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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데카르트의 성찰== 1641년 라틴어 초판 제목: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 여기 서 신의 현존 및 인간 영혼의 불명성을 증명한다. 1642년 라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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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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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과 번역본==
  
1641년 라틴어 초판 제목: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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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의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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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41년 라틴어 초판 제목: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 여기서 신이 바깥에 계시다는 것과 사람의 영혼이 사그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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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42년 라틴어 2판 제목: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 여기서 신이 바깥에 계시다는 것과 사람의 영혼과 몸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밝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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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47년 불어판 제목: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 여기서 신이 바깥에 계시다는 것과 사람의 영혼과 몸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밝혀 보인다.
  
서 신의 현존 및 인간 영혼의 불명성을 증명한다.
 
  
1642년 라틴어 2판 제목: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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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번역에 참고한 번역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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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복, 문예출판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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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명관, 창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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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진호, 책세상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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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효, 삼성출판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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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earlymoderntexts.com/de.html J. Bennett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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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 Cottingham,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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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Moriarty,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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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filepedia.org/meditations-on-first-philosophy J. Veitch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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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sacred-texts.com/phi/desc/med.txt  E. S. Haldane 1911] [http://www.vahidnab.com/med.pdf PDF]
  
신의 현존 및 인간 영혼과 신체의 상이성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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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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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는 특히 이현복, Moriarty, Bennett, Cottingham의 번역을 주로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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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성찰의 옮김을 제외하고, 군데군데 문장들을 건너뜀으로써 원문의 일부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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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락을 살리고 설명하기 위해 [] 속에 옮긴이가 새로운 구절들을 넣었다. [] 속의 구절은 옮긴이가 원문을 요약하거나 덧붙여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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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의 헌사, 서문, 개관==
  
 
===소르본의 신학자들에게 바치는 헌사 요약===
 
===소르본의 신학자들에게 바치는 헌사 요약===
  
하느님과 영혼이라는 두 주제는 신학보다는 철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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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영혼이라는 두 주제는 신학의 도움보다는 철학의 도움으로 논증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학자들도 자연 이성을 통해 하느님이 저기 계시다는 것을 증명할 있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의 마음에 있는 이성활동을 통해서만 밝혀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바깥에 계신다는 것, 사람의 영혼이 몸과 아예 다르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논증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나는 단지 가장 우선하면서 가장 중요한 논증만을 취하여 이를 발전시켜, 감히 매우 확실하고 분명한 논증을 제안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내가 여기서 사용한 논증이 기하학의 논증보다 못지 않게 확실하고 분명하다고, 아니 그것보다 더 확실하고 분명하다고 생각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 논증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는 내 논증들이 다소 길고 일부 논증들은 서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엇보다 내 논증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입견으로부터 아예 벗어난 마음이 필요하며, 감각들과 한 무리를 이루고 있는 데서  기꺼이 빠져나올 있는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 논증을 차근차근 따져본다면,] 마침내 하느님이 저기 계시다는 것을 의심하거나, 사람의 영혼과 몸이 참으로 다르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움으로 논증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학
 
 
 
자들도 자연 이성을 통해 하느님의 실존이 증명될
 
 
 
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에
 
 
 
해 알려질 수 있는 모든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의 마음에  
 
 
 
있는 이성활동을 통해서만 밝혀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
 
 
 
바깥에 계신다는 것, 사람의 영혼이 몸과 아예 다르
 
 
 
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논증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단지 가장 우선하면서 가장 중요한 논증만을 취하여,  
 
 
 
감히 매우 확실하고 분명한 논증을 제안할 수 있도록 이
 
 
 
논증들을 발전시켰습니다. 비록 내가 여기서 사용한
 
 
 
증은, 내 생각에, 설사 그 이상은 아니라 하더라도, 기하
 
 
 
학의 논증만큼 확실하고 분명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논증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는  
 
 
 
내 논증들이 다소 길고 일부 논증은 서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엇보다 내 논증들은 선입견으로부터  
 
 
 
아예 벗어난 마음을, 감각들의 구속을 쉽게 떨쳐낼
 
 
 
는 마음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 논증을
 
 
 
근차근 따져본다면,] 마침내 하느님의 실존이나, 사람의  
 
 
 
영혼과 몸의 진정한 구별을 의심하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독자를 위한 서문 요약===
 
===독자를 위한 서문 요약===
  
사람의 마음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때, 자신을 생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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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때, 스스로를 오직 생각하는 사물로만 본다. [이로부터 나는] 마음의 본성 또는 본모습은 순전히 마음이 생각하는 사물이라는 데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부 독자는 마음이 스스로를 오직 생각하는 사물로만 본다는 사실이 내 주장을 함축하지 않는다고 반론할지 모르겠다. 그들은 마음이 생각함 이외에 다른 본성을 가질 수도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은] 내 마음의 본모습에 속한다고 내 마음이 알고 있는 것은, 오직 내 마음이 생각하는 사물이라는 사실뿐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내 마음은 마음이 생각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물이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으며 밖에 다른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제2성찰에서는] 내가 내 마음의 본모습에 속하는 그 어떤 다른 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로부터 그 어떤 다른 것도 실제로 마음의 본모습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따라 나온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는 사물 이외에 다른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이 사실이
 
 
 
마음의 본성 또는 본모습은 오직 생각하는 사물이라는
 
 
 
점을 함축하지 않는다고 [일부 독자들은 반론할지 모르
 
 
 
겠다. 마음은 생각함 이외에 다른 본성을 가질 수도
 
 
 
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은] 내 본모습에 속한
 
 
 
다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오직 나는 생각하는 사물이
 
 
 
라는 사실, 또는 안에 생각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물이라는 사실뿐이며, 이외 다른 것을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어떤 것도 내 본모습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그  
 
 
 
어떤 다른 것도 사실상 내 본모습에 속하지 않는다는
 
 
 
을 [제2성찰에서] 보여줄 것이다.  
 
 
 
나는 나보다 더 완전한 사물에 대한 관념을 내 안에 갖
 
 
 
고 있다. 이 사실로부터 그 관념 자체가 나보다 더 완전
 
 
 
하다는 것이 따라 나오지 않는다고, 더구나 그 관념이
 
 
 
표상해주는 것이 현존한다는것이 따라 나오지 않는다고
 
 
 
[일부 독자들은 반론할지 모르겠다.] 나는 "관념"이라는
 
 
 
낱말에 두 가지 뜻이 있다고 답하고자 한다. ㄴ말은 이
 
 
 
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관념을 질료적으로,
 
 
 
즉 지성의 작용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우
 
 
 
리는 그 관념이 나보다 더 완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관념을 표상적으로, 즉 지성의 작용에
 
 
 
의해 표현된 것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표현된 것
 
 
 
이 비록 내 외부에 현존한다고는 가정할 수 없겠지만, 그
 
 
 
것은 그 본질로 인해 나보다 더 완전할 수 있다. 그러나
 
 
 
나보다 더 완전한 사물의 관념이 내 안에 있다는 것에서
 
 
 
이 사물이 실제로 현존한다는 것이 어떻게 귀결되는지는
 
  
[제3성찰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
나는 내 마음보다 더 완전한 사물에 대한 관념을 내 마음 안에 갖고 있다. [일부 독자는] 이 사실로부터 그 관념 자체가 내 마음보다 더 완전하다는 것이 따라 나오지 않는다고 [반론할지 모르겠다.] 그 관념이 나타내주는 것이 저기 바깥에 존재한다는 것이 더더욱 따라 나오지 않는다고 [반론할 것이다.] 나는 "관념"이라는 낱말에 두 가지 뜻이 있다고 답하고자 한다. [첫째] "관념"은 [지성의] 재료와 관계된 것으로, 즉 지성의 작용을 뜻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이 경우에 [나보다 더 완전한 사물에 대한 관념뿐만 아니라] 관념이 내 마음보다 더 완전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둘째] "관념"은 [지성의] 대상과 관계된 것으로서, 즉 앞의 지성 작용을 통해 나타난 사물을 뜻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설사 지성 작용을 통해 나타난 사물이 지성 바깥에 존재한다고 우리가 [굳이] 가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사물은 자신의 본모습 때문에 내 마음보다 더 완전할 수 있다. [제3성찰에서는] 내 마음보다 더 완전한 어떤 사물에 대한 관념이 내 마음 안에 있다는 이 단순한 사실로부터 이 사물 자체가 실제로 바깥에 존재한다는 것이 따라 나온다는 것을 길게 설명할 것이다. [[Haldane의 영역#독자를 위한 서문 발췌|[영역]]]
  
신의 현존을 논박하기 위해 무신론자들이 통상 제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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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성찰 개관 요약===
  
모든 근거는 신에게도 인간의 정념이 있다고 날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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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성찰: 우리가 학문의 토대로서 여태까지 갖고 있었던 것들 외에 다른 토대가 없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특히 물질에 관한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다. [우리가 의심하는 까닭은, 우리가 의심한 것이 마침내 참말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거나, 아니면 신이 무엇을 할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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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성찰: 마음은 조금이라도 그 존재를 의심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기 마음대로 [가정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이를] 가정하는 동안에 마음 그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이로써 마음은 자기에게 속하는 것들이 물체에 속하는 것들과 다르다는 것을 쉽게 식별할 수 있다. [우리가 밝고 뚜렷하게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이해하는 그대로 참이다. 그래서 두 실체가 서로 구별되는 실체라고 우리가 밝고 뚜렷하게 이해한다면, 그 둘은 실제로 서로 구별되는 실체이다. 만일 우리가 정신과 물체에 대해 각각 밝은 개념을 형성한다면, 우리는 정신과 물체가 서로 구별되는 실체라는 것을 밝고 뚜렷하게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정신과 물체는 실제로 구별되는 실체이다. 이 점은 영혼의 불멸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쓰일 있다.]
  
지를 이해하고 규정할 수 있는 힘과 지혜가 우리 정신에
+
* 제3성찰: [하느님은 저기 바깥에 계신다.] 우리는  가장 완전한 이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다. 이 관념이 나타내는 대상 자체가 매우 큰 실재성을 갖고 있어서 이런 관념은 오직 가장 완전한 원인으로부터만 나올 있다. [한 기술자의 마음 안에 몹시 완전한 기계에 대한 관념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 관념에 나타난 객관적 정교함이 어떤 원인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관념도 오직 하느님 자신만이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있다는 것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우리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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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성찰: 우리가 밝고 뚜렷하게 아는 것들은 모두 참말이다. [참말을 거짓말로 여기고, 거짓말을 참말로 여기는] 거짓됨이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은 유한한 반면 신은 파악될 수 없고 무한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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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성찰: 물체의 일반 본성은 무엇인가? 하느님이 저기 바깥에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새로운 논증이 있다. 기하학 증명의 확실성조차도 하느님에 대한 앎에 의존한다.
  
염두에 둔다면, 이들의 반론은 그리 고려할 만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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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성찰: 지성활동과 상상활동은 구별되어야 한다. 마음은 실제로 몸과 구별되지만, 마음은 몸과 가깝게 결합되어 단일성을 이룬다. 끝으로 나는 물질 사물들이 존재한다는 결론으로 이끌어주는 모든 논증들을 제시했다. [내가 이런 논증들을 제시한 것은 이 논증들이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며 사람이 몸을 갖고 있다는 것 따위를 증명하는 데 쓸모 있기 때문이 아니다.] 제 정신인 사람은 아무도 이런 것을 진지하게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물질 사물이 저기 바깥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논증들을 고찰함으로써, 이 논증들이 우리 마음과 하느님의 존재를 보여주는 논증들에 비해 덜 튼튼하고 덜 밝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이것을 알려주는 데 쓸모 있기 때문에 나는 저 논증들을 제시했다. 따라서] 우리 마음과 하느님에 대한 앎에 이르게 해 주는 논증은 사람의 지성이 파악할 수 있는 모든 논증들 가운데 가장 확실하고 가장 분명하다. 내가 이 <성찰>에서 증명하려 했던 모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나와 더불어 성찰하며, 자신의 정신을 감
+
==본문==
  
각으로부터, 모든 선입견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 있고 또
+
===제1성찰===
  
떼어 놓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쓰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런 사람의 수는 아주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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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몇 해 전에 내가 어린 시절부터 매우 많은 거짓된 견해들을 참이라고 여겨왔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또한 이런 흔들리는 토대 위에 세워왔던 모든 믿음들이 몹시도 의심스럽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7년 10월 16일 (월) 09:56 기준 최신판

원문과 번역본[편집]

원문의 제목[편집]

  • 1641년 라틴어 초판 제목: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 여기서 신이 바깥에 계시다는 것과 사람의 영혼이 사그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 보인다.
  • 1642년 라틴어 2판 제목: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 여기서 신이 바깥에 계시다는 것과 사람의 영혼과 몸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밝혀 보인다.
  • 1647년 불어판 제목: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 여기서 신이 바깥에 계시다는 것과 사람의 영혼과 몸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밝혀 보인다.


아래 번역에 참고한 번역본들[편집]

  • 이현복, 문예출판사 1997.
  • 최명관, 창 2011.
  • 양진호, 책세상 2011.
  • 김형효, 삼성출판사 1990.
  • J. Bennett 2007
  • J. Cottingham,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4.
  • M. Moriarty,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 J. Veitch 1901
  • E. S. Haldane 1911 PDF


일러두기[편집]

  • 옮긴이는 특히 이현복, Moriarty, Bennett, Cottingham의 번역을 주로 참고했다.
  • 제6성찰의 옮김을 제외하고, 군데군데 문장들을 건너뜀으로써 원문의 일부만을 옮겼다.
  • 맥락을 살리고 설명하기 위해 [] 속에 옮긴이가 새로운 구절들을 넣었다. [] 속의 구절은 옮긴이가 원문을 요약하거나 덧붙여 쓴 것이다.


성찰의 헌사, 서문, 개관[편집]

소르본의 신학자들에게 바치는 헌사 요약[편집]

하느님과 영혼이라는 두 주제는 신학의 도움보다는 철학의 도움으로 논증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학자들도 자연 이성을 통해 하느님이 저기 계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의 마음에 있는 이성활동을 통해서만 밝혀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바깥에 계신다는 것, 사람의 영혼이 몸과 아예 다르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논증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나는 단지 가장 우선하면서 가장 중요한 논증만을 취하여 이를 발전시켜, 감히 매우 확실하고 분명한 논증을 제안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내가 여기서 사용한 논증이 기하학의 논증보다 못지 않게 확실하고 분명하다고, 아니 그것보다 더 확실하고 분명하다고 생각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 논증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는 내 논증들이 다소 길고 일부 논증들은 서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엇보다 내 논증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입견으로부터 아예 벗어난 마음이 필요하며, 감각들과 한 무리를 이루고 있는 데서 기꺼이 빠져나올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 논증을 차근차근 따져본다면,] 마침내 하느님이 저기 계시다는 것을 의심하거나, 사람의 영혼과 몸이 참으로 다르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독자를 위한 서문 요약[편집]

사람의 마음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때, 스스로를 오직 생각하는 사물로만 본다. [이로부터 나는] 마음의 본성 또는 본모습은 순전히 마음이 생각하는 사물이라는 데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부 독자는 마음이 스스로를 오직 생각하는 사물로만 본다는 사실이 내 주장을 함축하지 않는다고 반론할지 모르겠다. 그들은 마음이 생각함 이외에 다른 본성을 가질 수도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은] 내 마음의 본모습에 속한다고 내 마음이 알고 있는 것은, 오직 내 마음이 생각하는 사물이라는 사실뿐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내 마음은 내 마음이 생각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물이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으며 그 밖에 다른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제2성찰에서는] 내가 내 마음의 본모습에 속하는 그 어떤 다른 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로부터 그 어떤 다른 것도 실제로 내 마음의 본모습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따라 나온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나는 내 마음보다 더 완전한 사물에 대한 관념을 내 마음 안에 갖고 있다. [일부 독자는] 이 사실로부터 그 관념 자체가 내 마음보다 더 완전하다는 것이 따라 나오지 않는다고 [반론할지 모르겠다.] 그 관념이 나타내주는 것이 저기 바깥에 존재한다는 것이 더더욱 따라 나오지 않는다고 [반론할 것이다.] 나는 "관념"이라는 낱말에 두 가지 뜻이 있다고 답하고자 한다. [첫째] "관념"은 [지성의] 재료와 관계된 것으로, 즉 지성의 작용을 뜻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이 경우에 [나보다 더 완전한 사물에 대한 관념뿐만 아니라] 관념이 내 마음보다 더 완전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둘째] "관념"은 [지성의] 대상과 관계된 것으로서, 즉 앞의 지성 작용을 통해 나타난 사물을 뜻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설사 지성 작용을 통해 나타난 사물이 지성 바깥에 존재한다고 우리가 [굳이] 가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사물은 자신의 본모습 때문에 내 마음보다 더 완전할 수 있다. [제3성찰에서는] 내 마음보다 더 완전한 어떤 사물에 대한 관념이 내 마음 안에 있다는 이 단순한 사실로부터 이 사물 자체가 실제로 바깥에 존재한다는 것이 따라 나온다는 것을 길게 설명할 것이다. [영역]

여섯 성찰 개관 요약[편집]

  • 제1성찰: 우리가 학문의 토대로서 여태까지 갖고 있었던 것들 외에 다른 토대가 없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특히 물질에 관한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다. [우리가 의심하는 까닭은, 우리가 의심한 것이 마침내 참말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 제2성찰: 마음은 조금이라도 그 존재를 의심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기 마음대로 [가정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이를] 가정하는 동안에 마음 그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이로써 마음은 자기에게 속하는 것들이 물체에 속하는 것들과 다르다는 것을 쉽게 식별할 수 있다. [우리가 밝고 뚜렷하게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이해하는 그대로 참이다. 그래서 두 실체가 서로 구별되는 실체라고 우리가 밝고 뚜렷하게 이해한다면, 그 둘은 실제로 서로 구별되는 실체이다. 만일 우리가 정신과 물체에 대해 각각 밝은 개념을 형성한다면, 우리는 정신과 물체가 서로 구별되는 실체라는 것을 밝고 뚜렷하게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정신과 물체는 실제로 구별되는 실체이다. 이 점은 영혼의 불멸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쓰일 수 있다.]
  • 제3성찰: [하느님은 저기 바깥에 계신다.] 우리는 가장 완전한 이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다. 이 관념이 나타내는 대상 자체가 매우 큰 실재성을 갖고 있어서 이런 관념은 오직 가장 완전한 원인으로부터만 나올 수 있다. [한 기술자의 마음 안에 몹시 완전한 기계에 대한 관념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 관념에 나타난 객관적 정교함이 어떤 원인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관념도 오직 하느님 자신만이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 제4성찰: 우리가 밝고 뚜렷하게 아는 것들은 모두 참말이다. [참말을 거짓말로 여기고, 거짓말을 참말로 여기는] 거짓됨이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 제5성찰: 물체의 일반 본성은 무엇인가? 하느님이 저기 바깥에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새로운 논증이 있다. 기하학 증명의 확실성조차도 하느님에 대한 앎에 의존한다.
  • 제6성찰: 지성활동과 상상활동은 구별되어야 한다. 마음은 실제로 몸과 구별되지만, 마음은 몸과 가깝게 결합되어 단일성을 이룬다. 끝으로 나는 물질 사물들이 존재한다는 결론으로 이끌어주는 모든 논증들을 제시했다. [내가 이런 논증들을 제시한 것은 이 논증들이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며 사람이 몸을 갖고 있다는 것 따위를 증명하는 데 쓸모 있기 때문이 아니다.] 제 정신인 사람은 아무도 이런 것을 진지하게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물질 사물이 저기 바깥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논증들을 고찰함으로써, 이 논증들이 우리 마음과 하느님의 존재를 보여주는 논증들에 비해 덜 튼튼하고 덜 밝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이것을 알려주는 데 쓸모 있기 때문에 나는 저 논증들을 제시했다. 따라서] 우리 마음과 하느님에 대한 앎에 이르게 해 주는 논증은 사람의 지성이 파악할 수 있는 모든 논증들 가운데 가장 확실하고 가장 분명하다. 내가 이 <성찰>에서 증명하려 했던 모든 것은 바로 이것이다.


본문[편집]

제1성찰[편집]

나는 이미 몇 해 전에 내가 어린 시절부터 매우 많은 거짓된 견해들을 참이라고 여겨왔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또한 이런 흔들리는 토대 위에 세워왔던 모든 믿음들이 몹시도 의심스럽다는 것을 깨달았다.