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서스 이전의 이론들

오늘날 인구 문제에 대한 관심은 맬서스에서 시작된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되어 살아가던 그 순간부터 관심이 있었다. 중국, 그리스 등의 역사적인 문헌에서 인구와 관련된 여러 기록들과 인구 정책들을 찾아볼 수 있다. 플라톤은 적정인구의 수를 계산하면서 인구를 통제해야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플라톤은 출산 억제를 통한 인구감소가 힘들 때에는 이민, 식민지 경영, 전쟁 등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적정인구수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인구를 적절하게 조절하지 않으면 가난과 사회적인 물질서, 정치적인 비능률 등이 나타나므로 만혼,집단혼,인공유산,영아유기 등을 통해 아이들의 수를 줄이는 방법을 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의 사상가, 중세서양, 모슬렘 사회 등에서도 인구문제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맬서스가 그의 대작 [인구론]을 쓰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서구사회를 지배하던 두가지 입장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그 두가지 사상 중 하나는 중상주의 인구론이다. 경제사에서 중상주의(mercantilism)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던 시기에 과도기적으로 나타난 이론이다. 중상주의 인구론은 철저히 모든 것을 국가의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한다. 모든 국가의 이익은 다른 나라의 희생으로써만 증진시킬 수 있으며 정치와 경제정책의 주요 목적은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식민지 사업을 지지하였다. 국민들은 수가 많아서 국력을 증진하는 데 보탬이 되어야 할 뿐 국민들의 행복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노동자의 임금은 그저 생명을 보존할 정도면 되며 중상주의자들은 아동노동을 적극 권장하였고 실제로 아동노동을 강제하는 법안도 만들었다. 그러나 나라의 부강을 위해 인구 수가 많아야 한다는 생각은 과잉인구문제에 대한 답을 해주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그들의 유일한 해결방법은 국내에 넘치는 인구를 해외식민지로 이주시켜 다시 국가의 부강을 위해 제2의 중상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기록들을 보면 식민지로 국민을 이주시키는 문제는 가축을 늘리는 방법과 거의 같은 차원에서 생각되고 있다. 중상주의 말고 또 다른 서구사회의 주류 입장은 계몽주의였다. 계몽이란 중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식을 보급시키고, 인간 주체성을 회복해 일반 대중을 미신과 무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영국의 대표적인 계몽철학자인 고드윈은 [정치적 정의]라는 저작에서 인간의 이성이 죄악과 곤궁을 극복하게 해주며 모든 인위적 제도는 없어져야 하고 오직 개인의 완전한 자유만이 인류진보의 기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인간 이성의 발달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며 인구과잉문제는 먼 미래의 일이며 고려할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본다.

맬서스의 [인구론]  

맬서스의 [인구론] 초판의 출판 시기를 전후하여 유럽 사회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영국은 미국독립전쟁을 겪고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혼란을 겪었으며 영국에선 산업혁명에 의한 여러 문제들이 발생한다. 아담 스미스가 예상했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달콤한 예정조화의 꿈을 깨지고 법람하는 빈민 문제 및 실업, 물가, 계급 대립 등의 문제로 사회는 혼란스러웠다.

맬서스의 인구론은 두가지의 기본적인 가정과 한가지 가정에 입각한다. '생존을 위해 식량이 필요하다. 양성간의 정욕은 필요하며 앞으로도 현상태로 머무를 것이다. 인간의 번식력은 인간을 위해 식량을 산출하는 토지의 힘보다 무한정하게 크다.'가 그것이다. 자연은 모든 생물들의 수를 제한하는데 이 것이 절대적인 자연법칙이자 필연이다. 인간도 이러한 자연의 제한법칙에 지배당하고 있으며 가난과 악덕이 바로 인류의 인구를 제거하는 제거기제이다. 초판을 개정한 2판에서는 사람들의 비판을 신경써서 여기에 만혼이라던가 출산을 의식적으로 회비하는 도덕적 억제를 추가한다. 이렇듯 죄악과 가난이 자연법칙이라는 생각은 인간의 이성과 완전성을 확신하는 계몽주의 사상에 매우 맞서는 주장이다. 맬서스는 어떠한 사회제도의 개선도 무의미하고 소용이 없으며 인간사회에서 죄악과 가난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확신한다.


맬서스의 이론에 대한 평가

맬서스의 이론이 정말로 그러한지는 둘째치고, 당시 지배층은 이 이론을 매우 좋아했다. 사회제도의 개혁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이 이론을 극단적인 보수주의라고 비판하였다.

현대 인구학에서는 맬서스 인구론에 대해서 경험적으로 비판한다. 첫째, 맬서스가 제시한 인구억제책인 도덕적 억제는 모든 대중들에게 요구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무리한 일이다. 둘째, 인구 억제에 가장 효과적인 피임에 대해서 반대했다. 셋쨰, 인구문제를 식략에만 국한시켰는데 인간에게는 식량 이외에 필요한 자원이 많다. 넷째, 인구가 그가 주장하였듯이 반드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며 식량이 산술급수적으로만 증가하지도 않는다.

신맬서스주의

신맬서스주의자들은 맬서스의 이론을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수정한다. 사람들이 인구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자발적으로 출산을 억제해 급격한 인구증가로 인한 비극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장 중요한 방법은 피임이다. 또 맬서스가 인구문제를 식량에만 한정시켰던 것을 자원으로 확대한다.



나의 질문

맬서스의 이론은 매우 도덕적으로 불쾌하지만 학문의 영역에서 나온 이론이므로 이 이론이 정말 설명력있는 이론인지에 대해서만 생각해보고 싶다.

첫쨰, 사람들에 대해서 연구할 때 마치 자연과학에서처럼 어떠한 자연적 법칙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인간세계 또한 자연의 문제인가? 사람들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일을 매우 사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이를 낳은 결과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관찰했을 떄 통계적으로 어떤 패턴이 관찰된다. 맬서스는 이 패턴을 자연법칙이라고 규정짓는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이야기할 때 이를 마치 자연 세계에서의 법칙처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어리둥절하다.(특히 경제학 공부할 때 많이 느꼈다.) 인간은 인간이기에 세상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따라서 이 사회를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종종 나와 다른 저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회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문제에 대해서 언제나 무기력하게 이야기하고는 그저 받아들이기만 한다. 하지만 사회문제는 분명 나를 포함한 우리들의 문제이다. 인간에게 어떠한 자유의지가 있다고 가정할 때 에도 과연 사회 법칙을 정립할 수 있는가? 맬서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법죄와 빈곤은 인구억제를 위한 자연의 법칙이라서 개선할 수 없는가?

둘째, 마르크스의 인구론에서 어느정도 지적하는 것처럼 단지 인구의 수뿐만이 아니라 자원이 배분되는 방식에도 관심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마르크스는 그의 과잉인구론에서 인구의 수가 과잉이 되는 것은 오직 자본주의 체제내에서만 그럴 뿐 실제로 인구가 정말로 많은 게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이론은 너무 자본주의에 국한되어서만 이야기하는 느낌이 있지만 자원을 가공하고 분배하는 시스템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는 일리가 있다. 아무리 인구수가 적어도 소수가 그 자원을 독점한다면 사회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사실 마르크스의 과잉인구론에 대해서는 발표만 듣고 직접 자료를 찾아본 게 아니라 제대로 말하기는 힘들다. 분명한 건 자원이 분배되는 시스템 또한 인구의 수를 조절하는 것 못지 않게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참고문헌: 인구의 이해,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권태환 김두섭, 1990 (이 책의 제 2장 내용을 부분적으로 요약한 것임 )
2012/03/21 23:34 2012/03/21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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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3/03/1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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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각은, 그것이 긍정적 생각이든 회의적 생각이든, 내부에 관한 생각이든 외부에 관한 생각이든, 객관적 진리 개념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이 개념은 오직 타자와 의사소통 중에 있는 피조물들만 접근할 수 있다. 앎의 획득은 주관적인 것에서 객관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것에 기초해 있지 않다. 앎의 획득은 전체론적으로 생기며, 그것은 처음부터 상호인간적이다. 데이빗슨의 <외부주의 인식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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