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04

2012/03/2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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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편딩, 크라우드 펀딩이란?



강풀 원작 영화 ‘26년’, 소셜펀딩으로 만든다
  ‘26년’ 제작비를 보태려는 누리꾼은 굿펀딩과 개미스폰서에서 원하는 금액을 후원할 수 있다. 이중 2만원을 후원하면 시사회 표 2장을, 5만원을 후원하면 시사회 표와과 더불어 엔딩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고, DVD를 받게 된다. 보고 싶은 영화의 표를 미리 구매하는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들은 문화예술위원회를 제외하고는 전자상거래 업체로 등록되어 있다. 후원 또는 기부라는 용어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소득공제가 가능한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받을 수 있는 곳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뿐이다. 모금에 참여하려는 이들의 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펀듀의 이창구(37) 대표는 "크라우드 펀딩은 지분 또는 소유권을 발생시키는 수익성 투자 사이트와는 구별되며, 대가 없이 무조건적으로 지원하는 기부 사이트와도 차별점이 있다"며 "좋은 아이디어로 첫 시작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투자를 받지만, 돈이 아닌 현물이나 참여 등으로 보상을 돌려준다는 점에서 투자와 기부 중간 지점에 있는 게 아닐까요?"라고 했다. 펀듀는 1인 기업 등 청년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시켜 가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담당하고 있는 김상희 과장은 해당 업무를 진행하면서 본인의 일이 '미래의 백남준을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 당시에 백남준씨가 아이디어만 있고, TV가 없었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해 봤어요. 무릎을 쳤죠.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후원 하나하나는 그 기발한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만들어 낼 수 있도록 TV 한 대 한 대를 지원하는 일이 아닐까 해요."
  크라우드 펀딩은 문화예술이나 아이디어 창업 등 응용범위에 제한이 없다. 문화예술계는 대개 기업 후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짙은데 그러다 보니 일반인 취향보다 자본의 논리가 많이 반영된다는 쓴소리가 나오곤 한다.
  크라우드 펀딩은 다수를 상대로 한 소액 기부인 만큼 자본의 논리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프로젝트가 마음에 들면 투자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연극, 영화, 전시, 뮤지컬 등 예술 창작품도 얼마든지 도전해 볼 수 있다. 최근 국내외에서 문화예술계의 새로운 기부 형태로 각광받는 이유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청년실업 대책, 일자리정책이 사회적 기업과 소셜벤쳐, 마을기업에 집중되면서, 자연스레 이내들을 지원하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가 많아졌고 또 이를 사업모델로 삼는 기업들이 속속 창업하는 추세다.



국내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www.thisistruestory.co.kr 국내 최초

concreate.me  인디밴드 후원

fund.arko.or.kr 한국문화예술위원회

www.fundu.co.kr 1인 기업 등 청년들의 창업을 지원

www.anclkorea.com 엔터테인먼트

http://www.tumblbug.com/ 지명도가 낮은 독립예술가 지원



재능공유, 재능마켓이란?        


남녀노소 누구나 자신만의 재능과 컨텐츠를 공유할 수 있는 신개념 소셜 마켓

물건을 사고파는 개념을 넘어 기술, 재능, 노하우, 재미있는 특기 등을 1:1로 주고받고, 개인이 1인 기업처럼 될 수 있는 마켓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재능공유 사이트


http://www.5000won.co.kr/ 오천원 오천만의 재능마켓

http://marketingbay.co.kr/ 바이럴마케팅

http://www.dolpagu.com/ 돌파구닷컴
http://kmong.com/ko/ 크몽

http://www.ncoco.co.kr/ 엔코코





▲  A-TURN의 지향점 크라우드 펀딩 + 재능공유                 

   A-TURN은 젊은미술가가 작업하기 힘든 사회 구조에서 작품활동과 경제활동을 동시 진행하겠다는 포부로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크라우드 펀딩도 재능공유도 알지 못했을 때 시작했지만 준비 자본이 없는 상태에서 대중에게 다가가려고 하다보니 이런 방법들이 최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술가로써 바라볼 때 크라우드 펀딩은 문화예술 지원과 청년창업 지원에 활발하다는 점에서 A-TURN의 목표와 맞고 도전해볼만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보통 미술가에게 친숙한 전시 지원금, 미술 작업 지원금 공모의 심사위원이 미술계의 높은 분들인 것과 다르게 크라우드 펀딩은 대중의 평가를 받는다는 점이 다르고 생소합니다. 그만큼 미술계니 문화계니 배타적으로 이뤄놓은 사회적 지위와 상관 없는 대중, 모든 사람의 힘이 작지만 크게 모여 작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찌보면 그래서 더 대중들의 예술에 대한 판단력, 소비나 기부에 대한 선택, 의식 등이 궁금하면서도 무서워지는 이유겠지요. 한편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관심이 후원을 받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빠르게 퍼져나가겠지만 후원 개념에 대해 별 생각이 없는 대중에게도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자본이 없어 기업이라고도 할 수 없는 개인이자 소규모 그룹으로써 바라보는 재능마켓, 재능공유 개념은 무척 반가운 길입니다. 미술가로써 미술이 소외되는 현상, 미술이라는 재능이 소수의 특권같은 재능이거나 별로 가질 엄두를 못 내는 재능이라는 것이 항상 안타까웠기 때문에 이런 다방면의 재능을 나눈다는 취지가 반갑습니다. 재능공유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정말 여러 사람들의 특이한 성격과 마주한 것처럼 여러가지 다양하고 참신한 재능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목적이 꼭 돈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고 자신의 사소한 재능도 당당하게 널리 알리려는 소통이 목적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하지만 경제적 거래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고 1:1로 재능을 사고 판다는 것은 가격 책정이나 방법에 대한 합의 등에서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뛰어넘을 만큼 물질적이지 않은 정신적인 목적으로 순수하게 자신에게 필요한 재능, 빌리거나 갖고 싶은 재능을 잘 판단한다면 재능마켓은 어떤 마켓보다 인간적인 마켓이 될지도 모릅니다.

  A-TURN은 현재 재능공유라는 개념에서 미술가로써 가지고 있는 재능을 여러분에게 알리고 여러분이 제안하고 주문할 때 최대한 저렴한 가격, 최대한 질 높은 작품으로 보답하려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A-TURN의 작품을 그저 돈을 낸 값으로 받아들이는 소비자가 아니라 A-TURN의 뜻에 참여하고 후원하여 젊은미술가들이 더 좋은 작업을 하게 한 후원자입니다. 이런 면에서는 크라우드 펀딩과도 같군요.

  저희는 여러분의 구매를 후원, 기부, 투자로 생각하면서 매주 이 SHARE 잡지를 통해 문화예술 소식을 친근하게 느끼시도록 돕고, A-TURN이 아닌 두 미술가로 작품을 발표하는 전시를 열 때 여러분의 성함을 후원자 명단으로 올리는 등의 혜택을 돌려드리려 합니다. 그 외에도 더 크게 돌려받으실 것은 어떤 젊은 미술가 두 명이 A-TURN이라는 활동을 통해 여러분과 인연을 맺고 작품에 대한 여러분의 반응을 소통하며 인상을 받고 생각하고 배운 점으로 미술 작품을 창작해 발표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자체로 여러분의 작은 관심, 작은 참여가 거창해 보였던 문화생활, 창작활동에 기여한다는 느낌이 드시지 않나요? 이 행복한 느낌을 느끼시면서 A-TURN의 지향과 여러분이 받을 혜택을 생각하면서 A-TURN과 함께해주시고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에필로그    


이번주 SHARE04을 통해 얻은 정보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와 재능공유 사이트를 구경해보세요.
크라우드 펀딩은 텀블벅을 추천합니다. 재미있게 만들어진 동영상을 보면서 세상의 여러 소리에 귀 기울인다 생각하시고 정말 마음이 맞는 친구같은 예술가, 청년창업가를 만난다면 적은 돈을 후원해볼 수도 있겠지요.
재능공유 사이트도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와 비교하면서 이러한 새로운 경제 현상에 대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글   노소영

 디자인/편집   황혜리



CREATIVE ARTIST GROUP A-TURN

http://cafe.naver.com/artturn





 정보 출처 

http://www.bloter.net/wp-content/bloter_html/2012/03/102953.html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81602000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13/2011061301275.html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95981

2012/03/28 10:55 2012/03/2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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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앎'을 위한 몸부림 1

토대주의자들의 야심찬 시도는 하고..

대체 우리가 뭘 알 수 있기는 한 거야??

주의사항: 논리학의 타당성, 건전함, 연역의 개념을 알지 못한다면 일부분은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토대주의 : 사이비 앎말고 진짜 앎을 위하여 자명한 내용을 담은 토대에 논리학의 튼튼한 뼈대 버무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앎의 체계를 건설하자.

자명한 논제는 그 자체로 참이라 이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를 다른 곳에서 찾지 않아도 되는 명제이다. 즉 자기 스스로가 자신을 입증하는 명증한 논제가 자명한 논제이다. 자명한 논제의 예로는 항진명제(반드시 참말)가 있다. 어떤 곳에서, 어떤 때에도, 어떤 상황에도 반드시 참인 명제가 항진 명제이다. '지구는 둥글거나 둥글지 않다.', '만일 지구가 둥글다면 지구는 둥글다.' 등은 논리적으로 결코 거짓일 수 없으며 반드시 참이 되는 항진 명제이다.

하지만 이렇게 논리적으로 100프로 참인 항진명제로부터 세계에 대해 무언가를 말해주는, 즉 어떤 내용을 담은 새로운 명제를 연역할 수는 있을까? 여기서 연역이란 전제에 있는 것을 논리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 것은 지금까지 가능하지 않았다. 그럼 항진 명제 이외에 세계에 대해 무언가를 말해주면서 자명한 명제가 있을까?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나 기독교의 은혜와 같이 종교에서 이런 명제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듯 보인다. 여하튼 학문적으로 이야기했을 때 순도 100%의 논리는 내용에 대해 말해줄 수 없고 오직 타당한 뼈대만을 제공해줄 뿐이다.(논리학의 타당성 개념 알아서 검색해 참조)

그리하여 머리가 좀 좋은 사람들이 진짜 앎을 위한 야심찬 기획을 하는데 그 것이 바로 토대주의이다. 토대주의(foundationalism)란 자명한 명제로부터 참된 명제를 논리적으로 연역해서 새로운 앎을 얻고자 하는 시도이다. 즉 명백한 내용이 담긴 명제로부터 참된 명제를 논리적으로 연역함으로써 우리가 정말 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명제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시도이다. 논리만으로는 아무 내용도 말할 수 없으니 자명한 명제를 첫 내용으로 삼은 다음에 여기서 논리적으로 연역을 해서 진짜 앎을 추구해보려는 참으로 기발한 시도이다! 역사적으로 학자들 중에 이런 방식으로 확실한 앎, 진리를 얻고자 한 사람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첫째는 "나는 생각한다고 생각한다"라는 토대에서 모든 앎을 튼튼하게 쌓아가고자 했던 데카르트가 했다. 이 토대로부터 앎, 과학을 세우려는 인식이론이 이성주의(rationalism)이다.  또 다른 시도는 "나는 이러저러하게 보이는 것을 보고 있다." 즉 내게 어떤 감각 경험, 감각 자료가 주어지는 데 그 것이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것이 주어지고 있다, 즉 내가 뭔가를 경험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토대로부터 앎을 세우려는 인식 이론을 경험주의(empiricism)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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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이성주의는 모든 것을 의심하다가 의심할 수 없는 자명한 토대를 찾은 건데 그 것이 바로 '나는 생각한다'는 명제이다. 아무리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고, 심지어 1+1이 2라는 것을 아는 것도 내가 악마에 의해 속고 있을지 모른다고까지 의심해봐도 생각한다는 사실 그 자체는 도무지 의심할 수가 없다. 그는 이 명백한 내용을 담은 명제를 제 1원리로 삼고 나머지 원리들을 밝게 연역해내고자 한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만큼 확실하게 파악한 것도 참이다.'를 다음에 이끌어낸다. 이 두개의 원리가 형이상학에 대해서 사용한 원리다. 그 다음에 이 두 원리들에서 물질적인 것 즉, 사물의 원리를 이끌어낸다. 데카르트에게 이는 곧 수학적인 길이, 넓이, 깊이인데 3차원 좌표계에 그릴 수 있는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좌표계는 데카르트가 개발했다.- 영혼은 3차원 좌표계에 놓을 수 없지만 물질은 놓을 수 있다.  데카르트의 토대는 탄탄해보이지만 이 토대에서 이끌어내는 이야기들은 지금 보면 첫 토대만큼 명확하지 못하다.


토대주의는 결국 실패 뭐가 문제였을까? 토대로 삼았던 자명한 명제가 틀려서 망한 건가? 논리학에 큰 기대를 걸었던 게 잘못인가?

토대주의는 실패했다. 둘 중에 하나 이상이 문제였을 것이다. 토대로 삼았던 자명한 명제 자체가 문제였거나 논리학에 큰 기대를 걸지 말았어야 했거나. 그 야심찬 기획은 역사적으로 의미야 있겠지만 그 내용을 지금 보면 신이니 영혼이니 이상한 내용들로 가득 차있고 틀린 것도 너무 많다.

일단 토대로 삼은 명제 자체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전통 토대주의는 나의 생각이나 나에게 주어지는 감각자료를 자명한 토대로 삼았는데 이는 주관증거이다. 외부의 것을 말하는 것은 이미 여러 비약이 있기 때문에 철저히 나로부터 자명한 명제를 찾으려는 시도는 그럴듯해보이지만 전통 토대주의는 일종의 주관주의이거나 일인칭주의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또 논리학의 한계에 대한 여러 논쟁들도 거세진다. 첫째, 논리학이 세계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즉 논리학은 앎을 줄 수 없다는 의견이다. 토대주의자들의 시도에서 보았듯이 세상에 대해 무언가 내용이 있는 것을 말하려면 논리를 벗어나서 이성이든, 경험이든 뭔가 자명한 명제를 하나 이상 받아들여야 하는데 바로 여기서 논리적 비약이 생긴다. 비약이 생기니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비약이 시작된다. 데카르트가 한 번 비약을 하니까 영혼, 신 이야기를 하고 또 다시 입증하기 위해 논리로 왔다가 하는데 비약을 하는 순간 우리의 앎은 튼튼해지는 게 아니라 마구 날라다니기 시작한다. 그래서 현대 20세기에 나온 입장이 있다. 논리경험주의논리실증주의가 그 것이다. 이 입장은 철저히 논리의 도약을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실증이라는 말은 주어진 경험 즉 데이터로부터 증명하자는 말이다. 출발점은 주어진 감각자료, 즉 경험으로 삼고 그 다음부터 철저하게 논리적인 과정을 통해서만 과학을 만들어내자는 입장인데 1920년대에 나온 입장이다. 하지만 이 입장 또한 1950년대가 되면 파국을 맞는다.

둘째, 논리로 세상을 설명하려고 하니까 안 맞는 게 있다는 의견이다. 다음과 같은 추론을 보자. 이 추론은 논리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을 일으킨 유명한 추론이라고 한다.

'모래알 1000조개가 모인 것은 모래더미이다. 모래더미에서 모래 한 알 뺀 것은 여전히 모래더미이다. 다시 말해 모래알 n개 모인 것이 모래더미라면 모래알 n-1개 모인 것도 모래더미이다. 따라서 모래 두 알은 모래더미이다.'

이 추론은 타당하다. 즉 논리적으로 도출하는 과정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결론은 상식적으로 거짓이 나온다. 모래알 두 알이 모래더미라니 진짜 누가봐도 말이 안 되는 결론이 나왔다. 따라서 나는 이 추론이 건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두번째 전제인 '모래더미에서 모래 한 알 뺀 것은 여전히 모래더미이다'가 거짓이라고 본다. '더미'의 사전적 정의는 높이 많이 쌓여 있는 덩어리인데 높고 많음의 기준 자체가 너무 주관적이며 애매하다. 솔직히 어떤 사람한테는 모래알 두 알도 많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고 어떤 사람한테는 모래알 1000조개도 적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모래더미에서 한 알 빼면 모래더미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고.. 조원들과 이 추론이 논리학에 대해 뭘 말해주고 있는 것인지 논쟁을 해보았다. 모래더미란 말 자체가 우리가 매우 비논리적으로 생각한다는 걸 보여주는 개념이므로 이제 진짜 뭘 안다고 주장하려면 이런 모호한 비논리적인 정신상태를 반영하는 개념들을 싸그리 논리적으로 다듬어야 한다라는 의견이 있었다.(내 의견이었다) 또 다른 의견은 논리학은 아름다운, 선함, 많음 등의 주관적인 느낌의 영역을 묘사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으며 이야말로 논리가 세상에 대해 많은 걸 설명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는 의견도 있었다.  

셋째, 논리 자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논리도 경험에 의해 바꾸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논리는 단순히 지금까지 우리의 경험을 우연하게 잘 설명해줬던 것 뿐이고 새로운 경험이 나오면 논리도 바꿔야한다는 게 이 의견이다. 논리의 절대성, 보편성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이다.

2012/03/24 16:05 2012/03/24 16:05
  1. 비밀방문자
    2012/03/25 21:20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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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서스 이전의 이론들

오늘날 인구 문제에 대한 관심은 맬서스에서 시작된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되어 살아가던 그 순간부터 관심이 있었다. 중국, 그리스 등의 역사적인 문헌에서 인구와 관련된 여러 기록들과 인구 정책들을 찾아볼 수 있다. 플라톤은 적정인구의 수를 계산하면서 인구를 통제해야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플라톤은 출산 억제를 통한 인구감소가 힘들 때에는 이민, 식민지 경영, 전쟁 등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적정인구수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인구를 적절하게 조절하지 않으면 가난과 사회적인 물질서, 정치적인 비능률 등이 나타나므로 만혼,집단혼,인공유산,영아유기 등을 통해 아이들의 수를 줄이는 방법을 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의 사상가, 중세서양, 모슬렘 사회 등에서도 인구문제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맬서스가 그의 대작 [인구론]을 쓰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서구사회를 지배하던 두가지 입장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그 두가지 사상 중 하나는 중상주의 인구론이다. 경제사에서 중상주의(mercantilism)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던 시기에 과도기적으로 나타난 이론이다. 중상주의 인구론은 철저히 모든 것을 국가의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한다. 모든 국가의 이익은 다른 나라의 희생으로써만 증진시킬 수 있으며 정치와 경제정책의 주요 목적은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식민지 사업을 지지하였다. 국민들은 수가 많아서 국력을 증진하는 데 보탬이 되어야 할 뿐 국민들의 행복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노동자의 임금은 그저 생명을 보존할 정도면 되며 중상주의자들은 아동노동을 적극 권장하였고 실제로 아동노동을 강제하는 법안도 만들었다. 그러나 나라의 부강을 위해 인구 수가 많아야 한다는 생각은 과잉인구문제에 대한 답을 해주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그들의 유일한 해결방법은 국내에 넘치는 인구를 해외식민지로 이주시켜 다시 국가의 부강을 위해 제2의 중상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기록들을 보면 식민지로 국민을 이주시키는 문제는 가축을 늘리는 방법과 거의 같은 차원에서 생각되고 있다. 중상주의 말고 또 다른 서구사회의 주류 입장은 계몽주의였다. 계몽이란 중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식을 보급시키고, 인간 주체성을 회복해 일반 대중을 미신과 무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영국의 대표적인 계몽철학자인 고드윈은 [정치적 정의]라는 저작에서 인간의 이성이 죄악과 곤궁을 극복하게 해주며 모든 인위적 제도는 없어져야 하고 오직 개인의 완전한 자유만이 인류진보의 기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인간 이성의 발달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며 인구과잉문제는 먼 미래의 일이며 고려할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본다.

맬서스의 [인구론]  

맬서스의 [인구론] 초판의 출판 시기를 전후하여 유럽 사회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영국은 미국독립전쟁을 겪고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혼란을 겪었으며 영국에선 산업혁명에 의한 여러 문제들이 발생한다. 아담 스미스가 예상했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달콤한 예정조화의 꿈을 깨지고 법람하는 빈민 문제 및 실업, 물가, 계급 대립 등의 문제로 사회는 혼란스러웠다.

맬서스의 인구론은 두가지의 기본적인 가정과 한가지 가정에 입각한다. '생존을 위해 식량이 필요하다. 양성간의 정욕은 필요하며 앞으로도 현상태로 머무를 것이다. 인간의 번식력은 인간을 위해 식량을 산출하는 토지의 힘보다 무한정하게 크다.'가 그것이다. 자연은 모든 생물들의 수를 제한하는데 이 것이 절대적인 자연법칙이자 필연이다. 인간도 이러한 자연의 제한법칙에 지배당하고 있으며 가난과 악덕이 바로 인류의 인구를 제거하는 제거기제이다. 초판을 개정한 2판에서는 사람들의 비판을 신경써서 여기에 만혼이라던가 출산을 의식적으로 회비하는 도덕적 억제를 추가한다. 이렇듯 죄악과 가난이 자연법칙이라는 생각은 인간의 이성과 완전성을 확신하는 계몽주의 사상에 매우 맞서는 주장이다. 맬서스는 어떠한 사회제도의 개선도 무의미하고 소용이 없으며 인간사회에서 죄악과 가난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확신한다.


맬서스의 이론에 대한 평가

맬서스의 이론이 정말로 그러한지는 둘째치고, 당시 지배층은 이 이론을 매우 좋아했다. 사회제도의 개혁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이 이론을 극단적인 보수주의라고 비판하였다.

현대 인구학에서는 맬서스 인구론에 대해서 경험적으로 비판한다. 첫째, 맬서스가 제시한 인구억제책인 도덕적 억제는 모든 대중들에게 요구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무리한 일이다. 둘째, 인구 억제에 가장 효과적인 피임에 대해서 반대했다. 셋쨰, 인구문제를 식략에만 국한시켰는데 인간에게는 식량 이외에 필요한 자원이 많다. 넷째, 인구가 그가 주장하였듯이 반드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며 식량이 산술급수적으로만 증가하지도 않는다.

신맬서스주의

신맬서스주의자들은 맬서스의 이론을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수정한다. 사람들이 인구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자발적으로 출산을 억제해 급격한 인구증가로 인한 비극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장 중요한 방법은 피임이다. 또 맬서스가 인구문제를 식량에만 한정시켰던 것을 자원으로 확대한다.



나의 질문

맬서스의 이론은 매우 도덕적으로 불쾌하지만 학문의 영역에서 나온 이론이므로 이 이론이 정말 설명력있는 이론인지에 대해서만 생각해보고 싶다.

첫쨰, 사람들에 대해서 연구할 때 마치 자연과학에서처럼 어떠한 자연적 법칙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인간세계 또한 자연의 문제인가? 사람들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일을 매우 사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이를 낳은 결과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관찰했을 떄 통계적으로 어떤 패턴이 관찰된다. 맬서스는 이 패턴을 자연법칙이라고 규정짓는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이야기할 때 이를 마치 자연 세계에서의 법칙처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어리둥절하다.(특히 경제학 공부할 때 많이 느꼈다.) 인간은 인간이기에 세상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따라서 이 사회를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종종 나와 다른 저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회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문제에 대해서 언제나 무기력하게 이야기하고는 그저 받아들이기만 한다. 하지만 사회문제는 분명 나를 포함한 우리들의 문제이다. 인간에게 어떠한 자유의지가 있다고 가정할 때 에도 과연 사회 법칙을 정립할 수 있는가? 맬서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법죄와 빈곤은 인구억제를 위한 자연의 법칙이라서 개선할 수 없는가?

둘째, 마르크스의 인구론에서 어느정도 지적하는 것처럼 단지 인구의 수뿐만이 아니라 자원이 배분되는 방식에도 관심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마르크스는 그의 과잉인구론에서 인구의 수가 과잉이 되는 것은 오직 자본주의 체제내에서만 그럴 뿐 실제로 인구가 정말로 많은 게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이론은 너무 자본주의에 국한되어서만 이야기하는 느낌이 있지만 자원을 가공하고 분배하는 시스템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는 일리가 있다. 아무리 인구수가 적어도 소수가 그 자원을 독점한다면 사회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사실 마르크스의 과잉인구론에 대해서는 발표만 듣고 직접 자료를 찾아본 게 아니라 제대로 말하기는 힘들다. 분명한 건 자원이 분배되는 시스템 또한 인구의 수를 조절하는 것 못지 않게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참고문헌: 인구의 이해,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권태환 김두섭, 1990 (이 책의 제 2장 내용을 부분적으로 요약한 것임 )
2012/03/21 23:34 2012/03/21 23:34
  1. 비밀방문자
    2013/03/15 16:23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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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E 03

2012/03/2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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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방의 어지러운 책상을 작품으로?     


내 책상에 전시하고 싶은 예쁜 사진과 팜플렛, 그림 등등을 가져다 놓아도 정리는 힘들고...무질서하고 조화롭지 못한 내 방 책상을 예술작품 보다 질서있고 조화롭고 멋진 나만의 전시공간으로 바꿔봅시다.


/

게시판을 활용하여 딱 게시판 만큼만! 무질서를 허용하기


/

책상 위에 물건을 쌓아놓지만 않아도 탁 트인 넓은 벽면이 전시 공간의 느낌을 줍니다.

사진들을 질서없이 느낌대로 붙여 놓아도 조화롭게 보여요.


/

배열? 느낌있게? 자유롭게? 그런 감각이 나에겐 힘든 일이라면 간단히 줄을 걸고 사진을 널어주기만 해도 분위기 있어요.

조명도 한 몫 한답니다. 스탠드 조명 하나로도 전시장 조명 느낌을 낼 수 있어요.


/

수납공간 / 독특한 가구 / 귀엽고 실용적인 책상 꾸미기 소품들을 이용해 보세요.


/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계획없이 마구잡이로 사진, 그림, 편지등을 덕지덕지 붙여두는 것이 편하죠.

그런데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꾸미는 내 방 벽면이 내 성격과 미의식을 반영한 꼴라주 작품처럼 보이지 않나요?




 꼴라주        


collage는 프랑스어로 '풀로 붙이는 것' 이라는 뜻입니다. 본래 상관관계가 없는 별도의 영상을 최초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결합시켜 색다른 아름다움이나 유머를 회화에 도입한거죠. 그 후 이와 비슷한 수법은 현실의 다양성을 화면에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이 되어 예술에서 널리 사용되었어요.


/

마침 열리고 있는 현대미술 전시에서 꼴라주 작품을 볼 수 있어요. 여러분도 내 방 벽을 꾸미다가 의미를 담으면 이런 작품까지 창작할 수 있겠군요.





 전시         


김기라 개인전 '공동선' 29일까지 견지동 두산갤러리

동서고금의 여러 신 이미지를 손으로 찢어 붙인 포토 꼴라주





 내 방 꾸미기, A-TURN에게 제안해보세요 !             



나는 내 방 벽에 꾸며둘 그림이 없어요,

사진은 잘 못찍고 그림은 너무 비싸지 않나요?,

나랑 내 남자친구 초상화를 걸어두면 좋을텐데...

라고 생각하신다면 A-TURN에게 문의해보세요.

여러분의 요구를 반영한 A-TURN의 도움으로 좀더 쉽게 여러분만의 꼴라주 벽면을 만들어 보세요 :)






 A-TURN의 인테리어 소품, 아이템               






 http://cafe.naver.com/artturn


A-TURN카페에서 볼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


/

EXHIBITION 게시판에서 실제 미술작품으로 전시된 A-TURN의 드로잉 느낌을 내 방과 매치시켜 보세요.


/

ITEM 게시판에서 에코백과 에코파우치에 그려진 독창적인 드로잉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있나 살펴 보세요.

하나하나 손으로 직접 작업하는 A-TURN에게 유일하게 딱 하나 인쇄된 아이템 - 달력도 보실 수 있어요.


/

PORTRAIT 게시판을 참고하셔서 내 얼굴, 친구, 가족, 연인 얼굴을 원하는 스타일로 주문해서 방 벽에 걸어두면 어떨지 매치시켜 보세요.


/

좀더 전체적인 변화를 원하신다면 INTERIOR 게시판을 참고하셔서 원하는 스타일의 그림액자나 벽화를 주문해보세요.  


/

X-MAS X-FILE 게시판에는 크리스마스, 새해에 판매되었던 카드 드로잉들이 있으니 차근차근 구경하시고 내 마음에 쏙 드는 드로잉을 발견해 보세요. 방 꾸미기의 어떤 소품으로도 제작 가능합니다.







에필로그    


이번주 SHARE03을 통해 얻은 정보로 내 일상에 가까운 시각적 표현들이 얼마나 내 성격이나 미의식을 반영할 수 있을지, 꼴라주 미술작품과 내가 꾸민 방 벽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지, 내 무의식적 꾸미기 본능이나 일상 인테리어는 과연 작품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셨으면 좋겠네요. 김기라 작가의 전시처럼 흥미로운 현대미술 전시와도 가까워지세요 :)  






               글   노소영

 디자인/편집   황혜리



CREATIVE ARTIST GROUP A-TURN

http://cafe.naver.com/artturn




 사진, 정보 출처

http://blog.daum.net/ace4944, [블랑 인테리어]작성자 블랑블랑, 작성자 엣하트, 작성자 M양과 P군, ModCloth, seeJanework, VAT19, j-me

2012/03/21 11:48 2012/03/2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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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E 02

2012/03/1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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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실험실과 A-TURN                 


현재 생각실험실에 가면 내부에서 A-TURN의 작품 - 카드, 엽서, 파우치, 에코백, 브로치 등을 구매할 수 있어요.

또, A-TURN에서 작품을 주문제작하고 받아갈 때 생각실험실로 와서 받아갈 수 있습니다.

생각실험실 출판사 '생각공장'의 논리교재 '우리말길'의 그림을 A-TURN에서 맡았고 아이패드 전자책 시장에 발행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전자책 출판에 쓰이는 그림과 디자인을 A-TURN이 맡을 예정입니다.

생각공장과 A-TURN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학문 -철학과 예술 -미술이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출판물과 작품으로 창작되어 판매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젊은 작가들의 활동에 동참하거나 응원하고 후원해 주세요.






에필로그    


이번주 SHARE02을 통해 몰랐던 공부공간, 새로운 개념의 대안대학원을 알게 되셨을 겁니다.

이 외에도 많은 공부 공간, 문화 공간 등이 있지요.

친구들과 공부를 할 때 카페나 스터디룸, 도서관 등을 즐겨가게 되지만

이런 새로운 공간을 알아보고 참여해본다면 더욱 의미있을 것입니다.  

특히 생각실험실은 아직 많은 가능성이 열려있는 초기 단계이기에 우리가 직접 주체가 되어

모임을 만들거나 프로젝트를 이끌 수 있는 점이 가장 좋아요.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열정적

이고 학구적인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요. 생각공장과 A-TURN의 사투(?)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학문-철학과 예술-미술과 가까워지세요 :)





               글   노소영

 디자인/편집   황혜리



CREATIVE ARTIST GROUP A-TURN



http://cafe.naver.com/artturn





 

공간 정보 출처 http://real.ize.kr/ 생각실험실

2012/03/14 10:23 2012/03/14 10:23
  1. 이주희
    2012/05/10 20:41
    우와 잘 만들었다 ♥ 이렇게 보니까 깔끔하게 정리가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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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질문. 선생님께서는 물리학을 탐구하는데 필요한 선험적 인식이 있다면, 그것은 충족이유율 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원초적으로 말하는 존재, 원초적으로 생각하는 존재. 즉 초월자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 그와 같은 절대자, 무제약자, 전체 혹은 신을 생각할때는 추론의 도약, 생각의 단계에 불가피한 불연속성이 일어날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우리에게 친숙한 common-sense, good-sense만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문제인듯. 그와 같은 문제를 생각할때는 연역, 귀납의 매 단계마다 촘촘이 생각의 고리를 연결시켜 연속적으로 추론을 전개해나가는것이 불가능해 보여요. 분석적인 틀로 과연 형이상학적 주제에 접근이 가능할지? 저는 의문이에요. 자유의지를 긍정하는 철학적 모형을 세우려고 할때, 유물론자들에게 반박되기 쉬운 이유가 바로 이것에 있는 것 같은데요. 근거에 집착하는 추론의 방식으로, 근거를 실증적으로 제시하기 어려운 주장을 펼치려 하니까요. 하나의 주장을 실증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방법으로 인풋-아웃풋의 확정적인 인과관계의 틀인 알고리즘이 가능하겠죠. 제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유는 추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전제로부터 출발해 일의적으로 결론에 이르는 것이 반드시 실제적이지만은 않은 문제들이 훨씬 많을거에요. 저는 이성적 판단이라고 우리가 여기는 것이 -선생님께선 '지성적 잡음'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차근차근 추론을 통해 이르게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보다 원초적인 거대한 욕망과 결부되어 있지만, 이성적 판단이라 오인하게 되는 불안정한 믿음이 형성되고, 후에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논증을 제시하는 거라 봐요. 또 선생님께선 지성을 너무 좁은 의미로 제한하시는건 아닌지.. 피융피융ㅠ_ㅠ 과제하려는데 자꾸만 생각이 뻗치네요.

너의 두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첫째 물음. 물리학을 탐구하는 데 필요한 원리는, 내 생각에, 측정하는 사람에 상대적이지 않은 경험 사실이 있다는 원리. 내가 자연의 원리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것이 선험 원리인지 경험의 산물인지는 모르겠다. 경험을 통해 획득한 것들에 의존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자연의 원리는 단순한 형이상학 원리는 아니야. 왜냐하면 그런 경험 사실이 실제로 있거든. 가장 훌륭한 예로는 빛의 속도가 초속 30만km라는 것는 경험 사실이 있지. 이것은 관측하는 사람에 상대적이지 않아. 자연의 원리와 충족이유율 사이의 관계는 아직 잘 모르겠다.

둘째 물음. 당연히 추론의 도약이 있겠지. 내 논증의 비판자들은 그 도약의 지점을 정확히 지적해야 할 거야. 아마도 내 논증의 비판자들은 내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아. 내 전제 자체가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이니까. 하지만 내 전제를 뒷받침해주는 많은 논증들이 있다고 나는 생각해. 가령 나 이외에, 특히 내 존재 이전에 다른 생각하는, 인식하는 자아가 존재한다, 라는 나의 전제는 매우 강력한 논증을 갖고 있어. 경험과 부합하기도 하고.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 이전에 존재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고 인식하는 자아였다는 것을 지지할 만한 강력한 논증도 갖고 있어. 내 어머니가 내 이전에 존재했다는 주장 조차도, 네 말처럼 추론의 도약이 있을 거야. 추론의 도약에도 불구하고 우리 이성은 그 주장을 논증하는 추론이 합당하다고 판단할 만큼 건전하다고 생각해. 극단 회의주의자가 아니라면 말이야.

만일 내 어머니가 나 이전에 존재했다는 주장이 형이상학 주장이라고 비판한다면, 나는 그런 형이상학 주장을 받아들이는 형이상학자로 계속 남을 생각이란다. 하지만 나는 논증의 힘을 믿는 사람이야. 내 어머니가 나 이전에 존재했으며, 그는 생각하고 인식하는 존재였다는 것, 하지만 그는 다른 생각하고 인식하는 존재 없이 생각하고 인식하는 존재일 수 없었다는 것을 나는 논증하고 있어. 이 논증을 유물론자가 반박할 수 있을까? 내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실증할 수 있을까? 오히려 많은 인간 실험은 내 주장이 옳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나는 믿어.

내 생각에 보미는 형이상학에 대한 오해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외부 사물"이라는 개념 자체가 형이상학 개념이라고 주장했어. "원인"은 형이상학의 대표 개념이지. 물리학에서 이런 개념들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계속 있었어. 양자역학 해석 논쟁에서 "형이상학"이라고 칭할 때는 외부 사물의 존재를 가정할 때, 조롱하는 낱말이기도 했어. 하지만 나는 원인, 사물, 진실 등은 물리학에서 결코 제거할 수 없는 형이상학 요소라고 생각해. 형이상학은 단순히 경험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 우리 인식을, 우리 경험을 해명하는 필수불가결한 가정이야. 외부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가 실증해 줄 수 있을까? 실증할 수 있는 것만 존재한다면, 아니 의미 있다면, 그래서 실증할 수 있는 것이 오직 우리의 감각자료나 자극작용밖에 없다면, 물리학은 실증 학문이 결코 될 수 없단다. 나는 카르납이 초기에 실증주의자에서 차츰 물리주의자로 개종한 것이 큰 "진보"라고 믿는다. 다만 나는 물리주의 그 이상으로 "진보"하고 싶은 형이상학자야. 물론 "진보"라는 단어는 나의 가치평가가 담긴 것인데 실증주의자나 회의주의자 눈에는 "퇴보"나 "퇴락"이라고 생각하겠지.

나는 형이상학자이면서 여전히 추론의 힘을 신뢰하는 사람이란다. 이것이 내가 신비주의자가 설교가나 정치인이나 예술가나 칼럼니스트가 아니라 철학자인 이유가 아니겠니? 나도 도약, 비약, 직관, 통찰을 중요시하지만 이 모든 것을 타인에게 표현하는 가장 철학적인 방법은 논증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사람들이 내 논증을 조롱해도, 그런 논증 없는 조롱은 나를 흔들지 못한단다. 오직 경험과 반론만이 내 논증을 위태롭게 할 수 있을 거야. 논증의 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결코 내 논증에 대해 반대 논증을 할 수 없겠지.

그리고 철학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철학자의 미사여구나 그의 삶이 아니라 철학자의 논증이라고 나는 생각해. 철학을 철학답게 하는 것은 논증이라는 말이야. 하지만 모든 사람이 철학자가 될 필요는 없어. 이것은 모든 사람이 신학자가 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야. 하지만 그가 철학자가 되려 한다면, 그가 가장 신뢰해야 하는 것은 직관과 경험에서 출발하여 이성에 의해 인도되는 추론과 논증이라고 나는 믿는단다.

2012/03/11 13:36 2012/03/11 13:36
  1. 성재
    2012/04/03 10:42
    마지막 문장이 참 좋습니다.

    저는 과학의 끝에 철학이, 철학의 끝에 신앙이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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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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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백현진: 옆집 그림

전시일시   


2012년 2월 15일 수요일 - 3월 18일 일요일

전시장소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683-31

관람시간       


12:30-11:00pm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문의 : 아트스페이스 풀 02)396-4805 altpool@altpool.org


전시개요           


백현진은 그림을 대하고 그리기를 행함에서 하염없이 되뇐 문장을 말한다. 그것은 다음이다.

기교의 자취를 노골적으로 남기지 않으면서 마음 가는 대로 붓을 옮겨 아무런 의혹 없이 대상을 기록하는 일.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들은 2010년 가을부터 2012년 겨울 사이에 제작되었다. 2011년 말에 두산 갤러리의 개인전 <열세점+보너스>에서 누락된 작업들과 앞으로의 전시에서 누락될 것으로 예상되는 작업들을 선별해 구성한 전시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오픈하기에 앞서 작품 이미지와 이번 전시와 관련된 텍스트를 위의 한 단락을 제외하고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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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합문화공간 꿀 (꿀풀) 가는 길   


6호선 한강진 역 3번 출구 → 150m 직진 → 폭스바겐 매장 왼편 내리막 골목길








 한남동에 있는 또다른 전시공간들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동 Takeout Drawing Hannam-dong

서울 용산구 한남동 683-139
11am-12pm
t.02 797 3139
http://www.takeoutdrawing.com/

삼성미술관 리움

오전 10:30부터 오후 6시까지 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http://leeum.samsungfounda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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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풀      


은 미술의 실험을 지원하기 위해 “꿀”과 국내 기획 파트너쉽을 맺었다.

은 신생 복합문화공간(대표 최정화)으로서, 바와 카페, 레지던스와 “꿀풀” (풀의 프로젝트 실험 공간), 가슴 라운지가 서로 간섭하며 공존하는 하나의 유기체이다.

은 번식하는 균처럼 시각예술, 건축, 디자인, 퍼포먼스 등을 교차시키며, 이것들이 또다시 서로 엉기고 번져서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협동활동”은 미술과 일상, 창작과 생활의 경계를 넘어 결과보다는 과정과 만남 그리고, 공존 자체의 생산적 의미를 촉발한다.

은 6개월 단위로 5-6인(팀/개인) 내외의 작가들을 초대하여 ”꿀풀 프로젝트“ 시리즈를 마련한다.

꿀풀은 작가들과 풀이 공동으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공간으로서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하며 별도의 지원비는 없다. 풀 시즌개막과 함께 꿀에서는 꿀풀 1기 프로젝트와 꿀 자체에서 기획하는 4명의 작가 팀/개인이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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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미술의 대안적 실험과 주체적 미술문화 형성이라는 미션 하에 설립, 비영리 전문예술법인체

전시, 교육, 출판 활동을 통해 작가지원, 미술 담론 생산, 소통 기능을 수행하는 미술전시공간, 민간 미술교육기관, 그리고 미술인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서울문화재단 등으로부터의 공공 중앙문예기금과 지역문화재단기금, 후원제를 통한 개인 후원금, 기금마련전을 통한 자체 수익금으로 운영된다.










  ‘풀’의 기관 명칭


풀의 초대 대표 미술비평가 이영욱(현 전주대학교 미술학과교수)이 시인 故 김수영(1921-68)의 유작시 ‘풀’(1968)의 제목을 빌어 붙였다.

시인 김수영에게 ‘풀’은  ‘바람보다 더 빨리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불굴의 청년정신, 대안적 실험추구를 상징한다.

풀은 또한 영어로 pool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동시에 함축하면서 미술인들에 의한 공동자립운영이라는 특화된 풀의 정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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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안공간 풀?      


대안공간 풀은 2010년부터 기관명칭을 ‘풀 art space pool’로 변경합니다. 대안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안’은 실험과 비판정신이라는 미술 창작활동의 기본 전제이기에 그냥 ‘풀’로도 충분합니다. 2010년 풀은 미술인들이 주인 되는 미술기관 모델을 지켜가고자 합니다. 2010년 풀은 창작 주체 각자가 발휘하는 힘과 개별성이 ‘연결’되어 다중의 연대체가 되길 희망합니다. 2010년 풀은 그 연결의 범위가 지역, 인접학문, 공중에 이어 초국가적인 창작 주체들의 연결망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풀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행보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풀 대표, 디렉터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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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이번주 SHARE01을 통해 얻은 정보로 한남동에 가시면

복합문화공간 꿀, 테이크아웃드로잉, 삼성미술관 리움을

둘러보면서 전시공간의 차이에 대해 느껴보실 수 있습니다.

현대미술과 가까워지세요 :)

               글   노소영

 디자인/편집   황혜리


CREATIVE ARTIST GROUP A-TURN

http://cafe.naver.com/artturn

전시, 전시장 정보 출처  artspace pool http://www.altpool.org/


2012/03/07 12:00 2012/03/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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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ve artist group

A-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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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6 17:55 2012/03/0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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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각은, 그것이 긍정적 생각이든 회의적 생각이든, 내부에 관한 생각이든 외부에 관한 생각이든, 객관적 진리 개념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이 개념은 오직 타자와 의사소통 중에 있는 피조물들만 접근할 수 있다. 앎의 획득은 주관적인 것에서 객관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것에 기초해 있지 않다. 앎의 획득은 전체론적으로 생기며, 그것은 처음부터 상호인간적이다. 데이빗슨의 <외부주의 인식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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