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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본의 신학자들에게 바치는 헌사 요약=== | ===소르본의 신학자들에게 바치는 헌사 요약=== | ||
| − | 하느님과 영혼이라는 두 주제는 신학보다는 철학의 | + | 하느님과 영혼이라는 두 주제는 신학보다는 철학의 도움으로 논증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학자들도 자연 이성을 통해 하느님의 실존이 증명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해 알려질 수 있는 모든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의 마음에 있는 이성활동을 통해서만 밝혀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바깥에 계신다는 것, 사람의 영혼이 몸과 아예 다르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논증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나는 단지 가장 우선하면서 가장 중요한 논증만을 취하여, 감히 매우 확실하고 분명한 논증을 제안할 수 있도록 이 논증들을 발전시켰습니다. 비록 내가 여기서 사용한 논증은, 내 생각에, 설사 그 이상은 아니라 하더라도, 기하학의 논증만큼 확실하고 분명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논증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는 내 논증들이 다소 길고 일부 논증은 서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엇보다 내 논증들은 선입견으로부터 아예 벗어난 마음을, 감각들의 구속을 쉽게 떨쳐낼 수 있는 마음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 논증을 차근차근 따져본다면,] 마침내 하느님의 실존이나, 사람의 영혼과 몸의 진정한 구별을 의심하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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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위한 서문 요약=== | ===독자를 위한 서문 요약=== | ||
| − | 사람의 마음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때, 자신을 | + | 사람의 마음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때, 자신을 생각하는 사물 이외에 다른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이 사실이 마음의 본성 또는 본모습은 오직 생각하는 사물이라는 점을 함축하지 않는다고 [일부 독자들은 반론할지 모르겠다. 마음은 생각함 이외에 다른 본성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은] 내 본모습에 속한다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오직 나는 생각하는 사물이라는 사실, 또는 내 안에 생각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물이라는 사실뿐이며, 그 이외 다른 것을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어떤 것도 내 본모습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그 어떤 다른 것도 사실상 내 본모습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2성찰에서] 보여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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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나는 나보다 더 완전한 사물에 대한 관념을 내 안에 갖고 있다. 이 사실로부터 그 관념 자체가 나보다 더 완전하다는 것이 따라 나오지 않는다고, 더구나 그 관념이 표상해주는 것이 현존한다는것이 따라 나오지 않는다고 [일부 독자들은 반론할지 모르겠다.] 나는 "관념"이라는 낱말에 두 가지 뜻이 있다고 답하고자 한다. 우리는 관념을 질료적으로, 즉 지성의 작용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 관념이 나보다 더 완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관념을 표상적으로, 즉 지성의 작용에 의해 표현된 것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표현된 것이 비록 내 외부에 현존한다고는 가정할 수 없겠지만, 그것은 그 본질로 인해 나보다 더 완전할 수 있다. 그러나 나보다 더 완전한 사물의 관념이 내 안에 있다는 것에서 이 사물이 실제로 현존한다는 것이 어떻게 귀결되는지는 [제3성찰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 |
| − | 내가 보기에는, 이런 사람의 수는 아주 적다. | + | 신의 현존을 논박하기 위해 무신론자들이 통상 제시하는 모든 근거는 신에게도 인간의 정념이 있다고 날조하거나, 아니면 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규정할 수 있는 힘과 지혜가 우리 정신에 다는 것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우리 정신은 유한한 반면 신은 파악될 수 없고 무한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이들의 반론은 그리 고려할 만한 것이 아니다. 는 진심으로 나와 더불어 성찰하며, 자신의 정신을 감각으로부터, 모든 선입견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 있고 또 떼어 놓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쓰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런 사람의 수는 아주 적다. |
2011년 12월 29일 (목) 15:46 판
데카르트의 성찰
1641년 라틴어 초판 제목: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 여기서 신의 현존 및 인간 영혼의 불명성을 증명한다. 1642년 라틴어 2판 제목: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 여기서 신의 현존 및 인간 영혼과 신체의 상이성을 증명한다.
소르본의 신학자들에게 바치는 헌사 요약
하느님과 영혼이라는 두 주제는 신학보다는 철학의 도움으로 논증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학자들도 자연 이성을 통해 하느님의 실존이 증명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해 알려질 수 있는 모든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의 마음에 있는 이성활동을 통해서만 밝혀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바깥에 계신다는 것, 사람의 영혼이 몸과 아예 다르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논증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나는 단지 가장 우선하면서 가장 중요한 논증만을 취하여, 감히 매우 확실하고 분명한 논증을 제안할 수 있도록 이 논증들을 발전시켰습니다. 비록 내가 여기서 사용한 논증은, 내 생각에, 설사 그 이상은 아니라 하더라도, 기하학의 논증만큼 확실하고 분명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논증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는 내 논증들이 다소 길고 일부 논증은 서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엇보다 내 논증들은 선입견으로부터 아예 벗어난 마음을, 감각들의 구속을 쉽게 떨쳐낼 수 있는 마음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 논증을 차근차근 따져본다면,] 마침내 하느님의 실존이나, 사람의 영혼과 몸의 진정한 구별을 의심하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독자를 위한 서문 요약
사람의 마음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때, 자신을 생각하는 사물 이외에 다른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이 사실이 마음의 본성 또는 본모습은 오직 생각하는 사물이라는 점을 함축하지 않는다고 [일부 독자들은 반론할지 모르겠다. 마음은 생각함 이외에 다른 본성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은] 내 본모습에 속한다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오직 나는 생각하는 사물이라는 사실, 또는 내 안에 생각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물이라는 사실뿐이며, 그 이외 다른 것을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어떤 것도 내 본모습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그 어떤 다른 것도 사실상 내 본모습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2성찰에서] 보여줄 것이다.
나는 나보다 더 완전한 사물에 대한 관념을 내 안에 갖고 있다. 이 사실로부터 그 관념 자체가 나보다 더 완전하다는 것이 따라 나오지 않는다고, 더구나 그 관념이 표상해주는 것이 현존한다는것이 따라 나오지 않는다고 [일부 독자들은 반론할지 모르겠다.] 나는 "관념"이라는 낱말에 두 가지 뜻이 있다고 답하고자 한다. 우리는 관념을 질료적으로, 즉 지성의 작용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 관념이 나보다 더 완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관념을 표상적으로, 즉 지성의 작용에 의해 표현된 것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표현된 것이 비록 내 외부에 현존한다고는 가정할 수 없겠지만, 그것은 그 본질로 인해 나보다 더 완전할 수 있다. 그러나 나보다 더 완전한 사물의 관념이 내 안에 있다는 것에서 이 사물이 실제로 현존한다는 것이 어떻게 귀결되는지는 [제3성찰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신의 현존을 논박하기 위해 무신론자들이 통상 제시하는 모든 근거는 신에게도 인간의 정념이 있다고 날조하거나, 아니면 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규정할 수 있는 힘과 지혜가 우리 정신에 다는 것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우리 정신은 유한한 반면 신은 파악될 수 없고 무한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이들의 반론은 그리 고려할 만한 것이 아니다. 는 진심으로 나와 더불어 성찰하며, 자신의 정신을 감각으로부터, 모든 선입견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 있고 또 떼어 놓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쓰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런 사람의 수는 아주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