아가 뭔데?이러죠.

 

 

정민샘: 그런데 누구나 다 자기 안에 앎이 있다니까.

 

 

소영: 태어날 때부터 있는 거예요?

 

 

정민샘: 이미 어느 정도 어렴풋이 우리 안에 있는 그걸 끄집어내려고 하는 게 플라톤이 얘기하는 상기. 우리가 현실에서 굴러다니다 보니까 피곤해가지고 용기의 본질에 대한 개념을 잠시 잊었어. 그런데 이런 대화의 과정을 거쳐서 우리 안의 앎이 파득, 깨어나는 듯한 그게 앎이죠. 상기라는 게 잊어버렸던 걸 다시 기억한다는 의미.

 

플라톤 이런 사람들이 생각하는 앎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앎이랑은 달라요. 근대 철학에서 생각하는 주체랄까? 칸트 식의 초월적 자아 그런 걸 놓고 하는 얘기가 아니에요.

이런 부분들이 고대철학이랑 근대철학이 다른 부분이에요. 고대에는 개인의 자아라든지 주체 같은 개념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근대철학 들어와서 전면에 등장한 개념이죠.

 

 

주희: 선생님. 그러면 두려워하지 않는 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아는 것과 같은 거예요?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게 아는 거예요?

 

 

정민샘: . 덕이 앎이다. 거의 그런 말이에요. 어떤 이가 덕을 가지고 있다는 건?가지고 있으면 뭐해? 덕스럽게 행동한다는 거잖아,

 

 

소영: 그런데 아는 것과 행동하는 걸 너무 일치시킨 것 같은데. 알면서 행동하지 않는 것은 아는 걸 까먹은 것이다?

 

 

정민샘: 아는 게 아니다.

 

 

소영: 근데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는데 까먹은 거라면서요.

 

 

정민샘: 까먹는 게 아주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상기될 때까지는 잠재해 있는 거지.

 

 

소영: 맞는 것 같다. 듣다 보니...

 

 

정민샘: 이렇게 하나씩 플라톤 같은 사람들이 꼬시는 거야. 그런데 이런 걸 조심해야 해.

 

 

소영: 그럼 악행은 무조건 무지에서 오는 건가요?

 

 

정민샘: 그렇죠. 무지한 정도까지 악한 거죠,

 

 

효주: 그럼 플라톤은 사람들을 무지에서 일깨워주려고 했나요? 그걸 상기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좀 선택받은 사람의 개념으로 이미 악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을 했는지?

 

 

정민샘: 생각을 해보면, 무지한 게 완전히 무지한 게 아니잖아요. 다만 자기 안의 앎에 눈뜨지 못한 거일 수 있잖아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러면 왜 어떤 사람은 눈뜨고 어떤 사람은 왜 눈뜨지 못하는지? 왜 누구는 철학을 하고 누구는 몸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런 차이가 어디서 생길까요?

 

 

소영: 태도.

 

 

정민샘: 태도? 그럴 수 있어요.

 

 

리나: 태도의 차이는 왜 생기는 거예요?

 

 

정민샘: 응 그건 좀 이따가 얘기할게요. 그 차이가 나와요. 직접적으론 안 나오지만.그 얘길 할게요. 태도의 차이. 진지함, 철학, 지혜 사랑, 슬기 사랑..

 

 

(본문) 정의를 한 다음에는, 그것은 형태에 따라 나누어 더는 나눌 수 없는 것에 이르기까지 나아가는 법. 여기 주석이 있죠? ‘diairesis’ 나눔. 영어로 division 같은 건데.

 

매니아, 매니아에 여러 종류가 있다고 했잖아요. 광기를 몇 개로 나누어요?

미치는 상태가 일단 두 개가 있다고 했죠.

신적인 상태와 비이성적인 상태의 미침. 그런 게 나눔이죠. 근데 신적인 미침도 여러 가지야. 파이드로스 책 243. 신적인 광기의 여러 형태를 찾아보세요.

신적 광기에도 네 가지가 있어요. 신기가 내렸다고 하잖아. 이런 것도 미친 거야. 어떤 사람한테 신기가 내리지?

 

 

주희: 무당.

 

 

정민샘: 그래. 무당들이 신내림을 받으면 뭐하죠? 작두타고 점 봐주는데 그리스 시대에 다 있던 거야.

만티케. 접신 상태의 무녀가 신에게서 오는 뜻 모를 말을 발설하는 행위. 작두타면서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런 게 그리스시대에도 있었어.

 

그런 미침이 있고, 세 번째 미침은 무엇이냐? 영감. 뮤즈신의 신내림을 받아야해.그래야 제대로 된 시가 나오지 일상에서 바쁜 사람들에게 시가 나오나?

 


근데 이게 좀 이상해. 그런 나눔의 방식이 좀 인위적일수가 있잖아. 왜 꼭 네 개로 나누나? 왠지 비슷한 거 같으면 묶어도 되잖아. 다른 종류의 미침, 신적인 광기가 있을 수 잇잖아.

플라톤은 이렇게 얘기하는데, 정의를 한 다음에는 그것을 형태에 따라 나누어 더는 나눌 수 없는 것에 이르기까지 나아가는 방법.

이렇게 네 개로 나뉜 신적인 광기에서 더 이상 나눌 수 없을 것처럼 말하는데,

 

 

소영: 설마 그렇게..

 

 

정민샘: 설마 그렇게 플라톤이 멍청하지 않겠죠? 이런 식의 나눔이 인위적인 구석이 있다는 거 플라톤도 알아.

 

 

소영: 근데 나눔을 나누고 또 나누는 게 학자의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플라톤이 좋아하는 그런 지적인 사람들 즉 학자들이 나눌 수 없을 때까지 계속 나누어 줄 거 아니에요.

 

 

정민샘: 정말 나눌 수 없을 때까지 갈 수 있을까? 여러분 원자를 나누면 뭐가 되죠?

 

 

가영: 원자핵과 전자.

 

 

정민샘: 원자핵과 전자를 나누면?

 

 

가영: 양성자와 중성자.

 

 

정민샘: 원자는 더 작은 게 나오네. 전자는 못 나눠요? 나누면 더 작은 게 나올까요?

 

 

가영: 뜻은 나눌 수 없는 것이라는 건데..

 

 

정민샘: 그래 아톰이란 게 원래 그리스어로 원래 그런 뜻. 근데 나누었잖아. 그럼 이제 아톰이 아니지. 그럼 뭐가 아톰일까요?

제가 질문하고 싶은 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것이 원리적으로 있을 것 같아요?

 

이런 건 어때요? 예술에 있어 나눌 수 없는 형태 그런게 있어요?

 

 

주희: ?

 

 

정민샘: ? 점은 나눌 수 없어요?

 

 

주희: 이상적인 점.

 

 

정민샘: 유클리드가 그렇게 정의하는데 점은 부분이 없는 것.

유클리드식 정의에 따르면 선은 뭘까요? 폭이 없는 길이.

 

 

주희: 곡선은 직선이 아니잖아요.

 

 

정민샘: 폭이 없는 길이라는 게 선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인 것 같아. 직선은 다른 식으로 정의했는데 그 위의 점들이 나란히 놓인 것’. 이게 번역하기가 좀 어려워요.

 

 

주희: 그 자체로 정의했네.

 

 

가영: 그 자체로 정의한 거 같나?

 

 

주희: 응 뭐 다른 게 없잖아.

 

 

정민샘: 그런데 원래 나눌 수 없는 것을 물었죠.

잘 생각해보세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물리적인 세계에선 나눌 수 없는 게 없어요.

 

 

가영: 가령 조사하고자 하는 대상의 범위를 정할 때, 화학에서는 원자를 더 잘게 쪼갤 수도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물질 단위를 분자로 보잖아요. 만약 h2o가 더 잘게 쪼개지면 물로서의 성질을 잃어버리는 거잖아요. 물질의 성질을 갖는 최소 단위를 분자라고 보는데.

 

정민샘: 그렇죠. 만약 분자에서 더 내려가면 물리화학, 양자화학으로 가는 거지.

 

좋은 얘기에요. 어떤 주제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서, 그 주제에 적합한 최소한의 뭔가를 가정할 수는 있겠죠. 그런 식의 나눌 수 없는 걸 얘기하는 거예요.

 

좀 더 철학적인 이야길 하자면, 저는 물질세계에서는 나눌 수 없는 게 없다고 생각해요.

 

 

주희: 쪼개고 또 쪼개고 무한히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정민샘: 그렇지 신비한 세계야. 그 안에서 작은 세계가 무한히 열리는 거야. 이거 굉장히 고유한 내 생각이야.

 

 

주희: 선생님 그러면 물체가 연속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그런 생각 아니에요?

 

 

정민샘: 아니에요. 그런 생각도 아니에요. 레벨이 있잖아. ? 원자, 분자, 수준이 있잖아. 그 수준마다 적합한 어떤 말이 달라지잖아. 우리가 물리학에서 쓰는 그런 개념들과 이론이 있고, 화학에서 쓰는 이론과 개념들이 있어요. 그런 구조가 물리학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주희: 더 쪼개면 더 다른 게 된다는 그런 거예요?

 

정민샘: 그렇지. 뭔가 질적으로 다른 세계가 원자 밑에 또 있는 거야. 그 밑에도, 무한히..

 

주희: 이론적인 거 아니에요? 이론적인 대상...

 

정민샘: 그게 이론적인 대상이 아니냐고? 물리대상이라고 얘기하는 건데 지금.

 

가영: 근데 랩톤과 쿼크를 지배하는 규칙과 원자 수준을 지배하는 규칙이 많이 다르잖아요.

 

정민샘: 그렇죠. 그게 보여주는 게 있다고. 뭘 보여주느냐. 똑같은, 아니 똑같지 않지. 질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작은 세계에서 나오는 거야. 아래로 무한히 열린 세계.

 제 논문주제가 데이비드 봄을 주제로 한 건데, 봄이 얘기하길 우리가 마치 전체와 부분과의 관계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지. 옛날에 영국 속담이 있는데, 벼룩 위에 벼룩, 벼룩 위에 벼룩, 무슨 얘기인지 알겠어요? 벼룩 위에 또 벼룩이 붙어 있다. 근데 봄은 물리세계는 그런 구조가 아니라는 거야.

 

 

가영: 그니까 벼룩은 같은 벼룩인데..

 

 

정민샘: 맞아. 똑같은 그게 계속 반복되고 크기만 작아지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라 질적인 차이가 난다는 거야. 벼룩 위에 무슨 사람 같은 게 붙어있을 수도 있어.

 

 

소영: 객관적인 증명을 한건 아니죠?

 

 

정민샘: 증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과학의 어떤 진행 방향, 아니면 과학적 탐구를 하는데 있어서 가정해야 할 태도?

 

 

소영: 그럼 철학적인 건데, 증명할 수 없는 거면 철학적인 거잖아요.

 

 

정민샘: 그런데 어떻게 보면 또 그게 과학적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전자가 근본입자이라는 것도 증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거든.

 

 

클라라샘: 슈퍼 스트링 이론 보면 전자 같은 것도 끈으로 되어 있잖아.

 

 

정민샘: 그런 걸 증명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양자역학에서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대표적으로 이런 시도가 있어요. 숨은 변수는 없다는걸 폰 노이만 같은 사람들이 양자역학의 이론을 써서 증명을 해요.

숨은 변수는 없다는 얘기가 결국, 양자 세계 밑에 뭐가 없다는 거야. 양자세계를 결정해줄 더 미세한 구조 더 미세한 세계들이 없다는 것.

 

 

주 희: 증명이 있어요?

 

 

정민샘: 있는데, 가정에 문제가 있지. 증명이 그런 거야. 가정에 이미 이런 생각이 들어 있는 거야. 숨은 변수는 없다, 같은 비슷한 이야기가.

 

 

소영: 그럼 객관적이지 않은 증명이었군요.

 

 

정민샘: 그걸 객관적이지 않다고 하기는.. 순환적인 증명일 수 있다. 그걸 봄이 발견했어요.

 

 

소영: 그걸 또 증명했어요?

 

 

정민샘: 증명의 문제점을 찾아낸 거지. 그래서 그 증명이 이제는 안 받아들여지는데 한때는 이 생각 때문에, 양자역학에서 숨은 변수에 대한 오해가 많았지.

 

 

효주: 숨은 변수가 뭘 말하는 거예요?

 

 

정민샘: 지금 양자이론이 다루는 어떤 차원, 대상, 수준에서는 방사선 원소, 붕괴할 시점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거든. 거기에 대해서 통계적인 예측만 하지. 근데 분명히 붕괴하거나 붕괴하지 않거나 일거 아니에요.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죽거나 죽지 않았거나 일거 아니에요. 근데 양자역학 수준에서는 거기에 대해 확률적인 얘기밖에 하지 않는다고. 근데 고양이의 죽음을 결정해주는데 있어서 양자역학이 아직 찾아내지 못한 요인이 있을 수도 있잖아. 방사선 원소가 분명히 어떤 시점에서 붕괴할 거 아니에요. 방사선 원소의 붕괴시점을 단지 확률적인 예측이 아닌 지금 양자역학보다 더 정확하고 자세히 얘기를 해줄 수 있는 그런 차원.

현재 이론이 다루는 수준에 비해서 숨어있다는 거예요. 그 차원에서는 보이지 않죠.그 차원에선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과학 탐구를 더 진행해 나가면 알게 될 수도 있는 거죠.

고양이의 삶과 죽음. 방사선 원소의 붕괴. 그건 어떻게 보면 숨은 변수가 아니거든.왜냐면 그런 것들을 결정해주니까.

 

 

리나: 결정해주니까, 숨은 변수가 아니라고요?

 

 

가영:  우리가 그걸 잘 모른다는 의미에서.

 

 

정민샘: 그렇지. 현재 양자이론이 다루지 않을 뿐이지 숨은 변수에 따른 효과가 분명히 나타나잖아. 그러면 더 이상 숨어있다고 말할 수 없죠. 그런 의미에서 현재 물리이론이 다루는 수준이나 대상이 상대적이라는 거예요. <계속>

2011/06/08 08:23 2011/06/08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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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416_다슬기 in 생각실험실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덧글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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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샘: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내가 그 얘기 중에 하고 싶은 얘길 하나 빠뜨렸는데.

그런 생각해보셨어요? 문자가 문자를 낳는다는 말. 문자가 문자를 낳을 수도 있잖아요.

학자들이 무슨 일을 해요? 하는 일의 본질이 뭐야?

 

주희: 글을 쓰다보면 글이 글을 낳아요, 처음에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정민: 그러니까, 학자들은 책을 읽잖아요. 그게 인풋이에요. 아웃풋은 뭐에요? 저서나 논문을 쓰는 거예요. 그게 학자의 활동의 거의 전부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글 말고 다른 게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잖아요. 물론 내가 강의를 하고 할 수 있고 세미나를 할 수도 있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 학계에서 인정받는 것은 그가 어떤 논문을 인용해서, 어떤 논문을 쓰느냐 그런 걸로 학자의 업적이 평가받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학위논문을 쓸 때 이런 말이 있어요. 박사학위 논문은 시간이 좀 걸려요. 아무리 못해도 1년 정도 써야 해. 그런데 그렇게 쓴 박사학위 논문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누가 읽어? 지도 교수가 읽어주면 행운이에요. 


가영: 안 읽어줄 수도 있어요?


정민샘: 안 읽어줄 수도 있어. 이거 읽는 사람은 얼마 안돼요. 자기가 쓴 부분들을 따로 출판하지 않는한.. 그래서 그런 우스개 소리가 있었어요. 박사학위 논문이 도대체 뭐냐는. 

이거 영어 표현이 있는데, ‘무덤에서 다른 무덤으로'.

이게 무슨 비유인지 잘 생각해봐요. 학위 논문에서 인용하는 논문들이 있을 거 아냐. 이미지들을 생각해봐. 그 뼈들을 긁어모아가지고 대충 얼기설기 자기 논문을 만들어.

 

모두: ~..

 

정민샘: 그걸 또 다른 누군가가 얼기설기 긁어가가지고 인용을 할 수도 있겠죠. 한번 잘 생각해봐요.

다른 비유를 들자면 우리가 예전에 <이기적유전자> 할 때. 거기에 따르자면 개체라는 게 유전자가 자신을 복제하기 위해서 이용하는 어떤 수단이잖아요. ‘닭과 달걀같은 비유. 닭이 또 다른 달걀을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 .

거기서 또 어떤 비유가 있었냐면, 학자들이 뭐냐, 도서관이 또 다른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서 이용하는 수단. 이런 비유들이 이해가 되요? 예전에 다 했던 건데.

이 두 가지 비유는 다니엘 베니트같은 사람이 도킨스 이론을 설명하면서 쓴 비유인데, 그러니까, 도서관은 거의 영속할거 아니에요. 고대부터 알렉산드리아의 유명한 도서관 있잖아요. 그런건 몇백년씩 간다고. .미국대학에도 몇백년 된 책들이 있거든요. 학자들은 뭐야? 거쳐 가는 거죠. 그런 문헌들을. 그리고 자기 족적을 문헌으로 남기잖아. 그러니까 거의... 좋은 표현이 '수단' 말고 뭐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런 비유를 하나로 모아서, 책이 쓰인 말 즉 글이 또 글을 내지 않느냐? 왜냐하면 그게 어떤 의미에서 생산성이 높을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글 말고 나의 말들을 모아서 내 말을 만들려고 생각해봐요. 그러면 플라톤 같은 사람들의 말은 책을 안 보면 어디 가서 들어요? 플라톤의 몇 십대 제자? 같은 사람이 살아있으면 들을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한번 해보세요. 말은 쓰인 좋은 말이 아닌가. 말은 실제로 이런 대화, 플라톤이 생각하는 그런 철학적 방법을 통해서 쓰인 형태로 습득하는 거라고. 그런데 그게 얼마나 어렵고 피곤한 일인지. 또 그렇게 얻을 수 있는 지식은 굉장히 제한될 거 아니에요. 시공간적으로 우리가 갈 수 있는.. 물론 지금은 비행기타고 다녀오면 되지만..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제한되니까. 쓰인 형태가 아니면 철학자들의 생각을 어떻게 주워들을 것인가. 이거 생각해봐야 해요. 플라톤이 이렇게 술술 넘어가면서 여러분 그대로 설득이 되면 안돼. 플라톤은 지금 문자비판이에요.

근데 플라톤은 어떻게 보면 쓰인 형태로 나올 수 있는 어떤 소득을 평가 절하하는 거지.

 

리나: 그런데 플라톤 당시에는 얻으려 한게 없어서 그런거 아니에요? 지금 우리는 고전이 엄청 많잖아요,,

 

주희: 플라톤 당시엔 고전이..

 

정민샘: 고대를 너무 무시하지 마세요. 내가 데카르트 수업을 하는데, 데카르트가 무슨 자동기계라는 걸 만들어요. 사람형태와 비슷하게 움직이는 건데.. 근데 학생들이 그 시대에 그런 게 가능했는지 질문하더라구요.

그런 건 고대에도 가능했던 거죠. 헤몬? 이런 사람이 유명한 고대의 기계제작자에요. 웬만한건 고대에 다 있었어요. 자동판매기, 시간 알려주는 기계 같은거. ? 파피루스, 롤들이 많이 돌아다닌다구,

지금 없는 책들도 많아요. 없는 책이 더 많지, 예를 들면 아리스토텔레스같은 경우는 저작이 약 3분의 1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지금 생각하거든요. 아리스의 고대 저술 목록이 있는데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게 그 정도밖에 안 돼요. 지금 아리스토텔레스도 굉장히 방대한데. 당시에 그런 책들이 있었다는 거잖아.

조금 있다 또 얘기할 거지만, 소크라테스에 대해서도. 플라톤 시대에 플라톤 말고도 글을 쓴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다 안 남아있고.. 유일하게 남은게 플라톤하고 크세노폰이에요. 크세노폰이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향연 둘 다 썻어요. 둘다 플라톤에 있죠.

 

리나: 둘이 어떤 차이가 있길래 크세노폰은 안 알려져 있어요?

 

정민샘: 많이 안 알려져 있지만 고전하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

둘이 어떤 차이가 있느냐. 똑같이 소크라테스를 보면서, 플라톤이 보는 부분이 있고 크세노폰이 보는 부분이 있는데.. 물론 크세노폰도 고전이면 고전인데..

 

주희: 우리도 리나편, 가영편, 이렇게 하나씩 만들까..

 


정민샘: 62. 파이드로스.

 

이런 점들에 대해 동의했다면, 이 영혼에 쓰인 말이 정말 불멸한 말이라는 것에 동의했다면, 앞서 말한 점들을 결정할 수 있는.. 원래 이 대화편이 뤼시아스의 연설에서 시작했다고 했잖아요.

 

뤼시아스의 연설을 파이드로스가 숨기고 있었는데, 소크라테스에게 발각되어가지고. 결국 그걸 있는 걸로 시작을 했는데. . 뤼시아스에게 가해진 비난, 소크라테스가 또 자기의 연설을 하죠. 146, 147.

기술에 맞게 글로 쓴 연설, 기술 없이 쓴 연설들. 

이게 무슨 차이일까요?

 

주희: 무슨 기술요?

 

정민샘: 무슨 기술일까요, ~ 아쉽게 원래 마지막장을 프린트해야 했는데, 딴걸 했어. 원래 그리스어는 테크네. 라틴어로는 아르스. 오늘 우리는 테크네를 들으면 테크놀로지를 생각하지만, 그리스에선 범위가 좀 넓어요. 모든 전문적 지식 활동이 필요한 영역은 모두 테크네에요. 뭐가 있을까요?

 

주희: 예술?

 

정민샘: 우리가 지금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도 다 테크네죠.

 

가영: 뭐 만드는 거?

 

정민쌤: 맞아요. 제작. 그런 게 제일 좋은 예에요. 연설문, 뭔가 만들어지잖아. 생산품이 있잖아.

근데 이게 지금 의미가 좀 이상하게 되었는데, 보세요. 원래 테크네, 라틴어 아르스란 말이에요. 현대에서는 아트도 있지만, 테크놀로지가 있잖아요. 완전히 다른 거 아니에요? 어떻게 생각해요.

 

가영: 둘 다 만들긴 하는데..

 

정민샘: 아트도 분명 그런 의미로 쓰일 때가 있어요. 좀 추상적인 의미로. 꼭 순수미술만 말하는 게 아니라, 기술 일반. art of writing 이런 식으로. 기예같은 표현을 보면, 또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이런 책. 여기서 기술은 art에요.

 

그래도 좀 이상하잖아. 이 기술이란 단어 자체가, 원래 의미를 잘 '못' 담아서 그래요. 원래 기술이란 말이 과학 기술쪽의 의미로 많이 사용되니까..

근데 나중에 고르기아스에 나와요. 소크라테스가 생각하기에는 레토릭은 기술이 아니에요. 테크네가 아니라구.

 

주희: 왜요?

 

정민샘: 왤까요.

 

리나: 생산적인 게 없다고 생각하니까.

 

정민쌤: 고르기아스에서 그 질문 생각나요? 리나씨가 쓴데 있는데. 그 기술이 뭔지 알고 지금 싶어 하잖아.

 

리나: 아 보통 신발 만드는 사람은 신발을 담당하는데..

 

정민샘: 그렇죠. 신발 만드는 사람은 신발이 있는데. 이건 좀 애매하단 말이에요. 굉장히 좋은 거라고 얘기는 하는데. 그니까 연설의 기술, 똑같이 테크네에요. 기술의 힘. 기술을 가르칠 경우에는 무슨 기술인지.

 

주희씨: 기술이라고 하기엔 좀 정체성이 없는 거에요?

 

정민샘: 그 얘기가 파이드로스에 나와요. 어떻게 하는 것이 기술에 맞는 것인지.. 안 읽었구나.

 

모두: (ㅎㅎㅎㅎㅎ)

 

정민샘: 그러니까 이런 거 그냥 읽으면 안 돼. 질문을 자기가 해가면서. 자기가 어떤 대화에 '참여'하면서 읽어야지. 그래야 이런 질문이 나와도 자기가 대답할 수 있지.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정말 기술이 뭔지를 얘기하는 건데. 꼭 기술에 맞는 연설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진정한 expertism. 기술, 이 말 어려워. 뭐 좋은 우리말 없을까? 영화에선 expertism 그렇게 번역하기도 하거든요. 보통 그럴거에요. 이렇게 번역해요. 전문성?

expertism이란게 뭐냐. 주제가 되는 것들 하나하나에 대해 그 진상, 가상이 아니라 진상이란 뜻이에요, 진상을 알고 모든 것을 그 자체로서- 이게 플라톤식 표현인데, 영어로는 ‘in itself’. 예전에 <파이돈> 할 때 많이 나왔어요.

 

가영:

 

정민샘: 연설술에서 주제가 되는 것들이 있죠. 그러면 그 대상의 본질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인데. 연설술은 이런 측면이 있다고 했죠. 대상을 몰라도 더 많이 아는 것처럼 포장할 수 있는 기술이 연설술이잖아요. 고르기아스에서 재밌는 얘기가 이따 나오는데... 이걸 지금 할까? 나중에 할까? 지금 하면 재미가 없는데..

그니까 연설술 자체는 주제가 없는 거잖아요, 그건 거의 말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이죠. 물론 연설하는 사람들이 물론 주제를 정해놓고 하지만, 연설 잘하는 사람들은 말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어떤 주제를 가지고도 말을 잘 하는 사람들이잖아. 그런데 적어도 expertism.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기술이 되려면 대상에 대해 알아야해. 대상의 본질에 대해서. 이게 말이 쉽지. 쉽지 않지. 우리가 아는 것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게 아니니까. 우리가 삶에서,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아는 것처럼 얘기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구. 리나씨는 찔리나, 왜 웃어?

 

리나: ㅎㅎ 동생한테 얘기할 때.

 

정민샘: 그것에 대해 알려면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나, 그것의 정의를 알아야 하거든

 

플라톤 대화편 중에 주로 정의에 대한 대화편이 많죠. 주로 추상적인, 주로 덕, 용기, 정의justice 사랑, 같은 개념들을 정의하려고 하잖아. 그 개념들의 정의를 찾아 나서는 과정인데. 실제로 그 개념을 정의하는가? 중간중간에 개념에 대한 굉장히 통찰력있는 생각을 던지는데. 결코 최종적인 견해가 아니란말이에요.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임시적인. 분명 그런 불완전성이 있으면서도, 중간중간 던지는 정의들이 굉장히 참신한 대화편들이 많죠.

 

아무튼, 그 자체로서 정의한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가영: 다른 것을 끌어오지 않는다.

 

정민샘: 그런데, 정의라는 것이 다른 것을 끌어오지 않을 수 있어요? 정의를 한다고 생각해봐.

 

가영: 어려울 것 같아요.

 

정민샘: 그러니까. 뭘 정의하지? 그런 추상적인 개념들-주로 도덕적인 것들. 용기, 덕 같은 거? 용기가 뭐냐? 어려운 말. 진짜 용기가 뭐냐? 소크라테스는 뭐라고 했을 거 같아요? 용기에 대한 대화편이 있거든? 당시가 전시(戰時)잖아요, 펠레폰네소스 전쟁.

 

리나: 전쟁에 반대하는..

 

정민샘: 보통 플라톤의 대화 상대자들은 이런 식의 정의를 내겠지. 전쟁에서 도망가지 않는 것. 죽어야 할 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죽어야 할 때 죽는 거. 용기를 정의하기 위해서 두려움이란 말을 끌어왔잖아요. 용기에 대한 소크라테스식 정의는 뭘까요?

 

주희: 아는 걸 밝히는 것.

 

정민샘: 아는 걸 밝히는 것? 소크라테스는 보통 주지주의자라고 해요. 이 사람에게는 앎이 가장 중요해. 모든 도덕적인 가치, 덕행, 덕목들의 배후에는 앎이 있어. 그러나 용기는 뭐에 대한 앎일까요?

좀 전에 두려움을 얘기했는데. 두려워할 대상과 두려워하지 않을 대상에 대해서 아는 것이 용기에요. 그의 정의에 따르자면 그게 전쟁에서의 죽음이건, 소크라테스 자신의 죽음처럼 감옥에서의 죽음이건 죽음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죠. 그걸 아는 게 용기.

 

주희: 알아도 두려우면 안 돼요?

 

정민샘: 그니까, 그건 아는 게 아닌 게 아니란 거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운 거야. 그래서 주지주의가 되는 거야. 아는 만큼 두려움이 없어야 해,

 

주희: 감정이 그만큼 맘대로 통제될까요.

 

정민샘: 어렵죠. 어려운 얘기에요. 죽음 앞의 두려움 때문에....

파이돈 때가 생각이 나는데, 그 두려움 때문에 관련된 뭔가가 많다고 했죠.

여러분 죽음이 두려우면 무슨 짓을 할까?

 

리나: 방에 꼼짝없이.. 아니면 종교로 가요.

 

효주: 삶의 환희들을 쫓을 거 같아요.

 

정민샘: 음 그런 얘기가 파이돈에 나와요, 쾌락추구. '어차피 죽을 건데'라는 것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들어가 있는 거야. 희한한 짓들 많이 하지. 특히 독재자 같은 사람들. 진시황. 뭐했는지 아세요?

 

주희: 불로초 구하고..

 

정민샘: 맞아요.

 

주희: 나중에 수은 먹고 죽은.. 걔 아니에요?

 

정민샘: 그걸 불사의 약으로 알고 먹었다는 거야?

 

주희: 도교에서 수은을 불사의 약으로 알고 있어서, 그걸 먹고 중독되어 얼굴이 하얗게..

 

정민샘: 병마욕? 이런 거 지하에 건설하잖아. 지하에 엄청난 군대를.. 그래서 좋은 건, 고고학자들밖에 없어요. 진시황한테 좋은가?() 김정일 이런 사람이 하는 거 생각해봐요. 북한에 김정일 부자를 위한 건강 연구소 그런 게 있대요. 둘의 체질이라던지 연구하기 위한 박사급의 사람들을 수천명을.. 이게 얼마나 자원의 낭비야.

? 단순해요 사실. 죽는 게 두려우니까.

지금 이렇게 권세를 누리면 뭐해. 어떻게든 생명을 연장해서 조금이라도 현세의 쾌락을 많이 누릴 수 있게.

정확히 파이돈 부분이 기억은 안 나는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몸에 대한 애착, 내지는 그런 게 결국 같이 간다고 해요. 그리고 몸에 애착을 가지게 되면, 돈에 대한 애착으로. source가 결국 뭐냐 하면, 결국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거야.

 

리나: 건강과 관련 있어요?

 

정민샘: 음 건강은 그 자체로 사실 좋은 건데. 뭐의 건강인지 생각해보세요. 몸이 건강하려면 정신이 건강해야지. 정신을 먼저 돌봐야 몸을 돌보죠.

 

주희: 운동을 하다 보면 정신이 건강해지는 그런 것도..

 

정민샘: 그런 것도 맞는데. 분명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몸이 건강한 사람 중에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 많거든. 운동 선수들. 대체로 생각하는 게 건전해요. 야구선수들 보면 정말 기분 좋은 선수들 있어요. 그런 힘이 어디서 나오냐? 건강해야 힘이 나올 거 아냐. 운동선수가 보여주는 삶의 자세, 생각해보세요.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단순히 몸의 기술적인 완벽함에 대한 열광이 아니라고. 그 기술적 완벽함으로 위해 필요한 삶의 자세. 장미란 같은 선수들 있죠. 이런 걸 생각해보세요. 거의 수련이야. 굉장한 수련이죠.

그거에 비하면 공부는 개념놀이잖아. 이거 별거 아닐지도 몰라요. 공부도 분명 몸의 수련이긴 한데.. 책상머리에 앉아 있어야 해.

 

리나: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게 제일 힘들어요. 운동선수들 보고 책상에 앉아 있으라고 해보세요. ㅎㅎ

 

정민샘: 상대적인거에요?() 뭐 한 쪽의 우위를 두고 싶지 않아요. 둘 다 동일한 인간의 가능성의 발현, 에 관한 건데... 어쨌든. 운동이건 공부건 필요한 삶의 자세. 평소의 자기 관리가 굉장히 중요해요.

야구는 밸런스가 있는데, 밸런스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감을 찾기가 힘든가봐. 한 때 반짝하는 선수들은 많은데 유지하기가 어려운거야. 물론 부상같은 이유도 있지만 미묘한 감각- 공 받고 받아치는 게 조금만 흐트러져 버리면 다시 회복하기가 힘든.. 어릴 때부터 했던 건데도, 이런 차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런 거 보면 그런 부분이 분명 있다는 거죠. 자기관리. 그리고 여러분 좋아하는 연예인들이 있겠지만.

 

소영: 저도 그 얘기하려고 했는데. 소녀시대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정민샘: 맞아요 딴따라같은 말로 안 좋게 얘기하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얼마나 피나는 삶의 과정이에요. 잠도 제대로 못자고, 유지하려면..

 

소영: 사과 하나 먹고.. 한끼가 막 사과...

 

정민샘: 그게 자기가 원해서..는 왠지 아닐 것 같고. 기획사나 인기에 편승해서? 그렇게도 얘기할 순 있겠지만, 거기에도 인정해 주어야하는 자기관리의 부분이 들어가는 거 같아요.

(계속)

 

2011/05/28 17:19 2011/05/2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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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샘: 플라톤의 그런 강의가 있어요. 예전에 그런 말을 했는데, 선에 대한 강의. 플라톤 저작에는 없거든? 선의 이데아에 대해 떠들긴 하지만, 선의 이데아가 뭔지는 얘기 안 한다고. 정의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로 규정하지만 정말로 뭐냐? 플라톤이 얘기하는 선과 정의. 진짜 얘기 안 해. 그걸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지. 사람들이 플라톤이 드디어 제정신을 차리고, 저술에서 안 밝힌 자기 얘기를 하려나 보다, 하고 구름처럼 운집했어. 드디어 플라톤의 강의 시간이 돌아왔어. 플라톤이 입을 열어서, 이런 주제를 얘기하는 거야. 천문학, 기하학. 우리 시대라면, 과학이겠죠. 선의 이데아를 얘기한다고 하면서, 과학 얘기로 빠지나? 저 끝에서 분명히 얘기를 돌려서, 선으로 가려나 보다, 사람들이 기대했는데, 근데 끝났어. 천문학, 수학에서. 선에 대한 강의가 그렇게 끝났어. 사람들이 실망해서, 들은 거라곤 알아들을 수 없는 천문학, 기하학 얘기. 지금이나 예전이나, 어렵잖아. 수식들. 이런 얘기가 전하는데 --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해요.

한 가지 해석은, 플라톤이 선의 이데아라고 얘기하는 게, 어떤 수학적인 앎. 어,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둘이 연결이 되네? 불꽃이 팍 튀었어. 뭐냐? 수학적인 인식이 선의 이데아에 가깝다는 거지, 경험적인 인식보다. 왜? 수학적인 인식은 자기 안에서 나오니까. 그러기 때문에, 말로 전달될 수 없어. 자기 안에서 이끌어내지 않으면. 자기가 실제로 증명하고, 유도하는 그런 힘을 기르지 않으면, 수학적인 인식이 가능하지 않잖아. 그런데 그게 수학적인 인식의 전부야. 자기 나름대로 추론을 할 수 있는 능력. 수학적인 대상은 자기가 만든, 자기가 부여한 것. 칸트할 때 그런 얘기 했잖아. 자기가 처음에 부여한 것만 거기서 끌어낼 수 있는. 칸트는 그걸 자연과학까지 확장해서, 물리학의 법칙이라는 것도 자연에서 끌어내는 게 아니라, 우리의 지성이 처음 부여한 것. 갖다 덧씌운다고 했잖아. 그런 얘기가 Prolegomena에 있다고 했잖아. 장회익 선생님 칸트할 때. 우리 안에서 이끌어 나올 수 있는 말이니까, 그 말은 전달될 수 없는 말이지. 밖에서 들어올 수 없어.

우리 안에서 생겨난 게 어떻게 밖에서 들어와? 일종의 기하학적인 비유이긴 하지만, 그런 표현을 예전에 했잖아요. 안에 있지 않으면 들어가지 않는다. 이 말은 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말이지. 공기의 진동이 귀를 통해서. 그 말은 영혼에 들어갈 수 없어. 여러분 영혼에 불꽃이 팍 튀지 않으면. 이 말을 하는 순간 어떤 계기가 되어서. 일종의 예정조화처럼. 이런 말이 물리적인 세계에서 공기의 진동으로 떠돌다가, 여러분 영혼의 자체의 진행(?) 원리에 의해서 팍! 하고 불꽃이 일어. 그런 의미에서 수학적인 인식과 선의 이데아가 통한다고. 드디어 플라톤의 선의 이데아가 뭔지 알았어! 몰라. 더 검토해봐야지. 근데 내가 좀 더 알았어. 이거 얘기하기 전에는 몰랐던 거. 놀랍다. 불꽃이 탁 튄다는 게.


‘그 주제가 글로 옮겨진다면 나에 의해 가장 잘 옮겨지리라는 것쯤은 압니다.’ 플라톤이 얼마나 대단한 문학가야. 실제로 가장 잘 옮겼잖아. 그런 인식에 대해서. 그리고 잘못 옮겨지면 괴로워할 거야. 대중들이 이걸 잘못 읽고. 그 월포피츠[2]처럼. 그 weapon 조작하는 원리로 이걸 갖다 쓴다면, 플라톤이 얼마나 괴로움을 받겠니. 대중들을 상대로 해서 그것들이 충분히 글과 말로 옮겨질 수 있는 게 아니야. 플라톤을 사람들이 읽어. 어느 정도 알아. 이데아, 소크라테스. 근데 이렇게 읽어? 영혼에 불꽃이 탁 튈 정도로 읽어요? 못 읽어요. 플라톤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을 얻었지. 위험해, 제 생각에는. 플라톤 생각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사람들은 그게 플라톤 생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차라리 모르면 모른다고 할 거 아냐. 그니까 만약 내가 그렇게 생각했더라면 내가 왜 글을 안 써?

플라톤은 일종의 반어법으로 이해하는 건데. 이 문장의 논리적 형식이 if then 형식이잖아. 대중을 상대로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대단한 이로움이 되는 것을 글로 옮겨내고 모두를 위해 철학 고전을 쓰고 빛을 던져줄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건데. 그것보다 아름다운 일이 더 있겠냐? 근데 말로 다 옮길 수 없어. 사람들에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은 건 누구냐? 불꽃이 탁탁 튀는 사람. 약간의 암시만 받아도 스스로 알아낼 수 있는 소수의 사람에게는, 그래도 상기의 묘약으로 내 저작이 좀 소용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암만 플라톤이 생각해봐도, 그런 정도의 효용보다는 역효과가 더 커. 역효과가 뭐냐? ‘그 밖에 어떤 사람들은 당치 않게도 옳지 못한 경멸감으로’, 이건 아마 뭘 생각하는 거냐면, 소수의 사람들에게 불꽃이 탁 튀어가지고 자기 혼 안에서. 그 말이 나와. 안 나오는 다수의 사람들은 멍~ 때리는 거지. 경멸감을 느껴. 난 플라톤을 이해하지 못하나보다. 플라톤 왜 이렇게 어렵게 썼어? ‘또 어떤 사람들은 신묘한 어떤 것들을 배웠다는 생각하는 탓에 드높고도 속빈 기대감으로 가득 차게 할 것입니다’. 플라톤에 대해 지금 막 떠들잖아. 속빈 강정이지, 이게. 아, 난 플라톤 알아. 플라톤의 오묘한 진리를 깨달았어. 선의 강의에 대해 깨달았어, 라고 말하는 순간, 이거네 이거. 온갖 신묘한 것들을 배웠다고 생각하는 탓에, 지금 헛된 자기 우월감에 빠져있는 거야. 하하하하.

그러고 이제 플라톤 고유의 철학으로 넘어가요. 고기까지가 플라톤 서신에서 문자에 대한 얘기인데 분명히 통해요, 파이드로스 편하고 같은 생각을 전하고 있어. 플라톤의 일관된 생각이에요. 편지의 진위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지만, 제 7서한 이게 진짜가 아니면 다른 것도 진짜가 아닌데. 이거 정도는 플라톤이 아니더라도, 플라톤 도플갱어[!] 가 쓰지 않았을까? 거의 그 정도. 이게 플라톤 생각이 아니라면 대체 뭐가 플라톤 생각이란 말이냐? 그만큼 굉장히 authentic한 얘기에요. 삶에 대한 플라톤 고유의 생각들이 들어있다고. 문자, 책에 대한. 디오뉘시오스가 자기에 대한 책을 썼다니까 거기에 대한 자기 입장을 밝히는 거. 불꽃에서 댕겨진 불빛처럼. 불꽃, 불빛 요게 겹치는데, 시적인 표현이 되려면 중복을 피해야 해. 어떤 이미지를 플라톤이 얘기하려고 하는지. 이미지로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 거야 이건. 근데 뭔가 신묘한 걸 알았다고, 지금 나처럼 들떠가지고. 드디어 플라톤의 선의 이데아에 대한 강의가 뭔지를 알았다고 하는 것도 헛된 허영심이라는 걸, 그것까지 플라톤이 얘기하는 거야.

아, 그러니 내가 안 넘어가? 뭔가 엄청난 패러디를 하는 거야. 내 전 저작은 거의 소일거리로, 늙어서 할일 없을 까봐. 늙어서 기억력이 떨어지면 젊어서 생각한 것들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진짜는 영혼의 불꽃이지. 그 말의 씨앗이 플라톤이라고. 여러분까지 왔어. 수십 세대. 한 세대에 30년 생각하면 80세대 밖에 안 됐어. 여러 말들이 떠도는데, 그 말들이. 거의 플라톤의 meme인데. 이런 건 좀 많이 퍼져있는 밈. 공자의 밈, 예수의 밈. 삶의 내러티브, 사회의 서사 구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말들이라고. 이런 말의 씨앗을 남기는 게 불멸이고, 그게 죽어야만 되는 인간 운명의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그 말의 씨앗을 남길 수 있다는 게. 여러분도 여러분 말의 씨앗을, 삶의 내러티브로 구성해보세요. 파이드로스, 고 짧은 고거 하나만으로도, 몇 시간을 우려먹을 수가 있구나. 고르기아스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효주: 선생님 학부 때는 어떤 전공 하셨어요?

정민샘: 학부 때는 물리학 했어요.

아 내가 일방적으로 떠들긴 했지만. 이런 말이 내 삶의 활력인데. 카이스트 생 그런 얘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는데. 말로 풀고 나니까. 내 영혼에 불꽃이 팍팍 튄다.

가영: 카이스트 생들도 선생님 이런 강의 들으면 좋을 텐데.

정민샘: 그니깐. 근데 그런 장이 아니야.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장이 못 돼요. 형식 자체가. 수십 명 앉아있는 강의실에서. 그런 형식이 말을 다르게 하기도 해요. 그래서 이런 게 좋다. 불꽃이 튀는 말은, 이런 상황에서밖에 가능하지 않아. 얼굴을 맞대고, 당장 한 명 한 명 보고서 얘기할 수 있는. 그래서 플라톤이 얘기하는 대화나. 물론 이것도 형식. 변증이긴 하지만. 거기도 영혼이 빠져버린 무의미한 말들만 오갈 수 있는데. 그럼에도. 그 형식이. 전화로도 안 되고 트위터 이런 것도 안 되고 메일도 안 되고, 뭔가 정말 김명석 선생님이 얘기하는 것처럼. 우리 얼굴을 마주보고 얘기할 수 있다는 게. 그런 게 정말 영혼의 불꽃의 싹을 틔울 수 있는. 오늘 나 왜 이렇게 유장하게 얘기하지?

명석샘: 차 놓치겠습니다.

정민샘: 아니에요, 뛰어 가면 돼요. 여러분 바로 가요?

명석샘: 같이 가 같이. 내일 와서 치우고.

2011/04/26 23:05 2011/04/26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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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샘 :진짜 말은 자기 자신을 비롯해서. 말이 말을 변호할 수 있고, 로고스가 로고스를 들어서 변호할 수 있고. 그 말을 키우는 사람. 아비죠. 영어 번역에는 이런 게 있는데. 그런 말들은 불모이기는 커녕. 불모가 뭐죠?

주희: 불모지.

정민샘: 왠지 그런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 불임. (글들을 갖고 툭툭 치며) 이게 그런 거 아냐. 지금 내가 불모지를 헤매고 있는 거야. 반대로 영혼을 붙잡고 내가 변증 --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 일방적으로 말하면 레토리케야. 우리도 자꾸 왔다 갔다 하는데. 변증으로 가야 하는데, 내가 자꾸 레토리케를 하며, 소피스트 사회에 가는 것 같아. 아름다운 비유가 이렇게 이어지잖아. ‘결실을 맺고 씨를 낼 것이며’, 여러분 영혼에 싹이 튼다. 내가 한 말이. 그게 중요한 거야. 내가 한 저작이 남아서 남이 평생토록 이걸 읽고,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내가 한 말이 싹을 틔워야 해. 그거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불멸일 테니까. 싹튼 말이 또 싹을 틔워. 다른 습성을, ‘그로부터 또 다른 말들이 다른 습성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자라나고’, 처음엔 비슷한 영혼, 적합한 영혼을 붙잡아서 얘기하는데. 계속 거쳐 가면서, 조금씩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말의 싹이 트기 시작할 거 아냐. 그런 과정이 영원히 불멸하면서, 영어번역에는 ‘원래 씨에 불멸을 가져오면서’, 라고 되어있는데. 원래 씨가 뭐야? 말이 씨가 된다고 할 때, 원래 그 말을 한 사람의 영혼에 있는. 그 말이 원래 씨. 그 말이 불멸하는 거야. 그러면 그 사람이 불멸하는 거지. 그러면 원래 시를 소유한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거기 이런 표현이 있어. mortal.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최대의 행복, 그게 뭐냐. 자기 말이 불멸하는 거지. 자기가 심은. 자기는 죽지만.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잖아. 아름다운 비유인데, 이삭. 걔가 매달려 있으면 그냥 죽어. 근데 걔가 땅에 떨어져서 죽어야, 거기서 새 밀알이 나오지. 거기에 나와.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에. Verily, verily 하면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고 이르노니……. 모르겠어. 아 이게 진짜 행복인 데 말이야. 사람에게 가능한 최대의 행복. 플라톤은 이런 집착이 좀 강했던 것 같아. 자기 말의 씨앗이 불멸하기를. 소크라테스의 말의 씨앗이라고 해도 되고. 불멸에 대한 욕구가 곳곳에서 보여요. 향연에서도. 향연은 원래 에로스에 대한 거잖아. 가사자인 사람이 불멸하는 방식이 두 가지가 있는데, 뭐일 것 같아요?

주희: 말이 불멸하는 것.

정민샘: 그게 이거지. 영혼 속에 심은 씨앗이 싹을 틔우고 또 싹을 틔우고. 다른 거? 불멸의 코일 이건 뭐야?

가영: DNA. 자손을 낳는 것.

정민샘: 맞아. 임신. 이게 위대한 거야. 그래서 남자보다 여자가 더 유리해. 가사자인 인간으로서 가장 불멸에 적합한 상태에 있는. 뭔가 신령한 순간이야. 옛날엔 사람들이 이런걸 알았는데 말이야, 요샌 그런 신화가 다 깨져가지고. 지하철에 붙여져 있잖아, 삼 개월인데 왜 양보를 안 해주세요. 신화적인 요소가 다 빠져나가고, 애 배는 게 별로 의미 없는 물리적인 사실이 되어버렸다고. 옛날에는, 동물도 새끼를 배면 걔를 신령한 기운이 든 취급을 했다고. 요새는 그런 걸 다 신화라고 해버렸으니까 플라톤의 신화라도 끌어와야지. 그게 정말 좋은 건데 말야. 그래서 여러분은 불멸에 두 번 참여할 수 있어. 남자들은 한 번밖에 못하는데. 여러분은 가능성이 두 배란 말이야.

주희: 남자도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DNA는 남자 여자 둘 다에서 가는 거니까.

정민샘: 그러니까 그게 과학이 신화를 파괴해버리는 그런……. 생물학적으로는 그렇지. 그런데. 그 말고 정말. 몸으로 낳는. 그런 행위가. 이걸 행복이라고 생각 안하지. 일이라고 생각하잖아. 그러니까 사람들의 가치관이 바뀐 거라고. 그만큼 뭔가 이런 휴가를 주고 하는 게, 물론 휴가는 줘야지, 근데 자기 커리어에서 분명 부담이 되는 부분이잖아. 직장 여성들이 얻는 출산 휴가 이런걸 보면. 이걸 부담으로 여긴다고 하는 게, 사람들의 가치관이 바뀐 거지. 신령한, 불멸에 가까운 상태에서 물리적으로 불편한 사태가 돼버린 거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네 장이나 남았는데.

효주: 예전에도 책을 이렇게 차근차근 읽으셨어요?

정민샘: 그니깐 이게, 읽다가 계속 발견한다고. 2009년 여름, 파이드로스를 처음 읽을 때는 제대로 안 와 닿았어. 대충 그렇고 그런 대화편인 줄 알았어. 고르기아스는 처음 읽고 맛이 갔지. 근데 파이드로스는 왠지 좀 시원찮은 것 같아. 그런 얘기를 누가 해 주더라고. 플라톤의 약국. 데리다가 쓴 글이 이 책의 해석에 대한 글이니까 굉장히 중요한 글이야. 그랬어? 이게 그렇게 중요했단 말이야? 그런 생각만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중간에 한 번 문자에 대한 부분을 좀 읽어보자, 그래서 여러분 지금 나눠준 부분만 읽었어요. 아 뭔가 있더라고. 이게 좀 와닿기 시작했어. 그래서 그런 김에 처음부터 다시 읽자, 하고 읽으니까, 그 부분 이야기 때문에 앞의 이야기가 왜 그렇게 진행되는지, 눈에 들어오더라고. 오래 걸렸어요.

그러고 다시 연설술로 돌아가요. 일종의 곁다린데, 이게 곁다리 수준이 아냐. 플라톤이 자신의 전 저작에 대한 평, 코멘트를 하고 있잖아요. 그거 내가 진지하게 고려하는 거 아냐. 내가 정말 진지하게 고려하는 건, 영혼에, 말의 씨앗을 뿌리는 것.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고. 플라톤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이 뭐냐? 책을 안 읽으면 아무 영향력이 없다. 플라톤을 누가 알아? 책 읽는 사람만 알지. 플라톤의 영향이라고 하는 게 전적으로 플라톤의 저작에 있다고 생각하잖아, 이제. 플라톤의 말은 다 흩어졌어.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그게 아냐, 또. 플라톤의 진짜 영향력이 뭔지 알아? 라이프니츠의 진짜 영향력. 플라톤이 자기 아카데미 친구들한테 심은 말의 싹이 싹을 틔우고 싹을 틔우고 싹을 틔우고……. 몇 십 세대밖에 안 돼. 몇 십 세대를 거쳐 퍼져나갔어. 그 말의 씨앗이 우리한테도 있어. 플라톤 평생 안 읽어도. 하하하. 그게 내가 생각하는 플라톤의 영향력이야. 그게 다야. 이거 읽는 거? 이건 뭐야. 상기. 플라톤이 뿌린 씨앗을 상기하는 거야. 자기 안에 있는 씨앗을 상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게 플라톤이 얘기하는 로고스야. 플라톤이 상기한 이치를 깨닫는 거지.

라이프니츠도, 공자도 마찬가지. 공자가 자기 제자들하고 주고받은 이야기. 그게 우리 삶의 내러티브를 만든다고. 공자 삶의 내러티브만 만드는 게 아니고.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우면, 부끄러움이 없다. 그게 우리 삶의 가치야. 가치였어. 그런 말에 따라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다 그렇게 살아, 어차피. 여러분은 무슨 말에 따라 살아? 그 말이 다 어디서 왔어?

주희: 근데 말이 전해지면서 당연히 손실되고, 그런 게 있을 거 같은데? 그 말이 진짜 씨앗을 뿌려서 그대로 전해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정민샘: 그 말은, 아까 그 말이야. 청자를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는 말. 기자들이 전해 듣고 왜곡해서 쓰는 말. 플라톤이 얘기하는 말이 아니에요. 플라톤의 말은 상기이기 때문에, 똑같은 형태로 우리 안에 있을 수밖에 없어. 플라톤이 얘기하는 진리, 정의, 아름다움, 올바름. 이런 것들에 대한 생각이 우리한테 똑같이 있다고. 그래서 플라톤이 생각하는 형상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거예요. 그에 반해 감각적으로 전달되는 말은 분명히 내가 이렇게 얘기해도, 그게 달라 또. 리나 씨가 올리는 녹취록만 해도 그런데. 그건 감각적으로 전달되는, 파악되는 말이지. 영혼에 쓰인 말은 그런 식으로 왜곡이나 손실이 일어나는 말이 아니에요. 이런 거지. 또 이런 예를 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수학. 플라톤이 생각하는 어떤 삼각형이 있을 거 아냐. 플라톤의 이데아겠죠. 우리가 생각하는 삼각형은 달라?

주희: 그건 같겠죠.

정민샘: 왜 같지? 왜?

가영: 플라톤은 삼각형의 이데아가 우리에게나, 플라톤에게나 똑같이 있다고 답하겠죠.

정민샘: 맞아.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는 삼각형의 이데아가 하나 있어, 딱. 거기에 비해서 감각적으로 파악되는 삼각형은 무한히 많지. 그거는 좀 전에 얘기한 말들처럼, 이 삼각형은 저 삼각형이 아니고, 저 삼각형은 이 삼각형이 아니고. 감각적인 세계에서 누가 도안을 그려가지고, 내가 원하는 삼각형은 이거야! 하고 건축가에게 줬다고 생각해봐. 그걸 그대로 만들어낼 수 있을 거 같아? 그 사이에 0.1mm정도의 왜곡이 일어날 거 아냐. 그건 자기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삼각형이 아니야. 돌고 돌면서, 거의 지멋대로지.

내가 너무 얘기를 많이 한 것 같다. 뭐 할 말 없어?

가영: 글과 말의 형식에 국한된 얘기라기 보단, 글로 쓴 거라도 오히려 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글이 있잖아요. 블로그만 해도 댓글을 달고 토론의 장을 만들 수 있는 거고, 편지글 같은 경우엔 청자가 있는 거고.

정민샘: 맞아요. 말과 글의 구분은. 일차적인 의미는 문자언어, 음성언어지만. 그 말은 영혼에 쓰인 말이라고 했잖아. 언어화되지 않은 말일 수도 있어. 로고스. 이유를 들 수 있으면 돼. 그 이유를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데 언어화된 표현으로 얘기하지 못할 수도 있잖아. 그러면 영혼에 쓰여 있긴 한 거지. 표현하진 못했지만. 내가 입으로 말해도, 이 말은 돌아다니면서. 아님 내가 한 입으로 두 말할 수도 있잖아. 그러면 분명히 수단은 음성언어지만, 그 말은 플라톤이 얘기하는 영혼에 쓰인 말의 조건을 충족시키지는 못하지. 반대로 글자로 쓰인 것 중에서 그런 걸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기의 수단이 있다고. 글자의 제 역할을 제대로 하는. 그러나 어디까지나 중요한 건 글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방편이라는 거지. 실제로는 상기가 더 중요한 거야. 거기에 진짜 말이 있으니까. 단순히 어떤 형식적인 구분,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의 구분은 아니라는 거. 그것의 본성이 어떤 것이냐에 관한 문제지.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가 말로써, 산파술, 변증법 이런 걸로 풀어가는 말 속에는 무언가 로고스, 청자도 알고 있는 자기의 영혼에 각인되어 있는 말이기 쉽고, 똑같은 음성언어라도 내가하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주입식으로 소피스트들이 전달하는 음성언어는 플라톤이 말하는 글에 더 가까워요. 글의 성격을 더 많이 지니는. 똑같은 말을 하고 청자를 가리지 않고 반박이 들어와도 그건 반박을 안 받아들이고. 소피스트들이 연설조로 하는 말, 내뱉고 말지.

주희: 어쨌든 대화가 되냐, 안되느냐 차이에요?

정민샘: 대화를 통해서 여러분 영혼이 깨어져야지. 저번에 나눠준 플라톤의 편지. 제7서한. ‘튀는 불꽃에서 댕겨진 불빛처럼 갑자기 혼 안에 생겨나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스스로 길러낼’ 수 있는 말(342d). 그게 영혼에 쓰인 말이에요. 아름다운 표현이라고 난 생각해. '오랜 교유와 공동생활로부터', 불꽃이 튀는 것처럼 팍! 생겨나야 해, 지금! 생겨나서, 여러분이 스스로 그 말을 할 수 있어야 해. 그런 말이 진짜 말이지. 내가 이렇게 읽고 적어 와서 하는 말, 이건 아냐. 이게 불꽃을 내지 못하면, 이런 건 다 죽은 말이야. 영혼의 불꽃, 그게 진짜 로고스지. 좋다, 영혼의 불꽃.

명석샘: 슐리크랑 좀 비슷한 말인데?

정민샘: 슐리크? 제7서한이 굉장히 중요한데, 플라톤 자신의 일대기이기도 하면서, 디오뉘시오스라고 나오죠 거기, 참주에요. 시라쿠사섬 참주. 도시국가인데 플라톤이 거기서 일종의 정치적 실험을 하죠. 아카데미 세우기 전에. 거기 갔다 오고 아카데미 세운거야. 정치적인 실험은 끝났다. 내가 할 일은 아카데미를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 디오뉘시오스라는 놈이, 아는 척을 많이 해. 지가 플라톤한테 배웠다고, 자기가 책을 쓰네? 그가 들었을 내용과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마치 자신의 작품인 양 구성해서 책을 썼다는 소리. 플라톤이 좀 가르쳐 주니까, 얘가 지금 제 멋에, 드디어 나도 시대에 남는 철학적 역작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고 책을 썼네. 난, 거기에 대해서 아는 바 없어. 다른 사람들도 이런 주제로 책을 썼는지 몰라도, 그런 사람들도 자기를 모르는 사람들이야. 자기의 혼의 상태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들. 하지만 이제 내가 몰두하고 있는 거에 관해 안다고 말하며. 정의 이런 문제. 정의, 선의 이데아. '이미 책을 썼거나(고대의 저자들), 앞으로 책을 쓸 모든 사람'. 플라톤 학자가 좀 많아? 다 자기가 얘기하는 게 플라톤이래. 그들이 내게서 듣고 그러든, 다른 사람에게서 듣고 그러든, 또는 스스로 발견하고서 그러든, 미래의 모든 플라톤 학자에게 지금 내가 이 말을 한다. 이들은 그 주제에 대해서 전혀 정통할 수 없다. 거기에 대한 내 저술은 전혀 있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을 것이다. 이건 뭐야 그럼? (종이를 흔들며) 있네, 여기. 이게 언제 나온 거야? 편지 쓸 때 안 나왔다고? 아니야. 그 때 있었어. 그럼 플라톤이 나의 저술은 결코 있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을 거라고 말하지? 정의, 선의 이데아 이런 문제. 이런 걸 경계하는 거야. 내 책을 읽고 나를 안다고 또는 정의, 선의 이데아에 대해 안다고 책을 쓰는 사람들이 나올까봐. 다 플라톤 학자네. 플라톤이 플라톤 학자들을 얼마나 심하게 까고 있는지를 플라톤 학자들이 조금이라도 깨달았다면,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좀 있다 나올 일을 하고 있겠지. ‘주제 자체와 관련하여 이루어진 오랜 교유와 공동생활’. 아카데미는 거의 공동생활이야. 무슨 사색원?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서 굉장히 코믹하게 그리고 있는. 얘들은 거의 밖에도 안 나오고. 어두컴컴한 데 지들끼리 사색을 한다고 죽치고 있는데. 그런 생활이야. 그리고 중요한 게, 튀는 불꽃처럼. 갑자기, 팍! 혼 안에서 생겨나는. 그래서 스스로 그 말을 할 수 있는. 그리고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말. 그게 진짜 말이지. 그런 걸로만 얻어질 수 있는 말이야. 이걸 읽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2011/04/26 23:02 2011/04/2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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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샘 :그럼 글을 쓰는 이유가 뭐냐? 플라톤은 왠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똑같은 발자취를 좇는 모든 이를 위해서. 우리라면 우리, 플라톤의 발자취를 좇는 이들. ‘나이가 들어 망각에 이를 때’ -- 이건 왠지 자기 이야기 같아. 아카데미 세우고 영혼에 쓰인 말을 열심히 전파하다가, 옛날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가물가물해서 상기의 묘약이 필요하다. ‘되살려야 할 상기 수단들을 쌓아두면서, 그 문자의 정원이 여린 새순을 내며 자라는 것을 보며 기뻐할 걸세.’ 어린 새순은 아무래도 발자취를 쫓는 사람들에게서 솟아나는 새순이겠죠? 아닌가? 플라톤이 기뻐하려면 그 때의 사람이어야 하나? ‘다른 사람들이 다른 놀이에 빠져서 수많은 술잔치’, 술잔치가 그거에요. 향연. symposium. 같이 술 마시다. 근데 향연이 그냥 술만 마시고 끝나지 않겠죠? 좀 그래, 그게. 2차가 있어, 그 자리에서. 플룻 부는 여자들도 있고, 보이들도 있을 수 있어요. 일종의 그리스 문화에요. 그런 거에 빠져서 인생을 탕진하는 사람들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런 것보다는 가치 있는 일이 아니겠어?

물론 이걸 놀이라고 한다지만, 가치 있는 정도가 아니지, 우리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영혼을 실어가지고 일필휘지를 하는 행위를 감히 술잔치에 비유하다니. 근데 플라톤한테는 진지하지 않은 측면은 마찬가지에요. 놀이야 놀이. 문자놀이. 이런 향연을 괜히 드는 게 아니라고. 그것만큼 진지하지 않은 건 마찬가진데, 근데 그것보다는 좀 나은 소일거리가 아니겠느냐, 이런 식으로 글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파이드로스가 그걸 딱 캐치했어. 천박한 놀이가 아니라, 말을 가지고 노는 고상한 놀이. ‘정의나 당신이 말하는 다른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지어내면서 놀이를 즐기지요.’ 이야기를 지어낸다고 하는데, 실제로 플라톤이 얘기를 많이 지어내잖아. 뭐가 있었죠?

주희: 신화?

정민샘: 응, 앞에 문자의 기원에 대한 신화가 있었잖아. 토트 신이 내려와서 왕하고 얘기하는데 이건 뭐가 좋고 문자는 이러이러한 게 좋다. 아니다, 문자는 사람들을 망각에 이르게 한다. 이거 플라톤이 지어냈잖아. 파이드로스가 당장 소크라테스에게 반박을 하잖아요, 잘도 지어낸다고. 그러니까 놀이지. 이게 좀 이상한데, 어떤 의미에서 자기 대화편 전체에 대해서 이야기를 지어내면서 즐긴 놀이, 라고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다 썼잖아요. 문자로 남아 있잖아. 플라톤이 이것들을 보는 지위가 어떻게 되는 거야?

가영: 문자놀이.

정민샘: 이야기 지어내기. 이게 지금 말이 돼? 이게 얼마나 귀중한 고전인데. 이야기를 지어낸다는 건 플라톤에게 분명 의미가 있는 중요한 이야기야.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껍데기에 보면, 그걸 출판한 회사가 야그야. 그게 플라톤에서 나온 거야. 플라톤이 세상은 다스리는 사람은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하거든(Who tells the story rules the society). 서사를 만들어내는 사람. account를 만들어내는 사람. 지금 여러 가지가 생각나는데. 여러분 삶에도 분명 서사가 있다고. 그게 어떻게 보면 여러분인데. 자기는 언제 뭘 했고, 언제 고통스럽고, 삶의 저점이 있었고, 그걸 극복하고 좋은 순간들이 있었고. 이런 계기들이 있다고. 중요한 사건들. 그런 걸로 결국 여러분 삶의 내러티브, 서사가 만들어지는 건데. 유명한 서사가 있죠. 정말 몇 안 되는 이야기로 삶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공자가 생각나는데, 15세에 지우학(志于學). 뜻이 학문에, 또 학문에. 30세. 이립(而立). 자기 두 발로 세상에 설 수 있는 나이가 되었어.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계기죠. 부모님께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살 수 있다는 게. 40세. 불혹(不惑). 유혹되지 않는다는 말인데. 흔히 그렇게 해석을 하는데, 진짜 뜻이 무엇인지는 주석을 봐야지.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뜻이 아닐 수도 있어.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논어 위정편)

명석샘: 동양철학 하는 사람에게 물어봤거든. 40이 유혹되지 않는 나이라는데 왜 사람들이 그 나이에 바람 많이 피고 유혹 많이 되냐고 물어봤더니 원래 그 뜻이 유혹하지 말라는 뜻이래.

정민샘: 유혹하지 말라. 그럴 수 있어. 혹을 타동사처럼 써서. 물론 목적어가 빠져있지만. 혹하지 말라. 그냥 그렇게 해.

50? 지천명(知天命). 천명을 아는 것. 자기 삶의 운명이 어디에 있는지. 60? 이순(耳順). 귀가 순해지는 것. 이것도 어려운 말인데. 귀가 순해진다는 게 뭐냐. 다른 사람이 험한 말을 하고, 듣기 안 좋은 말을 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노회한 경지. 그게 어렵거든? 솔직히. 얼마 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집에 택배가 오면 내가 잘 못 받아요. 경비실에 오는 걸 바로바로 찾아가야 하는데 며칠 못 찾아가고 그런 때가 있어요. 며칠 있다 갔더니 경비아저씨가 막 역정을 내는 거야. 없어지면 나한테 책임을 물을 거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그런 게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는데 미리 그런 걸 우려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막말을 하는 거야. 좀 움크러 들었는데. 이건 이순이 아니야. 좋은 말이건 나쁜 말이건 똑같이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그게 속된 해석이다. 진짜 공자가 이순이라는 말로 뭘 말하려고 했는지는……. 70이 좀 긴데. 종심소유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마음이 욕망하는 바에 따라도 구를 벗어나지 않는다.

가영: 구(矩)가 뭐에요?

정민샘: 어떤 질서, 정해진 규준. 정말 멋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다 들어맞는. 이게 공자가 제시하는 자기 삶의 내러티브야. 몇 개 안 나왔죠? 여섯 개. 여섯 개의 공자가 있는 거야. 굉장히 단순하면서도 각각이 파워풀한 뭔가를 던지거든. 여러분 삶의 이벤트도 몇 개 안 돼. 굉장히 많은 일이 벌어지는 것 같죠? 실제로 공자만한 거대한 내러티브를 남길 수 있는 삶이 없다고. 셰익스피어 식으로 얘기하자면, 다 무의미한 노이즈. 그런 구절이 있잖아요. 인생은 fool's play. 바보들의 연극. 온갖 함성과 소음들로 가득 차 있지만, signifying nothing.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Out, out, brief candle! 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 Macbeth, Act V, Scene V) 삶이라고 하는 게 무의미한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고. 거기서 유의미한 내러티브를 끄집어내기 쉽지 않아요. 보통사람들은 이런 걸 들지. 나는 몇 살 때 과학고를 갔고, 카이스트를 가서, 졸업을 하고, 유학을 갔다 와서 카이스트에 강의를 나갔어. 물론 결혼은 안 했지만. 그런 게 삶의 중요한 계기들이잖아. 공자는 그런 말은 없잖아요, 유치하게. 삶의 내러티브란 게 뭔지 알겠어요? 여러분 삶에선 그런 게 굉장히 의미 있는 사건처럼 보이지만, 인생을 정말 길게 보고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뭔가를 만들려면, 그런 차원에서 이런 게 되는 게 아냐. 내가 이런 perspective를 부여해 주려고 하는 건데. 학교 이런 게 뭐가 중요해? 무슨 학교 가고 무슨 직장 가고 누구와 결혼하고……. 이런 거 안 중요해요. 여러분에게 이런 게 굉장히 중요할 것 같지만, 내가 보는 건 그래요. 헤헤. 어렵네. 삶의 이야기는 그런데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는 통찰을 얘기하고 싶어요.

하여튼, 삶의 이야기도 있고, 집단 서사라는 것도 있어. 우리 민족에겐 민족 나름의 서사가 있다고. 지금은 뭔가 많이 섞여 들어와 가지고, 우리 민족 것만 있는 것도 아냐. 이것도 서사잖아, 파이드로스. 그리스 신화. 이런 게. 그리스 사람들이 보던 걸 왜 우리가 보고 있지? 우리가 이런 서사로 돌아가는 것도 아닌데. 뭔가 자기 삶의 내러티브를 만들어가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공자가 그 얘기했을 땐 70살이 지났을 때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한 얘기 아냐. 여러분은 어떻게 보면 그 순간을 위해 살고 있는 거야. 그 순간에 뭔가 내러티브가 될 만한, 공자가 제시한 그런 거. 학교, 결혼, 취직 잡다한 거 다 빼고. 70살 넘어서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정말 의미 있게 생각할 수 있는 몇 가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서도 우리 사회의 내러티브가 필요해. 사회의 삶을 가치 있게 할 수 있는. 공자처럼 이렇게 정리하면 삶이 가치 있는 거잖아. 이 여섯 개가 공자의 삶의 의미잖아. 사회도 그런 게 필요하다니까. 우리 사회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서사. 그런 거가 잘 안되니까. 사람들이 이런 거에 빠지지. 슈퍼스타. 드라마. 그게 그런 거라고. 삶의 내러티브의 ‘모상’을 제시해주는. 플라톤식의 표현을 하자면, 카피. 그런 얘기를 했어요. 내가 그건 안보고, 그거에 대한 기사를 봤는데, 허각? 존박? 그런 사람들의 삶의 내러티브가 있대. 허각은 가족과 관련된 뭔가가 있었어요?

주희: 엄마를 만나지 못하고, 엄마랑 전화도 잘 못하고.

정민샘: 그래서 거기서 뒤집혔다고 하더라고. 허각이 튀는 그런 이미지가 아닌데, 그런 삶의 내러티브에 공감하고 힘을 실어주면서. 근데 뭔가 모델을 제시해주잖아. 경쟁이 아니라, 상생. 1등하고 11등하고. 내가 노래를 몇 개 들어봤다고. 노래를 들어보니까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이런 사람들이 가수를 하면 되겠다 싶더라고. 존박, 허각, 장재인 그 세 명은 안 들어봤는데.

가영: 장재인 노래 여기서 들려줬잖아요.

정민샘: 장재인 노래 잘 부른다고 했잖아. 근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야. 기교가 너무 뛰어나.

그런 사람들을 내가 가수라고 인정하면 되잖아. 1등, 2등, 3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뭔가 그런 거에 사람들이 공감하는 측면이 있잖아. 등수를 가리는 건 수단에 불과한 거고, 서로 잘 되는 그런 걸 보여줄 수 있다는 거잖아. 티비를 통해서.

그래도 모상!

가영: 어떤 것의 모상일까요?

정민샘: 그런 것의 진짜 얘기, 진짜 로고스는 어디 있을까요? 가족의 가치, 중요하지. ‘가족의 가치’의 진짜 가치는 뭘까? 철학적으로는 가족의 가치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의미가 있는 일일 수도 있지만, 철학적으로는 자기 삶에 진짜 의미가 있는 건, 이런 거잖아. 정의롭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것의 이데아. 그런 것의 모상의 모상의 모상의 모상을 따라오다 보면, 어느 순간 슈퍼스타 K가 나온다고.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 발현하려고 하는 가치,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이 그걸 찾는다고. 자기 삶에 뭔가 의미가 있을만한. 그걸, 내가 만들 수도 있는데, 다른 사람이 거기에 공감하면 그 얘기를 알고 싶어 하는 부분도 있잖아. 그러면 뭔가 사회의 차원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는 걸 알고 싶어 하는. 집단 서사. 왠지 그런 얘기를 나만 모르고 있으면 소외되고 따 당하는 기분이잖아.

주희: 스타일이 딱 뚜렷한. 거기 나오는 인물이 매력이 있지 않아요?

정민샘: 매력이 있는 걸 프로그램이 만들어 낸다고. 뭔지 알겠어요? 여러분 삶에도 다 내러티브가 있어요. 그걸 못 찾을 수도 있어. 그걸 찾는 과정이 어떻게 보면 삶의 과정일 수도 있는데. 자기 삶의 통일된 내러티브. 학교 가고, 이런 건 다 부수적이라고. 삶에서 의례적으로 거쳐 가는 거. 그런 거 말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부여해줄 수 있는. 거대한. 그런 게 아까 얘기한, 지우학, 이립 이런 거. 이걸로 자기 삶을 말할 수 있겠냐. 어렵지. 그런 게 진짜 어려운거야. 구구절절 자기 삶의 얘기를 블로그에 쓰는 사람은 많은데. 그걸 누가 읽어. 자위하는 건지도 몰라. 이런 게 내러티브지. 지우학, 이립. 자기 삶의 굉장히 고유한 생각을 딱 한 마디로 내세울 수 있는.

주희: 선생님은 그런 거 없어요?

정민샘: 내가 공자냐? 하하하. 고등학교 땐 삶의 저점, 이런 걸 한번 겪고 나니까, 그 이후로 뭔가 닥쳐와도 극복할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생겼달까?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것조차도 유치한 거야. 거대한 삶의 깨달음이 동반된 뭔가를 찾으려면 70살까지는 살아야지.

주희: 그 순간에는 몰라요?

정민샘: 그 순간에는 내가 굉장히 의미 있게 생각했던 거라 해도, 세월이 지나면 의미가 바뀔 수 있어. 학생들이 생각하기에는 당장의 학점, 이런 게 정말 절실한 삶의 문제처럼 보여도, 조금만 넓은 관점에서 그런걸 바라보게 되면, 학교 이런 게 자기 삶에 아무 문제가 안 된다는 거에요. 뭔가 얘기하고 싶은데. 현실이 용납을 하지 않아.

‘그 일에 적합한 영혼을 붙잡은 뒤’ (학생들을 가리키며) 붙잡혔어. ‘변증술을 통해 그 안에 인식을 갖춘 말들을 키우고, 또 씨를 낸다면 이는 한결 더 훌륭하고 진지한 일이 되겠지.’ 말로 그런 얘기 지어내고 노는 거. 그건 자기 소일이지. 플라톤이 이런 글들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나? 플라톤의 저작이 이렇게 남아있지만, 이게 중요한 게 아냐. 우린 플라톤이 영혼을 붙잡아서 키울 때 쓴 말에 대한 흔적밖에 수단이 없어. 그런데 이 말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지. 진짜는 거기 있는 거야. 이미 흩어졌어. 2500년 전 아테네에서. 그게 더 진짜 이야기야. 훌륭하고 진지한 일. 또 이걸 보니 생각나는 게 있는데. 라이프니츠가 이런 말을 했어요. 저작으로만 나를 아는 이는 결코 나를 알지 못한다. 그럼 결국 아무도 모를 거라는 거잖아. 누가 봤어, 라이프니츠를? 죽고 나서 본 사람 없잖아? 그리고 로크. 로크가 인간오성론을 냈을 때, 라이프니츠가 신인간오성론을 썼어. 왜 썼냐? 위대한 철학사의 고전을 남기기 위해서? 왠지 아닐 것 같지? 왜?

효주: 자기 생각을 밝히기 위해?

가영: 로크랑 대화하기 위해? 근데 로크가 죽어서 그걸 공개 안 했다고.

정민샘: 맞아. 쓸모가 없어. 근데 철학사에 이런 위대한 고전이…! 라이프니츠 생각은 틀려. 플라톤의 이런 생각을 알면 이해가 되는 행위이기도 해. 왜 그런 위대한 저작을 쓰고 출판하지 않았는지. 한동안 하노버에 숨어 있었어. 발굴이 됐지. 18세기 중반, 1760년대. 그걸 누가 읽어? -- 칸트. 그 때 출판이 돼서, 라이프니츠를 다시 보게 됐어. 자기는 순수이성비판을 라이프니츠에 대한 아폴로지. 변명. 라이프니츠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내가 한번 라이프니츠를 변호해 보겠다, 그런 의도로 썼어.

가영: 근데 막상 순수이성비판 서문에 보면 아닌 것 같은데요?

정민샘: 라이프니츠의 독단 형이상학을 비판하는데. 고거는 그렇게 이해될 수 있는 부분도 있어, 분명히. 근데 그걸 못 보면 칸트를 못 본다고 전 생각해요. 칸트가 어떤 식으로 잘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라이프니츠의 뭔가를 근대철학 안에 가지고 가려고 했던 부분들. 그런 통찰이 칸트를 통해서 물리학에 들어온다고. 이 얘기는 어려운 얘기고.

그 선상에 보어. 그런 사람이 있어. 그리고 내가 그런 걸 전공했잖아. 아무튼 그게, 내가 볼 때 경험주의에 대한 대안이, 이 라인밖에 없어. 라이프니츠, 칸트. 그리고 칸트를 이은 철학자가 없어. 대신 물리학자가 있지. 보어.

그거야. 근대철학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면. 결국 그걸 깨닫기 위해 내가 그만한 책을 읽은 거야. 아무튼 그게 어디서 시작됐냐? 라이프니츠가 로크를 설득하기 위해. 그때는 이게 정말 상기의 수단이지. 로크를 직접 만났을 때, 이 부분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그런 거. 대화야 대화. 로크의 인간오성론을 라이프니츠가 꼼꼼히 자기 나름대로 paraphrase를 했어. 물론 직접 인용한 부분도 있지. 그리고 각각의 부분에 대해 자기가 평을 하고. 철학사에 이런 고전이 없어요. 물론, 우리는 로크의 대답을 듣지 못했지. 하지만 라이프니츠가 진짜 원했던 건 그거야. 왜냐면 실제로는 그게 중요한 거야. 그 사람을 설득시키는 것. 후대에 내 저작이 남아서 연구하고 칸트가 내 체계에 대한 변호를 펼치고 그게 현대 물리학으로 흘러다가……. no. 아무것도 안 돼. 그런 의미에서, 저작만으로 자기를 알 수 없다고 했을 거야. 제가 지금까지 파악한 건 그거야. 더 공부하면 라이프니츠가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 더 나오는 게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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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6 23:00 2011/04/2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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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샘: 다시 돌아가서, 44쪽. 글은 항상 똑같아. 내가 지금 여기다 질문을 던진다고. “소크라테스, 이거 궁금해요!” 근데 소크라테스가 지금 대답을 할 수 없잖아. 글은 언제나 똑같은 답을 하는 멍청한 애라고 했잖아. 그리고 청자를 가리지 않는다고 했잖아. 말해야 하는 사람 안해야 하는 사람 가려서 해야 하는데, 글은 아무나 보잖아. 인터넷 글은 아무나 읽잖아요. 그럼 댓글이 엉망이 되지. 부당하게 비판을 당하면 댓글에 대고 아무리 글을 씹어봐야, 그 글이 대답을 하나. 필자(아비가 그 화자, 필자라고 했어요)는 다른 데에 있는데. 그 세 개가 다 연관된 이유인데. 반면 영혼 속에 쓰인 말은, 자기를 지킬 힘이 있다고. 만일 글에 대한 반박이 있으면, 만약 자기가 그 말을 한 사람이라면, 뭔가 거기에 대해 얘기해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상대도 가려서, 이렇게 말을 해야 할 사람이 있고,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침묵해야 할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또, 말할 때는 장이 마련되어야 할 수 있는 말이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수민씨가 마초들이 가득한 게시판에 막 열내고 반박해도, 이 사람들은 도저히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아니래. 이때는 침묵이 최선이지. 그런 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장이 아닌 것 같아. 인터넷, 언론이 그런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 말이 돌고 돌면서 원래 말이 아니게 되는. 카이스트 보도를 보면, 제대로 된 말이 없어요, 제 생각에는. 그리고 트위터에 조국교수가 올린 글이 있는데, 144자도 안 되는 글이 마치 그 사람의 진정한 의견인 양, 기사화가 돼요. 말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글로 쓰인 말은 그런 성격이라고. 트위터 그런 게 글로 쓰여 아비를 떠나 지맘대로 돌아다니잖아. 성경에 그런 비유가 있잖아, 돌아온 탕아. 얘는 돌아오지도 않아. 얘가 그냥 기사가 되면 댓글이 달려, ‘조국교수 뭐냐’, ‘조국교수를 지지합니다!’ 이런 식으로. 진정한 말의 장, 앎이 있는 사람하고 대화하는 게 진짜 말인데. 말에 영혼이 있는 그 말을 살아있다고 하고. 나머지는 다 죽은 말이야. 플라톤에겐 문자가 죽은 말이죠. 파이드로스가 하는 말인데, 글로 쓰인 말은 그것의 영상. 영상은 image, copy - form에 대비되는 것으로서의 불완전한 모상이라는 거지. 본뜬 건데, 본뜬다고 이게 살아있지는 않아. 가치가 많이 떨어져. 죽은 말이 돼. 재밌는 건데, 파이드로스가 어느새 소크라테스 어법을 익혔어. “글로 쓰인 말은 그것의 영상이라고 해야 마땅할 겁니다.” 이거 원래 플라톤이 해야 할 말이거든.

61, 여긴 정말 아름다운 단락. ‘씨앗을 돌보고 거기서 결실이 맺히기를 바라는 지각 있는 농부’의 비유가 나와요. 농부가 진심으로 한여름의 아도니스의 정원에 씨를 뿌리고, 여드레 만에 정원이 화사하게 바뀌는 것. 아도니스에 대해 거기 주석이 있잖아요. 아도니스의 정원이 뭐냐면, 그리스의 관용적인 표현 같은데, ‘축제 때 빨리 자라는 식물들을 넓은 대접이나 화분에 심어 지부 위에 얹어놓는다.’ 넓은 대접이나 화분, 그게 아도니스의 정원이야. 아도니스의 축제, 우리나라 절기 때 세시풍속처럼, 그리스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 절기는 아니지만 - 신들의 이름을 딴 연중 페스티벌이 있다고. 굉장히 많아. 그런 걸 하며 노는 거죠. 아도니스가 아프로디테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는데, 여기선 여섯 달 동안 지상에 머문다고 하는데, 다른 데 보면, 네 달 동안은 지하에. 아도니스를 좋아했던 사람이 아프로디테도 있지만, 페르스포네도 있거든요. 들어 보셨어요? 페르스포네가 지하에 말 타고 다니는 사람이잖아요. 신이죠 신. 아도니스가 페르스포네의 사랑도 받는데, 제우스가 명령을 해. 지하에서 네 달, 천상에서 아프로디테와 네 달, 그리고 네 달은 네가 있고 싶은 곳에 살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신화인데. 아무튼. 해마다 일어나는 자연의 죽음과 소생을 반복하는 이미지거든. 지하에도 왔다가, 천상에도 있다가, 자기가 있고 싶은 데도 있고.

(아도니스의 정원의 식물들은) 빨리 자라죠. 웃자란다고 하는데. 맹자에도 나와 이런 표현이. 식물을 잡아 뽑듯이. 빨리 키우려고. 그렇게 키우기 위한 화분이 아도니스의 정원이야. 그렇게 하면 정말 여드레 만에 꽃이 피나봐, 그리스인들 기술이 좋았는지. ‘정원이 화사하게 바뀌는 것’. 축제에 맞춰서 얘를 키워서 거리나 건물을 빨리 화사하게 단장을 해야 하는데.

진짜 농부가 그 짓을 해? 이거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농사를 잘 모르니까. 어차피 그런 식으로 웃자란 애들은 그대로 있지 못할 거 아냐. 축제 끝나면 다 폐기처분되는. 진짜 농부라면 제대로 키워야지. 여덟 달. 벼가 자라는 게 거의 그런 건데. 한 해 재배하는 식물들이 있잖아요. 그 결실을 보려고 진짜 농사를 짓는 거지. 이렇게 잡아 뽑듯이 키우려고, 여드레 만에 꽃만 키우려는 게 아니잖아. 여드레 만에 피는 꽃이 뭘까요?

--글. 여덟 달, 오래 걸리는 건, 영혼에 쓰인 말. ‘한쪽 것들은 진지한 의도에서’. 농부가 온갖 성의를 다해서 키우는, 여덟 달 걸리는 그런 식물이 있고, 도시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면서, 웃자라게 잡아 뽑는. 이건 제대로 키우는 게 아니라는 걸 알지, 다. ‘놀이나 축제를 위해서’, 여기선 비유가 아냐. 글은 노래나 축제를 위한 것. 영혼에 쓰인 말은 진지한 의도에서.

또 비유가 나와요. 정의로운 것과 아름다운 것과 좋은 것. 플라톤에게 제일 좋은 건, 선의 이데아죠. 다른 게 아냐. 결국 소크라테스의 이론이 그렇잖아. 진선미 삼위일체. 헤헤. 소크라테스 교다, 이건. ‘수많은 인식을 가진 사람이’. 농부는 자기가 진짜 씨앗을 뿌리지만, 이런 사람들도 씨앗을 뿌려. 무슨 사람들이죠? 영혼에 쓰인 말. 말의 씨앗. 그렇다고 말이 씨가 된다, 이런 표현은 아니고. 좀 안 좋은 표현이죠. 근데 정말 그 씨가 그 씨야? 그 씨겠죠? 말이 씨가 돼서 다른 말, 안 좋은 말을 낳는다는.

주희: 말이 씨가 돼서 뭔가 큰 일이 일어나는.

명석샘: 안 좋은 말이 아니고, 안 좋은 일을 야기한다. 내가 감기 걸리겠네. 불합격하겠네. 말이 단초가 된다. 씨는 태초의 원인.

정민샘: 적어도 농부는 그 씨앗에 대해서는 많이 알 테지만, 말에 대해서는 이런 사람들, 인식을 갖춘 사람들이 더 잘 알거 아냐. 영혼에 쓰인 말에 익숙한, 배우는 사람. 참된 인식을 가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말이라는 씨앗에 대해 잘 알겠죠? 내 생각에 이다음에 나오는 비유가 굉장히 아름답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그가 그것들을(정의롭고 아름답고 좋은 것) 이치에 맞게’. 이치가 뭐죠? logos, 말이기도 하면서, 말 속에 담긴 이치이기도 하죠. 말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할 때 어떤 것의 원인, 법칙으로서의 말씀도 돼. 창조 행위에 입법한 말씀. 영어에 굉장히 가까운 말로, account라는 말이 있어. account의 여러 뜻이 logos의 뜻과 겹치는 것들이 있어. 계산하다, 헤아리다. 수를 헤아리는 것도 헤아림이지만 -- ‘별 세는 밤’에서 별을 헤아린다는 건 센다는 뜻일 거고 -- 어떤 행위에 대한 이유를 본다는 것도 헤아림이죠. 그런 맥락에서는 어떻게 쓰죠?

명석샘: 잘 헤아려 들어라.

주희: 뜻을 헤아리다.

정민샘: ‘내가 하는 말의 이치를 깨달아라’ 는 뜻이죠. 그 안에 로고스가 숨어있다는 말이잖아. 그게 account야. 영어에선 동사로 써요. account for, give an account, 뭐에 대해 이유를 들다. 전치사구로 on account of 는 ~때문에. because of 보다는 ~에 대한 말로써의 해명이나 설명이라는 뜻이 강해.

명석샘: 원래 영어권에서 그렇게 사용된 거야, 아님 reason에 해당하는 영어 말을 찾은 거야?

정민샘: account가 원래 count, ‘세다’에 접두사가 붙은 건데. 라틴어에 그런 말이 있나? 그런 건 etymology를 찾아봐야 하는데. 그래서 ‘이치에 맞게, 자기 자신을 도울 힘도 없고’, ‘진상부리다’에 나오는 진상, ‘진정한 상을 충분히 가르칠 힘도 없는 말들과 함께’ -- 이 말은 글로 쓰인 말이겠지 -- 자기를 방어할 수 없잖아. 그리고 이치를 전달할 수도 없어. 왜냐면 이 말은 진짜 로고스가 아니니까. 그니까 그리스어로 보면, 이 말이 딴 말이 아냐. logos에는 logos가 있어야 된다. 이치가 없는 말은 말이 아니야. 말에 이치가 있으려면 말의 아비가 그 이치에 대해 캐묻는 사람에 대해 답을 할 수 있어야 해. 그래야만 진짜 account가 되는 거지. 원문을 찾아봤으면 좋을 텐데. 영어번역에는 이렇게도 돼 있어요. 말을 물에 쓰려고 하진 않을 거야. 정의로운 것과 아름다운 것과 좋은 것을 물에, 먹물에 쓰지는 않을 거야(Will he not write these things carefully in black water, sowing with his pen?). 이게 원래 물이 빠졌어. 번역으로 오면서. 근데 물에 쓴다는 말이 무슨 표현인지 알아요? 잘 안 쓰지만, 상상을 해보세요.

주희: 그럼 지워지죠.

정민샘: 아니 써지지 않지. 지워지는 것도 맞아. 연애소설 보면, 이런 게 나와. 자기가 그리는 사람 이름을, 물에 써 본다고 해봐. 물론 창문에 이슬이 촉촉이 젖어있다, 아니면 입김을 호~ 불어서 쓴다면? 거기다 쓰면 이름이 남잖아.

가영: 곧 사라지죠.

정민샘: 근데 물에 사람 이름을 쓴다고 해봐. 쓰고 또 쓰고 또 쓰고……. 지워지잖아, 쓰자마자. 근데, 마음은 안 지워져. 마음도 그처럼 쉽게 지워지면 좋겠는데……. 근데 그 비유가 아니라, 먹물, black water 라는 말. 분명 영어권 사람들은 잉크를 떠올릴 거고, 우리 문화권 사람들은 붓글씨를 떠올리겠지. 근데 이 비유가 좀 안 맞네. 먹물에 담가 철필을…? 철필이 아니라 붓이잖아. 철필을 먹물에 담가 쓰나? 원래는 글씨 쓸 때는 흑판을 썼나봐요. 철필을 가지고 흑판에 쓰면 지울 수 있나봐요. 그런 장면이 메논에 있거든요, 노예 소년 불러가지고…….

명석샘: 그건 땅바닥에 적은 거 아냐?

정민샘: 근데 어떤 주석가가, 그런 상황이라고 하더라고요. 파피루스는 비싸서 함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리스 사람들이 집에서 흔히…….

명석샘: 옛날에 만년필 어떻게 만들었냐면, 바늘처럼 나온 걸 실로 묶어. 그걸 잉크에 담가 쓰거든. 깃에다 바늘을 꼽을 수도 있거든. 철필이란 게 그런 것 같은데. 철을 헝겊에 묶어서, 흘러내리는 잉크를 쓰는.

정민샘: 근데 그 주석가 기억으로는, 그게 썼다가 지웠다가 할 수 있는 건가 봐요. 철필로 쓰는데. 흑판에 흙을 채우고 쓰나? 이런 건 고고학적인 작업이 필요해.

그 물. 농부는 씨를 뿌리면 물을 줘야 하지만, 여기서는 그 물을 가지고 씨를 뿌리는 건가? 말의 씨, 글의 씨를?

주희: 잉크를 종이에다가 막 뿌리는 거 아니에요? 말들과 함께 뿌리는 거니까 쓴다는 의미가 담겨있어야 할 것 같은데. 잉크가 튀는 것. 뿌리듯이 쓰는 것?

정민샘: 진지한 의도에서, 그 말은 글. 여드레 걸리는 글이야. 문자언어의 이점을 그런 걸 들잖아. 유통하기가 편하다. 이 말은 퍼진다는 거잖아. 문자는 한 번 적히면 뿌리기가 좋잖아. 지금 하는 말은 그냥 흩어져요. 영혼에 쓰인 말이긴 하지만, 그 말이 입으로 나오면 금방 흩어진다고. 잡을 수 없죠. 계속 흘러가잖아, 내가 하는 말이. 영혼에서 나온 말이면, 정말 좋은 말이겠지만, 그냥 말 자체의 논리에 의해서 계속 굴러가는 말일 수도 있어요. 이 글은, 진지하게 하는 글이 아니라, 놀이 삼아, 재미 삼아. 놀이나 축제를 위해서 라는 표현이 있었잖아. 뽑아 올려서 빨리 자라게 하는. 이제 문자의 정원이 나오네. 아도니스의 정원에서 문자의 정원으로. 굉장히 시적이야, 이 부분이. 비유가 많이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물 뿌리는 이미지와 먹물. 씨를 뿌린다는 게, 말을 전파하는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기도 하고. 이런 게 시적인 표현이라고 하는 건데.

2011/04/26 22:57 2011/04/26 22:57
  1. 성재
    2011/06/17 19:00
    너무 재밌게 잘 읽고 있어요.
    옮겨 적어주셔서 고마와요.
    옮기신 정성에 더해 account 어원 남겨 놓고 가요!

    account < O.Fr. a/cont < L.com/putare < L. putare < G. paiein

    a cont : a < L. ad : toward
    puta-re : to prune, to reckon
    παίω : to stike, hit
  2. 성재
    2011/06/17 19:03
    끄릭에서 치다 가
    라틴에서는 가지를 치다, 셈을 세다 로 이어졌네요.

    셈할때는 필요 없는 것을 가지친다는 뜻일까요?
    가지를 칠 때는 필요 없는 것을 셈한다는 뜻일까요?

    가지치기와 셈하기가 이어진 모양이 참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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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샘: 그럼 그 이야기를 해보세요. 카이스트에 또…….

정민샘: 그러니까. 그저께.

찬성: 왜 그런 일이 자꾸 벌어지죠?

명석샘: 그런데 서울대도 작년에 6명인가 자살했다며? 안 알려져서 그렇지…….

주연: 그런데 카이스트생 자살한 걸 기사화하면서 왜 등록금 얘기를 꺼내요? 저는 그게 마음에 안 들어요. 그게 진짜 원인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명석샘: 등록금 문제라기 보단 낙오자 문제 같은데. 돈이 압박이 아니고, 낙오되었다는 게 문제였던 거지. 그 네 명 다 징발적 등록금을 내던 사람이에요?

정민샘: 뭔가 그런 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보이는 아이가. 제가 보기에 두 명이에요. 처음 실업계 출신 학생하고, 이번에 자살한 학생. 네 번째. 그리고 중간에 두 명은, 한명은 제가 잘 알고, 다른 한명은 우울증이라던데.

주연: 세 번째 학생 군대 갔다 와서 제대하고 휴학 중이었다고…….

찬성: 제 예전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고등학교 때 각 학교에서 1등 하던 친구들이 모였는데, 꼴찌와 하위권 학생들이 그 박탈감을 이기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정민샘: 저도 어떤 심정인지 이해가 가요. 제가 그랬으니까. 저는 이미 고등학교 때 경험했는데.

찬성: 이건 누군가의 책임으로 떠넘길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정민샘: 분명 직접적인 화살을 돌릴 순 없지만, 그래도 저는 어떤 공동체 내지는 사회가 분명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솔직히 좀 그런 걸 느껴요.

찬성: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도 출구가 필요하잖아요.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니까…….

정민샘: 언론이 좀 잘못 보도하는 부분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그나마 좀 괜찮은 기사가 프레시안에서 학생들 직접 만나고 얘기를 들으면서 쓴 기사[1]는 있거든요. 정치적인 방향으로 몰고 가는 류의 기사도 몇 개 있는데. 저도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요. 타이밍이 너무 이상한데. 4월 5일 총장이 어떤 메시지를 냈어요. 그런데 그 메시지의 톤이 별로 안 좋았어요. 경제는 극복해야 할 문제고, 우리가 더 큰 걸 위해서 감수해야 하는 희생이 분명 있고. 이런 식의 이야기를 터뜨렸는데. 근데 당장 목요일 날 그런 일이 또 생겼잖아. 총장 자신의 책임이 분명히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 분명히 씨가 돼서 그 학생에게 전달되고 그런 게 아니었다고 해도. 사람이 죽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희생으로 표현하는 논조가 분명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분명히 다른 학교에서도 그 정도의 학생 또는 더 많은 학생들이 자살을 택하는지도 모르겠는데, 그걸 그런 식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자살한 두 번째 학생이, 제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그 때 굉장히 혼란스러웠는데. 그 친구는 학업문제라기 보단 그 분의 생활, 동아리활동 그런 게 원인인데. 지금도 굉장히 혼란스러워요. 내가 얼마나 이런 사태에 대해서 책임을 느껴야 하는지. 그런 문제에 대해서.

찬성: 경쟁이라는 방법 자체가, 워낙 승자중심적인 측면의 방법론이라. 경쟁시켜놓고 1등하는 사람에게 보상 주는. 너무 쉬운 방법이잖아요.

정민샘: 사람들의 인식 자체가, 분명 우리 사회나 가치관 자체가 책임이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경쟁이라는 건 어떠한 경우에도, 물론 그걸 어떤 방편, 또는 방법으로 쓸 수는 있겠지만, 그건 가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난 경쟁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저는 경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행복하게도. 그래서 저는 그런 가치관을 사람들이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삶을 살아가는데,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 경쟁 없이도 학문이나 사회는 잘 돌아갈 수 있어요.

찬성: 앎의 즐거움이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정민샘: 공자가 이런 말을 했어요. 군자부쟁. 군자는 다투지 않아요. 군자가 다투는 일이 있다면, 뭘 가지고 다투느냐. 활을 쏘는 일. 활을 다 쏘고 나면, 같이 술을 마셔요. (子曰: 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 <논어> 팔일 7장) 그걸로 경쟁이 끝나는 거야. 거기에 심각한 의미를 둬서는 안 된다는 얘기에요. 사회의 동력으로 경쟁을 끌어들이면 안 돼. 경쟁은 놀이처럼 할 수 있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경쟁을 자기 삶을 굴리는 뭔가로 받아들이는 순간, 사회 전체가 불행해져요.

찬성: 현재 사회가 그렇게 되어 있잖아요.

정민샘: 저는 그동안 그런 생각을 안했거든요, 솔직히? 개인적으로 카이스트가 가르치거나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편한데. 그런데 그런 단체가 분명 그런 가치관에 의해 굴러간다고 생각하면, 분명히 내가 거기 몸담는 순간 그런 가치관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가르친다는 얘기가 되잖아. 그런 의미에서 책임감이 있어요. 그런 생각 때문에 어제 그제 특히…….

제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다 이런 게(책) 있기 때문이에요. 거기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경쟁이라는 가치 없이도 사회가 굴러갈 수 있는지. 일단 거기 익숙해지면 그 인식이 결코 쉽게 가능할 것 같지 않아요.

찬성: 경쟁은 단순히 사회의 인식뿐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를 돌아가기 위한 방법이잖아요. 순위경쟁이 없다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야 할까요? 사실 고대에도 권력자가 있었고 권력자 밑의 사람들이 있었고 사회적으로 고된 일은 누군가 해야 했잖아요. 예전엔 그걸 시키는 게 사회철학으로 됐다면 지금은 너무 쉽죠. 일등부터 꼴등가지 순위매긴 다음에 꼴등에게 그걸 치워! 라고 하면 되니까. 사회적 보상도 일등에게 많이 주고 꼴등에게 조금 주고. 이런 걸로 사회를 돌아가게 하고 있는데. 생각해보면 자본주의 사회가 돌아가는 데 있어서, 누군가 험한 일을 해야 하는데 어떤 대안이 가능할까? 저도 거기에 대한 답이 안 떠오르더라고요.

정민샘: 왜 그걸 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찬성: 물론 그것도 가치평가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의 인식이 그런 것 같아요.

정민샘: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기 쉬우니까. 저는 그런 것 말고는 별게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그걸 험한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명석샘: 실제로 험한 일이잖아. 난 쓰레기 치우는 분들 관찰하는데, 쓰레기 치울 때 물이 팔에 흘러. 굉장히 불쾌한 냄새거든? 오물이 옷에 묻어있는 상태에서 차 좌석에 타고, 유리 같은 것에 베여서 피가 날 수도 있고. 위험하고 지저분한 일이고, 밤에 해야 하는 일이고. 험한 일이 있는 것 같긴 해.

찬성: 누군간 험한 일을 해야 하는데, 누가 해야 하느냐?

명석샘: 다 같이 하면 좋은데.

찬성: 각자 나눠서 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래도 해야 할 건 남잖아요.

명석샘: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관련되어 있을 것 같아. 내가 편하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미루는 거지. 1차 산업 같은 건. 다들 고기 먹고 밥 먹으면서 나는 이걸 하고 싶지 않잖아. 자기는 깔끔하게 화이트칼라로 살고.

정민샘: 그런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봐요.

찬성: 그럼에도 사회적 보상이 차이 나잖아요.

명석샘: 험한 일을 하면 돈을 많이 주면 오히려 달라질 텐데.

찬성: 네. 적어도 사회적 보상에 차등을 줄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서 저는 신자유주의를 싫어하는데. 사회적 보상을 많이 받은 사람이 그걸 돌려주는 건 올바르다고 봐요. 시스템적으로, 또는 사람들이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빅이슈> 같이.

정민샘: 예. 여러 가지 현실적 해결책이 있을 수 있겠는데. 철학이 생각하는 건 좀 달라요. 철학은 부분적인 해결책에 만족할 수 없어요. 지금 당장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안 돼.

명석샘: 그래서 해결 못하지.

정민샘: 그래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찬성: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 오면서 중심이 사람으로 향하고 차이에 대한 것이 부각되면서 개인 하나하나가 중시되며 사회가 너무 급격하게 팽창되었어요. 그 부작용들이 생겨나는데. 제가 이런 옷을 입고 이런 혜택을 누리는 게 끊임없이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한 포스트모던 사회의 철학이 담긴, 사람들의 욕망이 뒷받침된 혜택인거잖아요. 사람들이 다들 자연적인 사회로 돌아가자고 동의한다면 사회적 격차 같은 문제가 자연히 사라질 거지만. 사람들이 일하면서 만들어낸 생산물이 지적인 게 아니라 물질적인 부부분이 폭발적이라는 거죠. 물론 저도 물질적인 혜택을 많이 누리고 있지만. 저도 일을 많이 하게 되면서 같이 죽어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정민샘: 제가 생각하는 건 이런 거에요. 아까 명석샘이 청소 노동자 예를 드셨는데, 우리가 어떤 데 삶의 가치를 둬야 할지. 어떤 일이 더 고귀하고, 천박한지의 문제에 있어서, 사실 몸이 더러워지는 건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진정으로 비난받을 만한, 멸시받을 만한 일은 영혼이 더러워지는 일. 플라톤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런 스케일에 따라서 사람들을 평가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주희: 그럼 위험한 일은 어때요?

정민샘: 위험한 일이 좋은 일일 수도 있어요.

주희: 왜요? 진짜 죽을 수도 있잖아요.

가영: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지?

주연: 죽음을 명예로운 죽음으로 여기면…….

명석샘: 문제는 그 일이 가치로운 건 인정하겠지만 , 내가 하기 싫다는 거지.

정민샘: 그러니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수밖에 없어요. 진정 좋은 일에 대한 관념이 바뀌는 수밖에 없어요. 오히려 이게 가장 근본적이고 쉬운 해결책이라고 보거든요.

명석샘: 당장 할 수 있다고?

정민샘: 당장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되지.

명석샘: 누군가는 청소해야 하는데, 내가 그 험한 일을 다 할 수 없잖아.

찬성: 사회가 돌아가려면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공동사회라는 건 많은 일들을 나누는 거잖아요. 누가 강제적으로 나눠야 하는.

정민샘: 청소하는 일 만큼의 자기 삶의 일을 하면 되죠.

명석샘: 내가 하면 되는 건데, 각자 하라는 거잖아 샘 말은. 누군가 할 수 있겠지만,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 근데 사람이 각자가 되기 힘든 일이지. 샘은 사람에 대한 신뢰가 크구나.

정민샘: 모두가 자기의 일을 하면 돼요.

명석샘: 지금 당장?

정민샘: 근데 모두가 자기 일을 하지 않든지, 자기 일을 벗어난 일을 하게 되는 순간부터.

명석샘: 사람이 자율적인 존재가 되면 되는구나? 근데, 사람이 자율적인 존재이자, 사회가. 자율적이지 않은 측면도 많아. 인간이 생물학적인 개체여서 외부 환경에 의한 압력을 받는 측면도 많잖아.

정민샘: 사회 전체가 그런 유닛으로 움직일 수 있는 체제라면. 그 안에서 서로 의존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부분이 있을 수 있을 텐데.

클샘: 그게 코뮤니즘의 이상일 텐데.

정민샘: 근데 사회시스템만 그런 게 아니라 개인 안에서도 그런 게 있어요. 내가 부족한 부분을 다른 부분이 채우는. 내가 몸이 약하다면 절제 있는 생활로 몸이 약한 걸 채워줘야 하는데.

명석샘: 이기심이라는 원동력을 제거하는 거야, 이용하는 거야?

정민샘: 이기심을 제거한다는 말은 말이 안 되는 거 같아요.

명석샘: 이기심을 활용하거나 진정한 이기심을 갖도록 해야 하는 건데, 이기의 계산이 전부 달라서. 사회가 이걸 간과할 수 없을 거 같아.

정민샘: ‘이기’라고 할 때 자기 주체가 누군지 생각해 보면, 자기 몸 살찌우는 게 이기가 아니지. 자기 영혼을 돌보는 일이 진정한 이기야.

명석샘: 영혼은 존재하냐? 다들 레토릭으로는 영혼이라는 말을 하지만, 돌볼 영혼이 있다고 믿을 사람은 극히 드물 건데. 많은 사람들은 돌볼 건 오직 몸밖에 없다고 생각할걸. 아무리 교회 다녀도 결국 돌볼 건 내 몸이라고 생각하겠지.

정민샘: 제 생각엔 그게 반론이 안되는 게,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명석샘: 샘은 모든 사람이 자기 영혼을 돌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잖아. 그래야 사회가 바뀌는 거잖아.

정민샘: 그런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잖아.

명석샘: 선생님은 돼. 근데 사회가 바뀌려면 선생님 혼자는 안 되고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하는 거란 거지.

정민샘: 그거는 내가 분명히 터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죠. 모든 사람이 정말 자기 일만 해도 사회가 돌아갈 수 있는 체제가 있다고 하면 되는데.

명석샘: 그 체제를 만들어야지. 그 체제를 만드는 게 어렵잖아.

정민샘: 그 체제가 어떻게 보면 결국 저한테는 저 자신의 문제에요.

이게 좀 어폐가 있을 수 있는 얘기 같지만, 플라톤이나 유교의 굉장히 고유한 문제라고 저는 생각해요. 사회라는 게 나와 분리되어 돌아가고 다수가 사회를 구성하고 있고, 내가 작은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내포하고 있는 뭔가가 있는데.

명석샘: 내가 하면 되는데, 각자가 자기, 독립된 주체라는 것도 인정해야 할 거 아냐. 사회가 전체 단일체냐, 각자가 단일체냐. 이 사이에 뭔가 있거든. 각자가 단일체라면, 그 사람의 욕망, 관점, 사고방식을 어쩔 수 없어. 그런데 이 어쩔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사회 시스템을 지탱하고 유지하고 돌아가도록 만든다는 거야. 삼성이 저러는 걸, 이명박이 저러는 걸 아무도 막을 수 없어.

정민샘: 그런 사람들이 자기 일을 해도,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하면 되죠.

명석샘: 지금, 지금 안 되잖아.

정민샘: 지금 내가 그렇게 하면 되잖아.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되잖아.

명석샘: 그럼 그 사람이 안할 것 같아?

정민샘: 그 사람이 하건 말건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그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잖아.

명석샘: 그건 선생님 문제고. 우리는 우리 사회가 누군가는 경쟁 속에 자살하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 그런 문제는 선생님이 어떻게 하건 간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잖아.

정민샘: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야. 그것까지 얘기하는 것은 오히려 좀 벗어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명석샘: 선생님이 할 수 있는 부분은 어디까지겠어요?

정민샘: 나 자신까지 밖에 없죠, 거의.

명석샘: 그 이야기를 하는 거야.

찬성: 근데 원시 부족사회를 잘 관찰해보면 그들이 자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제가 알고 있거든요.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사회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던 건, 나 자신에 대한 인정이 너무 강한. 사회를 먼저 생각하고 그 안의 내 역할을 생각한다고 하면, 더 행복할 것 같은데. 우리는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나에 대해서 먼저 생각을 하잖아요.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 ‘차이’가 이 이유에 심어져있는 것 같은.

정민샘: 근데 유교에 이런 명제가 있잖아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이게 수신하고 제가, 그다음에 치국한다는 얘기는 아니거든요.

찬성: 수신하면 이미 평천하가 된다는 건가요?

정민샘: 제가 얘기하는 식으로 하자면, 수신 안에 평천하가 접혀있다고 해야 하나.

명석샘: 근데 유가 이념은 관료 진출이잖아. 그런 이념도 있지 않나?

정민샘: 관료 진출의 이념도 있고 그런 삶을 벗어난 운도(?)의, 예악의 이념도 있죠.

명석샘: 불가와 도가, 유가를 비교하면, 유가는 관료 진출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

정민샘: 관료진출이라기 보다도, 유가는 어떤 윤리적인 사명을 포기할 수 없어요. 제가 분명 제 자신밖에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분명 안 될 건 알지만,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 참여해야 한다는 그런 명제? 근데 이게 좀 얘기하기 힘든 게, 그런 걸 미션처럼 생각하는 게 주제가 넘을 수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내가 내 신념을 남에게 전파한다는 생각이 가지는 위험성도 분명 있는 것 같아.

명석샘: 정민샘은 철학자로서의 이념이 있는 것 같고, 정치가로서의 이념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 같아. 우린 정치가가 아니지만.

정민샘: 정치가는 그런 생각을 못하겠지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는 거지. 플라톤 식으로, 정치권력과 슬기사랑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그 체제 자체가 유지될 수 없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에게 가장 많은 권력을 부여할 수 있는. 근데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권력을 떠맡기를 원하지 않지. 그래서 필요한 게 돈이죠. 지혜로운 사람에게 돈을 많이 퍼 줘가지고 정치권력에 매력을 느끼는. 그래도 안 해. 왜냐면 정치권력을 떠맡는 게 자기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까.

명석샘: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지?

정민샘: 모든 사람이 슬기롭게 살면 돼.

명석샘: 그런 말은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안 살잖아. 정말 그 사회가 좋은 사회라면, 그렇게 살게 해야지. 살게 하는 방법이, 내가 그렇게 살면 된다는 말이야? 그럼 전 인류 상, 그렇게 산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말이야, 그 말은. 아무도 안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아직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지 않은 거지.

정민샘: 아무가 안사는 걸로 볼 수도 있고, 모든 사람이 일정 정도, 자기 삶의 정말 행복한 순간은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고.

명석샘: 그럼 우리 사회는 아무 문제가 없잖아. 선생님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정민샘: 해결했잖아. 지금.

명석샘: 우리 사회 아무 문제없다. 결론은 그거야?

정민샘: 김명석 선생님 자꾸 내 답을 몰아가는데, 난 선생님께서 무슨 말 하고 싶으신지 알아.

명석샘: 난 선생님이 정치가가 되라고 얘기하는 건 아니야.

정민샘: 분명 김명석 선생님은,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악이나 고통에 대한 인식이 있으니까 그런 얘기 할 수밖에 없는, 그런 면이 있잖아.

명석샘: 내가 답이 있어서 얘기하는 건 아니고, 선생님 생각이 알고 싶은 거지.

정민샘: 플라톤이 제시한 동시대 그리스 세계의 타락상이랄까, 제가 생각하기에 거기에 그런 문제에 대한 더 첨예한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걸 읽으면서, 김명석선생님이 제시한 삼성, MB 그런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하는. 그런 건 약과죠.

명석샘: 약과라는 건, 많이 나아졌다는 거잖아.

정민샘: 모르겠어요. 그걸 나아졌다고 얘기해야 하는지. 더한 뭔가, 인식하지 못하는 거대한 뭔가가 있을 수 있는지.

명석샘: 안 나아졌으면, 우리가 여전히 악의 구렁텅이에 살고 있는 거고. 처음부터 문제가 없었다고 하면 우리가 아무 고민할 필요 없는 거고.

정민샘: 이히히히. 김명석 샘은, 분명 논리적으로 옵션이 명쾌해지는데, 그 사이에 뭔가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게 사라져. 아무 문제없다, 아니면, 뭐야.

명석샘: 안 좋은 사회에서 점점 나아지고 있다. 아니, 세 개지. 좋아질 수 없고 영원히 그 상태다, 허무주의까지.

정민샘: 제가 제시하는 건, 악의 구렁텅이에서, 완벽한 선이 실현된 상태.

명석샘: 나도 정치가로서의 기질이 있는데, 가령 이런 모임을 만들고 하는 거. 공동체 근성. 수업을 하다 보면 목이 아프고, 학생들을 봐도 학생들이 너무 버릇이 없어. 자기네끼리 떠들고. 걔들이 악한 게 아니라 예의나 철이 없다는 건데. 근데 얘네들이 더 큰 힘을 가져서 자기 버릇없음을 막 불릴 수 있거든, 누군가에게.

정민샘: 어떻게 버릇없고 힘이 있을 수 있어.

명석샘: 이명박 같은 사람.

정민샘: 이명박은 제일 힘없는 사람이라니깐.

명석샘: 아무튼 그런 사람들 속에서 나는 수업하는 게 힘들어. 눈병도 나고 목도 아프고. 난 내가 뭘 바꿀 수 있는지, 회의가 드는데, 내가 번 돈으로 나만 잘살 수 있는데, 왜 사람들 모아서 가르치는지. 그 시간에 내 공부를 하면 더 행복할 텐데. 난 이렇게 고통스럽지만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있어. 누군가를 바꾸려 하는 거지. 근데 샘 말대로 하면 아무 변화도 없을 수 있어. 난 그걸 작은 교실에서 돌아가는 걸 보며 매일매일 느끼지.

주희: 근데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지 않아요?

명석샘: 그게 내 희망인데.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방향이 뭔지 고민해야 하지 않나, 그게 정치인으로서 고민해야 하는 방향인 것 같아.

정민샘: 아까 명제로 돌아가서. 수신제가, 물론 학생들이 제 가족은 아니지만. 제가 모르는 건 학생들이 알아요. 재가 정말 의미 있게 생각했던 것들, 제가 몰랐는데 새롭게 알게 된 것들. 그런 걸 제시해주면 학생들이 받아들여요.

명석샘: 어디에서도? 어디서라도 샘이 한번 해보세요.

정민샘: 제가 얘기하는 ‘어디’는, 얘기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제가 이런 얘기를 인터넷 댓글 장에 막 떠든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어요. 그런데는 내가 가는 데가 아냐. 얘기가 먹힐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얘기가 먹힐 수 있는 장을 자기가 만드는 거죠.

명석샘: 결국 내 탓을 해야 해. 결국 내가 부족한 거야.

정민샘: 샘이 부족하다기 보다도, 그건 샘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걸 하려고 했기 때문이야. 오히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명석샘: 논리학의 단순한 규칙을 가르쳐줘도 안 듣고 떠드는데 내가 뭘 할 수 있어.

정민샘: 정말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만.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제가 생각하기에 사회가 잘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명석샘: 그럼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없어.

정민샘: 아니에요. 김명석샘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일을 너무 많이 떠맡는 것 같아요. 근데 모든 사람이 그런 성향이 있어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하려고 한 것 같아요. 이런 사람이, 정말 할일 없는 사람이 너무 많은 일을 맡은 경우에요, MB.

명석샘: 그게 정치가로서의 내 이념과 좀 다른 거다. 그런 사람이 일 안하도록, 일할 만한 사람이 왕창 빼앗아야 해.

정민샘: 빼앗으려고 하지 않아도, 내가 내 일을 하면, 그런 사람들이 할 일이 없게 돼요.

명석샘: 내가 아무리 강의를 많이 해도, 엄청나게 부실한 강의들이 대한민국에 벌어지고 있어. 내가 강의 안하면, 그 부실한 강의의 수를 그만큼 늘리게 되는 거야. 어쨌든 정치가는 내가 하면 좀 더 세상이 나아질 거라는 야망을 가진 사람이고, 그래서 참여하는 건데.

정민샘: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는데, 함부로 얘기하지 말라는 거예요. 관악구민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얘기는 주제넘은 얘기야. 이정희씨 뿐만 아니라, 어떤 정치인이 나와도. 올라갈수록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을 떠맡는 사람들이에요.

명석샘: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나마 나은 사람들이 있잖아.

정민샘: 동의해요.

명석샘: 그런 사람이 선출되게 하는 방식이 좋은데, 우리가 선출을 못하니까, 사람들이 헛구호를 외치는 건데.

정민샘: 맞아요. 유혹이라는 게 결국 이런 거잖아. 마치 잘살게 해줄 것처럼.

명석샘: 정치가의 딜레마가 뭐냐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만큼 하겠다. 그 일을 실현시키는 데 자기가 다가가지 못해. 자기가 진실된 말을 해야 할 텐데, 사람들이 뽑아주지 않아. 거기서 갈등이 일어나. 그래서 레토릭을 쓰게 되는데. 레토릭이 심하냐 덜하냐의 문제. 정치철학자가 할 수 있는 것과 사기꾼이 할 수 있는 것과 진정한 정치가, 공동체 설계자가 할 수 있는 게 있는 거야. 정치가가 어떤 존재인지, 그게 내 고민이다.

찬성: 정치가들이 사실은 되지 않은 것들이 될 것처럼 얘기하는 게 많잖아요. 시뮬라시옹에서도 대표적인 사례로 없는 걸 진자 있는 것처럼 말하는 케이스로 정치를 들듯이. 그리고 에반게리온의 신지가 왜 에바를 타고 운전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가, 마지막에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살리겠다는 의지로 각성시키잖아요. 근데 박사가 다른 사람을 구원하거나 이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너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 일을 하는 거다, 그래서 그 일을 반드시 해봐라, 고 말할 때 감동이었거든요. ‘내가 이걸 왜 해야지?’ 라는 물음을 사람들이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데,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인류를 변화시키기 위해, 라고. 그런데 자기가 이루고 싶은 목표, 철학을 바로 세워주면 답이 되지 않을까요.

명석샘: 그래, 그 각자가 하면 되는데, 근데 그 자기가 굉장히 많아. 남이 안 하는 걸 자기가 말할 수 없어. 근데 우리 사회는 안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나서서 하는 사람이 필요한 거야.

찬성: 정치는 안하는 사람을 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도 있잖아요.

명석샘: 링컨, 만델라 같은 사람이 왜 위대한 정치인이겠어. 아파르트헤이트 중에 노예해방을 외치는 거지. 각 시대마다 정치가가 있는 거야. 그게 작든 크든 그런 문제를 조금이라도 개선시키려고 몸을 바치는 사람이 있는데. 역사 전체를 보면 철학자, 과학자들의 역할도 있지만 정치가의 역할도 있는 것 같다. 나도 철학자로서의 역할이 있지만 정치가, 종교인으로서의 기질도 있는 것 같은데. 나 혼자 깨닫는 것, 나 혼자 즐거운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

찬성: 그럼 선생님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감정은 왜 드시는 거예요?

명석샘: 난 그 분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데, 저런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역할은 다르고 행복의 정도는 똑같았으면 좋겠는데, 저 사람 표정을 보면, 왠지 정말로 나보다 불행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거야. 정말로 불행한지는 모르겠는데, 내 시선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지. 인간의 본질은 같은데, 여러 역할로 분화된 거 아닐까.

정민샘: 제가 생각하는 건, 예수가 인류가 구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자기 자신이 가장 행복하고 넘치는 삶을 산거에요. 저는 거기에 인류의 구원이 있다고 생각해요. 잔치를 벌이는.

찬성: 모두가 행복하면 가장 좋은 사회이지 않을까요?

명석샘: 예수는 잔치를 벌이고 사람들을 초대했지. 그게 정치가의 목표라 생각해, 나는.

정민샘: 물론 예수처럼 능력이 된다면 몇 천 명 불려서 먹일 수도 있지만, 저는 그 정도 잔치를 벌일 수는 없어요.

명석샘: 샘 지금 여기서 잔치 벌이고 있잖아.

정민샘: 이 정도는 되지. 말잔치. 난 먹일 수는 없어. 헤헤.

명석샘: 그니까 샘도 ‘자기’가 아냐. 누군가를 생각하는 거지.

찬성: 샘께서 여기 참석하신 목적, 이 생각실험실을 만든 선생님의 목적이 궁금해요.

명석샘: 말잔치, 지혜잔치를 벌이려는 거지.

찬성: 철학적인, 사회적인 입지가 넓어지면 좋은 건가? 만드신 이유, 참석한 이유가 왜인 거죠? 말잔치도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선생님을 위해서인 거죠?

정민샘: 전 저를 위해서.

명석샘: 난 누군가를 위해서. 내가 즐거우면 남도 즐거우니까.

찬성: 이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채워져서 즐겁게 얘기 나누는 상황, 우리의 즐거움을 봄으로써, 선생님이 즐거우신 거잖아요. 그 부분에서 중요한 건 우리의 즐거움보다 선생님의 즐거움이신 거죠.

명석샘: 뉘앙스가 좀 다른데, 내가 즐겁기 위해 모은 것과, 여러분이 스스로 모인 것은 다른 거지. 예전에 한 수업에서 사랑의 정의를 얘기하는데, 한 여학생이 지금 한창 사랑에 빠진 것 같아.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타인의 쾌락을 극대화시키는 것, 나의 쾌락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타인과 협력하는 것이라고 말하더라고. 나는 듣자마자 그게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정민샘: 오히려 내 생각하고 좀 비슷하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이상에 가장 근접한 말이라고 하면,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정말 내가 될 수 있었다는 걸 그 사람한테 얘기해주는 것. 나를 실현해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 사람이 없었으면, 다른 내가 되었을 텐데, 그 사람이 있음으로 해서 지금의 내가 되었고, 지금의 내가 제일 행복하고 즐거운 상태에 있을 수 있다고 얘기해줄 수 있는.

내가 즐거운 만큼 주변 사람들도 즐거울 수 있는 거 같아. 내가 고통 받고 남을 즐겁게 한다, 그리고 남의 고통을 나의 즐거움으로. 저는 이게 별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주희: 예수는요?

정민샘: 예수는 고통 받은 사람이 아니야.

주희: 죽었잖아요, 십자가에 매달려서.

정민샘: 자의로. 거의 죽음은 redundant 해. 중복이야.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일이라는 거야. 다 이뤘잖아.

찬성: 죽음으로써 이룬 거 아니에요?

정민샘: 다 이루고 죽었는데?

찬성: 왜 다 이루고 죽은 거라고 생각하세요?

정민샘: 다 이뤘으니까 차이가 없잖아.

찬성: 일단 기독교에선 죽음으로써 이뤘다고 해석하고 있죠. 제의에 의해 누군가 죽어야 하는데 예수가 대신 죽은. 그래서 죽음 자체가 의미가 있는.

정민샘: 몰라. 내가 생각하는 기독교는 아닌데. 내가 너무 내 식으로 기독교를 생각하는지도.

찬성: 우리나라가 지금 살만한 세상인가요? 최근에 나눈 대화 중 슬펐던 게, 자본론에 그런 얘기가 나온다면서요. 맑스가 자본시장을 공격하기 편했던 것 중 하나가 집값 문제였거든요. 집값이 어느 수위가 적당한지 자본론이 결정한 바가 있는데, 사람이 평생 일해서 번 돈의 합이 집값이라는 거에요. 만약 우리가 30년 일하고 1년에 천만 원 모으면, 2~3억이 집값에 적합하다는 거죠. 그 말은 온 땅을 분할해서 국민들에게 각자의 땅을 나눠줄 수 있었는데 사회학적으로 문제가 이었던 건데, 미리 주는 게 아니라, 맨 마지막에 주는 거죠. 그게 자본주의에서 집값의 비유라는 거죠. 나는 고작 나의 20평짜리 공간을 만들어내고 죽는 거야.

주연: 뭔가 묏자리 만들고 죽는 것 같네요.

찬성: 그죠? 20평짜리 집을 만들어내고 죽는 게 자본주의의 집문제인 거에요. 집값이 그 이상 되었을 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현상. 왜냐면 자기 영역도 확보하지 못하고 죽는 거니까. 그 다음 문제는 불로소득인데. 내가 내 영역 얻었고 자식에게 물려주면, 모두가 그러면 아무도 일 안할 거잖아요. 20평짜리 땅 사기 위해 평생 공부하고 일하는 거에요……. 아니 분위기 왜이래.ㅎㅎ

명석샘: 근데 우리 무슨 이야기 하다가? 정민샘이 일이 많다고 하셔서 카이스트 이야기 하다가…….

찬성: 덕분에 생각 많이 해봤어요.

정민샘: 김명석샘, 저도 그런 생각, 해요. 뭔가 고통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명석샘: 카이스트에서 가르치는 게 정당한 거냐, 그게 정치적 책임을 느끼는 거라고 생각해서. 공동체의 한 멤버로서, 공동체를 그대로 방치해두는 게 올바르냐,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정민샘: 제가 뭘 좀 썼어. 생각이 좀 많아서. 요즘도 어떻게 될 지 잘 모르겠는데.

명석샘: 앞으로? 카이스트에서? 그건 서남표가 고민할 문제고, 샘은 더 잘 가르쳐야지. 마음의 힘을 키워줘야지. 샘 영어로 강의하시지? 그것도 한 요소라고 생각해. 걔들은 사고는 한국어로 하지 않나? 말이 주는 정감, 인문학적인 부분이 있는데.

정민샘: 그런 걸 전달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또 영어로 하면 단지 언어만 바뀌는 게 아니라, 내용도 미국에서 가르치는 식으로 가르치게 된다고. 그걸 정말 잘하면 좋은데.

명석샘: 농담하거나 인문학적인 가치가 담긴 말 안할 거 아냐. 딱딱하게 수업만 할 거 같아. 학생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 부족할 거 같은데.

정민샘: 근데 그 얘기는 아니었고. 김명석샘 생각하는 그런 건 뭐야? 자기가 고통스러우면서 남을 즐겁게 행복하게 해주는 거야?

명석샘: 아니 난 고통을 좋아하지 않아.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해.

주희: 그럼 부모님의 사랑은 어떻게 해요?

명석샘: 부모님의 사랑은 아프지 않지.

정민샘: 그럼 그런 고뇌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에요?

명석샘: 고통이 존재한다면, 사랑은 그런 고통을 감소시켜야 하지 않나?

정민샘: 누구의 고통?

명석샘: 인류의 고통. 원래 인간이 갖는 고통이 있다고 생각하거든. 누군가가 이기심 때문에 고통을 증가시킬 수도 있어. 살아가는 데 수고가 필요한데, 노예에게 전가시킨다거나, 노동력 같은 걸 전가시켜서 편하게 살고자 하거든. 전 인류의 고통과 쾌락의 양을 평균내면, 고통의 양이 있다고 생각해. 동물도 그런데, 다큐를 보면 아프리카 코끼리가 물을 먹기 위해 수백 킬로 험난한 길을 걸어가잖아. 내 말은, 내 감정이입을 해서인지도 모르겠는데, 고통의 양이 있고, 존재라는 게 고통을 함축하는지도 모르겠어.

정민샘: 일체개고. 존재 자체가 고잖아.

명석샘: 그래서 고통 자체를 줄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야.

정민샘: 누구의 고통을 제일 잘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명석샘: 자기겠지. 어떤 사람은 빈민돕기운동, 노숙자 운동 같은 일을 하며 세상의 고통을 줄이는 걸 자기 일로 하는 사람인데, 나는 세상의 고통을 줄이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니고, 고통의 체계적인 감소, 고통의 문제를 생각하고 줄이는 데 생각을 많이 할 사람들을 만나는 게 내 일이야.

정민샘: 사랑주의자.

명석샘: 응, 난 사랑주의자니까 고통, 쾌락보다 선의 증대, 이런 게 답이 아닐까 해. 난 둘이가 너무 사랑해서 악을 모의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해.

정민샘: 폭풍의 언덕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거든요. Dare Devil! 감히 악마도 부러워하지 않을 만큼 사랑한다, 전 분명 이런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명석샘: 악마도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악마니까 부러워하지 않겠지. 차라리 신도 질투하지 않는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정민샘: 루시퍼, 원래 천사였다가 떨어지잖아. 타락천사. 루시퍼가 떨어지면서 이런 말을 한다고. 우리말에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겠다 이런 말이 있잖아. 난 천국에서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는 식으로 사느니 지옥에서 군림하면서 살겠다, 이런 표현이 있어. 왜 이런 말이 갑자기 생각나지?

그게, 뭔가 좋은 일이 벌어지게 해야 하는데, 그게 어려워, 솔직히. 우리가 정말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걸 표현한다고 그 사람한테 좋은 일이 생기는 게 아니잖아.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랑이나 연애라고 생각하는 것의 99퍼센트는 나빠져, 어떠한 측면으로든. 거기서 서로가 잘 될 수 있는 게 정말 어렵다고 생각해요. 근데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사랑은 그런 게 아니잖아요. 어때요?

명석샘: 그걸 하려고 하는데 실패했을 뿐이지.

정민샘: 그래, 하려고 하는 행위 자체가 서로를 끌어내린다고. 어려워. 선생님 자신 있어요 ? 난 자신 없는데.

명석샘: 난 사랑할 능력 없다고 늘 말하지. 근데 난 사랑할 능력 없지만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해. 능력 없다고 말하는 게 그런 이상적인 사랑을 할 능력이 없다는 거지, 남들이 말하는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건 아냐.

정민샘: 그런 사랑을 하면 되잖아. 정말 이상적인. 근데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랑만으로 되는 건 아닌 것 같아. 뭔가 좋은 일이 벌어지게 한다는 게, 내가 정말 아끼는 사람들에게.

명석샘: 희생이라는 말이 그때 나오는 말인 것 같아. 정말 상황이 악화될 때, 선택을 해야 할 때. 악화를 끝내기 위한 결단. 끝내려고 하면 더 악화될 수 있는데 그건 잘못된 사랑이라는 거야. 억지로 사랑하면 더 불행해질 수 있거든.

정민샘: 처음부터 나빠지는 게 없는 거야. 좋은 쪽으로만.

명석샘: 그럼 그게 사랑이지. 근데 사람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좋아지진 않잖아.

정민샘: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일만 생겨, 난. 사랑할 때는.

명석샘: 그게 진짜 사랑이 벌어지고 있다는 징표지. 아는 게 늘어나고, 선이 증대되고.

정민샘: 맞아요. 사랑 때문에 내가 보게 된 게 많아요. 평소에 못 보던 플라톤의 구절들이…….

명석샘: 같이 있는 사람이 아는 게 증대될 때 나도 기쁘지. 그게 사랑하는 거 아닌가? 내가 학생을 사랑한다고 했을 때 그게 가장 큰 것 같은데... 역시 내가 끼어드니까 진도가 못나가네.

정민샘: 역시 누가 있으니 재밌네. 가영씨 주희씨 효주씨 이렇게만 있으면...

주희: 심심해요?

정민샘: 약하다.

가영: (쾅!)

주희: 열받았다.

정민샘: 강해져라. 내가 일방적으로 얘기하게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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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6 22:52 2011/04/26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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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녹취록. 4월 9일 저녁 7시 @ 생각실험실.

<파이드로스> 144쪽. 276a

정민샘: 플라톤의 문자 비판에 대한 이야기를 해요. 플라톤에겐 대화로 풀어가는 말이 진짜 말이잖아. 글로 쓰인 것도 말인데 좀 덜떨어진 애야. 말에 주체가 있는데 플라톤은 그걸 아버지에 비유해요. 어머니라고 해도 돼. 여러분 각각이 어머니야. 아버지한테 나온 적자는 지금 이렇게 나오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건 아주 적자는 아냐. 지금 대화하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말하잖아. 그리고 쓰인 말. 얘가 서자. 그런데 분명 가치평가가 들어가 있어. 서자가 영어로 뭐죠? bastard. 얘가 제대로 나온 애가 아냐. 전통적인 사회에 분명 그런 구분이 있잖아요. 홍길동전에 보면 서자로 나온 게 한이잖아.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가치평가를 하니까. 사람 자체를 낮춰보잖아. 적실이 아니라는 거지. 그게 꼭 우리사회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래요. 서구사회도 장자 중심, 적자 중심의 사회죠. 심지어 19세기 이런 때도. 다윈의 <인간의 유래> 보면 그런 게 다 나와. 어떻게 장자에 대해서 서자나 둘째의 아이를 차별하는지. 장자 상속. 그런 얘기가 나와. 다윈은 그걸 생물학적인 맥락에서 좋은 씨, 유전자가 장자를 타고 간다고 말하죠. 그 사람에게 몰아주는 시스템이니까.

주연: 진짜 그래요?

정민샘: 진짜 그래.

주연: 실제로, 과학적으로?

정민샘: 사회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제도가 그런 걸 떠받쳐준다는 거죠. 사실 생물학적으로는 차이가 없는데. 적실이나 서자나, 무슨 유전학적인 차이가 있겠어요.

주연: 그런데 그런 말 들은 것 같기도 했어요. 우성, 열성 그런 게, 첫째에게 우성 인자가 더 많이 간다? 근데 그냥 헛소문인거 같았어요.

정민샘: 제 생각은 오히려 서자에게 좋은 유전자가 나올 가능성이 많아요. 왜 그러냐면, 아 이건 과학적인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안 하겠어요.

주희: 왜요?

찬성: 아니, 사회가 만든 관습을 빼고 나면 남자나 여자가 만나서 나온 건데 똑같은 거잖아요.

정민샘: 근데, 무조건 차이가 나는 짝이 좋은 짝이에요. 비슷한 환경이나 사회 속에서 만나는 것보단, 아주 다른, 전혀 딴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짝에서 좋은 유전자가 나올 확률이 많아요.

찬성: 진화론적으로 봤을 때요?

정민샘: 유전학적으로죠. 진화론적인 건 세대가 많이 지나야 나타나는 거고.

가영: 좋다는 게, 다양성 측면에서 생존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죠?

정민샘: 네 맞아요.

주연: 지식채널e에서 봤는데, 지금 먹는 바나나가, 한 종밖에 없대요. 영국에도 감자가 병이 돌아서 한 종류밖에 안 남았다는 게 생각나면서, 바나나도 나중에 못 먹게 되나, 그런 생각이 들어 느낌이 묘했어요.

정민샘: 아무튼, 이런 식의 가치평가가 들어간 말이에요. 동시대인들에게 하기 위한 말인데. 여기 또 재밌는 이야기를 하더라고. 가족 관계가 어떻게 한 인간의 발달 내지는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지. 뭐죠 그런 게? 정신 분석, 그런 게 있단 말이야. 데리다. 지난 시간에 얘기 했었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뭐가 있다는 거지. 가영씨 말하기도 전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네.

가영: 아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정민샘: 아닌 것 같지? 그런데 또 말이 되는 측면이 있어. 적자, 서자의 구분이 플라톤이 내세우는 이분법을 잘 보여주는 단어 선택이라는 거죠. 플라톤이 형상, 형상의 모상, 모방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 그렇게 플라톤 철학 전체를 관통하는 이분법이 되게 많아요. 철학적으로, 존재론적으로 그런 구분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어떤 가치 평가를 하고서 그런 구분을 하는 거란 말이야. 형상의 세계가 이데아의 세계고, 그게 바로 선. 그에 비해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 세계는 뭔가 안 좋은 버전이잖아. 이데아 세계의 모방 내지는 타락이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 플라톤식 이분법이 이런 데서 보이는 거야. 물론 데리다 자신이 그런 얘기를 하는 거지만. 정신분석 쪽에는 우리가 적자에 대해서 이복형제, 서자의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하기도 하는데, 일종의 반플라톤주의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데리다는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실제로 20세기에 반플라톤주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그런 식의 가치평가를 뒤집는 얘기를 한단 말이죠. 타자? 그런 얘기 많이 들어보지 않았어요?

가영: 타자가 뭐 어쨌다고요?

정민샘: 그러니까 이런 구분도 있어. 형상이라는 건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는 존재고, 자기동일적 존재에 대해 현실세계, 그 모상은 타자라는 거지. 자세하게 얘기할 건 없고, 그런 얘기도 있다는 걸 알아둬요.

그래서 진짜 좋은 말은 어떤 말이냐? 참된 인식과 함께, 배우는 자의 영혼 속에 쓰인 말. 데리다가 이걸 또 트집 잡아 얘기한다고 했잖아. ‘쓰인’. 저번 시간에 이까지 얘기한 것 같은데, 기억나요? 데리다가 텍스트중심주의자라고 했잖아. 데리다에게는 이 말보다, 글로 쓰인 말이 더 중요해. 그런데 플라톤이 높이 평가하는 말은 영혼에 쓰인 말인데, 언어화된 말이 아닐 수도 있어. 언어화되기 이전의 로고스. 신약성서에서 얘기하는, 태초의 말씀. 그 말씀이, 일종의 존재론적인 원리거든요. 그런데 그걸 표현하기 위해 플라톤이 사용한 일상 언어가 ‘쓰인’ 이잖아. 맞죠? 어떻게 보면 데리다에게는 존재가 글 안에 들어와 있는 거야. 그래서 텍스트중심주의야. 나도 지난 2주 동안에 잡힌 일들이 많아가지고, 많이 까먹었어.

2011/04/26 22:45 2011/04/26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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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주: 글쓰는 것과 말하는 것은 타인이 의미를 알 수 있지만, 머리로 생각만 하는 거는아니잖아요. 이런 건 여기서 구분이 안되는 거에요?

 

정민샘: 잘 생각해보세요. 루소의 삶이 글로 쓰여서 텍스트가 되는 것이 아니라 루소의 삶이 이미 언제나 텍스트 였다. 과거형이에요. 거의 이런 생각과 같아요. 로고스? 성경에 나오는 건데. 태초의 말씀이 계셨다? 말씀이 신과 함께였고 말씀이 신이었다. (요한복음. 1장1절.) 예수는 신인데 예수는 태어나기 전에도 말씀이었어. 말씀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인데 그게 잠깐 공기의 진동을 통해서 잠깐 지상세계위에 들린거지.

그래서 이런 생각이 있고, 해체, 해체는 뭐냐. 기존의 독법은 이런 걸 따진다는 거지. 텍스트의 진의, 저자의 의도, 의미가 어디에 있느냐. 어디에 있어? 응? 삶에 현실에? 이런 걸 문제 삶기 시작하면 어떻게 읽어야 되는지가 바뀌는 거야. 텍스트바깥에 없잖아. 그럼 의미를 어디서 찾아?

 

주희: 자기한테서요.

정민샘: 자신도 텍스트인데? 아까 루소의 텍스트가 항상 있다고 했잖아. 여러분도 항상 텍스트가 있어.  

주희: 텍스트말고 이미지는 있을 수 없어요? 이미지가 뭐지?

정민샘:이런 거요? (기호그림)

리나: 텍스트가 이런거에요? 머리 속에 인식된 개념같은 것.

가영: 기호.

 

정민샘: 차연. 데리다한테는 언어가 거의 차연의 체계에요.

우리 생각에는 언어가 각각이 뭔가 의미를 가진 그런 게 조합이 돼서 이루어지는 체계라고 생각하는데, 그 의미라는게 바깥에 있잖아요. 지시하는 대상. 데리다 한테는 그런 식이 아니라 차연에서 발생하는 거에요, 뒤프랑스.

텍스트안에서 의미를 찾아야 될거 아니야. 어떻게 텍스트 안에서 진의를 찾냐. 그런생각 해보셨어요? 이런식으로 말하면 플라톤이 진짜 의도한 바는 뭐야? 진짜의미한 바는 텍스트 안에 있어. 텍스트 어디? 그 앞에. 그 앞이 진짜로 의미하는 뭐야? 그거는 다른 대화편. 다른 대화편이 진짜로 의미하는 바는? 뭐야이거~.

‘해체’라고 이야기하는 게 과격한 표현같이 들리지만, 원래 deconstruction이라는 게 함께있는 걸 갈라보자, 풀어헤치자 이런 의미에요. 뭘 갈라놓느냐. 저자가 텍스트에서 의도한 것처럼 얘기하는 부분이 있다는 거지. 텍스트에는 그것만 있는 게 아니야. 저자가 보지 못했지만 여전히 텍스트에 남아있는 부분들이 있어. 그런 부분들을 읽어내면 저자의 의도가 저자의 반하는 의도와 연결이 되는거야. 저자의 반하는 의도가 텍스트 안에 있지 않으면 저자의 의도를 전달할 수 없는거야. 그게 ‘차연’개념. 의미가 차연에서 발생. 의도한 것을 전달하려고 하면 의도하지 않은 바를 텍스트안에 남겨야해. 의미가 ‘차연’에서 발생한다고. 그게 데리다가 이야기하는 ‘해체적 독법’. 그래서 <플라톤의 약국>이라는 논문도 플라톤의 텍스 밑에 숨겨져있는 같은 텍스 안에서 요런 부분들을 모아서 이야기하면 플라톤의 공식적 메시지, 의도, 진의에 반하는 요소들을 텍스트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거지. 그 요소의 대표적인 예가 파르마콘. 묘약.

파르마콘 묘약이면서 독약이기도해요. 약과 독약이 다른 게 아니라고. 뭔가 냄새가 나는데. 좀전에 이야기한 의도와 반의도. 이건 너무 단순해. 파르마콘이 뜻하는 바가 치료도 되는데. 병을 치료하는 수단. 소크라테스가 죽잖아.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받아요. 독약. 그런데 소크라테스한테는 그게 치료야. 뭐에 대한 치료일까요? 삶이라는 기나긴 병에서 드디어 치료가 된거야. 삶이 어떤 의미에서 병이란걸 못느꼈나? 

‘그런데 대화가 문자에 이르자, 테우트가 이렇게 말했다네. “왕이여, 이런 배움은 이집트 사람들을 더욱 지혜롭게 하고....왜냐하면 그것은 기억과 지혜의 묘약으로 발명된 것이니까요.”.’(본문) 왕이 말하길 테우트 니가 그렇게 선전으로 선전을 하는데 그것도 말되네. 기발해. 그런데 야, 테우트. 약 만든 사람있고, 좋은지 안좋은지 판단하는 건 다른 사람이 이야기해야지. 너는 약장수니까 좋게 이야기하지. 내가 지금 얘기하는 게 데리다 독법이야. 내(타무스 왕)가 보니까 그거 순전히 독약이야. 배운 사람들로 하여금 기억에 무관심하게 해. 원래 기억의 묘약이라고 했는데 기억에 독약이야 왜?

 

리나: 썼으니까 기억안해도 되니까요.

정민:그래~ 다 독약이야. 내말 기억못하면 끝나. 그니까 그거 독약이야.(녹취하는 것 가리키며) 망각을 낳잖아. 어딘가 찾아보면 있을거야.. 나도 그거 찾아봐. 너무 많이 읽어서, 기억하지 않고 다 어디 있을거라고 생각하지.학자들이 그래요..믿을게 못되.ㅋㅋ

바깥에서 오는 낯선 흔적들에 의존할 뿐 안으로부터 자기자신의 힘을 빌려 상기하지 않기 때문이요.(본문) 플라톤 앎은 안에 있지않으면 들어가지 않는다. 여러분 안에 있다는 거야. 영혼속에.

 

리나: 영혼은 어디있어요?

정민샘: 여러분이 영혼안이야.

주희: 안에 있던 거는 원래 태어날때부터? 

 

정민샘: 거의 그런거지. 거의. 라이프니츠를 생각해야되. 우리가 우주를 표상하는데 다 명확히 표상하지 못해. 어렴풋이. 근데 모든 사태에 대해서 표상하기는 해. 그것을 밝게 만드는 행위가 신에 의해. 흰종이 위의 먹물 이런 건 바깥에서 오는 낯선 흔적이라는 거야. 이런 흔적들에 의존하면 더 이상 자기 자신 안에서 끌어내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지. 상기. 플라톤의 유명한 상기설. 잊은 것을 다시 기억하는. 태어날 때부터 알고있던 것이지만 잠시 잊었던 거야. 그런데 상기를 해야되. 그것이 우리 현세에서 앎의 과정이에요. . 근데 문자에 의존하게 되면 그 짓을 안한다는 거지.

 

리나: 그런데 상기를 하려면 뭔가가 필요하잖아요. 그러네 상기의 묘약은 될수있네.

 

정민샘: (본문)그대가 그의 제자들에게 주는 것은 지혜의 겉모습이지 진상이 아니라오. 왜냐하면 그들은 그대 덕분에 가르침을 받고 많은 것을 듣게 되고, 자신들이 많이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문자 때문에 많이안다고 생각하는거야. 그런데 사실은 무지하고 상대하는 데도 까다로운거야. 왜냐하면 이 사람들, 먹물쟁이들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본문) 기술을 문자에 담아 남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물론, 문자로부터 무언가 명석함과 확실함이 생겨나리라는 생각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속에 순진함이 가득한 사람일 것이고.. 명석함과 확실함. 거의 데카르트의 명석판명 그런 얘긴데. 내가 말로하는 건 텍스트보다 어설퍼. 고전역학 말로설명하면 여러분이 말로 설명할거 아니야. 여러분이 정확해요 책이 정확해요?

 

가영:책이요.....

 

정민샘: 말하다가 내 표현이 어색하고, 내가 유연한 표현을 못찾을 수 있지. 그런데 책에는 전형화된 것이 있잖아 무서운 생각이야. 문자로부터 명석함과 확실함이 생겨나리라는 생각이. 근데 이것은 책에서 생겨나지 않는다고. 원래 사람이 그것을 담아 놓는거지. 근데 우리는 책이 명석함과 확실하다고 생각한단 말이야. 바깥에서 온 낯선 흔적들. 책 위에 쓰여진 건 종이위의 먹물이야. 여기에 명석함과 확실함이 있지 않다고. 그것을 담은 사람한테 있으면 있어도. 근데 그걸 담으려면 어떻게 해야되요? .다 베껴요.

 

리나: 근데 그 원본을 거슬러 올라가고올라가고....

 

정민샘: 맞아. 명석함과 확실함은 갈릴레오 뉴턴 이런 사람들이 봤던 게 명석하고 확실한 것이죠. 고전역학 책을 보면서 우리는 상기를 해야해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앎을. 그앎이 어떤 앎이냐. 갈릴레오 뉴턴이 보았던 앎.

 (본문) 글쓰기에는 뭔가 기이한 점이 있으니, 그것은 사실 그림 그리기와 똑같네. 거기서 생겨난 것들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보이지만, 자네가 어떤 질문을 던지면 무겁게 침묵한다네.

문자는 어떤 성격이 있느냐. 문자는 그림과 비슷하다. 그림도 그려놓으면 동물그림, 개 그림. 개는 죽었잖아. 그림한테 말을 걸어. 개가 얘길하나? 글도 똑같아. 글안에 생각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글안에 생각이 어디있어? 생각이 있는 애는 내가 질문을 하면 답을 해야지. (글한테)이거 궁금한데요? 무슨 바보짓이냐.

첫 번째, 글은 언제나 똑같이 하나만을 가르친다. 흔적, 먹물모양. 그리고 글은 한번 쓰이고 나면 청자를 가리지 않는다. 사람은 가려서 얘기해야하는데 글은 그걸 할 수 없어. 생각하는 사람은 가려서 얘길해야지. 근데 글은 먹물모양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사람을 가리지 않고 얘기를 하죠. 그러지 말고 상기의 묘약으로 받아들여. 글이 잘못된 대우를 받고 부당하게 비판을 당하면 생각하는 애면 자기를 변호해야되잖아. 근데 그게 안되죠.

(본문) 참된 인식과 함께, 배우는 자의 영혼 속에 쓰인 말은 자신을 지킬 힘이 있고, 상대해서 말을 해야 할 사람들과 침묵해야 할 사람들을 가려서 안다네.

여러분 영혼이 다 알고있다고 했잖아. 상기만 하면 되. 근데 배우려고, 상기하려고해야지. 상기하려고 하는 영혼. 플라톤이 생각하는 말은 영혼속에 쓰인 말임과 동시에 대화로 하는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안의 참된 인식을 서로 이끌어 낼 수 있는.

(본문) 당신은 앎이 있는 자의 말을 일컬어 살아 있고 영혼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거군요. 글로 쓰인 말은 그것의 영상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입니다.   

데리다. 데리다 얘기를 해볼게요. 영혼속에 쓰인 말(본문 속의). 쓰였네 거기. 그 말이 쓰였잖아. 지금 맥락이 어떤 맥락이야? 글쓰기를 비판하는 맥락이잖아. 그런데 그것의 동생을 이야기하면서 서자(본문 중) 글이 서자고 영혼 속에 쓰인 말이 적자인데 이미 그것도 글이라는 거야. 쓰였잖아. 뒤프런스. 차연인데, 자기안에 자기의 적을 담고있죠. 이미 영혼 속에 말이 글로 쓰였잖아. 플라톤이 이런 실수를 한건 아니고, 데리다에 따르면 이런 걸 읽어야 된다는 거야. 해체적 독법. 의도하기 위해서는 의도하지 못한 게 필요한 거죠. 플라톤은 계속 영혼 속에 쓰인 말이 좋은 말이고 글로 쓰인 말은 상기의 묘약, 보조수단 밖에 안되는 것이라고 말하죠. 그런데 영혼속의 말을 이야기하면서 쓰였다는 표현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 쓰인 그게 우선한다는 거지. 이분법자체를 플라톤 자기도 모르게 해체하는 발언을 하는거야. 이런걸 끄집어내서 플라톤주의를 텍스트안에서 전복시키는 행위가 해체. 기발해. 데리다에 대한 비판은 다음에 계속하겠어요.

 

 

 

2011/04/19 00:50 2011/04/19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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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영: 독자가 텍스트의 의미를 이해한다고 할 때 저자가 어떤 의도로 썼든지 간에 읽는 사람이 해석하는 데 달려있다는 건가요? 창조적 오독 같은 것이요.

 

정민샘: 그런 수준이 아니야. 아까 전통적으로 의미를 생각하는 관점이 텍스트와 현실과의 대응 그런 게 중요한데, 데리다한테는 그런 관계조차 글쓰기로 구성이되요. 글쓰기가 그런 관계를 만들어버리는 것이에요. 돈키호테 아세요? 뭔지알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돈키호테가 뭐하는 사람이에요?

 

주희: 너무 책을 많이읽어서 미친사람이에요. 기사도 문학을 많이 읽었어요.

 

정민샘: 촌로인데.. 그런 책만 읽다가 어느순간 미쳐버린거야. 미쳤다는게 뭐죠?

 

가영: 현실감각을 잃은 것이에요.

 

민샘: 미쳐서 뭐하지? 기사가 되죠. 작가도 그렇지만 돈키호테도 젊었을 때 전쟁에 참여했었죠. 다 젊을 때 얘기고, 나이 들어서 밥만 축내며 살다가 드디어 미쳐서 할 일이 생긴거야. 더 이상 식충이가 아니라 세상의 정의를 구현하는 기사가 되죠, 그런데 현실감각이 사라질 대로 사라진 거에요. 정의를 구하려고 길을 떠나죠. 자기 집의 죽어가는 말을 타고서. 그는 현실감각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서 그에게는 최고의 명마죠. 이런 거 있잖아. 게임하다보면 그런거 있잖아. 에스메랄드의 방패. 희한한 이상한 이름이 붙은 아이템들 있잖아. 다 그게 그거로 보이는 거야. 몇백년 전의 왕이 적국의 머리를 칠 때 쓰던 그게 가문을 통해서 전수가 된거야. 왜 세르반테스가 그런 얘길 썼을까? 돈키호테는 자기가 미친 걸 모를까?

 

리나: 미쳐있고싶은...현실이 시궁창이라서.

 

정민샘:돈키호테를 읽다보면 돈키호테가 숭고해지는 순간이 있어요. 우습지. 세상의 정의를 구하는 일이 우스운 거야. 누구를 우스워해야되? 그걸 우스워하는 우리를 우스워해야 되는 게 아닐까? 왜 그게 우습지? 세상의 정의를 구한다는 거. 풍차에 다려들어서? 정의를 구하는 게 그런 것일지 몰라. 계란으로 바위 깨는 것. 정의를 구하는 일은 말도 안 되는 그런 일이야. 사람들은 우스워하지. 사람들이 우스워하지 않을 일이라면 정의를 구하는 일이 아니야. 정의를 구하는 일이 쉬울 것 같아?

 

리나: 어렵죠..

 

정민샘: 얼만큼 어려우냐? 돈키호테만큼. 도스토예프스키가 돈키호테는 기독교문학에서 천년의 최고봉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왜 기독교문학이야? 돈키호테 안에서 좀 기독교가 희화화되는 부분이 있어요. 왜? 기독교에 수난이라는 게 있어요. passion, 수난. 패션이라는 게 원래 뭘 가르키는지 알아요? passion이 ‘예수의 수난’ 이런 의미로도 쓰여. 그 passion이, 예수의 수난이 비극버전이라면 <돈키호테>는 희극버전이에요. 세상의 정의를 구현하는 사람들의.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 자신도 예수적인 작가죠. 기독교적인 작가는 아니라고 해도. 그래서 그가 <돈키호테>를 기독교 문학상의 최고봉이라고 말했어요. ‘예수적 수난’의 본질에 대해서 돈키호테라는 캐릭터가 심오한 얘길하고 있는 거지.

이걸 잘 생각해봐. 돈키호테 있는 인물이에요? 예수는 있는 인물이에요?

 

효주: 텍스트로서 존재. 텍스트로 우리가 읽음으로 존재하게 되는..

 

정민샘:그럼 돈키호테와 다른게 뭐야. 16c 이때 있었을 것 같지 않아? 헷갈려하지마~ 예수는 역사적 인물이잖아. 실제로 한 30년 살았어요. 돈키는 허구의 가상의 인물이지.

 

주희: 예수가 살았던 것 확실해요?

정민샘: 살았었나?

주희: 살았을 수도 있죠.

 

정민샘: 오, 데리다에 가까워졌어.ㅋㅋ 뭐냐 그럼. 아까 텍스트 밖에 없다고 했는데, 예수가 살았는지 안살았는 지 중요해? 분명히 예수에 대해서 복음서말고 역사에서 언급하는 것이 있어. 복음에서 그린 예수와 좀 달라요. 역사에 대해 언급한 로마 역사가. 프리니우스? 역사가의 관점에서 본 예수죠. 역사에서도 언급되었고 복음서에도 나오면 왠지 예수가 있었을 것 같잖아.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야. 뭐가 중요한 것이지 그럼? 그럼 진짜 예수는 누구야? 알 수 없어. 몰라. 어떻게. 예수에대해서 알려고해도 복음서에서는 복음서의 네러티브에 따라서 예수를 구성하거든. 복음서마다 조금씩 달라요.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예수삶의 에피소드를 끼워맞춘다고. 그러면 기자들이 왜곡할 수도 있잖아. 그러면 역사가의 예수 기술을 보면 진짜예수가 누군지 알 수 있을까?

 

가영: 역사가 관점에 따라달라요

 

정민샘: 맞아~그럼 예수 어디있어? 그 사람의 호흡, 말, 공기의 진동은 이천년 전에 흩어졌어. 그럼 어떡해. <돈키호테>가 길다고 했잖아. 예수에대한 기록을 합쳐도 <돈키호테>만 못해. 그럼 <돈키호테>가 예수보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알수 있는 것일 수도 있잖아. 그럼 돈키호테가 예수보다 더 존재했던 사람인가? 

 

가영: 예수는 사람들이 기억하지만 돈키호테는 아니잖아요.

정민샘: 주변인물이 뭔데? 뭐야 그게. 그게 복음서 아니야? 다시 돌아왔는데.

리나: 증거가 있을 수 있자나요?

 

정민: 오, 이제 증거를 갖다대기 시작하네. 혈흔. 이런 얘기도 있지만..장난이에요. 2천년 전에 살아있던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는 건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해요.

데리다가 무슨 얘기 하고 싶으냐. 삶이라는 게 이미 텍스트 안에 있다는 거야. 삶이 텍스트 였어. 루소의 <고백론>이 있는데(루소의 자서전), 데리다가 <고백론>을 읽고 에세이를 썼어요. 이런 얘기를 하는데, 루소의 삶이 자서전을 쓰면서 텍스트가 되는 게 아니야. 루소의 삶은 항상 텍스트 였어.

 

주희: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 텍스트가 다가 아닌 것 같은데. 일기를 쓴다고 해서 그걸 다 적는것도 아니고.

정민샘:일어났던 일들은 뭐가되?

주희: 그냥 일어났던 일들이죠.

리나: 흩어져도 없었던건 아니잖아요?

정민샘: 있긴 있었어? 어떻게? 쓰지 않은 것이 존재했었어? 없어질거야.

주희: 있던 사실이? 사람이?

정민샘: 사실이 어딨어?

주희:내가 여기있는건 사실이잔하요.

정민샘: 이렇게 물어볼게요 의미. 의미는 어때? 삶의 의미.

리나: 내가 부여하는 의미.

정민: 내가 부여하는 의미가 글쓰기의 의미라고.

주희: 글쓰기 말고 말로하면 안되요?

정민샘: 그것도 텍스트.

가영: 텍스트의 의미를 넓게 생각하는 거네요.

정민샘: 그렇죠. 생각을 하는 것도 문자화에요.

가영: 문자화 한다는 게 무슨 의미죠?

 

정민샘: 그걸 말로해야죠. 머리로 써야하잖아. 그래서 아까 그거잖아. 의미와 언어가 생기는 곳에서 자연존재는 사라진다. 오히려 글쓰기 행위만이 의미와 언어의 세계를 열어주는 거야. 글로 쓰여지지 않으면 그 세계로 들어갈 수가 없어. 의미 언어의 세계에.

2011/04/19 00:49 2011/04/19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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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주: 문헌학적인 근거로 그런거에요?

 

정민샘: 네. 제 느낌은 있는데...그렇게 뒤로가지않아. 중간쯤이 맞을 것 같아.

파이드로스 편에서 연설부터 시작을 하는데, 연설이라고 여기서 얘기한 게 아마 로고스 같은데. 말에 대해 도대체 어떤태도를 취해야 되느냐라고. 그니까 이미 앞에서 에로스얘기, 레토리케 예기, 인간영혼 얘기 다 끝났어요. 이제는 말, 글로쓰여진 것에 대한 것 시작을 해요.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던지고 파이드로스가 모른다고하니 소크라테스가 옛날얘기를 하는 거에요. ‘우리가 사람들 하는 추측에 관심을 가져야할까?’ 문자의 기원에 대해서 사람들이 여러 추측을 하는데, 옛날이야기도 있고 우리 스스로도 추측할 수 있다고 하면 옛날사람들이 어떻게 추측하는지에 신경을 쓰지않아도되.
 파이드로스가 옛날이야기 듣고싶다고해요,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하죠. 플라톤의 자작신화라고 하는데. 뭐야, 플라톤은 지가하고 싶으면 신화도 만들어내는거야.

 

(본문) 테우트가 그를 찾아와 기술들을 보여주면서 다른 이집트 사람들에게 그 기술을 보급해야 한다고 말했네. 그러나 왕은 그 기술 하나하나에 어떤 유익이 있는지 물었고, 테우트가 설명을 하자, 자신의 생각에 옳은 말과 옳지 않은 말을 따져서 어떤 것은 비판하고 어떤 것은 칭찬했지.

  테우트가 왕을 찾아가서 ‘내가 발명한 기술들이있다. 이것을 이집트사람에게 보급해라’하니 왕이 따져 물어. 신 테우트가 유익한 점을 설명을 하는데, 그 왕은 이게 좋은것만 있는 것 같진 않다고 따지면서 부작용을 이야기하죠. 옳은 말과 옳지 않은 말이 있고.. 어떤 것은 비판하고 어떤 것은 칭찬해요. 낱낱이 설명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질 걸세(본문), 드디어 문자가 나왔어. 왕이 이제 문자가 좋은게 뭐냐고 묻지. 테우트는 ‘문자는 사람들을 더 지혜롭게하고 기억력을 높여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혜와 기억의 묘약으로 발명된 것이니까요’(본문) 이런말을 하는데,이해가 되요? 사람들이 말로 언어생활하는 것보다 문자가있으면 말을 적어놓고 나중에 보면 될 것아니야. 그리고 문자를 통해서 사람들이 더 지혜롭게되잖아. 여러분의 교육과정이 결국 문자를, 기호를 다루는 교육을 받아온 거잖아. 기억과 지혜의 묘약. 아, 표현이 절묘한데, 파르마코(주석), 파머시. 이것이 약국이잖아. 파르마콘 때문에 데리다 이 사람이 떴어. 이 사람의 유명한 에세이가 ‘플라톤의 약국’. 불행이도 데리다에 관한 책은 굉장히 많은데 번역이 안됬어요. 플라톤을 알아야해서 어려워요. 파르마콘 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온갖 문헌학 정신분석까진 아니고, 웬지 프랑스사람 그렇게 이야기하는 게 있어. 그런데 읽으면 재밌어. 데리다가 뭐에요..사람들이 뭐라고 해요? 

 

효주: 해체주의

정민샘: 디 컨스트럭션. 그리고 파르마콘과 관련해서 말 중심주의. 로고센트리즘. 로고가 중심이되는 주의를 얘기해요. 말은뭐냐...이 말, 구어, 대화, 현전. 이것도 철학개념이에요. presence하에 말해지는 말. 글은 데리다가 여기없잖아. 그런의미에서 서양전통에서 presence, 이 말에 과도하게 중요성을 부여했다는 거지.

 

리나: 플라톤 같은 사람이요?

 

정민샘: 그러니까, 이걸 잘이해해야해.

 이분법. 말 과 글에서 서양전통이 말에 우선성을 부여하면서 글을 억압해왔다는 거지. 그리고 말은 현전presence이고 거기에 비해 글은 representation, 말을 다시 재현하는 것이죠. 플라톤 식으로 얘기하면 말의 모사물이에요. 그런 의미의 말 중심주의. 이 사람은 말만큼이나 글쓰기가 중요해요. 그래서 데리다가 말 중심주의에 대해서 글쓰기를 회복해야 된다고 말할 수 있는데 만약 그렇게 이야기하면 또 이분법에 빠지는거에요. 그래서 말과 글의 이분법 자체를 해체해야해요. 그런 의미의 해체. 그런 해체가 grammatology. 해체의 기획을 잘 보여지는 글이 플라톤의 약국이에요. 해체주의의 중심텍스트 이면서 또 반 플라톤주의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것이죠. 이런 말들이 떠돌아다니지만 ‘해체주의, 반플라톤주의’. 어디서 나왔는지 알아야죠. 데리다의 <플라톤의 약국>을 벗어나지 않아.

 

 니체 이야기할 때 ‘철학보다 철학자의 삶’ 이런 말을 했죠. 데리다 같은 사람들은 ‘텍스트 바깥이 없다.’. 텍스트 중심주의자라고 얘기할 수 있지만..그렇다고 이분법을 끌어오면 안되는데. 그래서 해체주의가 복잡해요. 우리는 텍스트라고 하면 플라톤이 텍스트를 써서 전달하고 싶은 의미 메시지, 플라톤의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잖아. 읽는 사람들은 그 의도를 해석을 하고 이런 의도 하에서 쓴거구나. 그러면 그 의미가 어디서 오죠?

 

가영: 플라톤이 있었던 당시 시대상황에서

 

정민샘: 플라톤의 에로스는 보이러브잖아. 텍스트에 대응하는 어떤 사건들..삶의 이벤트 이런게 텍스트에 의미를 부여해준다고 하잖아. 텍스트의 의미는 텍스트 밖에 현실에서 주어진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죠. 독자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당시대 삶을 연구해서 그런 정보를 가져다주니까 알 수도 있지만 내 삶에서 경험하는 부분도 있잖아. 텍스트가 무언가를 얘기해주니까 내 삶에 의미가 있잖아요. 둘 중 무엇이건 간에 텍스트 밖이 텍스트에 의미를 준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전통적 방법이라는 거에요. 텍스트 중심주의에서 보면, 의미라든지 언어의 성격자체가, 의미와 언어는 자연존재가 사라짐으로써 생기는 거에요.

가영: 자연존재가 뭐에요?

 

정민샘: 이것 저것(물건들을 가리키며). 자연존재는 그냥있지, 살아지지는 않죠. 여기 있는 컵과 빵과..무슨 일이 있었는 지에 대해서 글을 쓰면, 의미의 세계 글쓰기가 열리는데 현전의 세계는 사라진다. 글 안에서는 더 이상 현전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죠. 데리다가 유명한 표현을 하는데, ‘to mean is not to be’.

2011/04/19 00:19 2011/04/19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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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샘: 하여간 뤼시아스 연설은 그거에요. 파이드로스가 뤼시아스와 이야기했다고 하면서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뭘 숨기고 있어요. 소크라테스가 그건 뤼시아스의 연설문일 것이다고 생각하고 보자 하고 파이드로스에게 다가가거든요. 파이드로스가 모른 체 하다가 소크라테스한테 발각이 되요. 파이드로스가 숨기고 있던 연설문을 읽는 식으로, 그게 뤼시아스의 연설이에요. 파이드로스가 대신 읽어주는 방식으로. 소크라테스가 그것에 대해 두번 연설을 하는데, 왜 소크라테스가 연설을 할까요? 연설은 누가하는 거야?

 

효주: 소피스트.

 

정민샘: 응. 뤼시같은 사람이 하는 거잖아. 근데 소크라테스는 왜 연설을 할까요? 무슨 연설을 할까?

.

효주: 무슨연설인지는 모르겠는데 자기도 연설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건 아니에요?

 

정민샘: 맞아.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식의 게임을 하는거야. 거의. 먼저 이런 얘기를 해요. 중년남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그런 식의 사랑은 소년에게 좋지 않다. 우리는 그런 소년세대에 대해서 교육을 담당해야지 소년들을 성적 노리개로 여겨서는 안된다. 거의 그런식이야. 그런데 그 연설을 하고나서 자기연설을 뒤집어요. 이런 연설은 가치가 없다. 그런데 그것도 플라톤의 구성이야.

 

정민샘: 왜 그럴까?

그게바로 레토리케잖아. 레토리케의 본질. 뤼시아스가 한번하고 소크가 한번했잖아. 그런데 그게 결코 반박이 아니라고. 이렇게도 이야기할 수 있고 저렇게도 이야기 할 수도 있고. 진실이 어딨어. 진실이 소크라테스한테 있나? 그래서 소피스트식의 게임을 한다는 표현을 쓴거에요. 연설에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위해서. 그런 연설 형식으로는 진실을 확립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연설을 뒤집는 거야. 정반대의 얘기를 똑같은 연설형식을 빌어서하는 거에요. 소피가 주장하는 게 그런 것 이잖아요. 강한걸 약하게 만들고. 약한것을 강하게 만들고.

 

 두 번째 연설에서 얘기하는 것은 광기에요. 매니아. 왜 광기를 얘기할까? 에로스가 약간 미친상태야. 과연 그미친상태가 뭔지 구분해야돼. 두가지 미친상태를 구분해요. 비이성적인 미친상태와 신적인 미친상태. 플라톤이 에로스에 양가적인 감정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런 데서 잘 드러나는데. 신적인 미친상태는 좀 재미있는 거야. 옛날의 시인이나 음악가 예술활동을 하는 사람들한테는 이것도 굉장히 중요해. 영감을 받는 것. 일부러 미친상태를 만들기도해요.

 근데 그건 좀 플라톤한테 있어서는-예술가들을 고발한 측면도 있지만- 뭔가 긍정적인 부분이 있는 거야. 신적이라는 영감이라고 하는 게. 메논편의 끝에가면 메논편의 주제는 덕인데, 덕있는 사람이 타고나느냐 길러지느냐. 거기에 대한 결론이 덕은 신적인 영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플라톤 자신의 생각인지는 모르겠는데, 대화편에서는 그렇게 끝을 맺어요. 어떤사람은 도덕적이고 어떤 사람은 부도덕적이냐. 어느 정도는 그런 면이 있다는 거야. 우리가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아끼고 좋게 키워보려고해도 더 애들이 삐둘게 나가는. 또 그렇지 않아도 부모님 일찍 죽고 그래도 인류를 위해서 공헌한 사람이 있다고. 뉴턴,라이프니츠. 이런사람들은 전혀 부모의 애정을 받고자란 것이 아니거든. 그러고 매니아에 대한 얘기하고 이제 영혼에 대한 얘기를 해요. 인간영혼에 대한 얘기. 인간영혼의 여러부분들에 대한 비유가 등장하는데, 말이 비유로 들어요. 그런데 말들이 지멋대로 갈라그래. 말들을 통제를 잘하면 말타고 하늘을 날아가. 통제를 못하면 진흙구덩이에 처박히는 거지. 말이 뭐에대한 비유일까요?

 

가영:내안의 욕망에 관한.

 

정민샘: 맞아. 특히 에로스. 가장 강열한 욕망이거든. 그런데 대부분 다 진흙구덩이에 처박히지, 그런 말 아세요, 이전투구 알아요? 요즘 왜 그런 뉴스 나오잖아요. 신정아.. 그거야 그거. 개들끼리싸우는거. dog. 에로스란 매니아를 제대로 통제를 못하면 그렇게 된다고. 그런데 다른 상황있잖아. 말들을 잘 통제를 하면 날아간다 그랬잖아. 에로스가 힘인데, 플라톤은 긍정적인 역할 부여하고 싶은데 사실은 어려워 . 근데 정말날아가게 만들 수 있어. 영혼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의 막을 내리는데, 에필로그. 플라톤의 구성이 절묘해요. 따로 떼놓고보면 여기 저기서 따른 얘기한 것 같은데 주제들이 결국은 하나로 수렴이 되요. 그래서 파이드로스편이 문제가 많은 대화편이에요. 이런얘기도 한때 있었어요. 파이드로스가 플라톤이 제일 처음 쓴 대화편이다. 19c 슐라이허마흐. 니체도 그걸 받아들요. 20c에 오면 파이드로스가 뒤로가요.. 너무뒤로가.

 

2011/04/15 19:33 2011/04/15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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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샘: <파이드로스>는 대화전체로보면 후렴이에요. 에필로그 거의 그런식이에요. <파이드로스>는 에로스와 레토리케를 엮는 것이에요. 두 개가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플라톤이 왜 이 이야기를 할까요?

리나: 실연당해서..ㅋ

정민샘: 플라톤에게 에로스는 어떤 것 같아요?

가영: 뭔지 알고 찬양해야한다

정민샘: 찬양해요?

리나: 레토리케도 좋게 쓰여질 수 있는데 나쁘게 쓰여질 수밖에 없어서 안좋아 하는 것처럼, 사랑도 그런 식으로 안 좋아 할 것 같아요.

주희: 플라토닉 러브 이런거 많이 말하잖아요. 정신적인 사랑이요.

리나: 그 플라톤이 그 플라톤이에요??

정민샘: 그 플라톤이 그 플라톤이 아니거든요. 향연에 보면 그 견해가 파오나시어스의 견해로 제시가 되요. 영적사랑과 육체적 사랑을 구분하는. 굉장히 플라톤적 견해처럼 들리지만 파오나시어스의 견해로 얘기하는 것이 플라톤 자신의 견해는 아니라는 거지. 그런데 그냥 그렇게 알려졌어요.


명석샘
: 그런 측면이 좀 있지않나? 소크라테스와 ??와의 사랑을 플라토닉 러브라고 하지않나?

정민샘: 근데 제 생각에는 왜 그런 구분이 플라톤의 이름하고 관련이 있는지.분명히 플라톤이 그런생각을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어서 이런견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명석샘: 단순히 영적인 정신적 사랑이 아니라 육체적 사랑으로부터 고양되는 운동이 에로스니까 그것이 플라토닉러브 아닌가?

정민샘: 그런데 제 생각에는 그것도 아니에요. 플라톤이 사랑하는 에로스는 영적사랑도 육체적 사랑과 다르지 않아요.

명석샘: 육체적인 사랑이 뭔데?

정민샘: 사람들이 얘기하는.

명석샘: 결국 지혜까지 가는 거잖아. 지성, 지극히 아름다움까지. 그까지 가는 모든 운동을 에로스라고 하는 것 같은데.

정민샘: 네 맞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영적사랑은 그런게 아니죠. 선의 이데아, 미의 이데아에 대한 순수관념인데. 그래서 좀 플라톤의 에로스에 대한 감정이 복잡한거야. 이건 분명히 잘만 쓰면 굉장히 유용한 뭔가 될 수도 있겠는데 , 실제로 인간세상에서 에로스가 벌이는 일들이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는 거지. 그니까 분명히 그런 에로스의 부정적 측면이 대부분인데, 이걸 그냥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야. 그래서 플라톤의 에로스라는 힘에 대한 감정이 복잡하다는 건데.


 파이드로스 대화편 앞부분 내용을 말해볼게요. 레토리케와 에로스를 어케 같이이야기 하는지. 등장인물은 딱 두명이에요. 파이드로스와 소크라테스. 둘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뤼시아스가 잠깐나와요. 파이드로스가 뤼시아스하고 좀전까지 같이있었어요. 뤼시아스는 케팔로스의 아들이에요. 케팔로스는 또 누구죠? 국가 1편에 케팔로스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로 시작하죠. 하여간 파이드로스가 뤼시아스하고 같이 있다가 성벽 밖으로 걸어나온거야. 소크라테스가 뤼시아스가 누군지 알거든? 뤼시아스가 레토리케의 대가에요. 뤼시아스가 연설을 한거야. 파이드로스한테 무슨 연설을 했냐? 뤼시아스가 무슨연설을 했냐하면 사랑하는 사람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켜줘야한다. 무슨말인지 모르겠지?

 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켜줘야하지? 이상하게 들리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고 충족시켜줘야되는 사람은 누구죠? 에로스는 누구죠? 에로스는 소년이잖아.. 왜 에로스가 소년일까?

가영: 소년에 대한...보이러브.

정민샘: 사랑하는 사람은 나이가 있는 중년의 남자. 사랑을 받는 사람은 아직 사춘기가 지나지 않은 소년. 뭐야 이게, 그런데 그리스인들의 에로스가 그래.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지 이입이 잘 안되는 거야. 이성에게서 느끼는 가슴떨림, 초조함, 이런 걸 소년에게서 느낀다고 생각해봐.

효주: 그것이 그리스인들의 보편적인 인식이었어요?

정민샘: 응. 그런데 거기서 에로스의 본질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거지. 꼭 그게 이성애가 아니더라도 사랑의 본질이 뭔지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시사를 던져준다는 거고. 이성애라고 하는 게 그것도 굉장히 문화적으로 컨디션된 것이에요.

주희:조건화?

정민샘: 구성된.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리나: 그런데 자연에서 이성애가 더 보편적이잖아요.

정민샘: 그걸 이성애라고 얘기해? 자연에서 발견된 짝짓기 행위?

그런데 이런 논의가 많이 있어요. 그거를 진화생물학적 메커니즘으로 남녀의 애정을 얘기하는 것. 그런데 그건 너무 비과학적인 것 같아요. 남녀의 심리에 대한 진화론적인 탐구자체가.

가영: 왜요?

정민샘: 그리스인들은 똑같이 진화하지않았나? 너무 우리의 관점을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오류에 빠질수도 있는다는 거에요. 그리스인들 문헌에서 보면 어떻게 그런 관계에서만 애정을 가지는지. 돌려서 생각하면 그럼 어떻게 우리시대에는 이성에 대한 감정을 그렇게 얘기하는 지 그걸 다시 보게되요. 그래서 문화적 구성물 이런 말이 등장하는 거야.

 에로스가 어떤 신이냐, 아름다운 소년들을 관계하는 신. 뤼시아스가 왜 그럼 그런 맥락에서 그런 얘기를 했을까요. 뤼시아스 얘기로 가보면 좀 추잡해. 뭐라고 했었죠?

 주희: 그 사랑하는 사람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켜줘야한다. 원래관계가 있잖아, 소크라테스 아르키비아데스 식의 연인이 있잖아요. 그런데 자기 연인말고 자기연인 아닌 사람들의 성적요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거죠. 소년들이.

주희: 그런데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면서요. 소년의 욕구?

리나: 그리스 시대에서 성행위에대한 것이 추잡한 것이 아니었던건 아니에요?

정민샘: 맞아맞아. 잠깐 주희에게로 가서,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중년이상의 남자들 뿐이에요. 소년에게는 그런 권리가없어 소년은 사랑을 받는 것만 허용이 되지. 그러면 사랑받으면 뭐가 좋으냐? 이 사람은 교육을 시켜주지. 그리스 시대는 어릴 때 노예한테 교육을 배워요. 그런데 조금 커서 보이러브 단계가 되면 중년의 남자와 그런 관계에 들어가면 그 사람이 교육 떠맡게 되는거지. 좀 더 자라서 정치에 뛰어들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죠. 굉장히 이상하게 들리지만 그리스인들이 우리가 연애감성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그런걸 이상하게 볼거야.

2011/04/15 19:32 2011/04/15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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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부터는 <고르기아스> 본문에 들어갑니다)

정민샘: 그런데 그걸 알아야되요. 레토리케가 갖는 힘. 사람을 훅 가게 할 수 있다니까. 고르기아스는 세부분이죠. 소크라테스와 고르기아스 ,두 번째가 소크라테스와 폴로스, 마지막이 소크라테스와 칼리클레스. 칼리클레스가 무서운 놈이야. 플라톤이 생각하는 진짜적은 칼리클레스에요.

 

효주: 소피스트에요?

 

정민샘: 소피스트는 아니고, 소피스트에게서 배운 정치인이죠. 고르기아스의 첫 단어가 뭐에요? 전쟁이죠. 폴레머스. 심상치 않아. 고르기아스 대화편이 전쟁이에요. 나중으로 갈수록 톤 자체가 굉장히 격렬해. 고르기아스와 소크라테스부분은 온건한데 폴로스와 칼리클레스와의 대화로 갈수록 격렬해져요. 그런데 왜 칼리클레스가 전쟁이라는 말로 시작할까요? 거의 복선이에요. ‘전쟁이나 전투에는 그처럼 늦게 참가해야한다고 합니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잔치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해요. ‘우리가 속담처럼 잔치가 끝난 뒤에와서 너무 늦었나?’ 이런 작은 부분에까지 플라톤의 터치가 들어가 있다니까~ 무슨 잔치냐. 연설, 말잔치에 늦었어. 고르기아스가 헬레나 찬양 찬양연설과 같은 연설을 했나봐요. 소크라테스가 카이레폰 때문에 아고라에서 시간을 보내느라고 늦었다고하니, 카이레폰이 무마를 하죠. 말잔치가 막 끝났는데 고르기아스가 내 친구니까 말하면 들어줄거야.

인물 구조가 어떻게 되어있냐하면, 이런말 아세요? 오야봉, 꼬붕 이런 구조야. 카이레폰이 소크라테스의 부하, 폴러스가 고르기아스 부하. 그리고 고독한 강적 칼리클레스. 다섯명의 강적. ‘바로 그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온거요.’ 여기가 어디일까요? 무슨 건물인 것 같아~ 안에 있는 사람들 뭐 이런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칼리클레스는 ‘당신들이 원할 때 제집으로 오십시오. 고르기아스 선생께서 묵고있으니까.’. 고르기아스는 원래 이태리 남부사람이에요. 아테나로 순회연설을 와 있고요. 실제로 고르기아스가 아테네 처음 온 것은 기원전 427년이에요. 고르기아스 대화가 일어나는 시점은 첫 번째 강의는 아니고 그 뒤에 것이에요. 아테네 여러번 왔나봐. 황우석 박사처럼 가는 곳마다 말을 잘하니까 온갖 기교를 잘부려요. 말의 기교.

그래서 그가 무엇을 설득시키냐면, 그는 수사술의 힘을 빌어서 아테네인들이 자기가 온 도시와 동맹을 맺도록 거의 외교관 역할을 했어요. 그런데 칼리클레스는 지금 외교사절을 자기집에 데리고 있잖아. 외교사절은 귀빈인데, 칼리클레스 집이 좀 좋아야겠지. 그래서 칼리클레스가 아무래도 명망있는 집안 자제인 것 같아요. 지금 막 정치에 입문하려고 하는 사람이아닐까. 실제로 칼리클레스에 관한 정보가 없어요. 그래서 칼리클레스를 플라톤이 창작한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도즈의 의견에 의하면 프라톤은 결코 가공인물을 집어넣지 않는다고 하구요.

 

칼리클레스가 ‘고르기아스가 연설솜씨를 보였고 우리집에 오면 연설솜씨를 보여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자 소크라테스 ‘그는 우리와 대화를 나누려고 할까?’ 이렇게 말하죠.

소크라테스는 못생긴 장돌뱅이에요. 보라색옷을 입고 외교사절 동원하고 다니는 고르기아스는 귀빈이죠.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그와 대화를 하려고 한단 말이야.

무엇에 대해? ‘그가 가진 기술의 힘이 무엇이며 그가 공언하며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 그에게 문의해 알아보았으면 하네. 그의 연설 솜씨는 자네 말대로 다음에 펼쳐 보이시게 하고.’ 이것이 긴장이야. 소크라테스는 그와 대화·변증술·문답법을 하려고 해요. 고르기아스를 자기 게임을 하게하려고 하죠. 연설은 저쪽게임이란 말이야. 소피스트들의 게임인데, 그걸로 해서는 소크라테스는 승산이 없지. 파이드로스 편에 그런 이야기가 나와요. 연설을 하려면 하지. 그런데 말에 힘을 실어주긴 싫은거야. 자긴 어디까지나 대화를 통해 대화 상대자가 자신의 무지를 깨달을 수 있기를 원하는거지. 소크라테스는 그 게임을 하고 싶은 거야. 중립적인 입장에서 연설의 게임과 대화의 게임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 만한 것도 없지요. 그것도 그분 연설의 일부였으니까요.’ 묻는 건 좋은데 연설의 일부로 묻는건 어떨까요? 소크라테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묻고 답하려고 하고, 칼리클레스는 고르기아스 연설의 일부로 물어봐라. 아무거나 묻고 싶은 건 물으라고 했고 어떤 질문이든 하라고 했다. 건물 안에 사람들이 많이 있어. 소크라테스는 문 앞에서 들어가려고 하고있고요. 칼리클레스가 연설의 일부로 물어보라는 건 소크라테스를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하나로 집어넣으려는 거잖아. 소크라테스가 원하는 건 고르기아스와 독대를 하고싶은 것이고요.

‘카이레폰, 자네가 그에게 물어보게.’ 카이레폰, 그가 누군지 도대체 소피스트가 누구야, 소피스트라고 얘기하고 다니는데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그가 가진 기술의 힘이 뭐야? ‘이를테면 만약에 그가 신발 만드는 장인이라면, 분명히 “제화공”이라고 자네에게 대답하실 거네.’ 재화공은 신발 만드는 사람이죠. 이건뭐 의심의 여지가 없는데 소피스트는 애매해요. 덕을 가르친다고 얘기하기도 하고, 말로서 사람의 영혼을 설득한다고 얘기하기도 하고. 개념이 두루뭉실해. 뭐하는 건가 궁금할 것 아니야~ 재화공은 만드는 대상이 있잖아요. 신발. 그걸 만드는 도구를 딱 떠올릴 수가 있는데, 연설술은 그렇지 않죠.

고르기아스를 카이레폰이 맞이해요. 프라톤 대화편에서는 안에 있는 사람들은 들어오지 않아요. 장면이 어느새 소크라테스 게임 안에 들어온 것이에요. 절묘한 구조인데. ‘여러 해 동안 아무도 내게 새로운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는 말도 덧붙이겠습니다.’. 과시잖아. 고등학교 때 세계사 선생님이 생각이 나요. 그 분이 수업중간에 이런 말을 했어요.‘제발 내가 모르는 것 좀 물어봐라.’ 세계사에서 학생들이 질문하는 건 다 안다는 거야. 그런데 카이레폰이 그 질문 하니까 폴로스가 나한테 질문을 하는 게 어떠냐, 고르기야스 선생이 피곤하다. 폴로스가 부하라 그랬잖아. 저쪽에서 장군이 안나오고 카이레폰을 내보냈는데 이쪽에서 고르기아스가 나오면 격이 안맞죠. 대신 폴루스가 자청을 해서 카이레폰과 맞서죠. ‘전쟁, 잔치’ 같은 말하나 하나, 밀고 당기는 이런 것과 공간이동이 다 극적 구성이에요. 대화편의 구성자체가 말 한마디한마디가 의도된 것이에요.

 

효주: 그게 레토릭 아니야?

 

정민샘: 그럴 수도 있겠지 레토릭에 대한 레토릭. 그게 이제 다음주에 할 파이드로스.

2011/04/15 19:32 2011/04/15 19:32
  1. 이주희
    2011/04/15 22:02
    다슬기! 늘 수고가 많아. 근데 다음편 부터는 좀 더 정리해서 한 편을 두 세개 정도로 쪼개면 안되나? 원본을 같이 파일로 올려주면 더 좋고. ㅎ 그럼 너무 일이 많아지는 건가?
    • 이주희
      2011/04/15 22:23
      아함..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다슬기 한 번에 두 개, 세 개? 정도가 적당한 것 같은데~ 너가 판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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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샘: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을 이렇게 생각해요. 웅변술은 변증술과 짝을이룬다. 재미있는 얘기인데. 원래 이 구분이 소크라테스의 구분이에요. 웅변술은 당연히 소피스트고 변증술은 문답법을 말하죠. 아리스토텔레스도 이 두 개를 놓고 이야기를 하는데 왜 이 두 개가 짝을 이루느냐. 왜. 이 둘은 고유의 주제가 있는 게 아니라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이에요. 주제를 탐구해가는 방식이라는 거죠. 말에 어떤 내용이 있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아무것이라도 상관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둘은 짝을 이뤄요.

 아리스토텔레스한테 변증법은 추론의 학문이에요. 이야기가 논리적구조로 진행되요. 그것의 핵심이 삼단논법이에요. 그런데 플라톤은 논리적인 틀에 끼워맞출 수 없는 게 남아요. 니체가 보기에 플라톤은 논리적인 성향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가 논리적인 진행에서 모종의 비약이 있음을 깨닫는 곳에, 가끔 그의 강점이 있습니다.". 플라톤은 논리를 초월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해요.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술은 그게 아니에요. 철저히 자신의 삼단논법으로 진행하는 학문이에요.

 이게 플라톤과 이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가르는 중요한 차이점인데, 고르기아스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냐면, 연설술은 좋게도 쓰일 수 있고 나쁘게도 쓰일 수 있어요. 좋은 사람 손에선 좋게 나쁜 이의 손에서는 나쁘게 쓰일 수 있죠. 그 기술이 나쁘게 쓰일 수 있다 해서 그 기술 자체를 비난하면 안돼. 이시영 이야기 알아요? 아마추어 권투 대회에서 챔피언이 되었대요. 권투는 뭐에요? 급소를 치는 기술, 상대방을 최소한의 에너지로 무너뜨릴 수 있는 기술이죠. 그런데 그건 호신용이지, 패고 다니란 게 아니잖아. 마찬가지로 수사술도 좋은 정치하라고 있는 거에요. 고르기아스가 그런 얘길 해요. 어떨 것 같애, 플라톤은 고르기아스에게 동의하면 안되잖아. 소피스트가 적인데. 그럼 플라톤은 어떻게 얘기해요? 결국 하려는 주장이 뭘까?

리나: 플라톤은 잘못 사용할 수 밖에없다?

정민샘: 사용의 문제도 아니야. 플라톤이 생각하기에 연설술 자체에 문제가 있어요. 기술 자체에.

리나: 뻥튀기 하는 문제 아닌가요? 좋은 것도 포장하면서 허위가 생기는 것 같이요.

정민샘: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르기아스식의 것을 받아들여요. 수사학역시 변증술과 만찬가지고 역시 유용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요. ‘나의 위대한 스승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해가되지는 않는다.’ 이 때 위대한 스승이 플라톤이에요.

연설술에 대한 공격이 철학자들만 받아들이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야. 왜 기술 자체를 공격할까? 그말 생각해봐요. 교언영색, 선능인, 선의인. 왜 교언영색이 ‘인’ 이될 수 없을까요? 인을 설득시키는 수단으로 좋게좋게 이야기 할 수 있잖아.

가영: ‘인’하다면 그 자체로 빛을 발해야해서 그런 것 아닌가요?

주희: 교언영색의 태도자체가 인의 태도가 아니지 않아요?

정민샘: 둘다 근접했어요.
 그런데 그전에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조금만 더 이야기 할게요. 그는 수사학을 객관적인 학문으로 취급했어요. 수사학의 목적은 확신을 일으키는 일이라기보다 ,레토리케, 모든 사물에서 확신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에 주목하는 것이에요. 말 중에 확신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있다는 거지. 문장의 배치, 기교, 헬렌 찬가에서 그리스어 운율이 이렇게 딱딱맞는 그런 부분들에 주목하는 것이 수사학이죠. 어떤 요소들 때문에 사람들 마음에 설득이 생기는지에 대해 주목하는 것이요. 거의 언어학적 탐구 에 가깝죠. 그런데 그 자체에 대해 비난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자연적인 과정처럼 탐구하는 것이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치학’도 도시체제 분류해서 도시국가의 정치체제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변화해가는지 탐구하는 것이에요. 그 체제 자체에 대한 사회과학적탐구이죠. 그런데 플라톤은 아니에요. 그것에 도덕적 판단을 내려요. 나쁜체제와 정의가 구현되는 체제. 마치 연설술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처럼요. 그에게는 특정한 정치체제는 문제가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체제자체가 문제가 있을 수 있어,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문제이지.

정민샘: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과 궤변을 구분해요. 소크라테스식의 대화법이 변증, 소피스트식의 궤변, ‘소피스트리’. 변증과 궤변 모두 추론의 기술이지만 둘 다 어떤 거짓추론을 하는데 갖다 쓸 수 있어요. 변증을 잘하는 사람은 궤변에도 능하고 수사에 뛰어난 사람들은 남을 확신시키는 데 능해요. 그런데 궤변에는 의도가 들어가요. 불순한의도. 변증자체에는 그런 의도가 없고 순수한 추론의 기술만이 있죠. 수사학의 경우 확신을 불러일으키려면 단지 말하는 사람만 주목해서는 안되요. 그것이 어떻게 듣는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는지 봐야해요. 사람들이 설득당하는 부분은 이성이 아니라 정념이죠. 그러니 감정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될 거 아니야. 이런 사람들이 어떤 얘기에 혹하는지에 대해서 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수사학은 윤리학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정념에대한 탐구. 그런데 그는 언어의 연설로 권력을 얻으려고하는 그런 얘기 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는 수사학을 학문적으로 정립했어요. 소피스트들 이야기하는 게 아니죠. 나(아리스토텔레스)는 오로지 형식적인 요소들 언어 안에서 순수하게 탐구하고 싶은 학문적인 충동에서 수사학을 해요. 전통적인 수사학은 소피스트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 플라톤은 뭐냐, 아니야. 그런 식으로 수사학이 할 수 있는 것과 수사학자체의 주제를 구분하지 않아요. 레토리케 자체에 문제가 있죠. 교언영색은 도대체가 ‘인’이 될 수 없거든. ‘인’한 사람은 말을 잘할 수 없어. 얼굴빛도 꾸밀 수 없고. 왜? 왜? 내가 생각하는건데 플라톤은 -다음시간에 파이드로스에서 다룰거지만-말에 힘을 실어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플라톤의 고유한 생각이에요. 연설술은 말이 힘을 갖는 기술이에요. 아무리 그런 요소를 차단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말로 뭔가를 해보려는 기술이라고요. 플라톤 생각에 그런 식의 말은 힘을 갖는 게 아니야.. ‘인식’, ‘앎’, ‘지혜’, ‘철학’, ‘슬기’, ‘인’만이 힘을 가져야해. 말과 얼굴빛에 빌어서 남에게 호소하는 순간 그런 부분들이 힘을 갖게되요. 언어랄까, 사람의 뭔가 외모에서 풍기는 카리스마같은. 그래서 플라톤은 좀 과격해요. 이런요소에 ‘혹하면 혹간다’. 와 말잘했다.(모두 우하하하ㅋㅋㅋ) 거의 레토리케다. ㅋ

어떤 종류의 열광이든 열광은 위험해요. 나는 연설술이라고 얘기하지만 밖에서 연설하는 것이 연설이 아니에요. 말이 힘을 갖는 것이 연설술이죠. 레토리케. 광고.

말을 듣는 사람이 말을 쓰는 사람의 의도를 판단해서 받아들이면 되는데요. 그런데 이런 가능성에대해 결정적으로 회의를 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말과 말의 힘을 구분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죠.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플라톤을 읽고나서 생각이 났어요. ‘아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구나.’ 그 사람이 플라톤이 공격하는 거의 요런 프로필에 딱맞아요. 그런거 있잖아요, 국가대우과학자.

리나: 황우석?

정민샘: 황우석. 참여정부시절에 황우석을 봤어, 내가. 그가 스탠퍼드에 강연을 왔었어요. 그때 그와 함께 세 명이 따라왔는데, 수행원이 있었고, 한명은 경향신문기자.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어요. 다른 한명이 정부인사. 국가 보좌관. 과학기술자문위원에 아무튼 그런 게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왜 황우석을 따라다니냐. 그때는 당연히 받아들였는데 그것도 이상한거야. 왜 다른 과학자도 아닌 그 사람을 따라다녀요. 황우석이 그곳에서 강연했는데 황우석이 강연하고 국가자문이 강연했어요. 아니, 자문이 먼저 한 것 같아.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에 대한 정책에 관한 이야기를 잔뜩하면서 중간 중간 황우석박사를 끼워넣는거야. 그 자리에 누가 있었냐면 안철수가 강연을 듣고있었어요. 스탠퍼드 학생들, 교수, 한국인. 주로 대학원생. 황우석박사가 드디어 강의를 했어요. 나중에 안건데 그게 그 사람 레파토리더라고. 말을 잘해 정말. 말을 끝내고 몇 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았어요. 스탠퍼드 박사, 교수, 안철수 박사를 포함해서 모두 박수를 쳤어요. 믿기지가 않지.

주희: 선생님도?

정민샘: 어. 사태가 진정되고 보니까 그게 소피스트 면모더라구요. 이런 사람들이 고르기아스 같은 사람들이죠. 그런 부분에 호소를 해. 감정적인 요소. ‘한국인들 젓가락이 수정란 조작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런말이 나와. ‘성격이 차분하고 손놀림이 가냘픈’...손떨림이 있으면 안되요. 그런데 그런식으로 기술될 수 있는 기술이 지금기술일 것 같아? 왜 그런 요소에 주목하게 만드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빠지지 않는 그런 얘기. 줄기세포가 가지는 인본주의적인 측면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정민샘: 사람을 살린다는 거야. 만약 과학적 인식에 기반에서 이야기 했더라면 청중들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았을 거에요. 레파토리가 다 의도된거지. 그런반응을 그런 자리에서 그 정도로 이끌어냈다고 하면 다른 데는 볼 것도 없는거야.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과학자들이었을 테니까요.

정민샘: 그런식으로 강연하고 돌아다니면 모든 사람들이 믿을 것 아니야. 미디어에서 기립박수 받았다고 믿을 것 아니에요. 아무도 의심하지않아요.

말에 힘을 실어준 게 문제에요. 뭔지 알아? 스탠퍼드 석박사들을 바보 만드는 기술이에요. 왜 스탠퍼드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보냈을까? 보좌관이 하나의 장치에요. 대한민국의 기술이 그런 사람들한테 달려있어라는 연막 내지는 기대. 적어도 그 자리에서는 기대에 부응을 하잖아. 대한민국에서 줄기세포에대한 세계적인 전문가 그런 게 나올 걸 기대를 하잖아요. 특히 그런 과학기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일수록.
 지난시간 끝에 그런 말 잠깐. 레토리케가 어디에 쓰인다고 했지?

주희: 연애요?

정민샘: 말이 힘을 갖는 게 연애야. 연애를 하면 바보가되요. 미치는거야. 연애술이든 연설술이든 정념에 호소를 해요. 연애는 뭘까? 아닌 거 알면서도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줄거라는 기대죠. 바보가 된다는 건 이런 거죠. 다른 식을 판단하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아는데, 자기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조금이나마 희망을 비춰주는 그런 말들이 있죠. 그런 말들이 있어요. 어장관리. 어장관리를 당하는 사람은 그걸 모를까?

주희: 알면서도 약간 기대가 있고.

정민샘: 그래요. 그게 어장관리의 기술이에요. 알면서도 왜 넘어가지? 그 사람들은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그런 것에 넘어가요. 어장관리 당하게 되는 계기가 이런 말을 듣는 것이죠. ‘난 너를 좋아하는데 아직은~’ 정상적으로 판단해야하는데 이게 거절이라는 걸 알아야하는데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거에서 헛된 기대를 한다고. 그 말에 넘어가요. 연애같은 것에서 우리생활 많은 부분이 그런데 좌우받는 다는 것이 잘드러나요. 그래서 파이드로스가 그 대화편이에요, 에로스와 레토리케. 레토리케가 에로스에서 갖는 힘. 내가 괜히 연애술을 이야기하는게 아니야.ㅎㅎ

2011/04/15 19:30 2011/04/15 19:30
  1. 이정민
    2011/04/10 00:57
    다슬기 끝나고 와보니 멀리서 올라온 반가운 리나씨 글. 하나만 수정 => 혹하면 후욱~~~훅 간다.
    • redshad
      2011/04/10 02:17
      ㅋㅋㅋㅋㅋㅋㅋ 선생님 갈수록 귀여워지셔요 ><
      anyway,

      제가 한 약속안지켜서 지금 저번시간에 했던거 편집하고 있어요...ㅠㅠ
      밤새서 할랬는데 못하겠어요...넘 많아..ㄲㄲ
      녹음한거 듣고있는데 감회?가 새롭네요ㅎㅎ
      틀린것이 많다는 것도 뼈져리게 느껴지구요..ㅋㅋㅋ
      이번에 다슬기 못가서 아쉬워요!
      다음주엔 꼭 뵈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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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각은, 그것이 긍정적 생각이든 회의적 생각이든, 내부에 관한 생각이든 외부에 관한 생각이든, 객관적 진리 개념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이 개념은 오직 타자와 의사소통 중에 있는 피조물들만 접근할 수 있다. 앎의 획득은 주관적인 것에서 객관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것에 기초해 있지 않다. 앎의 획득은 전체론적으로 생기며, 그것은 처음부터 상호인간적이다. 데이빗슨의 <외부주의 인식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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